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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9-5/1

3/19

보슬비가 내리는 저녁.

3/20

Song#9을 기록해 두었다.

3/21

바람이 거세고 추운 날, 과수원 일을 하다.

과수원 일도 이제 주 당 5일 이상은 하지 않으려 한다.

3/22

멀티 트랙 아날로그 녹음을 할 수 있는 녹음실을 알아보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더 이상 아날로그 녹음을 할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걸 알았다.

페터 볼레벤 <자연 수업>을 읽기 시작하다.

Song#10 기록하다.

인규씨에게서 저녁 늦게 전화가 왔다. 녹음실 부킹이 잘못되어 난리가 났다는 것이다. 급한대로 다른 녹음실을 알아보기로 했지만 장소가 마땅치 않다.

3/23

아무래도 녹음 일정을 미루는 게 좋겠다는 뜻을 전했다.

맑고 푸른 날. 마당일을 하고, 전정을 하다.

Song#11을 기록해 두었다.

3/24

(...) 미국 지질학 조사(USGS)에 의하면, 5 년 간 3700 개 이상의 샘플을 채취한 결과 미국 전역의 도시 및 농촌 지역의 442 곳의 개울에서 108 종의 살충제 성분과 116 종의 살충제 변이 물질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95% 이상의 개울에서는 적어도 한 종 이상의 살충제가 검출되었고 90%의 개울에서 적어도 한 종 이상의 살충제 변이 물질이 검출되었다는 것이다.

땅이 더 좁고, 농지며 골프장이 밀집되어 있는 제주의 상황은 어떨까.

우리는 어디서 자라고 키워지는, 도대체 그 무엇을 먹고 사는 걸까.

봄까치꽃이 환하다.

3/25

당일 치기로 서울행. 늦은 밤, 제주 공항의 택시줄이 그렇게 길 수가 없다.

3/26

뭔가 마음이 잡히지 않는다.

마당의 풀을 들춰본다. 어디에나 풍뎅이들이 있다. 살아있는 풍뎅이가 아니라, 이미 죽어 몸이 부서져 가는 풍뎅이, 혹은 느릿느릿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풍뎅이들이다. 고향으로 가고 싶다는 듯, 땅으로 땅으로 몸을 향하며 풀의 품에서 죽어가는 모습이, 나는 슬프다기보다 오히려 평안하고 아늑해 보였다.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 정원은 하루 동안 60-80 센티미터가 솟아오르거나 내려앉기를 반복한다. (...)

달이 우리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아직 이견이 분분하지만 정말로 정원의 흙이 매일같이 솟아오르고 가라앉기를 반복하고 있다면 우리 몸이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 페터 볼레벤 <자연 수업> 중

우린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늘로 땅으로 밀고 당겨지며 사는 거구나.

부엌 외벽을 실리콘으로 마감하고, 안 방의 걸레받이도 실리콘으로 붙였다.

숲은 콩제비꽃, 별꽃 천지. 호랑지빠귀 소리가 들렸다.

고장난 소니 릴데크를 서울로 보냈다.

3/27


Thank you to everybody who quietly makes life more livable

- Taylor deupree

Taylor Deupree의 새 앨범이 Dauw에서 나왔다.

https://www.nature.com/articles/d41586-021-00682-z

멸종 위기에 처한 새들은 점점 노래하는 법을 잃어버리고 있단다.

제비를 처음으로 보았다. 늘 4월 첫 날 만났던 제비들을 올해는 조금 이르게 만난 것. 어느새 갈매기도 오리들도 앞 바다를 떠나고, 아침 산책길이 허전하다.

돌비에서 나온 앱에 그간 만든 곡들을 하나씩 정리하며 옮겨담는다.

잠시 전정을 하다 비가 내려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 중산간에서 카투리를 칠 뻔 했다.

3/28

아침 5시 40분. 바다직박구리가 노래를 부른다. 어김없다.

봄눈이 내린 운동장 길을 보현과 걸었다.

올해 첫 방제 #1-1: 보르도칼 2 봉 in 1000 L

과수원에서 처음 듣는 새소리를 만났다.

분무기가 속을 썩인다. 흡입기를 빼서 공기를 넣고 약통에 담그고 몇 번을 반복하니 겨우 다시 압이 걸린다.

지영아버지에게서 내일 창고 공사를 하러 오시겠다는 문자가 왔다.

7년만에 처음으로 배달 음식을 시켰다.

마당 청소를 했다. 소나무 아래 쌓인 검은 흙은 7 년 간 쌓인 솔잎과 뒤섞여 지렁이와 도마뱀의 집이 되었다. 모두 로즈마리가 사는 화단으로 옮겨주었다.

3/29

미세먼지가 최악인 날. 처음으로 미세먼지 경보가 발령되었다. 내일은 트럭으로만 움직일 수 있다.

먼저 4 곡을 돌비 앱으로 옮겨 두었다. 당분간 이 곡들에만 매달려볼까 싶다.

Taylor Deupree <Mur> 바이닐을 주문했다. 나는 뮤지션이지만, 다른 뮤지션들의 서포터가 되고 싶다.

창고 공사. 바닥을 모두 부숴서 깔았다. 이 위에 시멘트 몰탈을 부을 것이다.

귤 나무에도 레몬 나무에도 봄순이 자란다. 기도를 하고, 전정을 한다.

아내가 배나무가 있는 곳으로 내 손을 이끈다. 세상에. 배꽃 천지다. 죽어가던 나무들이 틔운 하얀 꽃들.

나무는 이렇게 시를 쓰는 구나.

ATR Pro master, MDS-36, tweaker, tape guide sleeves가 왔다. MDS-36은 생각보다 훨씬 얇다. 핀치 롤러에서 여전히 소리가 난다.

3/30

여운이 없다면 심심할 뿐, 그윽할 수 없다.

'낮이 길어진 것'과 '밤이 짧아진 것'은 같은 듯 다른 말이다.

새 앨범을 서두르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싶다.

tape splicing을 처음 해 본다.

테입 테스트. MDS-36의 결과가 매우 좋다.

7 종 테입의 스펙을 정리했다. 조금 알 것 같다.

3/31

방제 #1-2: 보르도칼 2 봉 in 1000 L

4/1

비오는 날. 새 차 등록을 하고 차를 맡겨둔 채 택시를 타고 돌아왔다. 우산을 쓴 채 바람에 휘청이며 꽤 걸었다. 걷고 싶었다.

4/2

바람이 거센 날.

전정. 아직 달려있는 귤이 있다. 썩지 않고 곶감처럼 말라있다. 잘 자란 열매구나.

4/3

어딘가 초점이 흐려진 듯한 나날.

비가 내린다.

특별법이 제정된 첫 4월 3일. 평화공원에 뜬 무지개.

4/4

비오는 부활절이다.

어떤 총탄도 정의의 영혼을 뚫진 못하니,

어떤 칼날도 정의의 강물을 베진 못하니

tape loop.

RTM LPR90 테잎 도착. 테스트 결과는 이렇다. ATR MDS-36>SM911 (RMGi) >ATR Pro master>LPR90=SM900

결국 MDS-36 밖에 쓸 수 있는 테잎이 없다는 것. 여전히 pinch roller에서 소리가 난다. Athan에 우레탄 pinch roller를 문의했다.

4/5

번역가는 스피커와 같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들로 숲으로 바다로 과수원으로, 종일 촬영을 했다. 몇 년 만에 서쪽 바다에서 너무도 많은 돌고래를 만났다.

4/6

To compose is also to construct an instrument.

메모를 해두긴 했는데, 어디서 본 말인 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 Cathy van Eck은 공명과 저항의 컨셉을 이용해서 뮤지션과 악기의 관계를 특징짓는데, 이 두 몸뚱아리 - 악기의 몸 그리고 뮤지션의 몸 - 는 긴 시간에 걸쳐 각자가 가진 음악적 역량을 발전시키며 교류하는 것이고, 그런 소통을 우리는 비로소 '연습'이라 부른다.

from Tomoko Sauvage <A bowl of ocean> (from <Spectres II "resonance">)



녹음 준비 끝.

4/7

아. 최악의 녹음을 경험한 날.

4/8

제주행.

좋은 경험이었다. 많이 배우고 느꼈다.

4/9

믹스를 하러 세션 화일을 열었다.

드럼과 베이스를 쓰기가 어렵다.

4/10

믹스. 멜로다인으로 horn 피치를 바꿔서 화성을 만들고,

4/11

믹싱은 편곡의 일부다.

퍼커션을 뺀 리듬 파트를 가상악기로 대체하다.

4/12

릴테입으로 프린트. 다시 A/D 컨버전.

4/13

서울로 떠나기 전, 아내가 들려준 제인 구달의 이야기가 가슴에 남았다. 답답하고 어두울수록 멀리 보지 말 것. 내 앞에 가까이 있는 것부터 찬찬히 보는 것.

보현을 데리고 걸었다. 중산간 어느 성당의 예수상 앞에서 기도를 했다.

과거가 미래를 만드는 게 아니라, 현재가 미래를 만든다는 건, 당연한 얘기지만 종종 잊게 된다.

I.V. I - 서밍 한 버전으로 최종 프린트. 다시 들어보니. 뭔가 먹먹하다. 특히 피아노 소리.

I.V. II - 에이블턴 라이브에서 그냥 익스포트한 버전으로 프린트

I.V. III - 서밍 했으나 그냥 4월 10일 버전으로 믹스 프린트.

그렇게, 12k에 최종 믹스를 보내었다. 마스터링이 시작되면 알려주겠다고 Taylor가 답장을 주었다.

올해 첫 물총새를 보았다. 벌써 여름이 왔구나.

4/14

아버님 수술 날. 오늘도 기도를 하고 왔다.

4/15

믹스를 다시 보낼테니 기다려달라고, Taylor에게 메일을 보냈다.

모두 다시 하기로 마음을 먹고, 오두막에 판을 제대로 깔았다.

4/16 

온 종일 믹스.

아내가 돌아왔다.

4/17

춥다.

아웃보드를 연결. 영혼이 삭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믹스 끝. 프린트.

4/18

초피 순이 크리스마스 트리 같다.

제비가 드디어 집에 들어올 준비를 하고 있다.

숲에는 온갖 제비꽃과, 줄딸기 꽃이 피었다.

정원 일을 하며 혼자 되뇌었다. 서두르지 말고 쉬지 말자.

4/19

아침 바다에 핀 햇살꽃.

전정. 귤 순도 레몬 순도 한움큼 자랐구나.

친환경 직불금을 신청하러 갔으나 아내 본인이 와야 한다는 말에 허탕을 치고 돌아왔다. 

4/20

집 앞 바다에 긴부리 도요새가 왔다.

전정. 과수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친환경 직불금을 신청했다.

12k에 믹스를 보냈다.

4/21

약속 시간 보다 훨씬 일찍 레미콘이 왔다. 이미 레미콘에서 연결된 호스가 창고 바닥에 시멘트를 붓고 있었다.

전정.

제비가 현관에서 자기 시작했다.

Gretche Parlato의 바이닐이 도착했다. 소리도 빛깔도 예쁜 살굿빛 바이닐이다. 속지를 읽던 아내가 'like-minded'란 단어를 일러준다.

4/22

바람이 많이 부는 날. 성택씨와 학생들을 만나 점심을 먹었다.

전정하는 나무에서 깍지 벌레를 먹는 무당 벌레를 보았다.

시멘트가 양생되면서 내뿜는 열이 엄청나다. 아침부터 오두막 온도가 20 도를 넘었다.

vaximm사의 일과 관련해서 컨퍼런스 콜을 했다. 나는 여전히 알 듯 말 듯하다.

제비 입주 축하 파티를 했다.

4/23

MMCA 공연도 아닌 전시도 아닌 셋리스트 보내다.

4/24

SA4000 하나가 고장난 것을 뒤늦게 알았다.

적벽돌을 사와서 부엌에 장을 만들었다.

4/25

모두가 마스크를 쓴 현장. 카메라 앞에서 혼자 인사를 하고 곡 소개를 하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아직도 너무 어색하다.

4/26

MMCA 공연. 대담. 촬영

4/27

간 밤 내내 잠을 설쳤다. 눈을 뜨자 말자 메일을 여니 마스터가 와 있다. Taylor가 자세한 설명과 함께 첫 라운드 마스터를 보내주었다. 재빨리 음압부터 본다. 역시나, 낮다.

4/28

두 가지를 수정해줄 것을 요구했다. I.V. I. 의 top-end를 좀 더 열어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음압을 그래도 최소한 -14 LUFS에는 맞춰두면 좋겠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우리나라 스트리밍 서비스의 현실을 고백해야 했다. 다른 global 서비스와 달리, 우리나라의 스트리밍 서비스에는 음압에 대한 규제가 없다고. '미친 듯' 음압을 높인 음원들이 너무나 많은데, 그런 현실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음압이고 뭐고, 이렇게 사랑스런 레몬꽃들이 왔다.

과수원 일을 마치고, 트랙을 달렸다.

오래전 만든, 이름도 없는 곡을 녹음한 뒤, 속도를 떨어뜨려 보았다.

4/29

두번 째 라운드 마스터가 왔다. 한 곡을 빼고 여전히 음압은 -14 아래다. 고민을 하다, 그냥 컨펌하기로 했다.

반 년 넘게 붙들고 있던 이 곡들을 이제 정말 보낼 시간이 왔구나.

Terry에게 guide roller를 보내면서 설명을 덧붙였다. 12-14 mm를 깎고, 그 위에 고무를 덧대어 지름 30 mm를 맞춰달라고.

카페 그곶이 '당분간' 문을 닫는다기에 커피 원두를 주문하고 돌아왔다.

우리 셋이 처음 만난 날. 양고기와 와인을 사와서 스튜를 만들었다.

4/30

전정. 과수원에서 들려오던 멧새들 소리. 그리고 달리기.

<Woods notes wild>를 읽기 시작하다.

간 밤, 갑자기 천둥 번개가 치고 비가 쏟아졌다. 잠이 깬 보현이 안절부절 못하고, 나도 덩달아 깼다. 알고는 있었지만, 역시나 나는 보현에게 아무 도움도 위안도 되지 못했다. 무작정 문을 긁으며 밖으로 도망치려는 보현을 데리고 현관 밖을 나갔다 들어왔다 몇 번을 들락거렸다. 진정될만하면 번개가 치고 또 진정될만하면 천둥이 쳤다. 천둥이 칠 때 아이들을 진정시켜 준다는 'thunder shirts'를 입혀보아도 소용없었다.

째깍째깍 '불안의 밤'이 흘러가고, 나는 손에 잡히는대로 시디를 틀었다. Tobias Wilden의 피아노 앨범이 우연히 손에 잡혔다.

오늘 밤 천둥 소리는 유난히 잔향이 더 길다. 이런게 장중한 소리는 들어본 기억이 없는데. 그러다 잠시 소리가 잦아들면 보현은 스피커 앞에 가서 몸을 뉘었다. 내가 가까이 가면 보현은 다른 곳으로 피해갔다. 보현은 나보다 음악에 더 의지하고 있었다.

잠 못들고 헥헥대는 보현을 달래다, 곽재구님의 시집을 읽었다가 마종기 선생님의 산문집을 들춰보다가, 아이패드를 보다가 하는 사이 꽤 긴 음반 하나가 훌쩍 지나가버렸다. 그리고 아내도 잠이 깨서 우린 두어 시간 넘게 언제 어떻게 들릴 지 모를 하늘의 소리와 빛과 씨름을 하다, 감사하게도 어느덧 세상이 고요해졌고 우리도 겨우 잠이 들었다.

5/1

아침을 먹고, 목욕을 하고, 모두 낮잠을 잤다.

목욕을 하며 <Wood notes wild>를 펼쳤다. 지금으로 부터 정확하게 130 년 전, 새를 너무나 사랑한, 그래서 새들의 노래를 하나 하나 악보로 남겨놓은 뮤지션, Simeon Pease Cheney의 유일한 책.

(...)

현 시대의 어떤 영국 작가는 말했다. 이를테면 "자연 속에는 음악도 멜로디도 하모니도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단순한 소리가 길이와 높이를 달리하며 계속 들리는 것, 이것이 멜로디가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어떻게 새들의 노래가 멜로디가 아니란 말이며 그리고 어떻게 이것이 음악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

"자연에는 음악이 없다!"고 하지만, 쥐도 노래를 하고 두꺼비도 노래를 한다. 개구리는 "물 위의 노래"를 부른다. 우리 발 아래 있는 이 여름 풀 숲에도 수많은 작은 음악가들이 살고 있는 것이다.

(...)

from Simeon Pease Cheney <Wood notes wild>

문 밖에서 두 마리 제비 커플이 서로 노래를 불러준다.

문득, '음악의 아버지는 바흐'라는 말이 생각나 피식 웃었다. 게다가 '음악의 어머니는 헨델'이라고 했던가.

새들의 음악. 그 음악의 아버지는 새들이다.

바람의 음악. 그 음악의 아버지는 바람이다.

내 음악의 아버지는,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