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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씨와 시내씨의 초대로 난생 처음 눈썰매라는 걸 타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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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밟는 소리만 들리던, 아무도 없는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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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워있는데, 방 안의 공기 소리가 들려왔다.
일본의 앰비언트 뮤지션 하코부네씨가 자신의 레코드 점에 내 앨범을 들이고 싶다는 연락을 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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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순네 두 박스, 수정씨 하나 오킬로, 심바네 하나, 도나토스 2.5 개.
새들아. 남은 귤은 이제 전부 니들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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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산책길에 저어새를 보았다.
농협에서 쌀을 타서 오는 길. 길 한 가운데에 어린 새 한 마리가 엉거주춤 서 있었다. 다쳤구나, 싶어 얼른 차에서 내렸다. 분명 도망갈 거라 예상은 했지만, 서투르기 짝이 없는 걸음으로 새는 필사적으로 달아났다. 왕복 4 차선 도로. 이런 곳에서 다친 새를 발견하면 여간 위험한 게 아니다. 나도 위험하고 새도 위험하다.
다행히 차가 별로 없다. 작년 새해 첫 날. 뿔논병아리 새끼 한 마리를 구조한 적이 있다. 이 근처에서 도로에서 주저앉아 있었지. 그래도 그 곳은 훨씬 한적한 곳이었는데.
새가 인도 부근까지 달아났을 때, 거리를 조금 좁힐 수 있었다. 분명 다리 아니면 날개를 다쳤을 텐데. 나는 잽싸게 입고 있던 롱패딩을 벗어 던졌다. 몇 번의 실패 끝에 겨우 새를 덮는 데 성공했다. 일단 앞이 보이지 않으면 새를 움직이지 않는다.
뿔논병아리보다 작다. 어떤 새일까. 모르겠다. 발 모양이 익숙하다. '변족' 같다.
조심조심 패딩 위를 더듬대며 새가 다치지 않도록 감싸 안았다. 그리고 조수석에 내려두었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집으로 갈테니 구조센터에 연락을 해달라 부탁을 했다. 그 사이 아기가 롱패딩에서 기어 나와 발 버둥을 친다. 겨우겨우 달래고 달래 발 아래로 보냈다.
아기새라 해도 번뜩이는 붉은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나는 새에게 알아듣지도 못 할 말을 계속 중얼대었다. 최대한 침착한 목소리로. 최대한 차분하게. 재우 듯이.
나는 Ian Hawgood의 음악을 틀어주었다. 새소리로 가득 찬 곡인데, 음악을 들어서였는 지 새가 겨우 진정을 하는 것 같았다.
아기 검은목논병아리였다.
아내는 집 앞까지 수건과 상자를 들고 나와있었다. 그 상자로는 안 될 것 같아. 덩치가 좀 커. 나는 아내에게서 수건을 잔뜩 건네 받아 아기새의 등을 조심조심 덮어주었다. 확실히 진정이 된 건 지, 가만히 있다. 나는 조심스레 차에서 내려 구조원을 기다렸다.
걱정이 되어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마당에 서 있는데, 어디서 처음 듣는 소리가 들려온다. 끼익끼익. 담벼락에 줄기가 눌린 돈나무가 흔들리며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 집에 7 년 동안 살면서 왜 여지껏 한 번도 이 소리를 못 들었을까.
바람이 거세게 불어왔다. 나는 나무 곁에 바짝 붙어 소리를 들어주었다. 그리고 소리를 담았다. 담 건너편로 다친 아기새의 곁에서 끼익끼익 나무가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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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 소리 긷기.
눈발이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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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나가기가 힘들다. 근데 좋다.
트럭의 적재함을 커다란 마이크 삼아서, 눈이 내리는 소리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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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음악을 들으면, 대체 무슨 말이 필요한가 싶다.
눈이 쌓인 정원 풍경이 낯설다.
오늘은 직접 눈이 내리는 소리를 담았다. 소리가 다르다.
매일매일 붙들어온 소리를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몹시 바쁘다.
<김환기와 김향안> 나레이션을 녹음해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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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소리를 보여주고 싶다.
세상은 우리에게 들을 거리를 끊임없이 준다는 걸, 알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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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os one에 퍼블리쉬된 Monica Gagliano의 논문을 읽다. 식물들은 서로를 보고, 맡고,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눈도 없는데 뭘 어떻게 보냐고? 천만에. 식물들은 빛을 먹고 산다. 온 몸에 수많은 센서를 주렁주렁 달고 사는 셈이니 모르긴 몰라도 우리보다 몇 천 배는 더 환하게 세상을 볼 수 있을 거다. 천수천안 관세음보살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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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내리는 개천 가에서 개똥지빠귀를 만났다.
올해 발효 액비 사업 안내 문자를 받았다. 도움이 많이 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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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는 자줏빛, 부리는 청회색. 이마에 하얀 줄. 홍머리 오리 세 쌍이 집 앞에 왔다.
과수원에 눈이 쌓였다.
동남쪽 하늘에 뜬 시리우스 별이 너무도 밝고 푸르다.
수녀님과 집에 쌀을 담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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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오리 한 쌍이 집 앞 바다에 왔다.
눈 녹는 소리가 똑.똑.똑. 들리고 하트 모양 발자국이 여기저기 포물선을 그린 숲속 눈밭의 끝자락에 너무도 예쁘고 슬픈, 핏방울이 떨어져 있었다. 발자국이 이어진 삼나무 사이로 축축히 젖은 새끼 노루 한 마리가 보였다. 모로 누워 잠듯 듯 죽어있다. 우리는 끝까지 걷지 못하고 그만 되돌아 왔다.
마흔 살도 더 된 듯한 테입 레코더 청소, 그리고 디마그네타이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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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어새를 또 만났다. 반가워, 인사를 하는데 멀리 서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차를 아랫쪽에 멀치감찌 두고, 눈 밭을 걸어걸어 숲으로 올라갔다.
하루 사이에 그 많던 눈이 다 녹았구나. 걸을 때 마다 사각거리는, 얼음 소리.
바닷가로 갔다. 보말들의 소리를 담으려다 보말을 밟게 되는 게 싫어서 되돌아왔다. 어느 틈엔가, 옆 집 흰둥이가 나타나 환하게 웃으며 꼬리를 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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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입 작업.
논병아리 세 마리가 멀리 지나간다.
상한 영혼 말하길:
폴님 글을 읽으면 항상 부지런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21년 1월 16일 — 10:53 오후
유목민 말하길:
식물들도 서로를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다니요! 놀랍습니다. 세상 만물 모든 생명들은 어쩌면 이리도 아름답고 소중한지요. 집에서 키우는 초록이들에게 살며시 말을 걸어봐야겠어요. 그리고 검은목논병아리처럼 나뭇잎 소리가 나는 음악도 들려주고 싶네요. 생애 첫 눈썰매를 타신 사진 속에서 즐거움이 묻어납니다. 세상의 작고 소중한 것들과 올해도 고웁게 나시길 바랍니다.
2021년 1월 16일 — 5:22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