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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7/31

7/1

몹시 비가 오는 날.

날이 더워질수록 컴퓨터도 속도가 점점 느려진다.

믹서를 점검하고, 오두막에서 부지현 작가님과 황 큐레이터님을 만났다. 작품 얘기를 들었는데, 들을수록 대단하다는 생각만 든다.

7/2

전정 완료. 기쁘다.

느리고도 꼼꼼하게 모든 나무를 돌봐주었다. 이제 기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여름을 맞을 수 있다.

배나무 형제에게 인사를 건넸다. 갈색 알이 둥지에서 사라졌다. 아기새들은 이소를 했을테지.

7/3

찔레 덩굴이 귤나무를 향해 손을 뻗는다. 식물은, 다만 느릴뿐 명확하게 움직인다. 결코 머물러 있지 않는다.

안개 자욱한 날. 무척 습하다. 진귤 나무 한 그루를 밭으로 데리고 갔고 어제 전정한 나무에 도포제를 꼼꼼히 발라주었다.

오두막 2층 정리를 하고, 비료와 액비 (아미노 액비+영양제)를 집으로 챙겨와 치자나무에 뿌려주었다. 농업센터에 미생물 공급 관련 문의를 했다. (23일, 30 리터 수령 가능) 기술원에 알락하늘소 트랩 관련 문의를 했다. 연결시켜 준 업체 사장님과 통화를 했다. 지금이 짝짓기/산란기라며 방제 적기라 하신다.

7/4

보현 2시 기상. 다시 잠들다. 집 대문 수리를 하는데 오전 시간을 다 썼다.

진귤 나무 둘을 밭으로 데려다 놓고, 오두막 정리, 창고 청소. 비료 봉투 버리기. 하늘소 트랩 주문.

7/5

오두막에서 믹서 테스트를 하고 점심을 먹는데,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보현이 유박 비료를 삼켰다는 것.

부랴부랴 병원으로 달려갔더니 이미 위세척을 한 보현이 계속 토를 하고 있다. 다 토해낼 때까지 기다리다 주사를 맞히고 약을 타왔다. 하늘이 노란빛으로 뜬 날.

7/6

진귤 나무에 물, 액비, 미생물 제재, 유기질 비료를 골고루 나눠 주었다. 이미 비료를 준 나무에는 파란 곰팡이가 피어있다. 미생물 액비에서 나온 방선균이다.

중국으로 보낸 DCD-8이 파손되어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한 때 나와 많은 작업을 했던 워드클럭이, 내 실수로 엉망이 되었다는 자책감 미안함에 몹시 괴롭다.

7/7

Timothy Morton. Ambient Poetics.

'otherness'

오전에 물 속을 걷고, 오후엔 현진씨 가족을 묵음에서 만났다.

7/8

페로몬 트랩 설치. 덩굴 정리.

타스캄 믹서를 보내고, 맥키 믹서가 왔다.

김하나 작가님께서 보내준 <금빛 종소리> 읽다.

여름순은 귤굴나방으로 초토화된 듯하고,

토양 마이크 테스트. 놀랍고 엄청난 소리들이 들려온다. 밤 11시-11시 30분 사이 녹음 예약을 걸어두고 돌아왔다.

7/9

아침. 부다페스트에서 녹음해 온 소리를 quadrophonic으로 풀어보았다. 카페와 거리와 시장에서 채집한, 낯선 땅에서 만난 그리운 가을 소리. 오전 내내 아내, 보현과 시간을 보냈다. 점심 시간을 지나 과수원으로.

지난 밤 토양 마이크는 임수를 잘 수행했다. 마이크를 철수하고,

트랩에는 풍뎅이와 벌레 몇 마리가 잡혀있다. 잡힌 벌레들을 내보내주긴 했지만 끈끈이에 붙은 애들은 어쩔 도리가 없다. 잠시만 덩굴 정리를 해도 비오듯 땀이 쏟아진다. 나무 아래에서 알락하늘소 한 마리를 잡았지만 도망갔다. 독하게 잡지 못한 탓이다.

아내가 번역 탈고를 한 날. 기념 샴페인을 마시고, 걷다 돌아와서 Daniel과 수업. 다 좋은데 말이 너무 많아, 내가 말을 많이 하지 못한다. 인도네시아어 독학 시작. 당분간 오전 (português), 오후 (Bahasa Indonesia)로 시간대를 나눠볼까.

믹서가 잘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고 수리 가능 여부를 빨리 알려달라고 했다. <금빛 종소리>를 계속 읽다. Pessoa의 <O Guardador de Rabanhos> 읽기. 그리고, Daniel이 얘기해준 Humberto Maturana의 책을 찾아보다.

7/10

비. 비. 비.

오전에 과수원에 가서 토양 마이크 철수. 트랩에는 잡힌 벌레가 없다. 진귤 형제들을 빗물이 떨어지는 쪽으로 옮겨두었다. 신주 볼밸브를 사서 창고에 갖다두었다. Marcus Maeder의 논문을 읽었다. 200 Hz에 HPF를 걸어서 소리를 편집했다니, 아마도 '인류 소음 anthrophonic noise'이 이 영역에 있나 보지. 오. 이 단어 마음에 든다. '인류 소음'. Humberto Maturana의 책을 미리보기로 조금 읽고,

집 마당에서 토양 마이크 실험. 로즈마리 화단에서는 거의 소리가 나지 않는데, 초피나무가 있는 화단에서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려온다. 전기나 기타 인간 소음은 분명 아닌, 반복적이고 초현실적인 소리가 땅에서 들려온다!

geosfera - litosfera (pedosfera / criosfera) / atmosfera / hidrosfera 그리고 biosfera

Chiro Bernades 노래 듣다.

7/11

비 조금. 조금 우울한 날.

믹서 설치. 케이블만 16 개를 추가로 주문.

진귤나무와 작업했던 첫 곡을 microcosm으로 실험해보다. (algorithm: MOSAIC 4, GLIDE 3) tape로도 소리 실험을 해보았지만 맘에 안 든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잠들다.

7/12

맑은 날. 피 검사를 하고 오다. 요즘 병원에서 1 시간 대기하는 건 기본이구나.

tape + microcosm + blooper + 1604 + live로 실험.

7/13

오전. 조금의 운동. 피검사 결과 모두 좋다는 연락 받다. 점심 시간 선휴씨 가족을 만나 점심을 먹었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

1604 -> 오디오 인터페이스 -> 컴퓨터 세팅하다. 5m TRS 케이블만 무려 16 개다.

UHER 4000로 녹음해둔 음악 소리가 너무 좋다. 분명 mono인데 어떻게 이런 입체감이 생기는 걸까. 이 깊이감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Chico Bernades의 첫 앨범 듣다. 혹시나 해서 찾아보니 Tim Bernades의 동생이자 Maurício Pereira의 아들이다.

7/14

신기한 꿈을 꾸다.

아침, OTO BAM 다시 세팅. 믹서 세팅. 저녁엔 스위스 시절 동료 아들+친구에게 저녁을 사주고 카카오 택시를 잡아서 보내주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태양'을 matahari라고 부른단다. '낮 hari 의 눈 mata' 인 셈인데, 아... 얼마나 아름다운지.

J. Pizzaro와 P. Ferrari의 <The Complete Works of Alberto Caeiro> 읽기 시작.

페소아의 페르소나, 알베르투 카에이루의 말이 원고에 이렇게 적혀있었다고 한다. "산문만 고칠 수 있다. 운문은 안 된다. 난 내가 쓴 글 - 시를 고쳐본 적이 없다." 하지만 정작 페소아가 시를 고친 흔적은 공책에 무수히 남아있다는 것.

페소아는 카에이루인가.

카에이루는 진짜인가. 가짜인가.

아름다운 가짜를 말하는 거짓말이야말로 진정한 예술의 목표다.

- Oscar Wilde

7/15

엄마 심장 진료. 다행히 심각한 문제는 아닌데, 부정맥이 있다는 추정을 하신다. 엄마는 추적 장치를 부착하고 집으로 가셨다.

2021년에 만든 데모를 들었다. 한결같이 놀랍다. 예전에 발견하지 못했던 놀라운 면도 있고 그때 이미 알았던 놀라운 면도 있지만, 대체 2021년에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7/16

아침부터 몸이 무겁다. 과수원에서 일을 하고 3시 쯤 돌아왔는데, 이젠 조금만 덩굴 걷기를 해도 힘이 든다. 하늘소 한 마리를 손으로 잡았다. (그런데, 정말 잡힌 건지는 알 수 없다.) 트랩의 유인제 봉지가 빠져나와 원래 위치로 되돌려두고, 트랩에 잡힌 살아있는 벌레를 내보내주었다. 계속 효과가 없으면 트랩 위치를 바꿔봐야할 듯하다.

2021년에 쓴 노래/가사/악보 종이를 다 꺼내 한 곡씩 재현해본다. Song#1이라 이름 붙은 이 곡은 이미 가사가 다 있지만, 다른 방향으로 가사를 틀어볼까.

3년이란 시간이 준 거리감은 곧 시간의 선물이다. 시간이 지나도 퇴색하지 않았다는 건 - 앞으로도 퇴색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건 - 곡에 힘이 있다는 뜻일 거라 믿는다. 완전히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다시 이 노래를 다뤄보자.

지구->죽음->기억->광기->파멸->전복

그리하여 나는 늘 신을 믿는다

그리고 나의 삶은 온전한 기도, 혹은 미사 혹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성찬식이다

하지만 만일 신이 나무요, 꽃이요

산이고, 달이고, 태양이라면

무엇때문에 그를 신이라 불러야 하는가?

나는 그를 꽃이라고, 나무라고, 산이라고, 태양이며 달이라 부른다

왜냐하면, 내가 그를 볼 수 있도록, 그가 만일

해와 달, 꽃과 나무와 산을 만든 이라면

그가 만일 나무와 산과

달과 태양과 꽃으로 그를 느낄 수 있도록 나타난 거라면,

그는 자신을 나무로, 산으로, 꽃과 달과 태양으로 받아들이기를

원했을 것이니

(...)

눈을 뜨고 바라보듯

그를 달과 태양과 꽃과 나무와 산이라 부르고

그를 생각하지 않고도 사랑하며

그를 보고, 들음으로써 그를 생각하고

나는 언제나 그와 함께 걷는다

- Alberto Caeiro (heterônimo de Fernando Pessoa) <O Guardador de Rabanhos, #5>

7/17

기타를 들고 음악실에서 곡 작업. 가사를 다시 마주하게 된 게 얼마만의 일일까. 오후엔 온 식구들이 모두 장을 보고 오다. 엄마 건강검진 결과를 상담하고, 몹시 피곤했던 하루 (이유도 모르게). 밤 9시 조금 넘어 보현이 깼고, 나는 마루에 나와 쪽잠을 잤다. Song#1 작업.

7/18

늦잠. Song#1 리듬 작업. 쉽지 않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

과수원에 가서 트랩을 살폈다. 가엾은 풍뎅이 한 마리가 끈끈이에 붙어 죽어있다. 아기 뱀을 데크에서 만났다. 나는 이제 뱀이 무섭지도 징그럽지도 않다. 보현의 찡찡거림은 갈수록 심해지고,

Karen과 인도네시아어 수업. 말레이어와 인도네시아어는 거의 비슷하지만 조금 다르다는 말. 자바섬의 서쪽에 사는 사람들 - Sundanese와, 동쪽에 사는 사람들 - Javanese의 품성 차이, 언어 차이를 얘기해주었다. (동쪽에서는 e 발음을 좀 더 '에'에 가깝게 하고 서쪽 사람들은 '으'에 가깝게 한다, 등등.) 나는 왜 이런 게 이렇게 재미있을까, 웃으면서 말하니 "nerd니까"란다. 그렇지. language nerd지, 난.

수업을 마치고 너무 허기져서 정신없이 먹고 잤다.

7/19

보현. 밤 11시에 깨서 3:30까지 선잠을 자다 일어남.

endônimo와 exônimo. 이를테면 magyar와 hungaro 같은 것. 셔틀버스를 브라질에서는 'ônibus espacial'이라 부르지만 포르투갈에선 'vaivém espacial'이라 부른다는 걸 알았다. 세상에. vai가고 vem오는 버스란 뜻이라니. 이런 것들을 배우고 일기장에 좋아라 적어두는 나는, 정말 nerd다. 맞다.

누나, 엄마와 시내에서 만나 피자와 맥주를 먹고 엄마를 모시고 집으로 왔다.

7/20

엄마와 점심 외식을 하고, 걷고, 과수원에 다녀오다. 엄마가 대하찜을 해주었고, 저녁 산책을 하고 돌아왔다.

트랩에 하늘소가 잡혔다.

7/21

엄마와 오전에 걷기 운동. 오후에는 아내와 엄마가 오이소박이를 담갔다. 저녁에 엄마를 모시고 가서 고기를 구워먹었다.

6년만에 나온 Toe의 앨범.

7/22

김민기 선생님이 소천하신 날.

십여년 전 학전에서 장기 공연을 할 때, 아무 말 없이 리허설을 보시던 모습. 유재하 음악 경연대회 피로연 자리에서 입상자들에게 한 사람 한 사람 술을 따라주시던 모습. 김광석 형의 기일에 뵈었던 모습.

나일론 기타로 노래를 만들고 부른, 아마도 우리 나라의 첫 싱어송라이터. 지금은 음반으로도, 음원으로도 들을 수 없는, TV에서 처음 듣고 반해버렸던, 제목조차 희미해져버린 <지하철 1호선>의 노래.

<봉우리>를 듣고 울었던 기억. 그 전에도 그 후에도 노래를 듣고 그렇게 울었던 적은 없다.

마음 속으로 언제나 나는 김민기의 뒤를 따르는 이라 생각하며 노래를 해왔다.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이고.

엄마가 부산으로 가시다. 보현이 일광욕을 하가 화단에 남은 비료를 먹은 게 아닌지 전전긍긍한 날. 보현은 말이 없고, 다행이 별 일은 없었던 것 같다.

Song#1 Tympo로 작업. 일렉기타를 잡다.

7/23

아침 일찍 밭에 가서 아침을 먹고, 덩굴 정리. 약줄 정리. EM-B 발효 용 당밀 한 통과 애미 10 L 한 통 사오다. 동환형과 미선이, 루시드폴 1집, 버스 정류장 OST 판권 관련 길게 통화. 혼란스럽다.

Song#1. 가사의 큰 고비를 넘겼다. 결국 한 발이라도 나아가려면 과감해져야 한다. 입에 붙는 말만 쓰면, 못 나간다. 입에 잘 붙지 않지만 임팩트가 있고도 '적확한', 그러면서 곡의 무드에 맞는, 음성적으로 어울리는, 아니면 의도적인 '이질성'이 심상을 일으킬 가사를 쓰고 부르다 보면, 음악적 요소와 언어적 요소가 잘 붙을 확률이 높다.

MQA 관련 글을 찾아보다 '고음질'이란 단어는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한 번 더 느낀다.

audiophile들이여. '시스템'을 듣지 말고 '음악'을 들어라. 제발.

인도네시아어 스크립트 공부. Daniel과 수업.

7/24

친구는 생의 동반자가 될 수도 있지만, 그저 한 시절의 '필러'인지도 모른다.

'친구'만큼 가슴 벅찬 단어도, 신기루처럼 허망한 단어도 없는 것.

오전, Song#1 작업. 가사와 송폼이 거의 완성되었다. 천천히 이렇게 하다보면 2년은 더 걸릴지도 모르겠는데, 이번 노래 앨범은 참 오래 걸리겠구나.

드럼 사운드를, 패턴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rock으로 혹은 acoustic trio로?

Tim Bernades의 밴드, O Terno 듣다.

미생물배양실에서 유산균, 고초균, 광합성세균을 각각 10 리터씩 받아 관주. 대서 즈음인 지금, 낮 1시 즈음 몇 겹의 작업복을 입고 밭일을 하는 건 미친 짓이구나, 새삼 느낀 하루. 나는 기진맥진한 채 겨우 일을 마무리했다. 왜 직접 해보지 않으면 느끼지를 못하는 걸까, 나는.

관주 관을 빨리 수리해야 살 것 같다. 이 땡볕 더위에.

저녁. 리듬패턴 만들기. 글세... 만들기라기 보다 '새기기' 혹은 '심기' 혹은 '직조하기'에 가깝지 않을까.

'노래 가사는 시인가?'

7/25

Song#1 리듬패턴 만들기. 일렉기타로 가이드를 하고, 그 위에 패턴을 만들었다. 베리에이션이 가능하게, 어떻게 더 유기적으로 만들 수 있을까.

오전에 밭에 가서 당밀 통과 애미 뚜껑을 열어두고 왔다. (아내가 EM-B 발효 일을 잘 시작할 수 있도록) 친환경 인증 심사팀을 만나서 실사를 받았다. Karen과 수업. 스크립트 외우기. 'Friends'로 포어 공부. 나름대로 신선한 방식이긴 한데 내가 Friends를 다 보게 되다니.

7/26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았다. 오랜만에 미디 작업을 해서일까.

침을 맞으며 페퍼톤스의 새 앨범을 듣는다. 너희는 또 한 단계 위로 성큼 올라섰구나. 두번 째 곡인가. 승규의 킥 드럼 소리가 쿵 하고 나오는데, 아니 킥 소리가 이렇게 '아름다울' 일인가. 공간을 다루는 법, 소리를 조밀하게 배치하고 그 어떤 가사든 간에 시작부터 끝까지 힘있게 서사를 이끌어 가는 능력하며, 재평이는 우리나라에서 유일무이한 프로듀서가 되었구나.

7/27

근력 운동. 얼마만인지.

리듬 작업. 어쩌면 다른 마이크로 스며들어간, 짬뽕이 된 위상의 소리들이 한데 얽혀 리얼 드럼 사운드의 생명력을 만들어 내는 건 아닐까.

7/28

아내의 생일. 집에서 요리를 하고 편지를 쓰고 함께 축하를 했다.

글을 쓴다는 건 한없이 나를 가다듬는 행위이기도 하지만, 다른 이의 사유에 기대 모두가 내 것인 듯 착각하게 만드는, 매우 위험한 행위이기도 하다.

<우주에서는 서두를 필요가 없다> 읽기 시작.

7/29

보현과 중산간으로 산책을 갔다. 집에 비해 기온이 5 도 가량 낮다. 차를 타고 산으로 향하며 차에서 아침을 먹고, 처음 가 보는 박물관 주변을 걷고 돌아오는데 멀리 바다에 뜬 풍력발전기가 보인다. 오전 9시의 산록도로. 하염없이 맑고 더운 여름 풍경과 공기.

<우주에서는 서두를 필요가 없다> 계속 읽기. solastalgia. symbiocene. biocomuen.

오두막에 가서 EM-B 발효 체크. 왠지 발효가 더딘듯도 싶고 온도가 올라가지 않는 듯도 싶은데도 액비는 익어가고, 하얀 곰팡이 꽃이 피고 있다. 돼지 꼬리 히터를 - 혹시나 해서 - 새 것으로 바꾸고, 트랩에 갖힌 벌레 몇 마리를 내보내주고, 정현과 동환 형에게 계약서 초안을 보냈고, Cabane의 앨범을 들었다.

7/30

아침 일찍 벼르고 벼르던 이비인후과 진료를 받으러 갔다가, 병원 원장님이 휴가 중임을 알고 허탕치다. 보현, 아내와 커피를 마시고 봄이든 병원에 가서 보현 약을 타오고, 광견병 주사를 맞히고, 진드기+사상충약을 타오고, 항문낭을 짜고, 선생님은 역시나 한 아름 간식을 주시고,

부지현 작가님과 약속을 잡고, 운동을 하고, 아이들과 모여 모자회의를 하고 돌아와 책을 다 읽고 인스타에 피드를 남기고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는다. 잃어버린 어둠과 침묵에 대한 역설을, 시가 아닌 시로 만들어낼 수는 없을까.

7/31

선잠을 잔 밤. 3시 45분에 보현이 깼다.

Love is never cold but we.

유독 이 가사가 귀에 들어온다.

Karen과 수업.

어둠에 대한 명상.

이비인후과에 가서 외이도염 진단을 받았다. 병원 티비에서는 계속 YTN 뉴스가 흘러나오고, 한 시간 가까이 대기하는 동안 쇼파에 앉아 귀를 닫고 페소아의 시를 읽었다. 어디선가 읽은 글귀가 자꾸만 귀에 맴돈다.

'우리는 이제 정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 우리는 이미 정상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