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7
화단에 꽃을 심었다.
3/28
아침 일찍 서울행. 사랑니를 뽑고 마취가 덜 깬 채로 머리를 자르고 공연 회의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생니를 뽑은 기분이란, 말 그대로 '앓던 이가 빠진 기분'이다. 오며 가며 아내에게서 생일 선물로 받은 '제주 탐조 일기'를 읽었다. 새가 너무 좋아 평생토록 새를 바라보는 일을 하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들일까. 바라보고 돌아서며 '충분히 행복하다'는 그 마음이, 참으로 지순하다.
무더위가 절정에 달한 오후, 드디어 팔색조가 나타났다.(...)
나 같으면 사진을 안 찍었을 정도의 거리인데도 그는 부지런히 셔터를 눌렀다. 팔색조는 금새 사라졌다. 더 이상 나타날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들었는지 아니면 더 이상 팔색조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였는지 그는 옷을 털며 일어섰다. 다음날 다시 오는 건 어떤 지 넌지시 물으니 그는 웃는 얼굴로 "오늘 본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고 말했다.
- 김은미, 강창완 <제주 탐조 일기>
샘이 신곡을 발표한 날. 한가득 축하해 주고 싶은데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가끔은 내가 세상의 많은 것에서 참 멀리 있구나, 느낀다.
3/29
EM 교육 첫 날. 반 년 만에 다시 뵌 선생님은 여전히 열정적이고, 공손하시다. 그리고, 예전에는 몰랐는데, 수줍음이 많다. 박제되지 않은 지식을 이번에도 어김없이 하나하나 전해주었고 나는 하나도 빠짐없이 받으려 애썼다.
3/30
교육 둘째 날. 작년 교육 내용과 달라진 것들이 눈에 띄는데, 그 사이의 업데이트가 반갑기도 하고, 선생님이 새삼 대단해보였다. EM 발효액비에 바실러스 균을 기본으로 사용하라는 내용이라든지, 봄 비료는 생략해도 된다는 내용이라든지, 바닷물을 사용할 수 없을 때엔 3% 소금물을 쓰면 된다든지, 보르도액 방제 회수도 조금 다르지만 작년보다 훨씬 더 정리된 기분이랄까.
3/31
교육 마지막 날. 만 평 넘게 한 필지로 이어진 선생님의 과수원으로 갔다. '민초원'이라 이름 붙은 선생님의 귤밭에는, 풀, 벌레, 나무, 흙, 어느 하나 빠짐 없이 모두가 살아있다. 어떤 미물도, 아무 이유없이 죽임 당하지 않을, 공존의 세상. 선생님은 어떻게 이런 농법을 생각하게 되셨어요, 선생님을 모셔다 드리며 물었다. 농약 땜에 일 주일에 몇 명씩 실려갈 때여. 이건 아니지 않냐고. 30년 전 유기농법이란 개념이 있었을 리 없지만, 음악도 그렇고 농사도 그렇고 다른 곳에서 각기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 한 곳에서 만나는 경우가 있다. 선생님도, 후쿠오카 마사노부도, 피에르 라비도 그랬을 것이다.
4/1
골분과 패화석의 구입처를 수소문했다. 나무와 화초에 비료를 뿌려주었다. 발효액비를 엽면 시비해주었다.
4월의 첫 날, 어김 없이 제비들이 왔다.
숲 길을 걷다 돌아왔다.
4/2
과수원에 비료를 부려놓고 돌아왔다. 부러진 가지 바로 아래에 까치들이 새 둥지를 틀었다. 내가 새의 지혜를 헤아리지 못했나보다. 새 순은 아직 5 밀리미터도 자라나지 않았다.
보리 이삭이 패려는 듯 연둣빛 이파리가 껑충껑충 꺾이고 있다.
concerto 편곡을 절반 이상 마무리 했다. 하지만, 가장 어려운 부분에 맞닥드렸다.
Dona Ivone Lara가 95세 생일을 맞아 기념 공연을 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Dona, nasci pra sonhar e cantar. '꿈꾸고 노래하려 태어난' 도나 할머니.
4/3
아침을 먹으며 아내가 문득 귤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수없는 수탈의 역사를 견뎌온 이 아름다운 섬은, 마치 한국 속의 한국 같다.
민가에서 재배하는 감귤나무에 열매가 맺히면 관리들이 찾아가 열매 하나하나에 꼬리표를 달고는 하나라도 없어지면 엄하게 처벌했다. (...) 바람과 비에 손상되거나 까마귀나 참새가 쪼아 먹으면 집주인이 책임지고 대납해야 했다. 해충의 피해를 입거나 바람으로 귤이 떨어져서 그 숫자를 채우지 못했을 때에도 소유자에게 책임을 물었으니 감귤 재배는 차마 인간이 할 짓이 아니었다. 백성들은 귤나무를 더 심으려고 하지 않았다. 귤을 통을 주는 나무라 하여 더운물을 끼얹고 고사시키는 경우가 허다하였고, 나무그루에 상어 뼈를 박아놓거나 송곳으로 구멍을 내고 후춧가루를 넣어 나무를 죽이기도 했다.
- 주강현, <제주 기행>
오늘도 하루종일 비가 온다. 작년 이 날도 비바람이 매서웠지.
南無阿彌陀佛. 南無阿彌陀佛. 南無阿彌陀佛.
南無地藏菩薩摩河薩. 南無地藏菩薩摩河薩. 南無地藏菩薩摩河薩.
4/4
오늘도 비. 편곡을 마무리 하고, 기타 반주 녹음을 해 놓고 연습을 했다.
4/5
연습. 식목일이라는데, 나무를 심지 못했다.
4/6
오전에는 연습을 하고 오후에는 과수원에 발효액을 뿌렸다. 비옷을 입고 나무 아래에 EM 액을 뿌리는데 부슬거리던 빗방울이 점점 굵어졌다. 비옷을 입고 비를 맞아본 게 얼마만일까. 우울한 마음에 상순이네에 가서 같이 술을 한 잔 하고 돌아왔다.
4/7
연습.
4/8
아침에 일어나 보니 기타줄 하나가 끊어져 있다. 간밤 누가 와서 기타를 치고 간 걸까.
눈을 감아도 아름다운 것들. 아름다운 것들을 갈망하는 마음.
4/9
사전 투표를 하고, 오랜만에 운동을 하고 돌아왔다.
4/10
간절하되 걸림 없는 마음을 가질 수는 없는 걸까.
4/11
오랜만에 들른 봉식이네 집 대나무 숲 앞에 벚나무 한 그루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고 늘어진 가지 아래로 작고 아름다운 tiny house 한 채가 세워져 있었다. 작년 이 맘 때였나 한창 짓고 있던 집에는 벌써 이웃이 들어와 살고 있었고 어찌하다보니 나와도 구면인 그녀와 인사를 하다보니 이건 참으로 좁은 세상이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기타를 치는 건, 몸에 음악을 새겨넣는 것이다. 악보나 코드를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과 줄과 프랫의 쓸림을 몸에 새겨넣는 것이다. 그러니 기타의 핑거보드에는 네 손가락이 무수히 쓸어댔을 자욱이 그대로 새겨져 있다. 넥이 조금 뒤틀린 것 같습니다. 아, 그런가요. 3 번 줄의 인토네이션이 많이 안좋았는데, 곰곰히 생각해 보면 이게 어제오늘 얘기는 아니었던 것도 같다. 오래된 기타가 그렇습니다. 가슴 어딘가 철렁한다. 비가역적인 것이 떠올라 그랬을 것이다. 그래도 장고가 치던 셀머 기타는 60몇 년 넘게 멀쩡하지 않나요. 나는 뜬금없이 그런 얘기를 하고 말았는데,
지금 함께 하는 것이 되돌릴 수 없는 곳으로 향한다는 건, 보고 싶지 않은 진실이기도 하지만, 그럴수록 만남보다 헤어짐에 의연해지지 않으면, 세상 따위는 살 수가 없다.
과수원 앞에 보리이삭이 곧추섰다.
4/12
아침 일찍 양사장님을 모시고 접목을 했다. 레몬 나무 순에서도 레몬 향기가 난다.
돌아오는 길에 농업 용수 설치를 위해서 마을 회관에 들렀다가 오후 늦게 성 변호사님을 만나고 돌아왔다.
4/13
20대 총선 투표일. 일본은 투표 연령을 18세로 낮췄다.
이 땅의 어른들아. 우리나라의 십대들에게도 참정권을 주어라.
그리고 어른 자격 시험을 국가 차원에서 치면 어떨까. 갱신 기간은 한 3 년 쯤으로 해서 말이죠.
4/14
공연 리스트를 생각하다가, 몇몇 곡들을 다시 해석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찬찬히 내 노래들을 좀 더 찬찬히 들여다보고 싶다.
물창고에 선반을 달고, 현관에 방충망을 달았는데 밀양인가 어디서 오셨다는 열쇳집 사장님을 보니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 생각이 나는 것이었다.
4/15
물창고를 정리했다. 묵은 것들이 이리 많기도 하다.
4/16
원익 형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농사짓는 얘기, 컨테이너에서 생활하신다는 얘기, 600 평 밭에 접목한 얘기, 작년 1월 폭설이 내렸을 때 하룻밤 비닐 하우스 연료비만 백만원이 넘게 나왔다는 얘기, 멀리 있으니 찾아뵙기도 쉽지 않아 오랜만에 쌓인 얘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났다. 접목을 했다고 하자 봄 순 돋을 때 바구미를 조심하라고 일러주셨다. 농약을 하나 추천해 주셨는데, 저 농약은 안씁니다, 라고 말할 수도 없고 그냥 감사한 마음으로 새겨 듣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진실이란 쉽게 침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필사적으로 붙들어 내지 못한 진실은, 침몰하고 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후가 되니 바람이 몹시 분다. 내일 비행기가 들 수 있으려나.
4/17
돌잔치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 타자마자 책 봉투를 열었는데, 책 한 권에 노란 리본과 팔찌, 핀이 든 비닐 봉투 하나가 들어있었습니다. 그리고 책 안에는 유족들이 손수 쓴 카드 한 장이 끼워져 있었습니다. 아무 것도 한 것 없는 내가 받아도 될런지, 싶었지만, 그래도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으로 책을 펼쳤습니다. 오늘따라 비행기는 왠일인지 한 시간이 다 되어 갈 때까지 비행장을 뜨지 않았습니다. 꿈쩍도 하지 않는 비행기에서 안전벨트를 하고 앉은 나는 책을 읽었습니다. 책장을 넘기다보니 비행기가 하늘로 솟구쳐 올랐습니다. 섬에 닿을 무렵, 책을 거의 다 읽어내려간 나는 알게 되었습니다. 고통을 견뎌낸 이들이 얼마나 굳건해질 수 있는지. 그러나, 그 굳건한 흉터 뒤의 영혼은 여전히 얼마나 아픈지.
4/18
아침에 농업 용수 설치 건으로 과수원에 들러 공사 업체를 만났다. 십분도 걸리지 않아 견적을 주고는 내일까지 알아서 설치해 놓으시겠다고 했다. 농협에 들러 1000 L 짜리 사각 약통을 사러 왔다고 하니, 담당자께서, 저도 주말마다 농사 짓는데 동그란 약통이 더 좋습디다, 하신다. 농사짓는 거 뭐 많이 들죠? 사람들은 잘 몰라도, 라며 바깥으로 나가서는, 나도 해봐서 아는 데 청소하기도 쉽고 이게 딱이요, 하며 검은 1100 L 짜리 둥그런 들통을 보여주신다. 리어커 하나, 기계유유제 한 통, 앉은뱅이 방석을 사고, 약통을 트럭에 싣고 밭에 부려놓았다. 오후가 되니 벌써 농업 용수와 계량기 설치가 끝났다고 연락이 왔다. 돌아오는 길에 농지원부를 떼어 왔다.
귤꽃 몽오리가 몽글몽글 자랐다. 보리 이삭이 그럴싸하게 커졌다.
겨우내 깡마른 가지가 이토록 풍성해지는, 가장 극적인 봄꽃, 작약.
수리가 끝난 기타를 받아왔다. 새들을 깎아냈지만 인토네이션이 완벽하게 잡히지 않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카본 줄을 써야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반사적으로 들었다.
4/19
예전 주인이 밭에 깔아둔 멍석을 걷으러 갔다. 절반은 삭아서 툭툭 끊기는 멍석을 걷다가 오래된 통나무 줄기를 옆으로 치웠는데 통나무 아래에 진갈색 새끼 뱀 한 마리가 잠자코 있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보면 언젠가 한 번은 보게될 거라 생각했던 그 '긴 것'.
바닷가 창문을 닦았다. 재공사를 과수원 수도를 확인하고 돌아왔다. 제비들은 원래 있던 집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 지 자꾸만 벽에 새 집을 지으려하지만 뭔가 여의치 않은 모양이다. 밤에는 현관문 손잡이 위에 앉아 잠을 잔다. 가까이 가도 달아나지 않는다.
상순이가 augustine 한 세트와 savarez 카본 줄 한 세트를 주었다.
4/20
2주간 유럽으로 가는 상순 부부와 저녁을 먹고 돌아왔다. savarez 카본 줄을 기타에 거니, 인토네이션이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다. 제대로 된 음으로 연습으로 하니, 정말이지 살 것 같다.
올해도, 우리 엄마가, 우리 할머니가 좋아하는 앵두가, 한가득 열려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폴라리스 말하길:
저는 그앵두를 꼭 먹어보고 싶습니다..아련한 마음이 가득 담긴 앵두를요…
2016년 5월 2일 — 11:40 오후
camel 말하길:
4월의 봄은 부끄럽기만 합니다.제비가 다시 돌아온 것처럼자연은 쉼없이 변화 하면서도 한결 같고 진화를 멈추지 않는 것 같아요. 우리 사는 세상도 그렇다고 믿어봅니다.영혼의 아픔을 이겨내는 힘은 진실이 있기 때문일거란 생각도 해봅니다.폴님의 농사 이야기는 기운을 돋구어 주어요.공유 해주신 음악은 산책같아요…감사해요~ 폴님 5월에 뵈어요.
2016년 4월 30일 — 11:26 오후
Grace 말하길:
그럴수록 만남보다 헤어짐에 의연해지지 않으면, 세상 따위는 살 수가 없다 ㅠㅠ 이보다 더한 진리가 있을까요 최고 :)!!
2016년 4월 29일 — 4:10 오후
페퍼민트 말하길:
소식이 궁금했는데 기다린만큼 많은 이야기가 있네요.읽으시는 <제주 탐조 일기> 까지는 아니지만 저희 집에도 멋쟁이새가 우편함에 둥지를 틀었네요.둥지가 상하지 않게 우편함에 큰 글씨를 써 붙이고 왔습니다.'마음도 번역이 되나요'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말이 많은데 표현은 왜 늘 어려울까요. 더 와닿는 말로는 누군가에게 작지만 표현해보고 싶은 용기가 생깁니다.올려 주시는 음악 이번에도 고맙습니다. 공연 날까지 몸 건강히, 5월에 뵈어요.
2016년 4월 26일 — 1:41 오후
elf1307 말하길:
4.3평화공원…좀 불편한 내용일수도 있는데 사진보니 생각나서요.
두달전 제주 성읍에서 현지 거주하시는 분을 통해 가옥에 대한 설명을 들었을 때 유난히 머리에 남던 구절이 있었어요.
그시절 화장실 그러니까 흑돼지가 아래에 살고 있는 변소라고 하죠. 그게 사방이 트인게.. 단지 이 사유만은 아니였겠지만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를 군경들을 대비해 망을 보기 위해서라고… 집안에 여인들이 볼일을 보러 가면 남자는 멀찍이서 망을 봐주기도 했었대요.
근대사를 잘모르는 저는 몇년전에 제주방언으로 된 제목의 독립영화를 통해 눈으로 보면서 실상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는데, 영화속 내용인지 관련자료였는지는 확실하진 않습니다만, 어렸을적 4.3을 겪고 십수년이 지나 군복을 입고 휴가나온 아들의 모습이 순간 너무 무서웠었다는 어느 노모의 말씀도 잊혀지지 않네요.
제주 4/3사건, 4/9 인혁열사 사건, 4/16세월호…
많은 희생자 뿐 아니라 그 흐름에 함께 있었던 주변인들도 트라우마로 고통받고 있고… 왜 정치와 관련된 4월의 역사는 이다지도 아픈지ㅠㅠ
2016년 4월 25일 — 1:36 오전
귤 말하길:
저도 앵두가, 한가득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2016년 4월 25일 — 1:35 오전
sirius1924 말하길:
노래만 줄곧 듣다가 우연히 홈페이지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너무 좋네요
2016년 4월 23일 — 8:35 오후
상한 영혼 말하길:
마음이 아프고 아픈 와중에
겨우 폴님 공연 예매해 놓고,
그것 하나 붙들고 시간을 보내는 중입니다.
여전히 폴님의 글에는 많은 것들이 살아 숨쉬네요…
이 글에서 느껴지는 생기들이 제게로 전해지도록 공연날이 어서 왔으면…
하고 바라봅니다.
2016년 4월 22일 — 4:04 오후
파인트리 말하길:
항상 잊지않고 기억하고 글을 쓰시고 가사를 쓰시는 폴님이야 말로 선물을 받으실 자격이 충분하시지 않을까요.저도 앵두가 꼭 많이 열렸으면 좋겠네요.
2016년 4월 21일 — 3:59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