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2
JRF에게서 빠르게 답장이 왔다. 헤드블럭을 떼서 보내달라고 한다. 마지막이다, 이게.
동하가 시애틀 토산품을 보내주었다.
'별은 반짝임으로 빛나죠'를 녹음해서 아솔씨에게 보냈다.
왠일인지 열시까지 잠을 자지 않았다.
11/23
정신이 육체를 남용하는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아내가 왔다.
11/24
연습.
공연을 준비하며 예전 노래를 부르다보면, 오랜만에 옛친구를 만난 듯한 기분이 든다.
저녁 하늘이 아름다웠다.
11/25
성민이 <Dancing with water>엘피를 가지고 제주에 왔다. 참 애틋하다.
KBS 제주 방송 녹화. 오랜만에 10 년 전, 스케치북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제주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늦게 돌아와 자정이 넘어서야 잠들었다.
11/26
못 가진 걸 뒤집어 보니, 가진 것이 보였다.
진귤 나무들과 <Dancing with water>를 축하했다.
LP의 소리는 음원보다 더 좋을까.
어쩌면, yes. 예전에-혹은 예전 방식으로 녹음한 음반이라면.
아니, no. 디지털 도메인에서 녹음하고 믹싱하고 마스터링한 음악이라면, 엘피 소리가 프로듀서의 의도에서는 벗어날 확률이 훨씬 높다. 최대한 마스터에 가까운 소리가 나면, 성공이겠지만.
다르다, 정도로 해두자. 다르고, 재미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만지고 보고 들을 수 있는 거잖아.
11/27
미친 듯이 바람이 불었다.
회사에서 캐롤을 낸다고 하여 녹음을 해서 보냈다.
잠이 오질 않아 보현과 함께 계속 뒤척인 밤.
11/28
춥지만 실은 매우 정상적인 (혹은 심지어 더 추워야할) 날.
일찍 일어나서 chihei 씨 음악을 듣다가, 다시 잤다.
집 정리를 하다.
쇼핑을 했다.
다시 워밍업을 해야지, 다시 작업을 해야지. 또 병이 도진다. 쉬긴 얼마나 쉬었다고.
아내가 재교를 마친 날. 맛있는 걸 해주어야 겠다.
11/29
기온이 뚝 떨어졌다. 다시 달리기를 하기로 했다.
숲에서 소리를 담아왔다.
올해는 그 예쁜 푸른 실잠자리도 못보았었지. 산수국도 못 보았지.
오랜만이다.
살 것 같다.
숲을 빠져나와 집으로 가려는데, 트럭 유리창에 빗방울이 맺혀있다.
11/30
원래대로 일찍 일어났다. 많이 자는 게 많이 쉬는 건 아니야.
수평선이 울퉁불퉁했다.
다시 양진이 돋았다. 난치란 말은, 참 무섭다.
병원에서 두 시간을 대기했다.
내 안으로 들어오는 것들을 잘 관리할 것. 좋은 것이 들어오도록 할 것.
진료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데, 골목길 담장 너머로 감 나무가 보였다. 대여섯 개 정도 남았을까. 찌르레기와 동박새들이 기분좋게 감을 쪼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는 지, 친구들이 한 마리 한 마리 모이더니 다같이 감 맛을 보고 떠나갔다.
뛰었다. 살 것 같다.
12/1
오두막에 가서 창고 정리를 했다. 땔감들을 정리해두었다.
보현의 피검사 결과가 너무 좋아서 선생님과 모두 뛸듯이 기뻐한 날.
Monica Gagliano의 책이 왔다.
갑자기 녹음기가 고장 났다. 믹서를 A/S 센터에, 헤드블럭을 JRF에게 보냈다.
뛰었다. 살 것 같다.
크리스마스 트리를 꺼냈다.
좋은 것이란 무엇일까.
12/2
식량아닌 음식.
소리아닌 음악.
접촉아닌 손길.
장면아닌 풍경.
나를 기쁘게 해 주는 것. 내가 비로소 기쁜 것.
지금 얘기하고 생각하는 허상의 '나'가 아니라, 몸과 이어진 수많은 정신의 조각들을 기쁘게 해주는 것. 그게 좋은 것 아닐까.
공항에서 녹음기를 보내고, 뮤비 촬영을 하러 남양주 어딘가로 갔다.
촬영소로 가는 길. 황량한 도농 복합 도시의 풍경은 온통 딱딱한 것들만.
12/3
귀가. 자발적 격리를 하다.
코로나가 코 앞에 있음을 실감했다.
12/4
격리 해제.
녹음기에 무슨 문제가 생긴 거지요? 아 전원이 안 들어와서 보냈습니다. 네? 옆의 홀드 버튼 풀어보셨어요? 그게 뭔가요? 홀드 버튼을 잠가두면 다른 버튼이 안 먹습니다. 다시 보내드릴게요. ... 네.
선휴씨와 아이들이 과수원에 왔다. 윤하가 귤을 따는 동안 나는 도원이에게 표고 버섯을 하나 따주었다. 동백 열매도 몇 알을 쥐어주었다. 무당벌레가 보여서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가 무당벌레가 겁을 먹은 것 같아서 얼른 풀 속에 내려다 주었다. 도원이는 귤 컨테이너를 나르는 카트에 앉아 마부가 되었고, 졸지에 나는 말이 되어 버섯을 찾으러 밭 구석구석을 다녔다. 아이들은 정낭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숙소로 가기 싫은 모양이다. 윤하의 손이 빨갛게 텄다. 걱정이 되어서 손등을 만져주었다.
수확을 아주 조금 했다. 첫 수확이다.
12/5
찬준, 정란씨와 (사실상) 첫 수확을 하다. 22 콘테이너 + 수확.
13 (11+2들쑥날쑥) 박스 발송 + 선휴씨 10킬로 + 5 킬로 발송.
정란씨 파치 20 킬로 증정.
과거의 나란, 한 때 꽤 친했던 친구 정도가 아닐까 싶다.
윤하가 그림을 보내주었다. 밭에서 보고 만지고 건네받은 모든 것을 그림에 옮겨 놓았다. 구름도 하늘도 귤도 설익은 레몬도 동백 열매도 정낭도 귤가위도 버섯도 무당벌레도 초록색 모자도 왕방울 같은 내 눈도.
말할 수 없이 감동을 받았다.
첫 당도 체크. 세상에, 14.9 브릭스다. 한라봉 평균 당도보다 높다.
아이의 성적표를 보고 기뻐하는 듯한 내 모습이, 한심하기도 하다. 내가 한 게 뭐 있나. 나무들이 다 했지.
12/6
오전에는 운동을 하고 일꾼들 마실 차를 사고 밭에 가서 진입로 정리를 하고 상순이 따 놓은 귤을 정리하고 영호 가족을 맞고 드립백을 사서 돌아와 아이와 산책을 하고 저녁을 사먹고 잤다.
12/7
본격적으로 수확 개시.
62 박스 출하 (75 박스)
12/8
88 박스 출하 (163 박스)
12/9
85 박스 출하 (248 박스), 40 박스 열매회 포장 완료 (288 박스 사용)
12/10
*200 박스 가져옴. 126 박스 출하 (374 박스), *열매회 41 박스 출하, 12 박스 (들쑥날쑥) 포장 완료.
느티나무 칼림바가 도착했다.
12/11
오전: 44 박스 출하 *열매회 5 박스 포함, 오후: 10 출하 *열매회 4 박스 포함, 총 54 박스 출하 (캑터스 3, 열매회 9 박스 포함) (428 박스)
12/12
110 박스 출하 (538 박스), *열매회 7 박스 포장, *들쑥이 7 박스 포장
박스가 다 떨어졌는데 품절이란다. 큰일 났다.
12/13
오전 69 박스 만듦. 총 92 박스 출하 (630 박스), *캑터스 39 개 남음, *열매회 30 박스 출하 포함 (일반 상자)
대략 52 컨테이너 귤 예조 중 (12/12 수확분은 선별, 12/13 수확분 미선별)
점심으로 예쁜 짜장면을 먹었는데, 소화가 안 된다.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데 날씨가 심상치 않다. 서둘러 박스에 천막을 씌우고 나니, 비가 후둑후둑 떨어진다. 박스가 젖지 않았다. 정말 다행이다.
12/14
첫 눈.
이장 선거를 하고 왔다.
박스도 떨어졌겠다, 간만에 휴식이다.
12/15
마종기 선생님께서 출판사를 통해 선물을 보내주셨다. 출판사의 주간님과 선생님께 뒤늦은 감사 메일을 보냈다.
병원에 다녀오니 Jez가 보낸 하이드로폰과 책이 와 있다.
12/16
아무리 무지 박스를 알아와도 구할 수가 없어서 고민고민 끝에 일단 일요일부터 작업을 하기로 했다. 안 되면 농협 박스에 담아서 보내야 한다.
12/17
오두막 곳곳에 눈이 아직 쌓여있다.
농협 박스에 담아서 보낼 것들, 97 박스 출하 (727 출하)
농원 역사상 최연소 일꾼, 유진에게 일당 증정.
화이자에 Song I 데모를 보냈다.
12/18
주문한 분들께 품절 문자를 돌렸다. 선물 몇 상자를 보냈다.
Song I, 컨펌. 그런데 다시 들으니 켐포가 너무 느린 것 같은데 조금 템포를 당긴 버전을 다시 보내다.
12/19
수녀님이 사진과 카드를 보내주셨다. 사진 속 아이들이 눈물나게 예쁘다.
칼림바로 협주를 할 수 있도록 Song II를 만들어 보냈다.
12/20
일꾼 친구들에게 줄 작은 선물을 포장했다. 너무 지쳤는지, 카드를 쓰지는 못하고.
친구들과 마지막 수확.
12/21
창고에 큰 문제가 생겼다. 마지막 날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다같이 창고 수습, 마음 수습을 하고 포장에 매달렸다. 비를 피해 천막을 둘러놓았다.
189 박스 출하 (916 출하)
12/22
15+5+4=24 박스 출하 예정 (940 박스 출하)
12/23
새들은 가장 맛있어 보이는 귤을 골라서 먹는다. 제일 맛있는 귤이 어떤 건 지 새들은 어떻게 알까.
아니. 모를 까닭이 없다. 왜 모를 거라 생각하는가.
누나집과 부산집에 귤을 보냈다.
하모닉 오실레이터로 작업을 하다. 오랜만이다.
삼촌 할아버지께서 어김없이 카드를 보내주셨다. 우리집 트리에는 언제나 할아버지의 카드가 가장 먼저 놓인다.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12/24
기연씨 부부가 와서 케익을 주고 갔다.
수익금을 기부처에 보낸 날.
12/25
Lirong에게서 안부 메일이 왔다. 어떻게 지내는 지.
12/26
12/27
화이자에 ambient I, II 보내다.
12/28
앞 바다로 나갔다. 롱패딩에 몸을 숨긴 채 오래된 포구에 앉아 물 속으로 하이드로폰을 드리웠다. 물고기처럼, 소리를 들었다. 먼 수평선에서 나풀나풀 눈송이가 불어왔다.
5킬로 박스 몇 개를 가져와서 선물을 보내다.
화이자에 ambient I 업데이트 버전을 보냈다. 20 분 정도 되는, 더 릴렉스해진 버전.
12/29
아내가 보현의 김밥을 만들어왔다.
파도 같은, 소리 그림자.
12/30
비료 같은, 눈이 오고 녹음을 했다.
12/31
눈처럼 하얀 속깃털 몇 장이 마당에 떨어져있다.
혹시 바비가 보낸 연하장은 아닐까, 아내에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