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간밤 보현이 잠을 설쳤는데, 실수로 진통제를 먹이지 않은 걸 뒤늦게 알아챘다. 보현에게 너무 미안했다.
보현과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깁스를 하고 왔다. 집에서도 붕대 처치를 할 수 있도록 선생님이 붕대 감는 모습을 촬영해두었다.
오에의 책을 읽었다.
10/2
간 잠 잠을 설치다.
오에의 책을 읽으며 '이격감'이란 신기한 단어를 떠올리다.
이격감. 모어와 다른 언어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 외서의 묘미는 이 이격감에 있는 것 아닐까. Luan과 수업을 하며, 간극이 너무 크면 공감하기 어렵고, 너무 좁으면 매력이 사라져버리는, 이격감의 묘미에 대해 얘기했다.
10/3
살아있는 물고기를 죽이게 되었다.
저녁 식사 내내 어두운 에너지가 감돌았다. 아내와의 대화가 무척 어두웠다.
10/4
보현 깁스를 풀다.
커피를 마시고, 운동을 하고 돌아왔다. 허님과 전화로 공연, 방송 의상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자라섬 공연 관련 사랑을 원경씨와 공유했다. 화정이 떡과 전, 잡채를 갖고 집으로 왔다. 밤 산책을 하고, 책을 읽고, 안약을 넣고 잠들다.
'forbearance'라는 단어를 우리말로 굳이 옮긴다면, '품어줌'이 아닐까 싶다.
나는 스스로도 이상하게 여길 만큼 느릿느릿하고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았습니다.
“엄마, 난 죽는 거야?”
“난, 네가 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죽지 않도록 기도하고 있어.”“의사 선생님이 이 아이는 죽을 겁니다, 더 이상 어쩔 수 없어요, 하고 말씀하셨는걸. 그렇게 들었어. 난 죽을 건가봐.”
어머니는 잠시 가만히 계셨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네가 죽더라도 내가 또다시 너를 낳아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치만 그 아이는 지금 죽는 나와는 다른 아이가 아닐까?”
“아니야, 똑같아. 내 몸에서 태어나서 네가 이제껏 보고 들었던 것들과 읽은 것, 네가 해왔던 일들 모두를 새로운 너한테 이야기해줄 거야. 그러면 지금 네가 알고 있는 말을 새로운 너도 사용하게 될 테니까 두 아이는 완전히 똑같아지는 거야.”
나는 뭐가 뭔지 잘 몰랐습니다. 그러나 정말 마음이 안정되어 다시 잠들 수 있었습니다.
오에 겐자부로 - '나의 나무' 아래에서
10/5
긴 연휴는 이미 시작되었지만, 왠지 추석 전날인 오늘이 휴일 같다. 어딜가나 사람이 많다. 다들 휴가 동안 여행을 온 사람들이다.
오에의 책 일부를 포어로 번역해보다. 좋아하는 문장을 또 다른 언어로 옮기는 일은 참 아름답다.
안테나에서 선물이 왔고, 재석 형, 혈 형에게 추석 인사를 전하고, 옆집 형님 댁에 선물을 가져다 드렸다.
10/6
연휴라지만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일상. 오에의 책을 다 읽고, 화장실 청소를 하고, 운동을 하다.
10/7
잠을 설치다. 가족 맞이 청소.
10/8
부모님 제주 오시다. 아버지가 감기 기운이 있어 시내에서 수액을 맞고 집에 오다. 독감은 음성.
이스라엘이 토요일 아침부터 가자에 230 차례 폭격을 가했고, 최소 118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
10/9
다시 읍내 병원으로. 아버지 코로나 양성.
운섭 형님께 인사드리고 오다.
10/10
부모님은 부산으로. 나는 서울로.
공연 합주를 하는데 혹시 나도 코로나에 걸린 게 아닐까 싶어 마음이 쓰인다.
10/11
엄마도 코로나 확진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오전. 교보 유튜브 촬영. 문경, 진환, 재욱을 만났다. 촬영 도중 아내도 확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병원으로 갔다. 다행히 나는 (아직) 음성이다.
합주를 마치고 제주로. 다음 주까지 아내와 따로 지내기로 했다.
10/12
하루 종일 집 소독. 청소. 보현 챙기기 등.
유럽 의회에서 비건 '햄버거'라는 이름을 바꾸도록 결정을 했다.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비건 버거에 '햄버거'라는 이름을 쓸 수 없다는 것이다. 육류업계는 환호하고, 소비자들과 상점들은 이 결정을 비판하고 있다.
10/13
오전. 무려 2 시간 동안 허님과 의상 피팅을 하다.
오후. 비밀 보장 전화 통화. 통화가 생각보다 많이 길어졌다.
10/14
결국 오른손 손톱 연장을 했다. 손톱이 많이 상하는 탓에 자주해서는 안되는 줄 알면서도, 11월 말까지는 꼼짝없이 인조 손톱 신세를 져야할 것 같다. 집 소독하고 보현 챙기고 이리저리 바빴던 날.
10/15
제주에서 서울로.
8년 만에 뵌 장동선 박사님과 아주 길게 유튜브 녹화를 했다. 허님이 제주에서올라오셨다. '꽃이 된 사람'을 기타 한 대로 불렀는데 생각보다 괜찮다. 걱정 하나를 덜었다.
녹화를 마치고 다들 잘 했다 해주셨다. 뭘 잘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다행이다.
집에서 잠시 쉬고, 씻고, 연습.
10/16
빠더너스 녹화. 상훈 님의 선물이 섬세해서 놀랐고, 책에 사인을 받고 녹화장을 떠났다.

녹화를 마치고 승연 샘이 알려준 전시를 보러 다시 강남으로. 전시를 보고 내일 공연 연습장으로.
10/17

Jarasum Festival 2025 (w/ 황호규, 남메아리, 파코드진, 표서윤)
1. 바람, 어디에서 부는지
2. 햇살은 따뜻해
3. 그대는 나지막이
4. Água (미발매곡)
5. 강
6. 아직, 있다.
7. 불
8. 바다처럼 그렇게
9. 은하철도의 밤
10. 고등어
스탠리 형님이 시간을 많이 쓰신 탓에 리허설 시간이 거의 없었다. 공연 중간 비가 쏟아졌음에도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신 분들이 고맙다. 페스티벌 무대라는 것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게 된 하루. 불특정 다수 앞에서 나는 어떤 구성으로, 어떤 무대를 준비해야 하는가. 예민하고 섬세한 셋은 참 위험할 수 있겠다.
공연을 마치고 가평 숙소로.
10/18
가평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제주로.
10/19
홍옥을 주문했다.
오랜만에 아내와 보현 없는 시간을 가졌다. 숲을 걷고 남쪽 바다를 걷고, 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성당에 들러 기도를 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기쁨을 잃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다.
10/20
운동.
2004년 내가 산 첫 MPB 음반, Joyce의 <Astronauta>는 왜 음원 사이트에 없을까.
10/21
이머시브 궁 예매.
새 앨범 teaser 가 나왔다.
보현 병원에 들러 발톱을 깎고, 새로 나온 관절염 주사를 맞혔다. 이 주사제 (리브렐라)는 한 달 이상 관절 통증을 완화하는 효과가 지속된다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신다.
집에서 기타 연습. <Água> 를 음원 기준으로 듣고, 연주해보다. 마케팅 팀에서 시즌스 녹화 때 불러보는 게 어떻겠냐고 의견을 보내왔다.
Pau 연주를 듣고 따라하면서 '미묘함'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음악적임 musicality'의 원천은 결국 미묘함이라는 것. 그리고 미묘함의 원천은 자유로움이라는 것. 자유가 결국 musicality가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연주인의 musicality가 노래의 musicality로 변하는 과정과 여로에 미묘함과 자유로움이 있다는 것도.
10/22

귤 박스를 사러 서귀포에 다녀오다. 같은 섬이지만 조금만 움직이면 - 놀랍게도 - 다른 세상이 열린다.
겨울이 오면 늘 남쪽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고향 같은 남쪽 햇살이 남쪽 바다가 그립다.
박스를 싣고 조심조심 과수원으로 와서 창고에 박스를 부려놓았다. 밭에는 아직도 모기 천국이다. 아이슬란드 역사상 올해 처음으로 모기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Água> 악보를 수정했다. Pau는 노래 곳곳에 variation을 심어두었다. 공부가 많이 된다. 공연 때 편곡을 음반과 비슷하게 바꿔야할 것 같은데, 어디까지 가능할지, 또 현장감을 담으려면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이다.
Catherine와 첫 수업. Luan과의 수업이 긴장감 zero의 잡담과 수다의 시간이라면, Catherine와는 그냥 '수업' 이다. 좋기도, 부담스럽기도 하다. 그는 내가 C1으로 가는 길 위에 있다고 했다. 내 자리를 점검해주는 것일 수도, 그저 격려해주는 것일 수도.
10/23
연습. 새 노래를 하나하나 꺼내 듣고 부르고, Pau의 기타를 듣고, 코드를 점검하고. 노래의 분위기와 그루브, 모든 걸 새롭게 세팅해본다. 한결 같이 여리고 섬세한 노래들이라, 무엇 하나 허투루 치면 한 순간에 분위기가 무너져버린다. 굵고 대차고, 어떻게 연주하든 중간 이상은 하는 노래가 하나도 없네.
물 속을 걸었다.
엄마에게 홍옥과 생일 카드를 보냈다.
10/24
서정민갑 님의 '싱어게인4'에 대한 글을 우연히 읽다. 참 좋은 글이다. 이 글을 읽고, 10여 년 전 생각이 났다. 그때 이 사회는, 음악이라는 우물에 나가수라는 약을 탄 적이 있었지.
아내는 서울에 가고 나는 운동을 하고, <수선화> 기타 카피를 했다. 내가 쳐둔 기타를 카피하는 것은 그 것만으로 큰 의미다. 희미하게 남아있는 근육 기억을 상기해내는 것. 좋든, 싫든, 나만의 클리쉐나 버릇을 알아채는 것. 시간이 희석시킨 환희, 음악이 탄생하던 순간의 기운을 조금 차분하고 객관적으로 즐길 수 있다는 것 등등.
보현과 리조토를 만들어 먹다. 따뜻한 음식만큼 좋은 게 세상에 또 있을까. 아끼는 이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마음으로 나를 위해 음식을 만들고 먹어야겠다.
Luan과 수업. 우리가 수업했던 내용을 녹음해서 AI에게 보내면 수업 내용을 바탕으로 전혀 다른 종류의 콘텐츠를 만들어 준다. 이를테면 두명이 대화를 하는 팟캐스트를 만들어 준다든지. 어이가 없도록 혁명적이다.
10/25
평온한 일상. 연습을 많이 하지는 못했으나, 틈틈히 언어 공부를 하다. 듣기가 많이 편해졌다.
운동. (등, 엉덩이, 플랭크, 요가) 저녁에 회를 먹었는데 양이 많았다. 제주는 반팔을 입어야할만큼 아직 덥다.
10/26
이민자들을 반대하는 이민자들에 대한 DW 리포트. 인종학살의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나라가, 인종학살을 자행하는 세상이 되었다.
아내가 돌아 왔다.
크리스 형이 하늘나라로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엄마의 생일. 엄마가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니 기쁘다.
<수선화> 카피 완료.
10/27
오전 10시. 허님이 오셔서 피팅하다. 바지 두 종류 짧은 셔츠 (white) 하나, 조금 두툼 (까진 아니지만 니트 재질) 한 셔츠 하나, 그리고 MMCA에서 입을 코트, 블랙 셔츠를 갖고 오셨다.
코스타리카가 에너지의 98% 이상을 신재생 방식으로 생산하는데 성공했고, 캐서린 코널리가 아일랜드 대통령에 '압도적'으로 당선되었고,
Luan 과 수업. 많이 웃었다.
10/28
농협에서 받은 고춧가루를 부산으로, 숙이네에도 택배를 보내고, 기타줄을 갈았다. 보현 발바닥 굳은 살을 떼내었다.
11월 동쪽 여행 숙소 예약.
입력한 자료로 AI가 만들어 내는 팟캐스트 결과물은, 그저 놀랍다. 그냥 들으면 실제 사람 목소리인지 여부를 알아차리기 어렵다.
10/29
서울행.

MMCA에 열린 토크에 모더레이터로 참여했다. 좋은 분들을 만났다.
10/30
이머시브 궁 관람. 아름다운 컨텐츠였다. 생애 첫 VR을 경험하고 나와서 멀미를 했다.
KBS 더 시즌스 회의. 공항으로.
Gioii 대표님과 공항에서 문자를 주고 받았다. 그리고 제주로.
10/31

2022년 대비, 아마존 벌목량을 50% 가량 줄였다는 통계. 직접 뽑는 정부와 대통령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

올해 처음 금목서 향기를 맡았다. 이 아름다운 향기가 핀 줄도 모르고 10월을 흘려보냈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