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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10/13

9/11

000012

오전에는 밭에서 전정을 했다. 올 가을에는 유난히 나비가 많구나. 

저녁에는 상순의 녹음을 도와주었다.

 

 

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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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다.

아이 손바닥만 했던 보현의 상처가, 엄지 손톱 만큼 작아졌다. 의사 선생님은 더 이상 치료비도 받지 않으신다. 무탈함이란 사실 기적에 가까운 것이라, 살아있는 한 마냥 감사할 수 밖에 없다.

 

9/13

아내가 부산으로 갔다.

부서질 것 같은(이라고 메모장에 씌여있다.)

기술센터에서 광합성 세균을 받아왔다.

미 학술원지 PNAS에 산화철 magnetite 나노 입자가 뇌에 주는 영향에 대한 논문이 실렸다. 인간의 과학은 독성의 '질'에 해답을 줄 수 없다. 어떤 물질이 독성을 갖고 있다 치자. '어떻게' 독해야 독한 것인가. 우린 순식간에 죽을 수도 있고, 죽음조차 모른 채 죽어갈 수도 있다. 금속이나 세라믹 나노 입자는, 미래의 '석면'이 될 가능성이 있다. 잠시 나노 연구를 했던 사람이니 나는 반성문이라도 써놓고 살아있을까.

Alex Schneiderman의 'On Perfection 완벽에 대한'을 읽다. 기술적으로 '완벽한' 시대에, '완벽한' 것이란 또 얼마나 평범하고 무의미한가.  

 

9/14

300 L 남은 액비에 물 700 L + 3.5 L 광합성 세균 + 3.5 L 키토 목초액 + 0.7 L 아미노액비 + 5 L EM-B를 더 만들어 엽면 시비. 작업 중에 비가 내렸고 결국 작업 중단. 8월 강수량이 평년의 절반 가량 밖에 되지 않았다. 지금 내리는 비가 고맙기도 하면서도, 맥이 빠진다.

 

9/15

비가 흩뿌리는 날, 아내가 돌아왔다.

 

9/16-9/18

 000019벼르고 벼르다, 69년 생 EB-2 베이스를 데리고 왔다. 

안테나/목소리와 기타 공연 연습. 하루 12 시간 연습은 또 처음이다.

폴 칼라티니의 '숨결이 바람될 때'를 읽다가, 재앙 disaster 의 어원이 '부서지는 별'이라는 걸 알았다.

싫은 게 많은 내가 싫을 때, 유일한 방법은 좋아하는 것을 더 많이 찾는 것이다.

 

9/19

비가 흩뿌리다. 

 

9/20

000010

남아있던 액비를 레몬나무에 모두 관주하고, 1000 L 를 다시 만들었다. 1000 L 물 + 5L 광합성 세균 + 1L 아미노 액비 + 1.25L 키토 목초 + 5L EM-B. 작업 중 여수 호스가 빠지면서 액이 모조리 새버렸다.

꼼꼼히 일하지 못했다. 아직 멀었다. 기분이 울적하다. 

다시 1000 L에 1L 아미노 액비 + 1.75 EM-B  + 5L 광합성 세균을 섞어 엽면 시비.

 

9/21-9/25

Hello, Ante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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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테나 사람들은 모두가 샘을 '막내'라고 부른다. 나는 궁금했다. 샘은 '막내'란 말을 언제부터 알게 되었을까. '막내'라는, 그 지극히 한국적인 애정과 굴종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을까. 한국에서 살아내기 위해, 그냥저냥 맞춰 가며 살고 있지는 않을까. 그래. 샘은 착하고 영리하니까.

함께 입장을 하게 된 우리. 나는, 어깨 동무를 하고 인사하는 건 어때, 라고 그에게 물었다. 그는, 전 그냥 손 잡고 평범하게 인사하는 게 좋아요, 라고 말했다. 우린 그러기로 했다. 굉장히 작은 일도, 샘이 하자는대로 하고 싶었다. 샘이 나를 형이라고, 선배라고 마냥 허리 굽히지 않으면 좋겠다. 나이가 많다는 건 공경 받을 일도 아니고, 음악을 먼저 시작했다는 게 존경 받을 일도 아니다.

 

9/26

귀가.

사랑하는 존재들이란 생각할수록 자꾸 눈물부터 나려 하는데, 나는 그때의 기분이 참으로 좋아. 나를 작게만 만드는 물음, 죽음, 삶, 사랑 같은  그 거대한 것들 앞에 마주 서서 자꾸 나를 더 작고 작게 만들어야, 또 그 앞에서 용기가 생기는 거야.

 

9/27

비. 하루 종일 연습

 

9/28

비. 아내가 아프다.

 

9/29

오랜만에 동하에게서 전화가 왔다. 메일에 뭔가 문제가 있었나 보다. 동하는, 나무를 만지는 일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어떤 의사처럼, 자기가 쓸 관을 직접 만들어 보고도 싶다고 했다. 그거 멋진데. 비록 나는 매장을 원하지는 않지만. 

뉴욕에서 78 년에 태어난 Rhodes를 주문했다. 

 

9/30

공항으로 가는 중에 제익과 통화를 했다. 전화를 걸었는 지 전화가 왔는 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무튼 제익은 뇌졸중 초기 증상으로 인해 병원에 다녀왔다고 했다. 아내는 차 안에서 '뇌졸중'을 검색하고, 나는 공항에 도착해서, 표를 끊고, 검사대를 통과하고, 게이트 앞에 서서 다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큰일이 아니었기에 다행이구나, 하는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비가 오는 날이다.

나눈 죽음을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다만 이렇게 걷다보면 이 길의 끝에 죽음이란 문이 어렴풋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 정도일 것이다.

노래는, 그런 '커다란' 것과는 거리가 멀다. 노래는 짧고, 작다. 사라지는 것에 가깝고, 그런 의미에서 노래는 음악적이지도 않다.

 

10/1-4

목소리와 기타 -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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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 list

  1. 검은 개

  2. 늙은 금잔화에게

  3. 꿈꾸는 나무 (10/1) 오, 사랑 (10/2, 3)

  4. 마음은 노을이 되어 (10/1) 마음은 노을이 되어 (10/2, 3)

  5. 오, 사랑 (10/1) 풍경은 언제나 (10/2, 3)

  6. 길 위

  7. Bittersweet (You can't go hom again) (D. Sebesky)

  8. 봄 눈

  9. 레미제라블

  10. 4월의 춤

  11. 아직, 있다.

  12. 명왕성

  13. Danza sin fin (Q. Sinesi)

  14. 그대는 나즈막히

  15. 스며들었네

  16. 어부가

encore

  1. 고등어

  2. 여름의 꽃

 

큰 힘이 되었습니다. 자주 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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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공연의 마지막을 타로 점으로 마무리 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10/5

태풍. 전화 너머로 아내는 밤새 한 숨도 잠을 못잤다고 내게 말했다. 태풍은 섬을 빠져나갔고 나는 섬으로 들어갔다. 마당 정리를 좀 더 하고 왔어야 했는데. 뒤집어 놓은 액비통들이 날아다니며 유리창을 때릴까봐 겁이 났다는 아내의 말, 바닷물이 황톳빛으로 변해버렸다는 말, 전기가 들어왔다 나갔다가 했다는 말을 들으며, 하룻밤 사이 나는 옛날과 지금 그 어딘가에, 무엇으로 있었던가 싶었다.

 

10/6

방풍림이 쓰러지고 돌담이 무너졌다. 반 년 넘게 자란 레몬순이 힘없이 부러져있다.

모르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많지 않을 것이다.

내일 비가 온다는데, 어찌해야 할까.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그래도 방제를 하라고 하신다. 흑점병 방제도 이제 두 번 정도 남았고, 가을 비료만 주고 나면, 올해의 일은 끝이난다. 유기 칼슘 두 통 중 한 통이 부패했다. 빗물이 새 들어간 것 같다. 1000L 에 아미노 액비 1.5 L + 키토 목초 5 L + 유기 칼슘 5 L + EM-B 5 L. 300 L 가량 남은 액비를 레몬 나무에 관주해주었다.

 

10/7

맑은 기타 소리가 나무를 두드리는 바람 같다면, 맑은 피아노 소리는 천천히 번지다 사라지는 물둘레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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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d Hersch의 피아노를 들으며 나는 신랑 신부를 찍어줄 필름을 고르고 신랑 신부에게 줄 선물을 포장했다. 오롯이 두 사람만이 주인공이었던 작은 결혼식이 끝나자, 신부는 손수 만든 박하차를 선물했고, 신부의 동생은 손님 한 명 한 명의 손에 꽃 송이를 들려 보냈다. 

 

10/8

비.

시장에 존재하는 제품은 그 사회가 가진 '욕망의 수준'을 그대로 반영한다. 제품 뿐 아닐 것이다. 한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구성원들이 욕망하는 수준만큼 만들어진다. 대통령부터, 밤 거리 가로등까지, 모두 그럴 것이다. 하라 켄야의 '디자인의 디자인'을 마저 읽다.

어느새 해가 떴다.

physical album을 '어쩔 수 없이' 내는 것이 아니라, '확실한 의지'를 가지고 마주하기. 나는 그 '물성'을 얼마나 잘 살릴 수 있을까.

 

10/9

오랜만에 아침 산책. 숲의 공기가 탄산수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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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얗게 샌 억새 이삭. 태풍에 쓰러진 나무들. 까마귀 한 마리가 죽어있다. 푸른 채 떨궈진 삼나무 이파리가 발끝에 걸린다. 오늘 아침에는 코코넛 오일도 굳어있구나.

지영이네 봉식이네를 만나고, 차를 한 잔 마시고, 돌아왔다. 

Mark Giuliana의 드럼 솔로를 듣다, 잠이 들었다.

 

10/10

아침 숲길. 죽어있는 까마귀를 묻어주다. 수크령과 엉겅퀴 산수국 한 다발을 올려두었다.

나도 목욕을 하고, 차도 목욕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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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멘델선드의 책 'Cover'을 펼치다. 프라하의 공항 서점에서 본 카프카의 책을 디자인한 사람이었구나. 표지도 표지지만 울퉁불퉁하게 재단된 페이퍼백 책배가 나에겐 정말 충격이었는데. 

 

10/11

자극은 어디에서든 온다. 하지만 늘 경계를 늦추지 않고 주위를 살펴야한다. 영감이란 것은 수동적으로 받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늘 모든 곳을 둘러보며 찾고 있다. (...) 단순화시켜라. 확신이 없으면 타이포그래피에 집중하라. (...)유념해야 할 최고의 원칙은 심플하게 한다, 이다. (...) 취향은 오히려 훈련과 유지를 필요로 한다. (...) 작품에 대한 반응에는 세 가지가 있다. 좋아. 아니야. 와우! 이 '와우'가 목표로 해야할 일이다.

- Peter Mendelsund,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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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뉴욕에서 로즈가 왔다. 로즈가 오자마자 나는 뚜껑을 열었다. 이 복잡해 보이는 악기에서 나오는, 그야말로 단순한 아름다움이란.

결국 그런 것이다, 아름다움은.

결국에는 내가 많은 일을 하게 되겠구나. 내가 많은 일을 잘 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내가 해야만 '합당한'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피아노를 둘 곳을 정리하다가 나와 아내는 늘어가는 책을 어떻게 할 것인가, 얘기를 나눴다. 책장을 더 짤 것인가. 결국 우린 책과 시디를 순환시키기로 했다. 우리가 보관해둘 책과 앨범의 수를 정해두고, 나머지는 기증/선물/폐기하기로 정했다. 

 

10/12

오전에는 로즈 튜닝을 하고, 오후엔 정원 일을 했다.

저녁 요가를 하러 선생님께 가는 길, 우리는 닉 드레이크의 음악을 들었다.

안전한 공식을 답습하지만 않는다면, 오늘 못 생겨도 내일은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10/13

왠일인지 아침에는 에밀리 브론테의 시를 읽었다.

수리된 무비 카메라가 도착했다. 사장님은 오래된 카메라라서... 라고 얘기했지만, 사실 겨우 필름 한 통을 찍은 새 카메라에요 라고 나는 차마 말하지 못했다.

지영 아버지의 전화가 와서, 건축 허가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고 내일 같이 관청에 가보기로 했다.

잠들기 전, 누나의 문자가 왔다. "밥 딜런이 노벨 문학상을 탔어." 문득 나는 보스턴의 서점 매대에 쌓여있던 폴 사이먼의 가사집이 생각 났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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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밥 딜런의 음악을 잘 모르지만, freewheeling의 앨범 자켓만은 똑똑히 기억한다. 어릴적 나는 이 사진을 볼 때마다, 이렇게 눈길을 걷는다면 누구도 춥지 않을 거야, 라고 왠지 생각했었다. 

밤늦게 어느 기자분에게 전화가 왔다. 이런 저런 질문을 하는데 아마 내일 아침 기사를 준비하시는 모양이다. 노래 가사가 문학상을 탈만 할까요? 글세요 제가 밥 딜런의 음악을 잘 몰라서... 하지만 상이야 뭐 그냥 주는 사람 마음이겠죠. 나는 카에타누와 프린스가 그랬듯 75세인 그의 디스코 그래피는 올해까지도 거름이 없더라는 얘기를 했다. 꽤 길어진 통화 도중, 그는 - 이 시점에서 누구나 궁금할법한 - 질문을 했다. '그런데 노래 가사도 문학이일까요.'

나는 문학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