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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8/31

8/1

오두막에 가서 전기 공사를 마무리하였다. 음향 배선 자재를 하나씩 골라 주문하다. 동하와 길게 통화를 했다.

 

 

8/2

집앞 바다를 보면서, 노래를 계속 듣고, 일광욕을 하다. 

에어컨 청소를 하다. 보고 싶지 않은, 알고 싶지 않은 에어컨 속의 리얼리티.

 

8/3

달고 단, 비가 내리다.

제익, 문호를 만나러 청주로 가다. 내륙의 땅에 내리자마자 얼마나 선선한 곳에 살고 있는 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8/4

수년 만에 밤새 친구의 얘기를 듣고 술주정을 받아주다. 친구의 음악 시계는 수십년 전에 멈춰있다. 밤새 그렇게 주정을 쏟던 친구는 낮잠을 자고 나는 또 다른 친구와 알지도 못하는 절로 무작정 드라이브를 했다. 몇 층인 지 알 수 없는 불당은, 어찌보면 대웅전이고 어찌보면 대적광전이고 또 어찌보면 약사전이다. 아니나 다를까 층층마다 다른 주존이 다른 방향으로 틀고 앉았다. 사방을 두르며 가족, 친구, 한 사람씩 떠오르는대로 삼배를 하고, 불전인지 불탑인지 그 꼭대기에 오르니 창너머 먼 산이 보인다. 비구니 스님들이 살뜰히 살핀 절간에는 어디나 여름 꽃이다. 절을 빠져나오니 잘 생긴 늙은 나무 한 그루가 있다. 나무를 돌보는 일을 하게된 후, 잘생긴 나무, 예쁜 나무를 보는 분별이 생겨버렸다. 상처 없는 나무는 없고, 가지가 베이고 덧순이 없는 나무야 없겠지만, 덜 다친 나무가 아름답긴 하다는 걸, 이젠 쓸쓸히 알아버린 것도 같구나.

 

8/5

좋은 노래란 뭘까.

좋은 노래란, 다시 듣고 싶은 노래, 다. 간단하다.

 

8/6

엽면 시비를 하러 밭으로 가다 아무래도 날씨가 수상하여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아침을 보내고 낮에 오두막으로 가서 전기 공사를 마무리했다.

 

8/7

엽면시비 600L를 하다. 키토목초액 3L + 아미노액비 + 600 ml + EM-B 3L + 소금 600 gr.

약을 치고 나니 억수 같은 소나기가 내린다. 올해엔 이런 일이 너무 잦다.

밭 근처 요양원 앞에 조그만 새끼 강아지 한 마리가 죽어있었다. 배가 볼록하고 검고 하얀 얼룩 강아지가 비를 조록조록 맞고 비스듬히 누워있었다. 비를 주룩주룩 맞으며 강아지를 감싸안고 밭 가 까마귀 쪽나무 아래에 아이를 묻어주었다. 

 

8/8

엽면시비 700L. 키토목초액 3.5L + 아미노액비 700 ml + EM-B 3.5L + 소금 700 gr.

약을 교반시키며 아침을 먹는 도중에 Patricia Marx와 Seu Jorge의 노래를 듣다.

방제 중에 뭔가 기분이 이상해서 돌아보니, 무성한 덤불 사이로 벌들이 보였다. 꿀벌보다 작은, 이름을 알 수 없는 벌이다. 그런데, 아차.

황급히 오두막으로 와서 장갑을 벗었다. 벌침은 보이지 않는다. 어릴적 꿀벌에 쏘였던, 그런 종류와는 다른, 너무나 생소한 통증이다.

의사 선생님은 역시나 별 대수롭지 않다는 말씀을 하시며, 항 히스타민제를 먹으면 가라앉을 거란다. 밭으로 돌아와 일을 마무리 하고 집으로 돌아갔는데, 해가 떨어질 무렵부터 손이 가렵기 시작한다.

 

8/9

손이 붓다 못해 물집까지 생기는 것 같다.

밤에 자다가 많이 긁으셨나봐요. 스테로이드 로션 하나를 처방해주는 선생님은 너무나 평온하시다. 이 병원에 내가 다시 오게될까.

병원 대기실에서 본 지역 신문에는, 올해 감귤의 생육이 작년 보다 못하다는 기사가 났다. 봄부터 습했던 날씨 때문인지도 모르겠네.

 

8/10

역시나 손에는 물집이 심하게 잡혔고, 나는 결국 시내의 다른 병원으로 갔다. 선생님은, 2차 감염도 의심스럽고 어쩌고 하시며 항생제와 스테로이드와 뭐와 뭐와 약물 칵테일을 선사해주신다. 이게 맞나 싶지만 당장 일을 해야하는 입장에선 달리 방법이 없다.

오늘은 기억해두기로 한다. 

 

8/11

약물 세례를 흠뻑받은 내 몸은, 정직하게 그리고 순순히 반응하는 중이다.

손의 붓기는 많이 가라앉았다. 물집이 잡힌 곳이 흉터가 되진 않을까.

 

8/12

제주 경찰청으로 오신 삼촌과 숙모를 만나고 돌아오다. 오일장에서 만나서 과수원 구경을 시켜드리고, 점심을 먹고, 집구경을 시켜드렸다.

 

8/13

병원을 다녀오다. 또 항생제. 안타깝게도 더 드셔야 합니다, 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1시간 반이 넘게 음악을 들으며 걷고 걷고 걸었다.

 

8/14

꿈에 나무들이 나왔다,

나무들이 무척이나 행복해하는 그런 꿈이었는데, 그렇게 전해지는 기분을 말로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다.

하늘하늘 거리는, 내가 좋아하는 삼나무 숲의 하늘과 끼익거리는 소리와 crown shyness. 모든 것이 생각난다.

 

8/15

이 노래는 마지막 사랑의 노래다.

한 사람의, 어쩌면 생의 마지막 사랑에 대한 노래다.

-JT

 

8/16


핀을 마취도 없이 빼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손가락이 구부러지지 않는다.

 

8/17

기술 센터에 가서 광합성 세균을 받아오다. 

 

8/18

 

8/19

 

8/20

방제 겸 엽면시비. 광합성 세균 3.5L + 소금 700 g + 유기칼슘 3.5L + EM-B 3.5L + 아미노액비 700mL in 700L

 

8/21

광합성 세균 3.5L + 소금 700 g + 유기칼슘 3.5L + EM-B 3.5L + 아미노액비 700mL in 700L

방제액이 모자라서 삼각지 쪽 나무들까지 다 뿌리지를 못했다. 아내가 방제를 하는 동안, 나는 약해보이는 나무의 열매 솎기를 했다.
무농약, 저탄소 마크를 넣은 농원 명함을 의뢰했다. 손가락에 감은 반창고를 풀었다.

 

8/22

오두막에 가서 태풍 단도리를 하고 돌아오다. 두꺼비집을 다 내렸다.

효제 가족을 만나다.

 

8/23

태풍 솔릿이 대문을 박살내 버렸다.

흑로 한 마리가 우리집 가스통 위에 앉아 비바람을 피하고 있다.

이 난리통에 올해 풋귤 주문을 시작했다.

 

8/24

가슴을 졸이며 과수원으로 차를 몰았다.

오두막과 돌담은 멀쩡한데, 생태화장실과 퇴비간이 기울어져 있고, 문이 박살이 났다. 수리용 타카를 빌려왔다.

대문 제작 견적을 알아보니 기가 막힌다. 너무 비싸. 형님께 전화를 드리니, 일단 비가 그치고 나면 직접 만들어 보자고 하셨다.

아내가 풋귤 상자를 받아왔다. 올해부터 농가에 풋귤 상자 지원금을 준단다.

 

8/25

운섭형님께 컴프레서를 빌렸다. 비트 오피스 친구들이 여행을 왔다.

 

8/26-27

아내는 서귀포로 여행(!)을 가고, 여행을 온 친구들과 먹고 마시고 음악을 듣고.

다들 전직 뮤지션들 아니랄까봐, 음악을 듣는 자세가 진지하다 못해 엄숙하기까지.

 

8/28

 

운섭 형님과 대문 작업. 철각관을 사와서, 자르고, 용접을 해서 틀을만들고, 방길라이라 불리는 단단한 하드우드를 잘라 살을 붙이고 힌지를 박고.

 

8/29

완성이다.

VTRC 컴프레서 데모 기계가 도착했다. 같은 이름이건만, 어떤 컴프레서는 집을 고치고, 어떤 컴프레서는 노래를 만든다.

풋귤의 성분 분석을 의뢰했다. 폴리페놀과 플라보노이드 정량을 의뢰했다.

 

8/30

 

8/31

광합성 세균을 받아오다. 

풋귤 예약 마감.

모두가 '청귤'이라 부르는 풋귤. 관청에서도 그냥 청귤이라고 부르면 안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