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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예보엔 하루종일 비라더니 비가 오지 않았다. 흐린 하루를 집에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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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파쇄. 귀마개 대신 화장솜으로 귀를 막고 일을 했다. 수북하게 쌓여있던 가지들이 땅으로 되돌아간다. 화목 난로를 쓰는 친구들에게 줄 굵은 줄기를 일일히 잘라내 모아두었다.

집에 재교지가 와 있다. 일요일의 택배는 어쩐지 그로테스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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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쇄 이튿날. 오늘까지 다 마무리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 일은 서툴고 마음은 급하고, 서두르다 그만 파쇄기의 캐터필러가 빠져버렸다. 기술센터에 전화를 하니 금세 누군가가 와서 수리를 해준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또 지나가고, 남은 가지는 여전히 태산같다. 이번 달에는 더 이상 빌리기가 힘들어 사설 파쇄업자들에게까지 전화를 돌려봤지만 다들 예약이 꽉차있다. 급한대로 굵은 줄기들만 먼저 파쇄하고 기계를 반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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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동네 의원에서 실밥을 뽑았다. 오후가 되자 날이 쌀쌀해지더니 비가 내린다. 

첫 감귤 교육을 받았다. 강사는, 가지가 잘리는 만큼 뿌리도 죽게된다, 고 했다. 마치 사람의 몸과 마음처럼 나무로 드러난 신의 두 속성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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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시 추워지다. 다음 달 파쇄기 예약을 위해 센터에 전화를 했는데, 운 좋게 취소된 예약 건이 있어 주말 이틀 대여 신청을 했다. 

보현을 병원에 데리고 갔다. 선생님은 약을 일단 끊고 조금만 더 지켜보자고 하셨다.

영화 캐롤을 보았다. 영화를 다 보고 나는 왠지 '사랑하다'를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사랑하다. 1. (동사)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다. 2.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거나 즐기다. 3. 남을 이해하고 돕다. 

조금 놀란 것이 아마도 난 '사랑하다'가 형용사일 거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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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비료를 주문했다. 

알파고와 바둑 얘기로 온 나라가 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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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쇄기가 드나들 수 있게 가지를 좀 더 쳐서 길을 내었다. 나무 사이에 텅 빈 새 둥지 하나가 걸려있었다. 나뭇가지를 엮어 만든 어른 주먹만한 거친 둥지 안에는 어디서 물어왔는지 하얀 나일론 끈과 솜이 덧대져 있고 기껏해야 두 마리의 새가 부리 하나로 만들었을 이 공예품 속 흩어진 알 부스러기에서 난 새끼 새들은 또 이런 나무 사이 어딘가에서 짝을 만나 이렇게 아름다운 둥지를 만들고 있을 것이다. 

파쇄기를 싣고 돌아왔다. 다행히 주말에 비는 오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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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과수원에 갔다. 밭 한 쪽 빌레 근처에 항아리 같은 새 둥지 하나가 떨어져있었다. 재선충에 죽은 소나무 위에 만든 까치 둥지였다. 검갈색 나무 근처를 맴돌던 까치 부부는 그새 나뭇가지를 물고 새로운 둥지를 지으려 하고 있다. 둥지가 커지면 썩은 가지는 다시 부러질 것이다. 그런 노력은, 부질 없는 것이다. 

우리 집 앞바다에는 돌등대가 하나 있다. 이 오래된 등대엔 불이 꺼진 지 오래다. 저녁을 먹으며 Cartola를 들었는데, 그의 노래는 여전히 길을 비춰주는 듯했고, 더 이상 불이 켜지지 않아도, 그저 서있는 것만으로도 등대는 여전히 등대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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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부터 비가 온다는 예보에 일찍부터 서둘러 일을 시작했다. 무사히 일을 마무리하고 기계를 싣자마자 후둑후둑 빗방울이 내렸다. 정낭을 끼우고 돌아서며 감사 기도를 했다. 

집에 돌아와 홀가분하게 바둑대국을 보았다. 해설자들이 길게 말을 하지 않을 때가 자주 있었는데 다른 방송이었다면 방송사고라고 했을 지도 모른다. 사람을 만나고 대하는 일이, 바둑 같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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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시내에 장을 보러 갔는데 주렁주렁 열린 빨간 구슬 같은 먼나무 열매 사이 샛노란 부리의 한 무리 되새들이 숨어 앉아 있는 것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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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 좋은 날 바닷가 마른 풀섶길을 다 함께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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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 굿에는 더 이상 어떤 긴장도 두려움도 애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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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현씨가 집에서 차 한 잔을 하며 물속에서 본 세상 얘기를 해주었다. 그는 마을에 25 명인 해녀들의 동의를 얻어 진짜 해녀가 되었다.

벼르고 벼르던 편곡을 시작했다.

아내가 시인 마도 미치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말 사이에 존재하는 무한의 세계를 그림으로 그리고 싶다는, 말을 전해주었다. 나 역시 말이나 글보다는 음악이 그림이 몸짓이 그 무한의 세계에 가까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 무한의 세계란 곧 신일 거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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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잠을 자다 일어나서 편곡을 했다. 귀현씨가 앞바다에서 딴 미역과 톳을 가져다 주었다. 한 입 먹으니 바다가 입으로 들어온 것만 같다. 옆집 할머니에게 나눠드리고 나머지는 씻어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요코씨에게 안부 메일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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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강진-완도-영암 여행

생일 축하해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태어남에 여전히 감사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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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귀를 마당 한 구석에, 화단에 자욱한 송엽국 이파리를 걷어내고 부추 뿌리를 뽑고 작은 풀명자나무를 심고 화분에 일 년 넘게 키운 눈꽃과 처량하게 꽃이 진 철쭉도 자리를 잡아주고 난장이콩과 로마네스코 씨를 뿌리고 화단따라 자주개자리 씨앗을 줄줄이 뿌려두고 앵두나무에 꽃이 피고 튤립이 피고 사람이 아플 때 꽃을 심고 씨를 뿌릴 보자기만한 화단이 있어서 감사하다 화 내지 말고 이렇게 꽃을 심어야 겠다,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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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환이 집에 와서 점심을 먹고 산책을 하고 풀을 뽑고 공항에 데려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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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도 번역이 되나요' 책이 도착했다. 비료를 받아두었다. 숲길을 걷다 당진에서 수학여행을 온 아이들과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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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씨에게서 답장이 왔다. 후쿠오카 농원에 다녀온 것이 벌써 일 년이 넘었구나. 비가 많이도 오던, 몹시 우울했던 생일이었다. 일본의 매화와 동박새를 처음 보았었고, 라임 이파리를 처음 보았고, 향기도 아름다운 거라는 걸 새삼 느꼈던, 2015년의 3월. 요코씨와 후쿠오카 농원의 사람들, 타카시와 마나 부부. 그리고 서승주님께 앨범을 보냈다. 

동하와 오랜만에 길게 통화를 했다. 아무리 먼 미국땅이지만 아직 앨범이 도착하지 않았을 리는 없으니 분명 배달사고가 난 것이다 싶어 영귤차와 녹차 스프레드를 넣어 EMS로 앨범을 다시 보냈다.

송지 부부가 와서 여기 저기를 구경시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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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살이 난 건지, 하루 종일 잠을 잤다. 어딘가 아프고 무기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