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1
창고 짓기의 첫삽을 뜨다. 더 없이 햇살 좋은 맑은 날. 동료 목수들과 함께 고사를 지내고 음식을 나눠먹었다. 한 달 남짓 시달릴 나무들에게도 EM을 뿌려주었다.
누구도 다치지 말고 상처 받지 말고, 무탈히 잘 끝나기를.
트럭 수리가 끝났다는 연락을 받았고, 동하와 긴 통화를 했다.
Cristina Branco의 새 앨범을 찾아들었다. 아무도 간 적 없는 곳으로 가고 있구나. 그녀도.
11/12
올해, 우리 밭의 첫 수확. 마냥 고맙다. 이토록 마냥 고마운 것이 내 삶에 있어준 것도, 고맙다.
벤치를 뚝딱뚝딱 만들고, 공사에 쓰일 공구류를 보관해 둘 임시 창고를 짓는다. 몇몇 목수들이 부지를 정하고, 땅을 고르는 사이, 차가 드나들 진입로 주변의 가지 정리를 했다.
운섭 형님과 오랜만에 통화를 하였다.
11/13
처음 툴벨트를 차고 목수로 데뷔한 날. 공구 하나하나의 이름과 사용법, 주의 사항을 배웠다. 사야할 것들, 필요한 것들을 꼼꼼히 적어두었다.
임시 창고 바닥을 짜고 벽체를 세웠다. 톱질을 하며, 나무를 '켜는 것'과 '자르는 것'의 차이를 새삼 알았다.
11/14
비. 건자재상에 다녀오다. 공업사에서 트럭을 찾아왔다. 첫 출하를 하였다.
11/15
무척 추운 날. 마른 나뭇가지를 모아 불을 피웠다. 포크레인 기사님과 곁불을 쬐며 얘기를 나누었다. 기사님은, 큰 사고로 마라토너의 꿈을 접었다는 얘기를 담담히 해주었다. 귤나무 사이에 한뼘 가량 돋아난 멀구슬 나무를 보며, 옛날 여기 사람들은 이 나무를 키워서 딸 시집갈 때 가구를 만들어 주곤 했다, 는 얘기도 해주었다.
조금 땅을 팠을 뿐인데 암반층이 나온다. 아직은 뱀이 겨울잠을 자기 전이라 다행이다. 하루종일 돌을 깨는 소리가 울리고, 이곳의 모든 생물들에게 무척 미안해졌다.
임시 창고가 완성되었다. 생태 화장실 벽체를 만들었다. 필요한 공구를 주문했다.
11/16
일이층 부지를 정밀하게 확정지었다. 나무를 자르지 않기 위해서는 일층 면적이 이층보다 적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층을 남쪽으로 향하게 하려면 일층과의 각이 비틀린다. 임시 창고 처마 아래 마감을 했다.
줄기초용 거푸집을 만들었다.
상수도관 전기관 통신관을 묻었다. 농업 용수를 끌어올 PE 파이프(내경 25 mm, 외경 32 mm)를 사왔다. 오랜만에 곡괭이질을 했다.
생태화장실을 완성했다. 화장실에서 쓸 톱밥을 제재소에서 사왔다.
11/17
하수도 위치를 정하고 100 mm, 75 mm PVC 관과 하수 맨홀을 묻었다. 수평 구배를 잡아서 하수도 관을 매립하고,
자, 기초 작업 시작. 기초는 지하 100 mm, 지상 400 mm로 하기로 했다. 거푸집 안에 자연석을 최대한 넣어서 콘크리트 양을 최대한 줄인다. 석분과 시멘트를 섞어 만든 콘크리트를 거푸집 안에 붓고 수평을 맞췄다. 비가 오기 전 날 콘크리트 작업을 하면 좋다는데, 내일 비 예보가 떠있다.
플라스틱 통에 톱밥을 채우고, 생태 화장실 사용을 개시하였다. 온통 나무 향기가 나고, 창 밖으로 산이 보인다.
11/18
비. 작업을 쉬는 사이, 생협에서 온 손님 한 분을 과수원에서 만났다.
저녁에는 기초 작업이 끝난 기념으로 목수들과 파티를 했다.
11/19
보슬비. 점심 무렵까지 거푸집을 떼어 내는 간단한 작업을 했다. 오랜만에 목욕을 했더니 날아갈 것 같다.
11/20
나무를 잘라 줄기초 위에 토대를 만들었다. 앵커 작업은 콘크리트가 조금 더 굳은 뒤에 하기로 했다.
11/21
비. 아르헨티나에서 주문한 음반들이 왔다. 오디오 인터페이스와 마이크가 왔다. 새 음악을 녹음할 공간과 장비가, 천천히 함께 오고 있다.
11/22
스케치북 녹화.
내가 없는 사이, 일층 바닥과 벽 골조까지 세웠다며 현장에서 사진을 보내왔다.
11/23
일층 벽 골조에 OSB 합판을 붙이고 타이벡 필름을 타카로 박았다. 조심조심 나무들을 용케 비켜가며 비계를 놓기가 만만치않은데, 일층보다 넓은 이층 바닥의 틀을 밑에서 짜서 올리는 수 밖에 없다.
11/24
너무나도 추운 날. 이층에서 고글을 쓰지 않으면 눈을 뜰 수가 없을 만큼 바람이 분다.
타이벡 테이프로 이음새를 마감하고, 임시 기둥을 설치해서 이층 바닥을 받쳐두었다. 이층 공사를 위한 비계를 설치하고, 바닥 장선을 깔고, 합판 작업을 했다.
11/25
농협에 가서 귤 운반 수레를 샀다. 어제보다 날이 풀렸다. 오전 내내 아내와 함께 스터드 24 개, 플레이트 14 개를 자르다. 짬짬히 귤 포장을 하고 창문 위치와 사이즈를 결정했다.
동희네 가족이 와서 귤을 따가는 사이, 한쪽 벽 골조를 세웠다.
11/26
비. 동희네 가족과 점심을 먹었다. 목욕을 했다.
11/27
이층 벽 골조를 완성했다. 튀어나온 이층 바닥을 받쳐줄 기둥 몰탈 작업을 하였다. 지붕 작업을 위해 이단으로 비계를 설치하였다.
은붕어 말하길:
2층 뼈대(?) 올라간 사진 멋져요~ 노을사진도:)
최근에 이사한 집에서 노을이 정말 멋지게 잘 보이는데 그것또한 행복인듯해요. 하늘을 더 많이 봐야겠단 생각 했어요. 지금은 또 많이 진행되었겠죠? 기대가 되네요. 연말이 되니 예전 폴님 공연 갔던 생각이 나서 아침부터 사무실에서 괜히 멍하니 있네요. 감기 조심하세요. 다음공연은 꼭 보고싶어요.
2016년 12월 16일 — 10:33 오전
나무 말하길:
귤나무들 가운데 나무로 지은 집.
참 이쁠 것 같아요. ^^
뚝딱뚝딱 집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니 신기하네요.
직접 설계하신 집을 손수 지으시는 목수 폴님도 잘 어울리시네요.^^
2016년 12월 9일 — 10:04 오후
눈의여왕 말하길:
폴님의 따뜻하고..부드럽고..느리게 흘러가는 일상이 좋네요다른 세상에 사는것 같이 보여요스케치북 녹화를 하셨군요꼭 챙겨 봐야겠어요^^바다 건너 먼곳에 살지만 항상 응원 합니다~~
2016년 12월 8일 — 9:33 오전
페퍼민트 말하길:
폴님 이름 앞에 목수라는 또 하나의 타이틀이 붙겠네요.차곡차곡 멋지게 지으신 작품 기다릴게요.서울에 오셔서 녹화하신지는 몇일 전에 알게 되었네요. 무대 참 아름다웠습니다.올려 주신 음악, 출하를 기다리는 귤들, 생태화장실, 제주의 하늘 눈으로 귀로 마음으로 담아갑니다.남은 한 해 잘 마무리 하세요.
2016년 12월 6일 — 6:40 오후
후박이 말하길:
음악과 사진, 글을 보고 있노라니어수선한 세상과 다른 세상 같네요^^보현이네 귤은 생협으로 가나봐요~
2016년 12월 6일 — 12:06 오전
닉네임 말하길:
조 목수님!작업실 2층이 올라가는것 보니 너무 아름다워요!데뷔작 기대가 큽니다.가장 기쁘고 인상깊은 말 새 음악을 만들 장비과 공간이 함께 오고 있다는말…이네요.물론 저에겐 지금 폴님의 노래만으로도 그저 그만이지만요.
2016년 12월 5일 — 9:07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