1/10
아침 일찍 갈리에게서 메일이 왔다. 늦어서 미안하다며 인터뷰를 보내왔다. 빽빽하고 꼼꼼하게 적어 온 'flying dutchman' 토마스와 달리, 답변이 온통 운문체다. 얼마전 정범씨가 LDC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했는데, 혹시 만났느냐고 답메일을 보냈다. 주말 안에 인터뷰를 다 정리해야겠다. 비자 열매를 씹으니 입 안에서 편백나무 향이 난다.
엘렌 그리모와 유럽 실내 관현악단이 연주한 라벨 피아노 협주곡을 들었다. 2 악장, '아주 천천히 (adagio assai)'. 엘렌도, 지휘자 블라디미르도, 단원들도, 손짓도 표정도 눈길도, 모두 아름답다.
1/11
귤을 모두 갈무리하고 돌아왔다. 마르고 무른 귤, 새들이 쫀 귤들은 모두 땅으로 돌려보내고 성한 귤들을 모두 상자에 담았다. 썩을 것들은 이미 썩었다. 버텨낸 것들은 마를뿐, 썩지를 않는다. 나뭇 가지에 주황색의 흔적이 사라질무렵, 마음으로 말했다. 한 해 동안 고마웠어. 행복했다. 니들이 내 선생님이었구나.
농사 첫 해 스수확량은 1.7 톤으로 마무리했다. 엘렌 그리모의 연주를 들으며 차 안에서 점심을 먹는데, 하얗게 죽은 삼나무 하나가 30도 정도로 기울어진 채 흔들흔들거린다. 음악이 풍경을 달리 보이게 하고, 풍경이 음악을 달리 들리게 한다. 마무리된 번역본을 출판사에 보냈다.
1/12
농업 경영체 등록을 했다. 튤립 구근 세 뿌리를 사서 돌아왔다. 하루종일 라벨을 들었다. 엘렌 그리모의 dvd와 재주소년의 새 앨범을 주문했다. 다음 주에 있을 EM 농업교육을 신청했다. 오랜만에 와인을 마셨다.
1/13
운동장에 갔더니 오늘도 리틀야구단이 열심히 연습을 하고 있었다. 공과 원반으로 보현이와 놀아주었다. 얼마전엔 어떤 아저씨가 와서 물었지. "저... 혹시 개 훈련 시키는 분이세요?" 저 음악하는 사람이거든요. 아이들이 글러브를 한 줄로 벗어 놓고 준비 운동을 한다. 모양도 색도 똑같은 글러브가 하나도 없다. 파란 글러브. 노란 글러브. 큰 글러보. 작은 글러브. 야수용 글러브. 포수용 미트. 몸집도 손 모양도 다 다를테고, 각자 아이들의 손에 맞게 하나 같이 길들여졌겠지. 아이들마다 좋아하는 것도 다르고 싫어하는 것도 다른 것처럼. 각자의 행복이 다른 것처럼.
1/14
하루종일 비가 온다. 비를 맞으며 숲을 걸었다. 한기가 스며들 때까지 빗속을 걸어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1/15
삼촌 할아버지에게서 문자가 왔다. '사랑만이 천국에 이르는 통로다' 라고 문자를 보내셨다. 계속 할아버지의 문자를 보게 된다.
1/16
이루님과 차를 한 잔 했다. 영화용 필름을 10 롤, 향초를 선물로 가져다 주셨다. 전시회 얘기를 잠시 나누다가, 카메라 얘기로 빠졌다. 그날 저녁 필름 카메라 하나를 주문했다. 인터뷰 글 3 개를 겨우 마무리해서 미술관에 넘겼다.
(...)나에게 음악이란, 내가 '바로 그 곳 (the zone)'이라 부르는 잠재의식의 세계로 다다를 수 있게 해주는 하나의 방식이에요. 내가 '그 곳'에 있을 때, 온갖 생각들이 자유롭게 흘러다니면서 같이 연주하는 사람들과 강한 유대감으로 아이디어를 주고 받을 수 있게 돼요. 한 팀이 이런 상태로 연주를 하게 되면, 사람들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걸 금세 알아차리죠. 그리고 리스너들이 어떤 종류이든 비로소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거고요.
Thomas Baggerman
(...)듣자. 듣자. 듣자. 모든 음악을 들어봅시다. 길은 각자가 찾고요. 따라합시다. 그러고 나서는, 만들어냅시다. 기타든 피아노든 드럼이든, 무슨 악기든 찾아봅시다.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게 제일입니다. 부끄러워하지 맙시다. 사랑합시다.
Ghali Hadefi
1/17
집 앞바다에 나가 돌을 주웠다. 바다의 햇살 아래 바다의 바람을 맞으며 쓸만한 돌을 주웠다. 그 익숙한 햇살과 소리와 냄새와 바다 생물들. 모든 것들이 어린 시절 나의 바다를 떠올리게 했다. 밤이 되고 바람이 매섭게 불었다. 장에서 톳을 사와 밥에 넣어 먹었다.
1/18
밭으로 차를 몰고 가는데 문득 요즘 택시를 타는 것이 왜그리 힘들었는지 알 것 같았다. 이곳에서 나는 시속 60 킬로미터 이상으로 차를 몰 일이 없다. 밭에 도착해 형님 구역에서 덜 마른 것들만 골라 상자에 담았다. 몇 달을 내버려두다시피한 퇴비도 정리하고, 빼먹고 드문드문 달려있는 열매도 마저 따주었다. 밭 한구석에 한라봉 나무가 두어 그루 있었다. 아직 익지 않은 것 같다. 2월 즈음엔 한라봉을 먹을 수 있겠구나. 집으로 돌아가는데, 포대기로 아이를 업은 한 젊은 아낙을 보았다. 말라죽은 삼나무에 매달린 하늘타리가 음표처럼 보인다. 작업실을 리뉴얼했다. 밤 늦게까지 음악을 들었다. 곡을 쓸 준비가 되었다.
p. 말하길:
곡을 쓸 준비가 되었다,
는 말에 부러움과 반가움을 느껴요.
폴은
다시 할 말이 생겼구나,
남길 마음들이 갈무리 되었구나,
노래하고 싶은 것이, 있구나.
부럽고
새 앨범과 공연을 기다리는 마음이
반갑습니다.
저는 언제쯤 하고 싶은 얘기가
갈무리 될까요.
언제쯤 그녀석들이 뿌연 안개 제치고 나와
제 앞에 턱- 앉아 줄까요.
아, 말이 길어져서
온갖 아이디와 온갖 비밀(번호)들을 생성해내느라 고생한 얘기는 쓸 자리가 없네요. 홍홍
새로 가입해야되는줄 모르고 수십 수차례의 로그인 시도 ㅎㅎㅎ 해킹시도가 아닙니다.
아무튼!
반가워요, 물고기마음
그리고
폴
2015년 2월 2일 — 7:22 오후
jane 말하길:
제주에서도 폴의 공연을 보고싶네요..
2015년 1월 27일 — 8:31 오후
echo 말하길:
Ghali가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모르지만, 폴님이 번역해주신 몇 개의 문장만 보아도 제 친구로 삼고 싶은 멋진 사람인 것 같아요. 그리고 과연 어떤 질문을 했기에 ‘(…)듣자. 듣자. 듣자. 모든 음악을 들어봅시다.(…)’ 라는 멋진(!) 대답을 했는지도 궁금하네요. Ghali가 말한대로 꼭 음악을 듣지 않더라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혹은 내가 해야할 일에 대해 ‘길은 각자 찾고, 따라하고, 만들어내고, 찾아보고, 자기 목소리를 내고, 부끄러워하지 말고, 사랑하면서’ 마주한다면, 내앞에 있는 그 ‘일’들이 조금은 즐거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Ghali, 멋지네요! 그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집니다!
2015년 1월 20일 — 9:14 오후
rainforest 말하길:
지난 번엔 여러번 시도해도 되지 않았던 로그인이 오늘 방문에 한번에 되니 무지 기쁩니다.
바뀐 홈페이지가 낯설고 새롭지만 폴님 만나려면 적응해야되겠지요.
컴퓨터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저에게는 폴님의 일상이 자연향기를 느끼게 해줍니다. 킁킁..
2015년 1월 20일 — 7:11 오후
gat1111 말하길:
곡을 쓸 준비가 되었다
아주 감동적인 말 입니다!
폴님!!저는 폴님이 너무 좋아요.
폴님!
이렇게 올라오는 해적방송에 기분이 너무 좋고 즐거워 집니다.
EM이라는 익숙한 단어가 있네요.
2015년 1월 20일 — 10:58 오전
생물고기 말하길:
글에서 봄을 느끼는건 저만이 아니었군요.
차곡 차곡 쌓인 일상의 감정들을 담담하게 적다보면
알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뭘하고 사나
뭘 하고 싶은가
뭘 해야 하는지를…
잠깐 멈춰서서 쉴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워요, 폴님.
2015년 1월 20일 — 12:40 오전
Grace 말하길:
말라죽은 삼나무에서도 음악을 보는 뼛속까지 뮤지션인 우리 조윤폴에게
누가 개 훈련 시키는 사람이냐고 묻고 그랬을까요 ㅋㅋㅋ
작고 소소한 것도 크게 느끼는 차분한 일상 나눠주셔서 감사해요 ^^
2015년 1월 19일 — 11:45 오후
brida 말하길:
올려주신 음악 잘 들었습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존재들을 생각하게 합니다.
곧 봄이 올 것 같아요.
폴님을 떠올리면 봄도 있고 여름도 있고 가을도 있고 겨울도 있지만…
봄을 기다리는 지금 이 때가 폴님 같아요…
고맙습니다.
2015년 1월 19일 — 9:59 오후
lupin0311 말하길:
원반 던지시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나봅니다ㅎㅎ
신곡 언제나 기다리고 있습니다.
2015년 1월 19일 — 9:54 오후
11dot2 말하길:
ㅇㅁㅇ! 곡을 쓸 준비가 되었다는 말만으로도 두근두근해요.
2015년 1월 19일 — 8:51 오후
mmoonn7 말하길:
음악하실 준비가 되셨다는 폴님의 한마디가 겨울 한가운데서 불어오는 봄바람 같다고 할까요?
봄을 부르는 마음으로 기다리겠습니다 ^^
2015년 1월 19일 — 8:29 오후
미도리 말하길:
요즘 도통 천천히 글을 읽을 시간이 없었는데 폴이 이런 시간을 마련해주네요. 고마워요:)
찬찬히 글을 읽어 내려오는데 왜 눈물이 핑 도는지.. 알 수 없네요.
요즘 부쩍 눈물이 많아졌어요.. 이 역시 알 수 없어요.
2015년 1월 19일 — 8:24 오후
allthatk 말하길:
올해는 스스로 잘 커서 ‘스’확량인가요.
폴님의 손이 탄 귤은 어떤 맛인지 궁금합니다. 폴님이 만약 수확물을 브랜드화 한다면 ‘그대손으로’ 어떠세요 ㅋㅋ
오늘은 절기 중 대한이라네요.
산중에 있으니 도시에선 느끼지 못한 것을 직접 보고 듣고 느낍니다. 아침에 교문 앞에 쌓여있던 눈이 녹으면서 강을 이루는 걸 보고 어찌나 신기하던지. 졸졸졸 흐르다 못해 콸콸콸 하는 맑은 물을 보며 웬일인지 ‘봄’을 봤습니다. 폴님의 노래와 함께하는 봄이라면 더 좋겠습니다.
2015년 1월 19일 — 6:12 오후
ebedadonai 말하길:
소소한 일상
그러나 무언가 남은 일상
그리고 무언가 나눌거리가 있는 일상
좋으네요 ^^
2015년 1월 19일 — 6:03 오후
saudade 말하길:
전에 집에서 찍어 둔 감귤나무 사진을 보면서 폴님은 잘 계시려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음악 들으며 천천히 음미해가며 읽어 봅니다..
요즘 위장상태가 영 안 좋아 꼭꼭 씹어 먹고 있는데 한 글자 한 글자 곱씹으며 읽게 되네요.
난 뭘하고 있는 거지..? 자꾸만 작아져 가는 느낌…
하지만, 폴님 오늘도 좋은 글.. 느낌.. 생각.. 잘 듣고 보고 갑니다.
덕분에 살 맛이 30% 정도나 나요.. 고마워요. 폴님. ^……………….^
2015년 1월 19일 — 5:47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