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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4-4/26

3/24

100일 전 어머니와 함께 담근 장을 떴다.

 

 

3/25-26

급히 부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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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새'를 바리톤 튜닝으로 녹음해서 서울로 보냈다. 노래가 약간 어두워진 듯도 싶고, 하이 포지션에서 인토네이션이 정확치 않다. 혹시나 해서 보통 장력의 10 현 줄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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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노을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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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key의 원곡을 예림씨의 키에 맞게 E key 으로 편곡했다. 이른 봄 숲, 마른 상산 나무에 주렁주렁 달린 열매들 사이 움이 트고, 들에는 자주빛 현호색과의 꽃이 깨어나고 있다. 경신씨의 새 책이 집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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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꿈꾸는 카메라'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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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는 앵두꽃이 만발했다. 일본을 떠나는 현진씨가 다니카와 슌타로의 시가 적힌 연필을 보내주었다. 아내의 동시집이 도착했다. 벚꽃이 필 때, 가장 맛있다는 참돔 요리를 해주었다. 농협에 가서 출자금을 내고 조합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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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들른 후, 공항으로 가는 길에 금잔화를 구해 심었다. 노래를 잘 한다는 것이란 음표 너머로 어떻게 들어가는가를 아는 것일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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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간 김에 머리를 자르고, 그간 메모해둔 책들을 살펴보러 서점에 갔다. 가네코 미스즈의 전집이 매대에 놓여있다. 512 편이 완역된 그녀의 전집은 사정상 두 권으로 나왔다고 한다. 그녀가 생전에 남긴 시들의 순서대로 실렸다는 글에, 나는 책의 마지막을 펼쳤다. 그녀의 마지막 글, 권말수기가 이렇게 맺어져 있다. "내일부터는/무엇을 쓸까/쓸쓸함이여" 

집으로 돌아오니, 선물들이 와 있다. 정범씨가 보내준 상자, 새 카메라, Hannabach 기타 줄.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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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에는 각색의 꽃들이 고개를 들고 피어났다. 일 년이 지나니 단골이 되어, 값을 깎아주는 분도 요즘 값이 올라서 '미안하다'는 분도 생겼다.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마당의 풀을 뽑았다. 경선님의 새 책이 집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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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를 찾으러 동쪽으로 갔다. 공방 옆에서 새 집을 짓는 목수님 내외를 만나 얘기를 나누었다. 8현 기타를 맡기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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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첫 제비를 보았다. 돌아왔다. 

돈나무에 새순이 돋았다. 작년에는 열매가 너무 많이 열려 수세가 떨어진 건 아닌지 걱정이었는데, 한 시름 놓았다. 마을길에 꼬마별 같은 꽃마리가 피어났다. 서승주님께서, 가네코 미스즈의 책을 보내주셨다. 기쁘고, 고맙다. 이동진, 김중혁님, 은실작가가 빨간책방에서 나온 책들을 보내주셨다. 학교마다 걸려있는 4.3 추모 현수막에 이런 글이 씌여있다. "빛으로 어둠을 이길 수 있어요."

 

4/4

어느덧 비자나무에 연두빛 꽃망울이 맺혔다. 갯가에 노란 민들레, 하얀 갯장대가 피었다. 들판엔 보라빛 무꽃이 지천이다. 밤 늦게 종신형에게서 연락이 왔다. 녹음을 다시 해야할 것 같다. 스피노자를 읽다 잠이 들었다.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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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하와 순용이 왔다. 장에 가서 물고기를 사와 술안주를 해주었다. 

 

4/6

바람이 거센 탓인지 집앞 바닷가에 매여진 쪽배가 뒤집혀 있다. 잔뜩 흐린 하늘을 나는 제비는 꽃잎 같기도, 나비 같기도, 눈 송이 같기도 하다. 아름드리 후박나무가 늘어선 가로수길을 달렸다. '꼬마 유령 크니기'의 마지막 번역 감수를 보았다. 

 

4/7

순용 윤하를 보내고, 급히 기타를 공방에서 찾아와 기타 녹음을 시작했다. 마음에 들 때까지 하다보니 오후 4시 경 시작한 녹음이 새벽 1시가 되어서야 끝났다. 정범씨가 아이를 낳았다는 문자를 보내주었다. 큰 기쁨을 나눠주어서, 고맙다. 

 

4/8

서울로 가는 비행기에 타서 무상급식에 대한 기사를 읽다가 어릴 적 친구가 생각났다. 그때 우리 학교는 묘하게 학군이 섞여서 잘 사는 동네와 못 사는 동네의 아이들이 함께 다니던 그런 학교였는데 바닷가에 사는 아이들 중엔 도시락을 싸오지 못할 정도로 형편이 딱했던 친구들도 있었지. 지금도 이름이 또렷이 기억나는 그 친구도 그런 아이였는데 키가 작고, 새카맣고, 얼굴에 하얀 마른버짐도 핀 그런 아이었다는 것 말고는, 사실 기억나는 게 없다. 제대로 얘기를 나눠본 기억이 없어서 일테지만, 아무튼 나는 항상 맨 앞 자리에 앉았다는 것, 수업 시간에 늘 고개를 숙이고 있었던 것만 생각이 나는데 도시락을 싸오지 못하는 친구에게 도시락을 싸다주는 게 어떻겠냐, 는 얘기가 매주 한 번씩 하던 학급회의에서 나온 거지. 물론, 그 자리에 그 친구도 있었습니다. 어쩌다보니 나는 한동안 그 친구의 도시락을 싸다 주게 되었다. 엄마는 참 세심하게도 나와 그 친구의 도시락을, 똑같은 도시락에 담아서, 똑같이 하얀 가제 손수건에 동여싸주었습니다. 나는 3 교시 아니면 4 교시 전에 도시락을 갖다 주었고 그 친구는 점심 시간이 끝나면 빈 도시락을 아무 말도 없이 내 자리로 갖다주었는데 그러기를 몇 달이 지나고 또 어느 날 학급 회의에서 아이들이 도시락을 매일 싸다 준 조윤석 어린이를 선행 학생으로 뽑았는데 그 이상하면서도 그 머쓱한 기분은 아주 또렷이 기억이 나고 화가 나면 반 아이들을 무자비하게 때리곤 하던 5학년 6반 담임이던 중년의 남자 선생님은 어디선가 물끄러미 그런 우리를 보고 있었던 것 같고요, 그때도, 새카맣고, 작고, 하얀 버짐이 피어있던 친구는, 그때도 그냥 교실 맨 앞자리에 가만히 엎드려만 있었고, 

어른들의 감수성의 수준이 바로 그 사회의 수준이구나, 

생각하는 사이, 비행기가 떴다. 

 

4/9-4/11

(BLANK)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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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길을 걸었다. 오래 오래 걷고 싶었다. 내버려진 채소밭에 속절없이 노란꽃들이 피었구나. 무성한 새완두 덩쿨을 성큼성큼 건너가 솔새 이삭 하나를 꺾어 와 아내에게 건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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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icbrat - invisible snow, pill-oh february tale, aspidistrafly - a little f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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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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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탱자나무 꽃이 피었다. 초피나무에 노란 기장알 같은 꽃이 피었다. 초피 잎을 하나 따다 입에 넣으니, 어느새 숲이 천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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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 밭 한가운데, 떨어진 귤잎 수풀 속에, 아주 작은 새 둥지가 있었는데 장인이 짠 듯 촘촘히 짜여진 동그란 둥지 속에는 보기만 해도 포근하고 하얀 솜털이 깔려있었고, 그 위에는 알록달록하고 작은 알 다섯 개가 옹기종기 모여있었고 어떤 장대한 풍광에서도 느낀 적 없는 그 경이로움에 나는 아무 말 못하고 한동안 서 있었다.

나눔문화에서 '세월호의 진실 - 진실은 가장 강력한 힘이다'를 보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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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가지들을 모두 밭가로 내치고 나니, 이제사 바람과 햇살이 잘 드는 과수원이 되었다.  손톱만한 좀씀바귀가 껑충하게 자랐고 노란 뱀딸기꽃도 보라빛 금란초도 하얀 장딸기꽃도 군데군데 군락을 이루었다. 둥지에는 작은 어미새가 알을 품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까치발로 그곳을 떠나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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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온 손님 대접을 했다. 내일은 어디에 가보고 싶어요? 하는 물음에, 4.3 평화 공원을 가볼까 한다, 고 말했다. 현관에 놓인 손님들의 신발들이 정겹다. 밤바람이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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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할머니께서 아침 일찍 제사 음식을 가져다 주셨다. 빗질을 해주고 싶을만큼 보릿대가 자랐다. 광화문에서 벌어진 일들을 뉴스로 찾아보았다. 네루다는 슬픔은 짙고, 우울은 옅은 이유를 물었었다.  '함께' 기꺼이 짙어지고팠던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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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염을 사러 하나로마트에 갔다. 조합원 신청을 받아주던 직원분을 만나 얼떨결에 인사를 하고, 20 킬로 짜리 세 포대를 사왔다. 바다의 소금이 뭍의 밭으로 오는 건, 그나마 사람이 하는 일 중 '평화로운 참견'이다. 하루종일 실비가 내렸다. 중산간에는 마법처럼 드문드문 안개가 꼈다. 원하는 비료를 파는 곳이 없어서 여기저기 전화를 걸 어찌 수소문을 해서 300 킬로를 주문했다. 조카가 건강하게 태어났다는 문자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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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바다를 걸었다.

좋은 앨범들을 많이 알게 돼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Mery Murúa의 Acacia, Heredia y Venegas의 앨범. 그리고, 아. Nina Becker가 재해석한 돌로레스 두란의 노래들. 

 

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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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아메리카 대륙에 겨울이 찾아오면 사람들이 따뜻한 곳을 찾아가다 서로를 껴안고 초원에서 죽어갔다지 ​배 안의 아이들도 그랬었다지 죽음이 찾아오는 순간,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서로의 몸을 껴안는 것 밖에 없는 것 백비라는 것이 있다지 아무 것도 새겨넣지 않은 비석을 백비라고 부른다지 대한민국의 무수한 죽음이 아직도 백비 앞에 서 있지 아무 것도 적을 수 없는 백비 들어 선 묘로 넘쳐나고 있지 항쟁이, 사건으로 사태로, 심지어 폭동으로까지 불리지 불과 반 세기 전, 이 섬에 태어났다는 죄로 사람들이 죽어갔지 서로의 등을, 가슴을 껴안고 떨다 죽어갔지 이 나라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빗자루 쓸듯' 섬을 돌며 삼만 명을 죽였다지 그 한가운데에 이승만이 있었고 서북청년단이 있었다지 그리고 지금 어떤 사람들은, 이승만을 국부라 하고, 서북청년단을 재건하겠다 한다지 망각이란, 역사의 치매란 곧 죄인 것이지 기억해야하는 이유란, 그런 것이지 사람들에 대한, 가장 작은 예의인 것이지

 

4.3 평화공원을 다녀왔다. 

 

4/22

첫 연습을 위해 서울행. 연습실에서, 윤성씨, 호규, 진수, 동진, 그리고 정오형까지 모두 만났다. 연습이 끝난 시각은 새벽 2시. 반가운 마음에, 시차 따윈 그만 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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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을 위한 시간과 장소를 맞추고 정하다보니, 여러 사정으로 3회 공연 밖에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함께 못 하시는 물고기님들과는, 아쉽지만 새 앨범과 함께, 다음 공연을 또 기약할게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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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부터 유기질 비료(N/P/K=3.2/3.0/0.8, 유기물 함량 70)를 뿌리고 돌아왔다. 그동안 해 온 꽤 많은 농사일 중, 비료를 주는 일만큼 기쁜 일이 없다. 땅이나 나무에 무언가를 '주는' 일이란 거의 없으니까. 귤나무에 꽃눈이 맺혔다. 집에 돌아와 연장을 닦고 햇볕에 말렸다. 동하가 선물을 보내왔다. 제비들은 허물어진 집을 놀랄만큼 예쁘게 고쳐놓고 있다. 선홍빛 작약이 피어났다. 이 모든 경이로운 일들이 하루가 다르게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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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 벚꽃이 피었다. 만생 브로컬리가 익어간다. 조금 늦게 세상에 빛을 보는 존재들이다. 푸른 보리가 나날이 밀물처럼 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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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좋아 소풍을 다녀 왔다. 말에게 다가가 인사를 하니, 꼬리를 흔들어 주었다. 나비들이 꼬리를 물고 흩날리며 날아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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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가 알을 낳은 건지, 밤이면 둥지에서 낮이면 전깃줄 위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밤이 되고, 물끄러미 현관에 앉아 있는데, 마주보고 둥지에 앉은 제비 부부가 뒤척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동하야. 네가 보내준 Frank Tashlin의 동화책은, 슬프지만 이상하게도 위로가 되는, 그런 책이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