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해바라기 씨앗이 움을 틔웠다.
6/5
새벽부터 비가 온 탓에 밭에 가지 못했다. 냇가에는 자주색 수영이 개밀이 보들한 띠가 하늘거렸다. 7현으로 세팅을 바꾸었다.
6/6
물 600L에 키토목초액 3L + 아미노산 액비 1.2L + Bascillicus 발효액 3L를 첨가해서 엽면시비했다.
무당벌레 유충과 성충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여름이 다가오는데, 산동네에 사는 보살이는 그 두꺼운 털옷을 입고 있구나.
오밀조밀 심겨진 귀리 이삭이 제법 껑충하다.
제비들은 제집 옆에 두번 째 집을 짓기 시작하였다. 새끼들도 크고 알도 한 번 더 낳으려면 별채가 필요한 건가. 집에 들른 현상에게 친환경 제초제 한 병을 써보라고 주었다. 수선화와 프리지아 구근을 정리해서 망에 담았다. 할머니가 오셔서 그 사이 어디 갔었냐고 물어보신다. 공연했다고 말하긴 좀 그렇고 해서 서울에 좀 다녀왔어요, 했더니 그사이, 읍내 보건소에서 할머니를 통해 무슨 행사 섭외가 들어왔다는 믿거나 말거나 같은 말씀을 하셨다. 담에 또 그런 '건'이 들어오면, 꼭 하라고, 그냥 노래 몇 자락만 해주면 돈도 준다면서 근데 무슨 노래냐가.. ㅠ 몇 번을 말씀하고 가셨다. 오랜만에 동네 절집 스님을 만나 인사를 드렸다. 바다직박구리 소리에 한동안 걸음을 멈춰섰다. 올해 처음으로 반딧불이를 보았다. 땅에 뜬 초록별을 보니, 진짜 여름이구나.
6/7
장에는 비파, 오디, 산딸기 같은 야생 여름 과일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풍선을 파는 할머니를 보았다. 육지에서 가져온 풍선을 전날 밤 하나하나 불어서 가지고 오신다고 했다. 아이들은 피카츄 풍선 하나만 사달라고 졸라대지만, 정작 사주는 엄마는 별로 없다. 꼬마였을 때, 아무리 힘껏 풍선을 불어도 풍선은 하늘로 날아가지 않는다는 걸 알고는 실망만 했었지. 팽팽한 끈을 동여쥐고 구부정하게 걸어가는 할머니. 아차, 풍선 하나를 샀어야 했는데.
밭 가에 웃자란 귀리를 조금 잘라 후박이에게 가져다 주었는데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다.
6/8
하루종일 실비가 내렸다. 깜깜한 밤, 빨간 장미덩쿨 너머로 민달팽이 한 마리가 열심히 길을 가고 있었다.
6/9
문자로 원우형과 Binaural recording에 대한 아이디어를 주고 받았다. 코스모스와 포피를 정원에 심었다.
Belen에게 메시지가 왔다. 여행에서 돌아왔으며 곧 내가 보내준 곡 작업을 시작해 보겠다고 했다. 꽁지가 긴 멧새 한 쌍을 보았다.
6/10
세 마리 새끼들만으로도 제비 둥지가 꽉 찼다. 옆집 제비 새끼들은 날기 연습을 시작했다. 쥐똥나무 꽃이 하얗게 피었다. 숲에는 청미래 덩굴이 숙숙 자라고 있다. 마당에는 치자꽃 한송이가 피었다.
6/11
새벽 같이 일어나서 밭으로 향했다. 하지만 갑자기 내리는 비 탓에 작업을 할 수가 없었다. 농협에서 보르도액을 사고, 돌아오는 길에 센터에 들렀다. 선생님이 안 계셔서 전화를 드러서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한 말씀하신다. 지금부터 7월 말까지는 흑점병하고 전쟁이여.
일본에서 주문한 음반이 도착했다.
6/12
새벽부터 보르도액, 기계유유제 100배 엽면시비. 650 L로 넉넉하게 만들어 뿌렸다. 10 시만 넘어가도 햇살이 너무 강해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당분간은 저녁 작업을 해야할 지도 모르겠다. 서쪽 방풍림 덕(?)에 3시가 넘어가면 그래도 그늘이 지니까.
Quique의 음반을 들으며 앨범 부클릿에 그가 쓴 글을 읽으니 새삼 생각하게 되었어. 음악과 가장 어울리는 말은, '사랑', '삶', '세상', '사람', '슬픔', '기쁨',... 그런 것들이지. '비즈니스'나 '기획', '산업'이 아니고 말이야.
그리고 드디어,
제비, 날았다.
엄마 제비가 삼 형제 새끼 제비들의 곁을 지키며 날기 연습을 시켜주고있다.
6/13
비가 추적대는 하얀 메밀 꽃밭을 지나 숲으로 갔다. 네잎 클로버를 찾아서 아내에게 주었다.
6/14
안경테를 바꾸고 난 뒤, 내 눈을 바라보는 일이 잦아졌어. 그런데 그동안 내 눈동자를 자세히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걸 알게되었어. 그래서 내 눈동자가 매우 옅은 갈색이라는 것도 처음 알게되었어.
예상치 못한 일로 당분간 밭에 갈 수가 없게 되었다. 그동안 틈틈히 남겨둔 메모를 꺼내보았다.
6/15
생일 축하한다, 정찬. 그곳은 어떻니. 네 음반과 시집이 나온지도 2 년이 되었어.
6/16
병원에 다녀왔다. 제균 성공. 측백나무로 둘러싸인 아담한 과수원을 보고 왔다.
6/17
앨범에 대한 첫 회의를 했다. 승준, 나리와 디자인 회의를 빙자라고 술을 마셨다. 헤어질 무렵, 벼락처럼 비가 쏟아졌다. 조금 취한 탓인지, 한참동안 멍하니 빗방울을 바라보고 서있었다. 이제 해야 할 일은 얼마나 많을까. 아득하구나. 아득해. 다 잘 해낼 수 있을까.
6/18
서울에서 정신 나간 친구 한 놈이 오토바이를 타고 내려왔다. 마침 부산에서 어머니가 오셔서, 밥도 한 끼 못챙겨주고 보내서 마음이 걸려.
6/19
Favino replica 기타를 만들어주신 luthier 조 선생님의 답 메일이 왔다. Selmer #548 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함께, 10월, 11월 경 완성할 계획으로 548 replica를 만들고 있는데 만들어지는대로 보내줄테니 한 번 써보겠냐고 하신다. 말만으로도 얼마나 힘이 되는 지 모르겠다. 『꼬마 유령 크니기』 가 드디어 인쇄에 들어간다는 연락이 왔다. 밤늦게 누나 내외가 온 덕분에 평소보다 늦게 잠이 들었다.
6/20
아침을 먹고, 온 식구들과 함께 귤밭에 다녀 왔다. 풀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아직 보르도액이 엽면에 묻어있는걸 보니, 당장은 추가 방제를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생리낙과가 조금 더 많아진 것 같다.
6/21
새벽 부두. 얼마만인지.
6/22
어머니를 공항에 모셔다 드렸다. 조 선생님에게서 다시 메일이 왔다. 당신의 기타가, 나에게 영감을 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메일이었다.
6/23
비가 멎은 틈을 타 귤밭에 다녀왔다. 몇 일 사이 풀은 또 자랐고, 여름 비료를 주기 전에 예초기로 정리를 한 번 해야할 것 같다. 창가병이 의심되는 잎 몇 개가 보였다. 밤 작업을 위해 취침 시간을 뒤로 밀어내고 있다. 하비누아주 첫 앨범이 집에 도착했다. FB 친구 수락을 해준 Quique 에게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당신의 음악이 요즘 나에게 얼마나 큰 힘과 영감을 주는 지 모를 거라고, 고맙다고.
6/24
Quique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꽃은 말이 없다.』 에 실린 곡들이 참 아름답다고, 그의 아내가 무척 좋아하고 있다며 곧 나올 음반을 보내주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현상이 새로 이사온 집에 차 한 잔을 하러 들렀다. 100 년도 넘은 집 앞에 주홍색 석류꽃이 흐드러지게 지고 있었다. 귀현씨가 유정란과 단호박 하나를 싸주었다. 장마가 시작되었다.
6/25
머릿속에만 있던 곡을 꺼내니 말랑말랑한 흙덩어리 같다. 이리저리 붙들고 만들어보지만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고 그러는 사이 밤과 낮이 슬금슬금 자리를 바꾸기 시작했다.
6/26
지원금이 입금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농협에 가서 분무기 대금 결제를 했다.
새벽을 지나
마음에 드는 곡이 완성되었고
나는 정말이지
날아갈 것만 같아요.
6/27
오일장에서 햇귀리와 꽃 몇 포트를 샀다. 돌아오는 길에 기계상사에 들러 예초기를 골랐다. 지금 붙들고 있는 곡은, 심장 어딘가를 묵직하게 울리는, 삼바와 보사노바의 사이, 그 어딘가로 갈 수 있다면 좋겠는데. 그럴 수 있을 것도 같은데.
Jorge Aragão을 다시 꺼내 들었다.
이 호윤 말하길:
고마운 글과 귀중한 사진 잘 보고 갑니다. 사진 한 장, 담아가도 될련지요?
2015년 10월 18일 — 4:51 오후
earclosely 말하길:
정원영씨 이번 앨범 모두 다 슬프더군요. 하비누아주 앨범도 사봐야겠네요.
2015년 8월 6일 — 9:26 오후
lightnshadow 말하길:
폴님 글을 볼 때 마다 반가워요^^
밤 작업 때문에 취침을 미룬다는 말을 몇번이고 봤어요.
내가 어떤 옷을 사고 싶으면 남의 옷만보이고
내가 귀를 뚫고 싶으면 나의 귀만 보이는 것 처럼
나도 폴님처럼 해야할 일이 있는데
취침을 미루신다는 말에…
밤잠을 포기하지 못하는 제 자신이 잠시 초라했어요 ㅠㅠ
마음에 드는 곡을 쓰셨다고하니
더 기다려지네요~
폴님 글을 계속 보다보니까
꽃은 말이 없다 에 ‘검은개’처럼
다음 앨범도 아! 이 노래구나. 하고
알아차릴 수 있을까
설레기도 해요^^
제주에서 행복하게 지내시는 것 같아서
부럽기도하고 ㅋㅋ 좋아보여요^^
(친구한테 보내는 생일 메시지는 가슴을 찡하게 했어요ㅠㅠ…
글에 그리움이 묻어나서 먹먹해지더라구요….
아마…. 그곳에서 폴님 목소리 잘 들었을 거에요….)
2015년 7월 2일 — 9:09 오후
camel 말하길:
세상이 만들어 내는 소리는 다 어디로 갈까 하는 생각을 해본적이 있어요.
음들이 눈으로 보여 지는것 같아 신기해요.
Quique 음반 좋아요.. 다른 앨범도 찾아 보려고요. 공유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폴님의 일상이 위로가 되네요..제비도 후박이도 제 삶을 살고 많은 꽃들이 있다는게 감사하고요.
폴님의 위로의 음악들 기대 합니다.
2015년 7월 2일 — 6:33 오후
doroggong 말하길:
제주에서 조용하고 즐거운 생활 중이시군요..^^
제주도사는 폴님 팬이라서 어쩌다 우연히 만나뵐 수 있을까
사인 받을 수 있을까 기대하기도 합니다 ^^;
새앨범 나오는 그날도 기대해요~^^
2015년 6월 30일 — 7:31 오후
kong 말하길:
옆집 할머니 은근히 재밋으시네요 ㅎㅎㅎㅎㅎ 좋은 노래들도 많이 듣고 가요~ 폴님이 완성하셨다는 그 노래도 어여 듣고 싶어요 ㅎㅎ 가만히 있어도 더운 날씨에 바깥일 하시려면 영양 보충 잘 하시길 :-)
2015년 6월 30일 — 1:16 오후
페퍼민트 말하길:
보살이를 보니 저희 집 상근이에게도 얼음물, 시원한 수박 주어야 겠어요.
더위야 훠이 훠이-
크니기 아직이군요. 서점에 갈 때마다 찾아보았는데. 곧 만날 수 있겠네요.
음악뿐만 아니라 다양한 소식으로 기쁨 주어서 고마워요. 폴
노래 많이 올려주세요. 날아갈 것만 같은 마음으로 좋은 곡도 많이 부탁해요:-)
2015년 6월 29일 — 3:39 오후
MJ 말하길:
아~아~아~
저는 네잎클로버 제가 찾아야 할것같은데~
폴 낭만쟁이~
폴~
아프리카속담에 `혼자가면 빨리가지만 함께가면 멀리간다` 라는 속담이 있데요..
물고기마음과 ~ 오래도록 멀리멀리 함께~ 같이 가주세요~
새로운 노래 어서 듣고 싶습니다~
2015년 6월 29일 — 1:52 오후
귤 말하길:
심장 어딘가를 묵직하게 울리는 삼바와 보사노바 그 사이를 흐르는 음악을 마주할 때…
음… 그때 이 음악을 이야기한 거였군..
하며 씩~웃는 날이 겨울 언제쯤 이겠군요^^
마음에 드는 곡을 완성했다는 말
날아갈것 같이 기쁘다는 말에 저도 너무 기쁩니다.
저는 폴님의 눈을 자세히 들여다 본적은 없지만
참 제 마음에 드는 눈일것 같아요.
저는 크니기를 검색하러 가야겠어요.
폴님!
항상 응원합니다!
화이팅!!!
2015년 6월 29일 — 9:33 오전
귤 말하길:
또한….
기다리다 지칠 때쯤 올라온 해적방송에 참으로 알수없는 안도와 편안함을 느꼈어요.
2015년 6월 29일 — 9:39 오전
spingirl 말하길:
훗하하 병원에 다년온게 혹시 설마 좋은 일일까? 제비가족처럼 되실라나? 이러며 다시읽어보니 제균성공이라 ㅎㅎ 헤리코박터인건가요? 사라진녀석이 축하드려요.
아 제주도로 이사가고싶다
할머니 풍선도 사드리고
좋은 곡을 만든 폴은 가네코미스즈같은 시를 남겼네요
저도 너무 좋아요
커튼도 예쁘고
제게네잎클로버는 인내 사랑이 꽃말이지 싶어요
울아들이 풀밭에서 열심히찾을때 알았어요
아내이야기 많이 들려주세요
폴님의 사랑 사는 모습이 궁금하고
따라살고??싶어요
2015년 6월 28일 — 7:53 오전
깨구락지 말하길:
제주도에서 올리는 일기에는…
제비, 바다직바구리, 민달팽이, 프리지아, 비파, 귀리, 석류꽃, 치자꽃 등의 익숙한 이름들과
수영이 개밀이 보들한 띠의 낯선 단어들이
곳곳에 곱게 피어 있네요.
아! 후박이… 후박이라는 반가운 이름도 있네요^^
2015년 6월 28일 — 12:06 오전
상한 영혼 말하길:
간만에 모두가 반가운 소식이지만
특히 ‘새벽을 지나 마음에 드는 곡이 완성되었고 나는 정말이지 날아갈 것만 같아요.’라는 소식이 제일 반갑네요..
아버지가 많이 아프셔서 마음 둘 곳 없이 힘들고 불안한 가운데
폴님의 노래가 엄청난 위안이 됩니다.
어서 폴님의 새 노래를 들었으면…하고 바랍니다.
2015년 6월 27일 — 11:40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