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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7-8/16

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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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n Watt의 새 앨범을 들었다. 1999년 ebtg 의Temperamental이후 무려 15년 만에 나온 앨범이다. 노래도 노래지만, 그도 나처럼 새끼 손가락을 바디에 대고 기타를 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7/28

도윤이네 밭에 남은 기장을 베어 들고 후박이를 보러 갔다. 그런데, 후박이가 보이지 않는다. 어디로 갔을까. 그곳이 어디든, 더 편안하기를 기도하는 수 밖에. 아내의 생일날, 요리를 해주었다. 마당에 씀바귀 꽃이 피었다. 『한자의 탄생을 읽다. 

 

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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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홀가분하게 전화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디서 날아왔는 지 흰송이풀꽃 하나가  마당에 피어있다.

 

7/30

폭염 경보 발령이란다. 골목마다 차가 다니면서 외출을 삼가해 달라고 방송을 한다. 마당의 풀을 뽑았다. 핸드폰 대신 다시 수첩을 쓴다. 『한자의 탄생』의 저자는 탕누어는 '소통과 단절이 동시에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문학'이라고 했다. 노래는 말과 글 그 사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음악도 사람을 소외시킬 수 있는가. 

곡 하나가 거의 익은 것 같다. 오늘 밤에 똑 떨어져줄까. 새 핸드폰을 주문했다.

 

7/31

지금은 세상에 없는 사람의 노래를 뒤늦게 듣게될 때가 있어. 지금도 어딘가에 있을 법한, 그러나 실은 세상 너머로 사라진 목소리를 듣게 될 때, 말할 수 없는 감정이 일어나곤 해. 이 노래를 부른 치바씨는 올 봄 세상을 떠났는데, 나는 그녀의 노래를 듣고 난 뒤에 그 사실을 알았습니다. 지금 존재하지 않는 목소리를 듣고, 지금 나는 여기에 없어, 하는 메시지를 전해받은 기분은, 마치 사라진 별 빛을 바라보고 있는 기분과 비슷할까요. 사라진 순간과 바라본 순간의 사이에 존재하지도 부재하지 않는 그 빛.

치바씨는 블로그에, 팬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메시지를 남겨두었어요. 더듬더듬 읽을 수 있을 뿐이지만, 도대체 그녀는 어떤 사람이었길래, 한 사람이 죽음을 앞두고 이렇게 성숙할 수 있는 지, 생각할 수록 놀라울 뿐이었습니다. 그녀는 죽음을 마치 '졸업'과도 같은 것이라고 했지. 그건 그러니 슬퍼할 일이 아니라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위로했었다. 그녀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사람은 재밌게도 자신이 죽어가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 이후에는 마음이 아주 맑고 편해집니다."

7월의 마지막 날, 지금은 없는 어느 맑은 영혼을 만날 수 있어서,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존재들을, 더 많이 노래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8/1

밤이 되자 콩 잎이 나비 날개처럼 접힌 채 잠들어있었습니다.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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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 넘게 붙들고 있던 노래를 완성했다. 처음 이 곡을 스케치한 게 작년 4월이었으니, 1년 4개월만에 마무리한 셈이다. 그리고 어느새 들판에는 하얀 깨꽃이.

 

8/3

노래 두 곡을 마무리했다. 전화기를 다시 개통했다. 전화번호부를 사야할 것 같다. 번호 저장 기능이 없다.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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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멀지 않은 동네에서 새로운 과수원과 인연을 맺었다. 할아버지 한 분이 46 년 동안 지극정성으로 돌보시던 곳이다. 지금 90 세를 바라보는 할아버지는 처진 나무 가지 하나하나마다 천을 대고 다리를 받쳐주셨다. 밭담 둘레에 심겨진 동백나무에는 벌써 밤톨 같은 열매가 맺혔다. 다른 신경 쓸 필요 없이, 온전히 마음을 줄 수 있게 되어 기쁘다. 

곡 작업이 마무리되었습니다. 모두 11 곡입니다.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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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보와 편곡 시작. 노래를 다시 처음부터 불러보고, 가사와 멜로디, song form을 다듬었다. 복잡한 아름다움과 단순한 아름다움의 사이에서 두리번 거리는 내가 자주 보인다. 밭에 다녀왔다. 두 그루 정도 나무에 깍지벌레가 있다. 열매는 벌써 아기 주먹만하다. 다음 주에 비가 온다고 하는데 그 전에 방제를 한 번 더 해야겠다. 

 

8/6

채보를 한다는 건, 내가 만든 노래들과 계약서를 쓰는 것과 비슷하지. '이 음표는 이렇게 합시다. articulation은 이렇게 붙입시다. 간주는 두 배로 합시다. 끝은 페이드 아웃 처리합시다/그냥 짠짠 이렇게 끝내면 너무 유치하잖아요. 키는 Ab major로 합시다/A key는 나한텐 너무 높아요.' 이런 식으로 조항 하나하나에 동의를 구하는 과정 같은 거야. 

 

8/7

편곡, 채보, 편곡, 채보. 그러다 보니 밤이 되었고, 옆 집 할아버지께서 낚시로 잡으셨다는 광어 두 마리를 주셨다. 생선을 다듬고 있는데, 옆집 형님께서 잠깐 나와보라고 하시더니 한치 두 마리를 주셨다.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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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로 들어가는 입추. 채보와 일차 편곡을 마무리 했다. 올해의 여름이 벌써 난 그립다.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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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에 기계유유제 200배, 보르도액 100배 희석, 엽면 살포 했다. 600 L 조제 후, 여수 호스가 빠져버려서 다시 200 L 정도 더 만들어 뿌렸다. 이틀 안에는 비가 안 와야 할텐데. 그 사이 풀은 어 껑충 자랐는데, 요즘처럼 가물 때엔 이런 풀들이 더 반갑다. 자연스레 초생재배가 되었다. 광엽 식물은 가끔 보이고 대부분이 화본과 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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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깃줄이 악보처럼 보인다. 2 성부 관 편곡 시작. 힘닿는데 까지 직접 내 손으로하고 싶다. 

 

8/10

Gilberto Gil의Fé na Festa 앨범을 들으며 시청에 갔다. 2010년에 나온 이 앨범은 도대체 어떻게 녹음을 했기에 이렇게 소리들이 다 살아있는 걸까. 지금 가장 고민하는 것은 목소리와 기타에 맞는 공간의 크기와 성격이다. 그리고 '따뜻한 소리'라는 표현을 많이 생각하고 있다. 소리가 '따뜻하다'는 것은 '듣기 좋게 깎여 있다', 는 의미다. 따뜻한 소리보다는, 최대한 살아있는 소리를 담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우연히도 스페인에 사는 어떤 DJ가 리믹스한 「평범한 사람을 듣게 되었다.

동률의 라이브 앨범이 왔다.

 

8/11

가을 같은 날. 오랜만에 대성 형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동안 과수원을 알아보고 계셨다고 하길래, 좋은 밭을 구했다고 말씀드렸다. 참 오랜만에 비가 내렸다.

 

8/12

이야기를 수정하고 있다. 금세 원고지 50매만큼 이야기가 늘어났다. 노래를 만들다 글에 손을 대니, 뭔가 익숙치 않다. Madeleine Peyroux의 목소리가 큰 힘이 되어주고 있어. 

 

8/13

수오서재에서 책을 보내주셨고, 병률씨가 책을 보내주셨다. 음반, 이야기 쓰기, 농사, 앨범, 공연... 올 연말 쯤 되면 다 내려놓고 편하게 책 읽을 마음이 돌아오려나. 오랜만에 바닷가 산책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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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하느라 잊고 있던 사이 개머루가 익어가고 있었다. 오색 개머루 몇 알를 따서 아내에게 주었더니 목걸이를 만들어 주었다. 홍점알락나비 한 마리가 관광객이 버려둔 파인애플을 열심히 먹고 있었다. 나비는 꿈을 꾸고 있는 듯, 달디단 향에 취해있겠지.

 

8/14

화면상으로 원고를 어느 정도 마무리하고, 다시 덮었다.

 

8/15

하얀 으아리꽃이 핀 숲길을 걸었다. 협죽도와 배롱나무의 분홍 꽃잎이 어디나 피어있는 여름. 새로 난 마을길에 어린 배롱 나무가 심겨져있다. 벌써 근사한 꽃을 피운 아기 나무들아. 너희들이 얼마나 더 클 때까지 우린 얼마나 더 오래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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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를 출력해서 다시 교정을 보려는데 마침 프린터의 토너가 똑 떨어졌다. 겨우 출력을 해서 희미한 글자로 교정을 본 뒤, 세희씨와 나리에게 보냈다.
승남과 통화를 했다. 공사중인 사무실 스튜디오가 아직 녹음을 할 수 없는 상태라니, 다음 주엔 꼼짝없이 편곡 일만 해야할 것 같다.

 

 

8/16

아침 일찍 윤성씨가 피아노 연주를 보내주었다. 악보를 보내고 윤성씨의 연주를 들을 때까지의 기분이란, 마치 증명사진을 찍고 나서 사진이 어떻게 나올까 조마조마하며 기다리는 기분과 거의 같다. 감기에 걸렸는지 보현이가 토를 해서 병원에 데려다 주고 돌아왔다.

지난 한 달여의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 지 모르겠다. 정신없이 게워낸 사람처럼, 이상하게도 온 몸에서 무언가가 다 빠져나가버린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