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새해.
제주 집으로 오다. 아내의 글을 읽고 얘기를 나누고 낮잠을 잤다.
작년 수확량을 계산했다. 2016년의 1/20 정도이니 제대로 해거리를 한 것이다.
1/2
맥주를 마시며 신년회를 하다. 오랜만에 숲으로 산책을 갔다. 상순에게 마이크를 빌려주다.
그간 보지 못했던 팬들의 선물을 하나하나 열어보고 편지를 읽었다.
나는 왜 노래를 하는가. 나는 왜 농사를 짓는가.
한 번 더 답을 구해본다.
동네 바닷가에 나갔다. 요란한 LED 조명이 출렁거린다. 밝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아름다움이란 애써 '캐내'야만 하는 것.
1/3
처음 가보는 숲 길에 노박덩굴 열매가 흐드러지게 떨어고 노랗고 마른 멀구슬나무의 열매들이 주렁주렁하다.
돈가스를 먹고 tv 토론을 보았다.
1/4
어떻게 하면 생각이 멈추고, 나는 더 멍청해질까.
아침부터 동네 운동장에서 야구부 아이들이 훈련을 한다. 어떤 아이들은 운동장 한 켠에서 감독에게 야단을 맞는다.
훈련은 저녁을 넘어 밤까지 이어진다. 나는 새들이 들려준 이야기 두 개를 생각한다.
밀려있던 페터 볼레벤의 책을 읽는다. 보현이 소파에 올라와 내 허벅지에 몸을 맞대고 잠이 들었다.
세상의 현상을 수긍하도록 나에게 기회를 주는 태도. 그게 긍정이라고 본다.
1/5
소한. 바람은 차고 저 멀리 수평선이 선명하다.
오늘도 운동장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린 바닷바람을 맞으며 아이들이 연습을 하고 있다.
나는 이 레이스를 때론 멈추고 싶지만, 그러면 영원히 멈춰버릴 것 같다. 그래서 멈출 수가 없어.
페터 볼레벤의 책을 다 읽다.
1/6
도전 중독자.
과수원에 천리향을 옮겨 심었다. 옆 밭에도 타운하우스가 들어서려나 보다. 한 그루 한 그루 나무가 베어져 나간다.
도시서점에서 보낸 팬들의 메시지를 받았다. 나도 타자기로 글을 써보고 싶다.
동네 중국집에 가서 깐풍육을 먹었다. 건너편 테이블에 앉은 이해인 수녀님을 보았다.
1/7
비가 온다.
운동을 하고,
감자전과 꽃게탕을 먹고 일찍 잤다.
1/8
비.
관청에서 전화가 와서 친환경 지원사업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몇 십만원은 되는 인증비를 꽤 많이 지원해준다는데, 환급은 안 된단다.
70 만원까지 친환경 자재나 기계 구입 지원을 해준다며 19일까지 신청을 하라고 한다.
물고기 세 분이 오두막에 와서 고구마와 차를 대접했다.
귀농한 물고기. 목수와 결혼해 직접 집을 짓고 산다는 어느 물고기의 얘기를 들었다. 팬은 가수를 닮잖아요. 한 물고기가 얘기한다.
그냥 서로가 닮아있는 거겠죠.
커피와 가죽 케이스와 직접 만든 동영상 선물을 주고 가셨고,
보현과 놀아줄 새로운 놀이를 개발했다.
1/9
바람이 많이 불고 눈이 내린다.
오래토록 운동을 하고, 보이차를 사 왔고, 저녁을 지어 먹었다.
지원사업에 예초기와 전기톱(이나 엔진톱)을 신청하는 게 어떨까, 아내와 얘기를 나누었다.
목욕탕에서 trio 구성의 곡을 떠올리다. 손톱을 깎아버렸기에 나는 지금 기타를 칠 수가 없는데 그게 어쩌면 다행이기도 하다.
1/10
눈이 또 많이 온다고 한다.
바람소리가 매섭다. 바깥에 나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모두 날아갈 것 같다.
스티브 스왈로우의 인터뷰.
나는 작곡에 있어서 어쩌면 첫 순간이 제일 중요하지 않나 싶다. 백지를 계속 보고 있어야하는 그 순간인데, 이때는 참 많은 걸 인내해야한다.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이 며칠이 더 얼마나 지속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른 걸 (뭐라도!) 해야되는데 하는 마음도 목구멍까지 차오르더라도 그저 계속, 앉아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그러다 보면, 나는 결국 무언가를 써내게 된다.
음악을 듣는 것도 부담스러운 요즘. 마음 어딘가가 체한 것만 같다.
1/11
눈이 몹시 내린 날. 이년 전이 생각난다. 스케치북 녹화가 힘들어질 뻔 했었지.
오늘도 그 날처럼 하늘길이 닫히고, 사람들이 고립되었다고 한다.
시내에 나갔다가 차가 미끄러져서 혼쭐이 났다. 병원과 은행을 들르고, 오랜만에 마트에 갔다왔다.
1/12
눈이 쌓여있는 바닷가가 너무나 낯설다.
온갖 재질의 피크를 주문했다.
1/13
(no record)
1/14
동하와 오랜만에 통화를 했는데 기운 없이 전화를 받은 것 같아서 마음에 걸린다.
1/15
문호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부음을 듣고 빈소에 갔다. 20 여년 만에 대학 동창들을 만났다.
1/16
빈소에서 쪽잠을 자고 발인을 함께 하고 화장장에 따라가고 운구차를 장지로 보내고 나는 미친듯이 달려 공항에 갔지만 비행기를 놓치고 공항에서 반의 반 나절을 보내야만 했다. 집에 와서 잠시 쉬다가 오두막에 가서 승환이와 스탭들을 맞이했다. 돌아와서 정신 없이 잠을 잤다.
1/17
견적을 받고, 관청에 가서 친환경 지원 사업 접수를 하고 돌아오다. 손님 맞이를 하느라 청소를 하고 물건 몇 개를 사두고 동영상을 찍어서 보냈다.
1/18-1/24
여행
1/25
집이 온통 얼었다. 더운물 뿐 아니라 찬 물도 안나오고 변기도 막혔다. 그래도 보일러에 가까운 부엌에는 물이 나오는 게 다행이다.
목욕탕에 가서 몸을 씻었다.
집앞 바닷가에 주저앉은 오리가 보여서 주섬주섬 옷을 입고 다가갔는데 오리는 필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더니 저 멀리 출렁이는 바닷물 위로 둥둥 사라졌다.
피크를 받았다. 돌과 뼈와 뿔과 나무와 열매 껍질 그리고 플라스틱.
1/26
눈.
1/27
상순의 녹음을 도와주다 얼떨결에 코러스까지 하고 돌아왔다.
1/28
1/29
레몬 나무 화분을 현관으로 옮겼다. 현관의 온도는 7도에서 10 도 정도. 화분에 물을 주니, 냄새가 올라오는데, 걱정이다.
레몬 재배법 책을 다시 훑어보다. 영하 6도 이하로 내려가면, 나무는 죽는다. 겨울엔 비료도 전정도 하지 말고 쉬게 내버려둘 것. 물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기계유유제로 방제를 가끔 해줘도 된다? 음.
현진의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1/30
병원에 들렀다가 서울에 다녀오다.
청음을 하는데, 창문 너머 눈발이 거세지고 있었다. 예보에도 없던 눈이다. 두 시간 남짓 서울에 머물었을까. 공항에서 기다린 시간보다 짧았다.
스피커와 UAD-2를 주문했다. Stam audio에 메일을 보내다.
1월이 다 가고 있다. 슬슬 잠을 깨야지.
잠과 죽음의 사이엔 뭐가 있을까. 꿈일까.
1/31
Stam audio에서 FB과 메일로 답장을 보내주었다. 눈를 비비며 주문을 했다.
눈 덮인 길을 걸었다. 하얀 눈이 쌓인 길, 흰눈 아래 흙은 더욱 검다.
손톱을 깎고 다듬고, 기타 가습기 물을 채우고, 습도를 점검했다.
레몬 화분을 안방으로 옮겼다. 14도. 점점 온도가 올라 16도가 되었다.
전력을 다해 달리다 더이상 출발점이 보이지 않을 무렵 도대체 내가 어디로 온 건지 물었는데 이게 실은 결승점이란 없는 그런 레이스였다고.
musik 말하길:
행복해지는, 위로가 되는 음악 언제나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저번에 동쪽에서 발견한 웅덩이 사진을 보여드리고 싶은데 사진이 올라가지 않네요^^; 언젠가 우연히 만나뵙게 된다면 자그마한 웅덩이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사는 곳이 가까우니 언젠가는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작은 소망 빌어봅니다 – 평안한 나날 보내세요
2018년 2월 26일 — 11:46 오후
hij0513 말하길:
폴 님 음악 들으면서 마음의 위안을 많이 받는 고딩입니다. 전에는 몰랐던 삶의 아름다움, 음악의 즐거움을 '뿜뿜' 느끼고 있어요.그리고 저도 이제 음악이란걸 고민해보려구요. 나중에.. 다음 컴백(?) 때는 부산, 울산쪽으로도 와주세여!!
2018년 2월 15일 — 6:50 오후
camel 말하길:
중학교 때 교정에 핀 천리향 향기가 너무 좋아서 콧끝에 꽃잎을 대고 다녔던 추억이 있어요.향기로운 도전이시네요.베어져 나가는 수십년의 시간들이 너무 아깝고 안타까워요. 생각보다 해거리가 크네요. 이번해에는 풍성하겠네요.죽음, 레몬나무, 눈, 기타, 사람… 그리고 봄언제나 자연은 우리의 묵은 마음 끌어다 새기운을 주는 것 같습니다.새로 기른 손톱에서 새롭게 울릴 소리를 기대 합니다.봄이 오면 바빠질 폴님께 응원드립니다.음악 선물 고맙습니다.^^
2018년 2월 13일 — 6:25 오후
봄눈 말하길:
다음 소식이 올라올 때까지 아끼며 읽고 듣곤 하는데 오늘은 피크 사진이 눈에 담기네요 ;D 피크꽃♡ 평창을못가게 되었지만그래도티비로응원하면서보니씐납니다♬ 폴님물고기님들모두굿데이
2018년 2월 10일 — 2:36 오후
Grace 말하길:
귀농을 언제쯤 해볼수있을까요 :)한 삼십년지나 저도 아는체 해봐도 될까요 맘만은 늘 제주에 있어요!올 겨울 기록적으로 춥고 마음상한일 많았지만 감사하게도 폴님음악덕분에 버틴답니다!소식 자주 전해주세요~
2018년 2월 9일 — 11:29 오후
skawl7056 말하길:
^_^♡
2018년 2월 8일 — 7:28 오후
slowisdom 말하길:
너무 기다렸어요.
2018년 2월 8일 — 2:18 오전
akdma12 말하길:
폴님의 글이 올라와 있어 참 좋아요나도 산책이, 사색이 하고 싶고,글이 쓰고 싶어져요
2018년 2월 7일 — 12:59 오후
닉네임 말하길:
아름다움이란 애써 '캐내'야 하는것. 4.3공원에 갔지만 들어가진 못하고 입구 바로옆 언덕에서 눈보라와 나보다 힘이 아주 센 바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잠시 듣고 왔습니다. 기념관을 무척 어려운 이유로 둘러 볼 순 없었지만 그렇기에 다른 것들을 더 담을 수 있습니다. 올리브와 포도라니…..와인이 몹시 생각나네요… 어디일까…. 유럽? 칠레? 호주?미쿡? 남아공? 저리 별이 많은걸 보니…..가수와 팬은 닮아 간다는 말에 반성반성 나 자신이 부끄러워 집니다. 마음 좀 닦으며 살고 싶습니다.
2018년 2월 5일 — 9:00 오후
빵가루 말하길:
서로를 닮아간다. 좋네요. 저는 폴님을 닮아갈 수 있어서 좋습니다./항상 플라스틱 피크만 봤는데 돌이나 뼈, 나무, 열매로 만들어진 피크는 신기하네요. 특별한 향기가 나는 피크일것같아요. 자연의 색을 가졌으니 폴님과 닮았을까요./도시서점에서 저도 글을 썼어요. 타자기 토닥토닥 거리는 소리가 무척 예쁘더라구요.다른 분들이 쓰신 오타 투성이 편지에 잠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편안안 하루 보내세요 폴님
2018년 2월 2일 — 5:18 오후
ibja 말하길:
2월 첫날 선물같이 글이 올라왔네요!
2018년 2월 1일 — 3:54 오후
한쑤 말하길:
가수를 닮아간다는 물고기의 이야기가 와닿습니다. 오늘도 행복하세요 폴님:)
2018년 2월 1일 — 3:35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