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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의 앵두를 땄는데 설렁설렁 따도 두 광주리가 넘치고 남았다. 마당일을 하다 잔디밭에 잠시 누웠다. 바람이 담을 넘어왔고 나는, 만일 천국이 있다면 분명 천국에도 바람이 있을 것이다, 라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천국의 그 바람이란 지금 이 바람처럼 덥지도 차지도 않을 것이다, 생각했다. 친구들과 저녁 자리에 앵두를 들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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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오시기 전, 마당에 꽃을 많이 피워두고 싶어 장에서 초피나무 묘목, 장미, 붉은 찔레, 다알리아, 낮달맞이을 구해 마당 곳곳에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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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따라 보현이와 함께 갯무꽃 채집을 다녀왔다. 제비새끼들이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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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스티브 스왈로우는 일렉 베이스만 연주하게 되었는가. Jazz Weekly와의 인터뷰에 실린 그의 말이 멋지다.

그러니까 그때 (일렉 베이스 연주를 시작했을 때), 더 이상 어쿠스틱 베이스와 일렉 베이스를 다 연주할 수는 없겠구나 싶었습니다. 하루에 내가 쓸 수 있는 시간이란 것도 정해져 있지만요. 근데 하나를 연주하면 방구석에서 버림 받은 것 같은 다른 악기가 또 눈에 밟히는 거에요. 악기한테 미안하고 혼란스러워서, 결국 어쿠스틱 베이스를 처분했습니다. 그 이후엔 어쿠스틱 베이스를 산 적이 없어요. 후회 없습니다.

다만 시대가 다를 뿐 같은 곡과 여전한 사람들. 2011년 서울에서 스티브의 연주를 보았을 때, 따박따박 베이스 잘 치는 할아버지구나, 정도의 생각만 했던 나인데, 아는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끼고, 느끼는만큼 남는 법이니, 그땐 아는 게 없으니 보이는 것도 느낀 것도 남는 것도 별로 없었던 것이다.

음악의 마음이 연주라치면, 악기는 음악의 몸과 같다. 

구리 피크로, 플랫 와운드 줄을 걸어, 오래된 깁슨 EB-2를 쳐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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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ando el Tiempo 에서 스티브는 꼭 바리톤 기타를 치는 것만 같다. 

오랜만의 비. 면사무소에 전화를 걸어 이런저런 것들을 물어보았다. 오후에는 목수분들과 얘기를 나누러 먼 곳을 다녀왔다. 어둑하고 꼬불꼬불한 중산간 길을 달려 집으로 돌아오는데, 아스팔트 위에 버려진 곰인형 하나가 있었다. 나는 차를 세우고 시커멓게 때가 탄 인형을 차에 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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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분들과 창고 지을 자리를 같이 보고 저녁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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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구들에게 선물할 앵두주를 담았다. 

Tuck and Patti의 공연 예약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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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아의 뮤비 촬영을 하고 돌아왔다. 진아는 출연해준 사람들 한 명 한 명에게 작은 립스틱과 금화 모양 초콜렛을 선물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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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아야. 수고했어.

음악이 뮤지션의 마음이라면, 네 음악에는 정말 야무진 마음의 뿌리가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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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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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EM-B 제조를 마쳤다. 전기료가 꽤 나올 것 같은데 농사용 전기가 정말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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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귄 친구가 아닌, 부모님들이 엮어 준, 내 생애 가장 오래된 친구를 보러 가는 길. 관광도 여행도 아니라 그냥 친구를 보러 벼르고 벼르던 길.

나는 친구를 닮은 친구의 아이들을 처음 보았다. 친구의 아내와 (거의) 처음 (제대로) 인사를 나누었고, 친구와 친구의 아내에게 나의 아내를 소개해주었다.

동네 마트에서 우연히 산 보라빛 프리지아가, 생각보다 잘 어울려 몹시 기뻤다. 새로 이사를 온 후 페인트 칠을 하는데, 그 많은 하얀색 중 맘에 쏙 드는 색을 고르느라 몇일을 애먹었다는, 100년 된 나무집과 울렁울렁 거리는 오래된 유리창과 얼마만에 보는 지 모를 선연한 봄 햇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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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의 거리는 이상할 정도로 기하학적이었어. 어디를 봐도 무늬가 보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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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한 지 30 년 가까이 된 어느 밴드의 연주는, 90년대 어딘가에 그대로 정지해 있는 듯했고, 팬들은 들뜬 표정으로 그들의 연주에 박수를 보내고 줄을 서고 앨범을 사(주)었다. 검은 옷의 Patti와 하얀 옷의 Tuck과 두 사람의 목소리와 기타도 내가 처음 그들의 음악을 들었던 때와 아무 것도 변한 게 없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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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난히 길어보이던 무지개빛 횡단보도와, 손을 잡고 걷던 게이들과, 아무렇지 않게 지하철을 함께타던 강아지들과, 아직도 성업 중인 레코드 가게와, 수많은 음악 잡지들과, 며칠을 가고 또 가도 마음을 콕콕 눌러주던 엘리엇 베이의 책. Sophie Calle의 Suite Vénitienne, Mary Oliver의 Dog Songs, Steve Kuhn의 Trance LP. 

너는 작지만 야생의 무언가와 같아

학교라곤 한 번 도 보내진 적 없지.

앉아. 내가 말하면. 너는, 폴짝 뛴다.

이리와. 내가 말하면. 너는, 모래사장으로 뛰어가 버린다.

그 근처에는 생선 뼈다귀가 있을테지.

그 죽은 생선에 목을 부비고 오면

네 사랑스런 목에서 향수처럼 생선 냄새가 날거야.

여름이구나.

이 작은 강아지는 몇 번의 여름을 지낼 수 있을까?

 

달리자, 달리자꾸나. 페리.

여기가 우리의 학교다.

 

Mary Oliver <School> (from Dog Songs, Penguin Press)

검은 바탕에 하얀 타이포를 쓰지 말 것 Never Use White Type on a Black Background 이란 책에는 디자이너들이 지켜야할 '멍청한' 규칙 50 개가 소개되어 있다. 그 중 하나가, 먹는 사람의 사진을 찍지 말 것, 인데. 이를테면 이런 사진은 절대로 찍지말란 뜻일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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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하야. 햄버거 굽느라 고생했다. 우리는 또 언젠가 내가 살고 있는 이 섬에서도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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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탁소에 가면 난 정말 궁금한 게 몇 개 있습니다. 하나. 왜 세탁소에선 카드 결제가 안돼나요. 둘. 사장님. 천정에 빽빽한 그 많은 옷 속에서 어찌 그리 내 옷을 잘도 찾으시나요. 셋. 근데 왜 어떨 땐 한 두 벌씩을 꼭 빠뜨리시나요.

그래서 기록을 해두기로 했습니다. 오늘 나는 원피스 4벌. 셔츠 둘. 목도리 하나. 코트 하나. 속치마 하나를 맡기고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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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가 내린 날. 보현이와 오랜만에 산책을 했다. 저녁에는 어머니에게 삼치회를 사드렸다. 막걸리 한 잔에 회와 간장 게장으로 식사를 맛있게 하시니, 어머니는 너무나 기뻐하셨는데 그래서 나 역시 너무나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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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간 과수원에는 분홍빛 여뀌가 허벅지까지 자라있었고 레몬 나무 옆에 꿩이 알을 9개나 낳았다.

줄자를 가지고 과수원의 창고를 앉힐 자리를 재고 도면을 다시 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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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 원액과 당밀을 사왔다. 목수 가족들을 만나 어제 그린 도면을 가지고 회의를 했다. 2층을 비틀 것인가. 면적 배분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을 하고 있다. 총 면적이 10 평을 훌쩍 넘어버렸는데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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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에 가서 다시 나무들을 피해 남은 공간을 재고, 저녁에 목수 가족들을 만났다. 공간을 줄여서 아랫층 4평 남짓, 윗층은 9평 남짓으로 조정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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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B 액을 말통에 옮겨담았다. 여유있게 담으니 9말 반 통이 나왔다. 새로 EM-B를 만들기 시작했다.

윤하, 홍갑, 코린 베일리 래의 새 음반이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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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귤밭의 창고 부지를 재러 갔다. 알을 품고 있는 꿩과 눈이 마주쳤다. 내가 불청객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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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교육 "아름다운 비행"을 들으러 한적한 중산간으로 갔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 난 내가 제대로 알고 있는 새가 몇 종이나 될까, 한 번 적어보기로 했다. 저런. 30 종이 채 안되네. 이 섬에 살고 있는 새의 10%도 안되는 거다. 

수업 시작.

새를 안다는 것은 새의 서식지를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장을 꼭 가봐야한다. 풍력 발전기에 새가 죽는 경우가 많다. 풍력 발전이 아무리 선의의 재생 가능한 에너지라해도, 발전기 날개에서 발생하는 저주파에 사람도 어류도 영향을 받을 수가 있다. 바닷가에 파래가 많아진 건 질소 성분이 많은 양어장의 폐수 때문일 가능성이 높고 이는 새들의 서식에도 영향을 끼친다. 야생의 새들은 동물원의 새보다 수명이 짧다. (동물원의 독수리는 100 년을 넘게 사는 경우도 있다. 제비의 평균 수명은 5년이다.) 짧고, 굵게 살다가, 세상을 떠난다. 나그네 새와 겨울 철새는 북극 근처에서 번식을 하는데 우리나라에 오는 새들은 동아시아-대양주 이동경로를 주로 사용한다. 부리는 무조건 딱딱한 것이 아니다. 부리가 부드러운 새들도 있다. 날개의 폭이 좁고 뾰족하다는 것은 '빠르게 날 수 있다'는 뜻이다. 파도의 바로 윗부분이 오히려 공기저항이 작다. 어떤 새들은 파도 위를 타고 날아 몇백 킬로 미터를 간다. 아침 7시에서 10 시. 오후 3시 에서 6시가 새를 관찰하기 가장 좋은 시간이다. 독수리는 사체만 먹는다. 덩치가 크고 빠르지 않아 사냥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린 새들은 곤충 (애벌래)를 주로 먹는다. 고단백질이 빠른 성장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일 야외 탐조 시, 방석을 가져올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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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를 보러 가는 날. 이것은 나의 첫 탐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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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는 섬에서 유일하게 논 농사를 짓는 하논 습지로 우리를 데려갔습니다. 순창 출신인 선생님은, 그곳에는 40 여년 전 육지의 논 풍경이 그대로 남아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황로를 보았습니다. 노란 번식깃의 황로는 한눈에도 달랐지만 비번식깃의 황로는 얼핏 보기엔 중대백로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부리의 색으로 구별할 수 있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황로는 검은 부리 검은 다리의 중대백로와 왜가리와 한 무리에 섞여있었다. 어 그러고 보니, 언젠가 집앞 바다에서 본 노란 부리와 검은 다리의 새는, 비번식깃의 황로였던 것도 같다.

새의 수컷이 화려한 이유 중 하나는, 천적으로부터 새끼와 암컷을 보호하기 위한 이유도 있다고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천적으로부터 시선을 자신에게 돌려서 암컷와 새끼를 보호한다는 것입니다. 새는 결국 암컷이 수컷을 선택한다고 했습니다. 짝짓기 역시, 암컷이 허락하지 않으면 이뤄지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새는 새끼들을 키우고 돌보는데에 헌신적이지만 새끼들이 다 자라면, 부모 새들은 새끼들을 쫓아버리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다 살기 위해선, 떠나 보내야한다는 것이다. 떠날 때 떠나야 모두에게 미래가 있다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논길을 걷는데 어떤 분이 옆으로 오셔서, 그림하는 분이세요? 하고 물으십니다. 그러고는, 여기 하논에는 자운영이 붉게 펴요. 사진찍으러 많이들 오시는데. 나는, 논두렁 가에 아직 피어있는 자주빛 자운영 꽃을 보고 걸음을 멈춰섰습니다. 어디선가 개들이 짖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 대부분이 무허가 건물들입니다, 누군가가 말을 했습니다. 어딘가 개 사육장이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갑자기 도랑가로 우루루 몰려갑니다. 누군가 유혈목이다, 뱀을 보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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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섬에는, 이 섬에서 종낭이라 부르는, 때죽 꽃이 풍년이었다고 합니다. 양봉을 하는 분들이 신이났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어쩌다 애벌레 하나만 보여도 다들 신이 나서 설왕설래 합니다. 누군가 검색을 해서, 황갈무리잎벌애벌래라고 말해줍니다. 솔비나무는 이 섬에만 있는 나무에요. 여기서 만일 사라지면 어디에도 없어요. 회화나무. 산수유. 뚜껑덩굴. 비파나무를 보고 숲으로 향했다. 마삭줄 꽃과 때죽나무 꽃이 떨어진 숲길은 별이 가득한 밤하늘 같았습니다. 제주는 거의 모두 2차림이에요. 저 어릴 때만 해도 나무를 해오는 게 일이었거든요. 아 네.. 근데 선생님은, 나무를 어떻게 그리 잘 아세요? 아, 어떤 선생님을 따라서 3 년 넘게 공부를 했거든요. 다음에 기회있으면 알려드릴게요. 또 어떤 분이 말씀하신다. 이유미 선생님의 책을 한 번 읽어보세요. 여기서는 모두가 서로 선생님이라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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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0 고지의 습지는 이탄습지입니다. 참빗살나무에요. 채집목에요. 청띄 신선나비 한 마리가 날아가는데, 멀리서 두견이 우는 소리만 쬬쬬쬬쬬 들려올 뿐 두견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얼굴 한 번 보여주지, 하면서도 사람들은 꼭 서운한 것만 같지도 않았습니다. 윤노리 나무 꽃이 지고 있었고 산딸나무 꽃이 피고 있었고, 정금나무, 아그배나무, 물푸레나무, 물부추, 한라부추..., 노루발풀 꽃입니다. 누군가의 말에 다들 땅에 바싹 엎드려 사진을 찍어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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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사람을 알고 싶으면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알면 되는 거로구나, 싶었습니다. 새를 좋아하고 나무를 좋아하는 마음이란 무얼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쩌면 그건 내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내가 속한 많은 것들에도 의미를 갖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모두 다르고 모두 아름답다, 는 걸 느끼는 마음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귀현씨가 앞바다에서 난 문어와 성게를 가져다 주었다. 제비 새끼들이 날기 연습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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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온다. 과수원 어딘가에서 뻐꾸기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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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가 넘어 목수분들이 와서 부지를 같이 보고 얘기를 나누었다.

까투리는 꿩알 위에 깃털과 나뭇잎을 물어다 얹어두었는데, 위장한 건지, 비에 젖지 않도록 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비를 맞으며 EM-B 액을 관주했다. 동력 분무기로 돌리면 금세겠지만, 꿩알을 두고 그럴 수 없어 소형 분무기를 지고 뿌렸다.

비가 오는 날이면 몸을 말릴 집이 있다는 게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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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는 직접 쇠말뚝과 형광 줄로 부지 위치를 그려보았다. 아랫층은 4평 내외 윗층은 9평 내외로 정했다. 나무를 베지 않고, 2층을 남향으로 비틀었다. 뭔가 도면이 확실해졌다. 오후 미팅시간에, 가능하다면 빗물을 재활용해서 농사에 쓰고 싶고 가능만하다면 태양광으로 에너지 자립 공간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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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변호사님을 만나고, 여름 전정을 시작했다. 일을 할 진입로를 확보해야하고 통풍과 채광도 좋게 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봄전정을 그렇게 했는데도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접목을 할 나무들이니 과감하게 가지를 치고 길을 만들었다. 정작 가지를 치고 보니 나무 사이가 그리 좁은 편도 아니었다. 간벌을 하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고, 욕심내지 말고, 제 크기로 나무를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꿩알이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왠지 서운한 마음에 차라리 사람이 집어간 것보다 뱀이 먹었으면 좋겠다,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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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에 연못에서 날아가는 황로떼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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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수원에 가는 길에 차에 치인 아기 직박구리 한 마리를 보아 차를 급히 돌려 아기새를 수건으로 감싸서 밭으로 가서 동백나무 아래 땅을 파고 새를 땅으로 돌려보내 주었는데 전정을 하다 아직도 지지 않은 귤꽃이 보일 때마다 나는 귤꽃을 따서 아기새의 무덤 위에 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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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에 갔다가 돌아왔다. 바람이 차다. 오늘은 '바다가 닫히는 날'이라 물질을 하러 가지 않았다고 귀현씨가 연락이 왔다. '나무에 꽃이 온다'는 농부들의 표현만큼,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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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하다가 밭 한 가운데 아기새가 묻혀있는 동백 나무 그늘 아래에서 카메라 가방을 베고 장화를 벗고 누워 무더운 바람을 맞다가 나는 이야기 하나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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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라지만 오늘도 바닷가엔 뱃불이 늘어서있다.

잠수사 한 분이 세상을 떠났다.

누군가가 죽어도,

세상은 말을 듣지 않는다.

삼나무 꼭대기에 연회색 조끼를 입은 뻐꾸기 한 마리가 울고 있었다. 

보슬비가 내렸다.

나는 일을 때려치우고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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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갔던 아내가 돌아왔다. 몇 일동안 나홀로 자취 모드로 살던 나는, 아내를 마중가기 전이 되어서야 꼭 미친 놈처럼 집청소를 했다.

아내가 예쁜 면 모자를 선물로 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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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비를 입고 오전 내내 전정을 하고 오후에 목수분들을 만났다. 나는 빗물을 농수로 재활용하기엔 창고 지붕으로 모을 수 있는 물의 양이 너무 작다는 생각을 했다. 화장실 물 정도만 사용할 수 있으면 좋겠고 태양광은 조금 더 방법을 고민해보기로 했다. 친환경적인 단열재, 예를 들면 셀룰로오스나 훈탄과 회벽마감법, 섬에 자생하는 적삼목을 사용할 수 있을까 등등을 함께 고민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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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쇄기를 빌려 파쇄를 시작했다. 레몬 순에 기계유유제를 도포했다. 남은 EM-B를 같이 섞어서 엽면시비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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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아내의 친구 내외분이 수국을 들고 집을 찾아주었다. 근 한 달 만에 선생님에게 가서 요가를 했다. 두번 째 EM-B 조제를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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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쇄기를 빌려 파쇄를 마무리했다. 기술 센터의 기사님들이 트럭의 휠을 고쳐주셨다. 파쇄를 하던 중, 산처럼 쌓이는 파쇄목을 모아두었다가 퇴비를 만드는 게 어떨까를 생각했다. 

창고 옆에 생태화장실을 두기로 마음을 먹고, 퇴비간으로 쓸 공간도 찾아두었다.

길이 넓어지고, 나무 사이로 드는 빛이 많아졌다. 레몬 순이 짙어졌다. 화목난로의 땔감으로 쓸 나무 토막들을 한 곳에 모아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