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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로 초보를 썼다. 노래가 될 수 있을까.음표는 성기고, 음가는 평이하다. 

농업 경영체 등록 서류를 다시 보내고, 친환경 인증 관련 메일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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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유학하던 친구에게서 메일이 왔다. 연초에 신년 메일을 보냈던 것 같은데 이제서야 늦은 답장이 왔다. 이번 주까지 마무리 짓기로 한 곡 작업을 했다. 새 곡을 쓸 때 늘 그러듯, 예전에 써놓은 것들을 찬찬히 들춰보았다. 몇 달 전에 쓴 것들도 금세 낯설다. 작년은 하루하루가 그렇게 흘러갔었다.

'내 손 내 손/내 손 내 손/놀아줄 사람 없어/혼자 깍지를 껴보다/숙제를 하던 손

잡아줄 사람 없어/공을 움켜쥐고/벽에 던지며 놀던/그 어린 손

여리게/기타를 퉁기던 손/호미를 들고/괭이를 들고/살아보려니/밤이면 아파/울고 있는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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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 경영체 등록이 완료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스케치해 둔 곡 중 한 곡을 골라 붙들어 보기로 했다. 밤이 지나가고 새벽이 오고 아침 직전, 곡을 다 쓰고 가사를 정서해놓고 잠이 들었다. 이 기분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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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즈막히 일어나 악보를 그렸다. 얼레설레 데모를 녹음하고 메일을 보냈다. 목소리에 맞을까.

번역 교정이 마무리 되었다고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읍사무소에 들렀다가 친서민 농정 지원사업 접수 마지막 날임을 알았다. 그래서 농협으로 가 4.5 마력짜리 동력 분무기 견적을 받고, 부랴부랴 신청을 했다. 농협 정조합원 가입 서류를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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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를 보았다. 여전히 같은 장면, 같은 대사.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면서 ‘지금'이란 말을 하고 싶어. 지금, 바로 지금. (…) 힘든 일과 후 집에 와서 고양이에게 먹이도 주고 싶고 아파도 봤으면 좋겠어. 손때도 묻게 신문도 읽고 정신적인 것만이 아닌 육체적인 쾌락도 느끼고 싶어. 목선이나 귀에 흥분해 보고도 싶고. 때론 거짓말도 하고 걸을 때 움직이는 뼈를 느끼고 전능하지 않아도 좋으니 예감이란 것도 느끼고, ‘아!’, ‘오!' 외치고 싶어. ‘네’, ‘아멘' 대신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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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에 살 적부터 알고 지내던 한 부부의 집을 방문했다. 이곳에 내려와서 얼마 전 식당을 여셨는데, 목조건물 설계를 직접 익혀서 집을 지으셨다고 했다. 스산하게 시린 하늘이 하얀 창 밖으로 보였다. 이곳에서만 볼 수 있다는 담팔수 나뭇가지가 흐느끼듯 흔들렸다. 

정서의 갖힘. 그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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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좋아 카메라를 들고 나갔다. 해안선을 따라 처음보는 곳 구석구석을 다녔다. 특허 등록이 완료되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아득하고 먼 얘기 같다. 갈수록 서울행이 부담스럽다. 최대한 빡빡하게 일정을 짜서 후다닥 돌아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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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 바다에 갔다. 물이 빠진 뻘에 거뭇거뭇한 구멍이 나있다. '바다에 가는 것'은 '바닷가에 가는 것'과도 다르고 '바다로 들어가는 것' 과도 다르다. 주황색 테왁이 둥둥 떠있는 걸 보니 해녀 할머니들 바닷물에 들어가신 모양이다. 쨍한 바다로 시선을 낮추고 눈을 감았다. 폭, 폭, 하며 소라 고둥들이 내는 물거품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눈을 떴다. 보말들이 무거운 몸을 끌고 분주하게 그린 흔적들이 환하게 보였다. 바위 위에 앉은 검은 기러기 두 마리는 가까이 가도 달아나지도 않았다. 떠밀려온 올리브빛 모자반 사이로 쓰레기 더미가 떠있었다. 되는대로 주웠다. 그 중에는 대만에서 온 라면 봉지도 있었다. 해류를 타고 이 긴 바닷길을 왔을까. 그러다 보니 어느새 하얀 달이 동녘에 뜨고 검은 고양이가 황금빛 눈을 뜨고 나를 내려보았다. 

현대미술관 웹진에 인터뷰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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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도자 혹은 탐험가의 길 - 토마스 바헤르만 (Thomas Baggerman)과 갈리 하데피 (Ghali Hadefi)의 인터뷰를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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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장고의 열정이 가슴으로 들어왔다 - 네덜란드의 기타리스트, 토마스 바헤르만 (Thomas Baggerman)과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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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는 멈출 줄 모르는 프랑스의 아티스트다 - 갈리 하데피(Ghali Hadefi)와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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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s by 호규, 윤성, 폴)

김포 공항. 지하철을 타고 사무실 근처로 와서는 공연장 후보로 스탭들이 골라놓은 곳을 보았다. 카페에서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는 녹음실로 이동했다. 4 년 만인가. 4집과 5집 녹음을 했던 곳이다. 건물은 바뀐 것도 같은데 녹음실과 기사님은 그대로다. 태국에서 투어를 하고 막 돌아온 호규와 윤성씨가 왔고, 반가웠고, 윤성씨가 그렇게 입이 마르게 얘기하던 준영씨와도 처음 작업을 했다. 이왕이면 내 앨범에 실릴 곡이면 더 좋았었겠지. 선휴씨 다올이 동인형 등이 녹음실에 응원차 와주었고, 녹음을 무사히 잘 끝내고 같이 저녁도 못 먹은 채 다시 이동. 공연장을 더 보고 충무로에서 스탭들에게 저녁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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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테나 사람들과 점심을 먹고 3 시간 가량 회의를 했다. 머릿 속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는 것 같다. 노래 녹음을 위해 다시 스튜디오로 이동. 한구형 스튜디오는 처음이다. 가수의 목소리가 차갑게 잡히는 것 같아 급하게 안테나에서 M149와 쉡스를 가져다 달라고 SOS를 쳤다. 그렇게 한 프로 조금 넘게 노래 녹음을 하고 마지막 비행기 시간이 한 시간 남았을 때쯤 녹음실을 나왔다. 달리고 달려 공항에 도착하니 8시 25분. "손님. 비행기 못 타실 수도 있습니다" 라는 직원의 말에 나는 "제발 저 좀 태워주세요ㅠㅠ"라고 나도 모르게 말하고 말았다. 그렇게 겨우 마지막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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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져온 마이크로 기타 더빙을 했다. 마이크 좋고. 간주로 녹음한 베이스 소리가 보컬과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기타로 간주를 다시 연주했다.

어둑어둑해진 밤, 운동을 하러 가다가 Ze Ramalho의 "O que é, o que é"를 들었다. 가느다란 진눈깨비가 날렸다. 건조하고 투박한 Ze의 노래를 듣고 듣고 또 들었다. '베를린 천사의 시'가, 자꾸 생각났다.

"(...)인간의 삶이란/이 세상의 아무 것도 아니라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것은 물방울이다/일 초도 안 되는 시간이다/그것은 깊고 신성한 불가사의다/사랑으로 가득찬 조물주의 한 줄기 입김이다

당신은, '삶이란 싸움이다', '기쁨이다', 말하고/그는, '삶이란 그냥 살아가는 것'이라 말하고/그녀는, '죽는 게 더 낫다'고 말하지.

(…)삶이라는 것/그건 아름다운 거로구나/아름답구나

살아간다는 것/부끄럼없이 행복해진다는 것/노래한다는 것/노래하는 것/노래하는 것

죽을 때까지 배우면서 살아가는/그 아름다움 삶은 나아져야 하고

그럴 거라 알고 있어/끊임없이 이렇게 말하는 나를/아무도 막을 수 없다

아름답구나/아름답구나/아름답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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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다시 들어보니 녹음한 간주가 영 마음에 안 들어서 일렉 기타로 다시 녹음을 했는데, 이것도 아니다 싶어서 8 현 기타로 마무리를 지었다. 내가 생각해도 좀 잘 친 듯하다. 저녁 즈음 한구형에게 믹스본이 와서 확인을 하고, 몇 군데 수정으로 잘 마무리되었다. 몸살 기운이 있어서 화콜을 먹었다. 얼마전 보니 기타의 넥 옆이 갈라졌는데,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 이곳에 '용한' 기타 의사님이 계신다는 제보를 입수하고 한 시간여를 달려 갔다. 손수 지은 아담한 작업실에 들어서니 나무 향기가 물씬 밀려왔다. 잘 부탁드린다고 인사를 드리고 돌아왔다. 그 사이 형철님이 보내준 선물이 집에 도착했다. 주소가 잘 못되어서 밭으로 갔다가 다시 온 모양이다. 손으로 직접 쓴 편지며, 선물과 책이 고맙다.

 

2/7

목이 많이 부어 잠을 설쳤다. 이게 목감기인지 서울 앓이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동안 습작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옮겨보았다. 식는다는 것은 죽는다는 것과 같다. 마음도, 음식도, 체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