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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0/6

9/1

새벽 2시에 보현이 깼다. 날이 제법 서늘하다.

세상엔 두 종류의 힘든 일이 있다. 끝은 보이나, 그 끝을 향해 가는 길이 고단한 일. 혹은,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 일.

몹시 힘들었던 하루.

9/2

EM-B 2 통 관주. 마지막 flushing을 못하고 돌아왔다. 온갖 풀들이 허리춤까지 자라났고, 덩굴을 많이 걷었다. 펌프를 덮은 덮개를 열어제끼니 귀뚜라미들이 화들짝 놀라 달아난다. 사랑스럽고, 미안하다.

정주석 옆에 핀 금계국이 아름답구나.

이스라엘이 벌이는 제노사이드에 대해 브라이언 이노가 한 말: "지금 이스라엘은 정신적으로 병든 나라다."

'나라'란 무얼까. 네타냐후 정부일까. 의회 다수 연합을 이룬 극우 정파일까. 유대교도들일까. 혹시, 국민일까. 그의 의미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정부' 혹은 '정파' 혹은 극히 일부분의 유대교도이기만을 기도할 뿐.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베니 모리스와 메디 하산의 토론을 다시 보다. 메디 하산은 "지금 이스라엘이 저지르고 있는 일이 인종 청소가 아니냐"고 베니 모리스에게 묻는다.

베니는 "이스라엘이 정말 인종 청소를 하려 했다면 10 만명은 더 죽이지 않았겠냐며, 이건 전쟁이고, 전시에는 온갖 일들이 일어나는 법"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가자에서 수많은 이들이 굶어죽고 있다는 말에는 "굶고 있는 건 맞는데, 그렇다고 굶어 죽었다는 증거가 있냐"고 태연히 되묻는다.

많이 배웠으나, 인간성이 뒤틀린 '엘리트'들이, 누리고 지배하고 시민을 가스라이팅하는 '나라'.

9/3

어제 펌프를 덮어두지 못하고 온 것이 생각 나, 일찍 밭에 다녀왔다.

6 명의 인질이 희생된 뒤, 이스라엘 시민들의 시위가 커지고 있다. 시민들은 총 파업을 예고했고 법원은 시위 금지 명령을 내렸다.

'아름답다'와 '예쁘다'는 다르다. '아름답다'는 나-의 변화-를, '예쁘다'는 대상-의 모습-을 말하기에.

Song#3는 - 답답하게도 - 여전히 진척이 없다.

앵두 나뭇잎이 갑자기 노랗게 시들었다. 낙엽이 진 건지, 벌레 때문인지 알 수가 없다. 나는 화들짝 놀라 가지 정리를 해주었다. 가위를 든 김에 담벼락과 전봇대를 감고 올라가는 담쟁이를 잘라주고, 잠시 정리를 했을 뿐인데도 금세 마당이 환해졌다.

찔레가 가지를 내밀고 치자 잎 사이에 턱을 괴듯 꽃을 피웠다. 나무가 나무에 기대 꽃을 틔웠다.

9/4

Song #5. 갈피를 못 잡고 있다.

Key는 Eb이 맞는데, 좋은 기타 보이싱을 찾지 못하겠다. 이럴 땐 두 가지 중 하나다. 피아노로 옮겨갈 것 ('기타스러움'에서 벗어날 것.) 혹은, 평범하고 지루한 보이싱을 그냥 밀어부칠 것. (돌직구를 던져볼 것.)

'촌스러움'은 아름다움이 될 수 있는데, '구림'은 아름다움이 되지 못한다.

시리아 난민 출신 가수 Nawar Alnadaaf의 음악. 이토록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미분음을 들으며, 세상은 얼마나 서양식 음계에 길들여져있는지, 느낀다.

misinterpretation. misquotation. misrepresentation.

리차드 도킨스는 '문화적 기독교인'이라는 - 무척 이상한 - 용어로 자신을 정의했다. 그리고 이슬람교는 기독교에 비해 종교적으로 '별로'라 말한다. 한 분야에서 설사 성과를 얻었다 해도, 또 다른 분야에서는 얼마나 어이없을만큼 '별로'일 수 있는지.

가사의 골격이 나오긴 했는데, 너무 감상적인가. 그런데 이게 지금 내 절박한 심정이라면 대체 어쩔 것인가.

9/5

상순과 아침 일찍 만나 커피를 마시고 점심을 먹고 헤어졌다.

9/6-8 휴가.

전시를 보고, 공연을 보고,

회화나무, 느티나무, 말채나무, 신나무, 주목, 백송, 검팽나무, 미선나무, 음나무, 자작나무, 박달나무, 측백나무를 만나고,

5만 보 넘게 걷고, 쉬었다.

9/9

고양이는 276 가지의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 (침팬지에겐 대략 357 가지의 표정이 있다고 한다.)

12일, 앰비언트 라이브를 위한 2-deck 세팅으로 작업실 세팅을 바꾸다.

9/10

EM-B 10 L 정도 + 쑥쑥튼튼 2-3 L in 1000 L 관주. 약줄 정리. 약통을 다시 엽면 시비 위치로 옮겨두고 펌프와 배관을 모두 철수했다. 아내는 삼각지에 EM-B 10 L, 쑥쑥튼튼 10 L 를 2 배 희석해서 뿌려주었다.

앰비언트 라이브 준비.

9/11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

라이브 연습. 너무 더운 탓인지 컴퓨터가 버벅대는데, 걱정이다. 믹서와 장비의 노브 위치를 꼼꼼하게 기록하고, 하나하나 포장해서 문 앞에 두었다.

9/12

새벽 3시 부터 촬영 준비. 동이 트기도 전 숲에 도착해 세팅을 했다. 너무도 습한 아침에 혹시라도 기계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촬영을 하다가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하면, 온 스탭들이 천막을 들고 뛰어와 장비를 가리며 비가 멎기를 기다렸다.

테이프에 담긴 풀벌레 소리보다 더 크게 노래를 하던 이름 모를 숲의 벌레들, 삼나무와 잠자리떼와 라이브 연주를 하고 돌아온 날.

9/13

예쁜 벌레 한 마리가 날아와 과수원에 데려다 주었다.

트랩에 하늘소가 잡혀있었다.

Deoxit으로 어제 사용한 장비와 커넥터를 꼼꼼히 닦아주었다.

9/14

풀이 턱 밑까지 자랐다. 약줄 정리하고, 물 1000 L받고,

기진맥진 한 날.

다시 9-10월 앰비언트 라이브 세팅으로 데스트 변경. 컴퓨터가 역시나 불안불안하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불안할 정도로 신비로웠던 저녁 바다.

9/15

가을방제 #1. EM-B 5 L, 쑥튼 2 L, 현미식초 1.5 L (실수!), 키토목초액 5 L, 아미노액비 1 L in 1000 L.

가을이 아닌 가을날, 가을 방제를 하다. 말도 안 되게 더운 9월. 11년 만에 처음 겪는 무더운 가을이다. 작년에 만든 유기칼슘은 심하게 부패한 듯하다. 올 가을 칼슘제를 못 줄 것 같은데 괜찮으려나.

영양 방제를 끝내니 나무들이 기뻐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내일 비 소식이 있는데 오후에라도 마저 방제를 할 수 있으려나.

앰비언트 라이브 세팅.

9/16

종일 라이브 준비. 아내가 내일 방제 준비를 하고 오다.

현미 식초를 제외하고는 어제와 recipe 동일. 몸살 기운이 있어 반신욕+요가를 하고 저녁을 든든히 먹었다. 어제, 그제, 아니 12일부터 너무 무리를 했나 싶다.

9/17

갑작스레 비소식이 떠서, 방제계획 취소.

촉촉하고 무더운 추석. 믿을 수 없을 만큼 망가진 계절. 성당에 가서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위한 봉헌을 하고 오다. 약자에 대한, 전쟁으로 고통받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신부님의 말씀에 큰 위로를 받은 한가위 아침.

Abu Aziz Sarah의 목소리. Dalal Abu Amneh의 마왈, Nawar Alnadaaf의 oud 소리로 음악을 만들었다.

9/18

아내는 방제를 하러 갔고, Hani와 첫 수업. Karin과 했던 내용을 조금 더 다듬었다. 집청소를 하고, 뵈프 부르기뇽을 만들어 문경, 화정, 다올과 나눠먹으며 늦게까지 놀았다.

9/19

국제사법재판소 (ICJ)는 결국 이스라엘의 점령지 철수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냈고, UN 총회는 찬성 124, 반대 14로 이를 통과시켰다. 눈에 띄는 것: 일본, 프랑스의 찬성. 북한의 기권. 스웨덴, 스위스의 기권. 헝가리의 반대.

코코넛오일의 현실. '노예 원숭이'들에게 가혹하게 중노동을 시키며 열매를 수확한다는 것이다.

9/20

아내는 휴가를 떠났고, 종일 앰비언트 라이브 연습.

9/21

라이브 연습. Hani와 수업. 무척 드라이하다.

9/22

Hani와 수업. 아내가 돌아왔다. 비가 온 날.

9/23

아내, 보현과 공항에 들러 기타를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병원에 들러 보현 약을 타왔다.

9/24

쿤스트카비넷으로 장비를 보내고, 짐을 싸고, 청소를 하고, 밤에 문경이 와서 집 사용설명을 해주고,

방제를 하러 갔다가 포기하고 (액비가 변질된 것 같다) 액비를 모두 땅에 뿌려주고, 부러진 가지에서 풋귤을 따서 가져왔다.

9/25-10/6

온 가족과, 악기와, 장비를 싣고,

배를 타고 서울로.

두 번의 앰비언트 라이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다.

그저 감사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