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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5/31

5/2

쉬다. 병원, 카센터에 들렀다.

앨범의 영문 제목이 고민이다. voice 'and' guitar는 아닌 것 같은데.

5/3

꽃이 오다.

방제 (#2-1) 마니카 보르도 2 포 in 1000L. 쌍살벌집을 하나 떼어냈다. 물을 받으면서 전정을 했다.

음악은 말하지 않는다. 음악이란 언어가 아무 것도 못하게 만드는, 그런 예술이다.

- F.J. Bonnet <The music to come>

5/4

방제 (#2-2) 어제와 같다.

밭에서 다섯잎 클로버를 찾았다. 누나에게 보내주기로 했다.

외국 가사의 거리감과 벽. 그런데 때론 그래서 사람들은 외국 노래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5/5

고추나무 꽃이 피었다.

뜰보리수 꽃이 피었다.

전정과 예초.

5/6

동하와 통화. 동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주는 특별함을 말했다.

아내의 북토크에 갔다. 꽤 바빴던 하루. 우체국에 갔다가 되돌아오다.

5/7

뒷풀이 선생님의 신보가 나왔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죽은 나무를 베어냈다. 하지만 지친 나는 마음을 다해 나무를 보내줄 수 없었다. 힘들어하는 내 옷자락을 누렇게 말라버린 나뭇가지가 잡아당겼다. 나는 마치 나무의 영혼에 붙들린 것만 같았다.

5/8

말라가는 주지를 자르니 구멍이 있고, 그 속에 하얀 애벌레가 있었다. 살충제를 쓰지 않는 유기농 과수원에서 왜 뜬금없이 나무들이 죽기도 하는지, 조금 알 것 같다.

하루종일 전정과 도포제 바르기로 지쳤을 무렵, 일을 잠시 미룰까 고민을 하다가, 나에겐 '힘듦'의 문제이지만, 나무에겐 '생존'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 생각하며 힘을 냈다. 손목이 긁힌 곳에 발진이 생긴다. 내일 팔토시를 잊지 말 것.

정낭에서 메뚜기와 인사를 했다.

오직 나만을 위해, 나를 즐겁게 해줄 일을 찾고 싶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음악 말고 떠오르는 게 없다니. 정말 절망적이다.

10mins/10hrs/10days 곡을 구상하다. 10 mins 짜리 endless tape과 오래된 카세트 데크.

5/9

감귤 꽃이 피는 날.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읽다. 책갈피에 클로버를 끼워 누나에게 보냈다.

다올은 예초를 하고 나는 전정에 매달렸다. 꽃은 20-30% 쯤 피었을까. 쌍살벌집 또 하나 발견.

5/10

다올과 밭일하다. 11 시 경 소나기가 잠시 와서 걱정을 했는데 이내 그쳤다. 두 그루에 도포제를 급히 발라주고 전정 시작. 아내가 벌집을 또 발견. 일단 위치를 공유하고, 벌이 자리를 비운 사이 급히 떼어냈다. 다올에게 툴벨트를 주었다.

5/11

간만의 휴식이다. 아침에 일어났다가 다시 잠들다. 몸이 힘들다.

목욕탕에 갔다. 이것조차 오랜만이다.

첫번 째 마스터를 모니터링하다. 어, 생각 이상으로 좋은데. 입체감. 질감. 음압. 모두 좋다. 모니터링을 마치고 기진맥진한 채 쓰러졌다. 그야말로 번아웃.

토양검정 결과가 나왔다. 다 나쁘지 않은데 작년과 같이 마그네슘이 부족하다. 고토를 뿌리면 좋겠는데 유기자재로 공시된 것을 구할 수가 있어야 말이지.

5/12

마스터링 수정 요청: 사피엔스에 아주 약간의 low-end를 더 줄 것. 진술서 fade out을 조금 더 빨리, 가파르게. 알바트로스 5:29 clipping은 괜찮은가. 아니라면 없앨 것. 홍옥의 side channel만 (보컬에 영향 없도록) 아주 약간만 더 'sparkling'하게.

마스터 음원을 들으며 숲길을 걷다. 잘했다. 이만하면 참 잘했다. 생각하면서 분화구를 계속 돌고 돌았다.

귤꽃이 만개하다.

멧비둘기가 집에 왔다. 누구지.

5/13

마스터링 컨펌. 이제 정말 모두 끝이다.

노래를 틀어놓고 아내, 보현과 축하 파티를 하다 나는 갑자기 우울해졌다. 노래가 이상해. 이상하게 들려. 어떻게 하지.

아직도 롤러코스터를 타는 나. 어이, 아저씨. 인제 그만 내려오시죠.

5/14

휴식. 운동. 농협에 들러 사계유 4 통을 사서 돌아오다.

ambisonic, quadraphonic sound 연구.

5/15

허약했던 치나나무에 예쁘게 순이 돋았다. 주변에 같이 핀 낮달맞이 꽃들이 도와준 건 아닐까.

방제 (#3-1) 마니카 보르도 2 포 + 사계유 (4L) 1 통 in 1000 L.

일을 마치고 목욕탕에 갔다. 36 도의 미지근한 탕에 한참을 가만히 앉아있었다. 내 몸 같은 물 에 안겨있는 것 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동진과 통화. 재혁과 문자.

5/16

송글송글 맺힌 꽃망울. 음표 같은 아기 레몬들.

집에 찾아오는 고양이가 늘어가고 우리는 하나둘 이름을 붙여주고 있다. 몹시 아파 보이는 아이에게 올리브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오늘은 올리브와 시나몬이 배를 채우고 갔다. 같이 밥을 먹는 너희는 분명 '식구'겠지.

원음의 감동? 원음? 그런 건 없다. 이 장사치들아.

5/17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욕망. 생존. 당위. 기여. 이 넷 중 하나 혹은 그들의 조합이 이유가 될까.

아내가 서울에 가고, T.D.와 M.F.의 음악을 들으며 집안 구석구석을 닦았다.

내가 지금껏 경험한 가장 길고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다.

오후. 지쳤지만 중심이 또렷한 아내의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들려왔다. 아버님의 병명을 알아낸 것 같다.

Norman이 나머지 마스터 화일들(mp3, flac, ADM)을 모두 보냈다. 뒤척이는 밤.

5/18

새벽. 선혜씨의 메일. client는 7.1 포맷을 원한다고 전해주었다. 서라운드 7.1이라.

앨범 작업을 마치자마자 다른 작업을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발매 후 우울증'을 조금은 덜 수 있으니까.

메일 쓸 곳이 많다.

보현과 숲길을 걷다, 문득 저 멀리서 누가 말을 걸어온다. 무덤 너머 무성하게 핀 찔레꽃 군락이 다.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 저 향기 너머로 나는 잠시 보현의 언어를 엿들은 것만 같았다.

앨범 소개글을 회사에 전달했다. 아내 돌아오다.

5/19

어렵게, 어렵게 앰비소닉 마이크를 구했다. 녹음기 등등을 주문하고,

2020년과 2021년, 아무 목표도 없이 매일 만들어 두었던 음악들을 죽 들어보았다.

엘피의 inner sleeve를 위해 이수지 작가님이 그려준 그림을 본다. 나는 언젠가 알바트로스를 보러갈 수 있을까.

5/20

밭으로. 손가락 통증이 있다. 뻐꾸기 소리가 제법 커졌다. 다올이 꿩알을 발견했다. 나뭇잎에서 콤콤하게 수액 삭은 냄새가 난다. 흐리다. 내일 비 소식이 있는데 내일은 어떻게 할까. 아직 정리해야할 나무들이 많다. 벌집만 아니면 손놀림도 한결 가벼울텐데. 날은 저무는데 갈 길은 멀고.

5/21-22

속리산 행.

공항에서 가방을 검사하는데 칼이 하나 나왔다. 예전에 승원 형이 주신 칼이 왜 이 가방에 있는 건지. 어떻게 하시겠냐는 직원의 말에, 고민을 하다가 나는 그냥 '버리겠다'고 했다. 뭘 잘 못 버리는 내가 - 그것도 선물로 받은 - 칼을 버리고 대합실로 내려가는데, 내 안의 날카로운 무언가도 함께 버리고 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에티카> 한 권만 들고 오른 여행길. 차를 마시고 죽을 먹고 몇 번이고 버스를 갈아타고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5/23

머리 자르기. 집으로 오는 택시 안. 바다 위 자욱하게 뜬 구름 사이로 빛살 내리는 저녁, 세 곡이 세상에 나왔다.

5/24

고사리가 자라는 숲속을 걷다.

검은이마직박구리 종추.

사운드캣에서 보내준 인이어를 받았다. 망게이라의 색에 물고기마음의 무늬를 넣어달라 부탁했었다.

뭉게의 책을 선물 받았다.

5/25

하루 종일 세금 정산. 나는 서류 작업을 좋아할뿐만 아니라, 매우 잘한다.

5/26

다올과 일. 일하기 딱 좋은 날씨다.

집앞 바닷가에 고양이 새끼 네 마리가 놀고 있다. 보현에게 모차르트를 틀어주면 가만히 음악을 듣는다.

보현과 바다를 걸었다.

5/27

몹시 쨍한, 기분 좋게 건조한 날.

여름순이 많이 자랐다.

방제 #4-1: 마니카 보르도 2 포 + 사계유 1 통 (4L) in 1000 L.

아침 일찍 감협에 가서 마니카 보르도를 사서 밭으로 왔다. 꽃은 98% 가량 왔고, 진딧물의 흔적이 많다. 잿빛 곰팡이, 진딧물을 동시에 방제한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그래도 적기에 방제할 수 있어서 마음이 좋다. 약이 약간 모자랐다.

'좋은' 음악의 반대말은 '안 좋은' 음악인가. '나쁜' 음악인가.

엘피 자켓 디자인 수정.

바닷가에서 춤을 추는 띠 이삭들.

5/28

Ableton을 띄우고 새벽 작업을 하다 밭으로.

방제 (#4-2): 어제와 같다.

오늘은 약이 충분하다. 꿩알이 홀로 외로이 있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그곳을 피해 약을 뿌렸다.

아내가 북토크를 마치고 멀구슬 나무 꽃을 데리고 왔다. 코를 갖다 대니, 베이비파우더의 향기가 그윽하다. 그렇지 않아도 멀구슬 나무의 향기가 맡고 싶었는데. 귤꽃이 가고 멀구슬꽃이 오는 5월. 아내를 기다리다 모처럼 늦게 잠은 밤.

5/29

늦잠. 보현 밥을 챙겨주고 다시 잠들다. 무려 8시까지 늦잠.

비소식이 있었는데 날이 쨍하네.

노래의 무게. 노래 한 곡의 무게는 얼마나될까.

올 여름 첫 두견이 소리를 듣다. 점심 때가 되니 보슬비가 내린다. 동진 부부를 만나고 왔다. 오래된 친구가 좋은 건 아무렇지 않게 친구의 뱃살을 만지며 같이 하하호호 할 수 있는, 뭐 그런 거겠지.

5/30

새벽에 보슬비가 내렸다.

ambisonic field recording 첫 날. 물이 말라서 물소리를 담을 수가 없었다. 테스트겸 새소리만 담아 돌아오다.

오두막의 샤워부스에서 칼림바 녹음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하루종일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며 토양개량제를 알아보다. 유기 공시가 된 개량제를 도통 구할 수가 없는데, 공시가 된 것만 써야한다는 공무원님들아.

규산질 비료는 공시가 된 것을 겨우 구할 수 있다. 하지만 규산질 비료는 초본과에 쓰는 비료다. 그래도 알칼리 성분은 비슷하다고 하니, 유황가리고토와 섞어서 써봐야 하나. 다른 방법이 없는데.

망게이라의 트윗에 Milton Gonçalves의 피드가 올라왔다.

오늘 저녁, 저 하늘을 밝혀주기 위해 Milton Gonçalves가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지금껏 내가 본 중 가장 아름다운 부고가 아닐까 싶다.

아내가 아티초크를 구해와서 요리를 해주었다.

5/31

오전에는 숲속 ambisonic 녹음.

오후에는 바닷가 벼룩 시장에서 책을 팔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