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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4-10/11

9/14

Slow Satie. Satie Slowly.

단골 가게에서 참새우, 오징어, 백조기를 사왔다. 

9/15

가을 소풍을 갔다. 네잎 클로버를 찾았다.

9/16

Gregory가 말한, 'Artfully unbalanced mix'란 뭘까.

가려움은 많이 가라앉았다. 오늘까지는 휴식하기로.

9/17

비가 꽤 온다.

비행기를 타려는데 김부장님이 전화를 주셨다. 비료를 가지고 나왔다는데 어쩌나. 어떻게 시간 계획을 짜도 만날 수가 없는 스케줄이다. 게다가 비가 오는데.

한참 후, 비 안 맞도록 잘 부려놓고 갑니다, 라고 문자가 왔다. 너무 감사하다.

릴데크를 찾으러 갔다. 몇 달 동안 아마 뚜껑도 안 열어보신 듯하다. 다른 수리 업체로 가기 직전, 아래 층의 어떤 사장님이 제대로 고쳐주겠다 하신다. 모험이긴 한데, 어쩌나 고민을 하다가 잘 부탁드린다고 몇 번이고 머리를 조아리며 맡겨두었다.

9/18

부드럽고 과함 없이 아름다운,

앵두나무에 새순이 돋았다. 이미 잎이 다 떨어진 9월 말에 다시 새순이 돋는다. 내 기억으로는 처음 있는 일이다. 마른 낙엽과 새순이 함께 달려있는 이 계절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무더운 여름은 두렵지 않지만, 무더운 겨울은 너무 무섭다.

9/19

오전 내내 보현과 놀고 서윤이 돌잔치에 갔다.

초둥학교 아이들이 <물이 되는 꿈>을 보고 각자 그림을 그려 책으로 엮었다. '따라 그리다'라는 말이 귀엽고, 고맙고, 예쁘다.

아침 산책을 다녀오는데, 바비가 엄마 비둘기와 나란히 앉아있다. 참 많이 컸구나. 물부엌 앞에 있는 바비를 못 보고 놀래킨 것이 자꾸 맘에 걸린다.

가을이다. 반바지 차림으로 아침 산책길을 나섰다. 춥다.

9/20

가을 비료 15 포대를 주었다. 봄 비료보다 훨씬 영양분이 풍부한 비료다. 동글동글한 검은 알갱이가 뿌리기도 좋다. 당밀이 많이 들어간 비료라면, 미네랄도 풍부하겠지. 내년엔 봄에도 쓸 수 있으면 좋겠는데, 육지에서 와야하는 비료라 지원 사업에도 해당이 안 되고 가능할 지 모르겠다.

Royce Holladay에 따르면 변화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단다: Static change, Dynamic change, 그리고 Dynamical change.

Static change는, 인간의 연주,

Dynamic change는, 인간이 만든 알고리즘에 따른 연주,

Dynamical change는, 비인간계에 의한 연주는 아닐까, 하는 공상.

황게를 사왔다.

바비는 거의 성조가 되었다. 하얀 목깃털이 풍성해지고 눈가가 조금씩 노래지기시작했다. 아직 우리집을 찾아오는 게 고맙다.

9/21

백인(남성) 우월주의와 음악이론에 대한 Adam neely의 컨텐츠. 놀랍게도 '싫어요'가 꽤 많다. 어린 시절, 지루하기 짝이 없던 음악 수업 시간. 나도 선율, 리듬, 화성이 음악의 3 요소라고 배웠지. 그런데, 정말 그런가. 정말 그런 걸까. Adam은 말한다. "아프리카 음악이 전세계 음악 이론의 주류가 된다면, 바흐의 음악은 음악이 아니라고 할 지도 모르죠. 왜? 아프리카 사람의 기준에는, 춤을 출 수 없다면, 그건 음악이 아니니까."

당일치기로 올라가 릴데크를 찾아 다른 수리점에 맡기고 돌아왔다.

9/22

가을이구나. 이 얘기를 하루에 몇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바비가 하루종일 보이지 않았다.

보현과 저녁 산책에서 돌아오는 길에 새끼 노루를 보았다. 노루는 발레리나처럼 껑충껑충 뛰더니 농로를 가로질로 풀섶으로 사라졌다.

9/23

농협 조합원에게 주는 추석 선물 안내장이 왔다. 올해도 역시 천일염과 고춧가루다. 부산에 얘기를 하니, 올해 고춧가루가 얼마나 비싼 지 모른다며 얼른 보내달라신다.

천일염 40 킬로 뿌리고, 광합성 세균 20리터를 받아 오다. 내년에는 세균 공급이 유료화 될 것 같다는데, 차라리 그게 나을 지도 모른다.

제주의 가을 꽃은 나도사프란이 아닐까.

Test pressing이 슈테판에게 배송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PMD430이 왔는데 문제가 있다. 테잎 레코더가 멀쩡하게 온 경우가 지금껏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끈질기게 테잎에 집착하고.

바비가 오지 않는다.

안개꽃처럼 작은 앵두꽃이 피었다. 짠하고, 울적하다.

9/24

슈테판에게서 메일이 왔다. 테스트프레싱이 매우 좋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방제#1: 아미노 2L + EM-B 5L + 유기칼슘 2L + 광합성세균 5L + 천일염 1kg

PMD430을 세운상가로 보냈다.

남은 농약은 폐농약 수거함에 버리라는데, 이 섬엔 폐농약 수거함이 아예 없단다. 어이가 없다.

9/25

방제#2: 아미노 2L + EM-B 5L + 유기칼슘 2L + 광합성세균 5L + 천일염 1kg

보현과 병원에 다녀왔다.

9/26

용기를 내서 오름길을 걸었는데, 아무래도 아직 무리인가 싶다.

보현 목욕을 시켰다. 

석산이 피었다.

9/27

로즈로 작업을 해보다. 오실로스코프 문의를 하다. 초록빛 브라운관으로, 소리를 보고 싶다.

심바 어머니가 슬로베니아 와인을 주셨다

9/28

아사코 미야키씨의 음악을 오랜만에 듣다. 음반이 나오면 좋겠는데 그럴 리는 없겠지.

새 오디오 인터페이스가 왔다

9/29

Dancing with water I가 발표되었다.

이 곡은 1978년에 태어난 로즈 (Rhodes Mark I) 피아노 하나로 만들어졌습니다. 지금 기준에서 보면 원시적인 ‘전기’ 악기라 음정(tune)도 음의 세기(velocity)도 정확지 않은, 아주 투박한 악기입니다. 하지만 건반 하나만 눌러도 두터운 배음이 쏟아지고, 똑같은 건반을 눌러도 매번 미묘하게 다른 음색을 내어주기도 합니다. 그런 부정확함은 재현성(reproducibility)이 생명인 디지털 악기에서는 얻을 수 없는 것이라 오히려 저는 로즈를 너무나 사랑합니다.


올 봄, 거의 매일 물 속을 걸으며 운동을 했습니다. 장난감 기차처럼 수영장을 빙빙 돌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연에 존재하는 수많은 ‘반복’은 왜 단조롭지 않을까. 파도도, 빗방울도, 계절도, 낮과 밤도, 물 속에서 몸을 움직일 때마다 번져가는 물둘레도, 똑같은 듯 똑같지 않은 이 ‘반복 없는 반복’들은 어째서 여여하고 다채로울까.


메트로놈에 기대지 않고 녹음을 했기 때문에 곡 속의 수많은 루프(loop)들은 모두 템포가 다릅니다. 실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리듬도 템포도 존재한 적이 없습니다. 애초에 정해진 템포가 없으니, 템포가 어긋날 일도 없는 것입니다. 정해놓은 게 없으면, 어긋날 일도 없는 건가 봅니다.


멜로디 루프는 ‘카피-앤-페이스트’가 아닌, ‘Blooper’라는 페달과 낡은 조믹 (Joemeek) 프리 앰프를 거쳐 녹음되었습니다. 단선율의 루프, Blooper가 랜덤하게 조합한 루프, 공간계 페달로 소리를 넓히거나 변형한 루프가 뒤섞여 쌓이면서 곡은 어딘가로 향해 갑니다. (어디로 가는 지는 저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겹겹이 쌓인 루프들이 하나 둘 떨어져 나가고, 마지막에는 메인 루프 하나만 남겨집니다. 그래서 시작과 끝이 맞닿은 이 곡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긴, 8분 30초 짜리 루프가 되어버린 것 같기도 합니다.

보현과 오래오래 놀았다.

산책 도중 꽃받침 하나가 아기의 목덜미에 떨어졌다. 꽃핀을 꽂은 것 같구나.

9/30

진귤 삼형제를 데리고 멀리 '화목해'를 다녀왔다. 가을 소풍 같은 먼 길을 지나 닿은 남쪽 마을은, 더 풍요롭고 따뜻해 보였다. 미뤄두었던 분갈이를 하는데 진귤 나무의 잔뿌리가 엄청나게 자라있다. 뿌리를 다치지 않도록 조심조심하며 넉넉한 화분으로 옮겨주었다.

사람으로 친다면 '분갈이'는 어떤 의미일까.

나날이 몸집이 자라는 아이들에게 새 옷을 입혀주는 것? 비좁은 방에 널부러진 쓰레기를 치우고 넉넉한 방으로 옮겨주는 것? 신선한 물과 먹거리를 냉장고에 그득히 채워주는 것?

10/1

한 때 열등하다 생각한 것이 정말 열등한 것이었을까, 묻고 싶다.

추석.

참 오랜만에 곶자왈에 갔다. 진드기가 엄청나게 많다. 무더운 가을 그리고 겨울 탓이겠지. 슬프구나.

10/2

보현 목욕시키다. 이곳저곳에 인사를 드렸다. 옆집 삼춘이 낚시를 배워볼 생각이 없냐고 물어보신다.

10/3

낙엽과 새순이 함께 돋은 나무들이 많다. 작년의 이상 기온이 최악이라 생각했는데, 어쩌면 점점 더 나빠질 수도 있겠다, 싶다.

방제#1: 아미노 2L + EM-B 5L + 유기칼슘 2L + 광합성 세균 5L + 천일염 1 kg.

아미노 액비 냄새가 과히 좋지 않아, 내일 쓸 아미노 액비를 덜어서 EM-B 5L와 섞어두었다.

동백 씨앗이 떨어지는 계절.

귤은 아직 푸르다.

10/4

방제를 하러 갔지만, 비가 와서 포기하고 돌아왔다.

귤에 매달려 핀, 우담바라를 만났다.

미국의 코로나도 그렇고 하여, 오랜만에 마종기 선생님께 안부 메일을 보냈다.

10/5

방제#2: 아미노 2L + EM-B 5L (2일 전 묵혀둔 것) + 유기칼슘 2L + 광합성 세균 5L + 천일염 1 kg.

누나가 아이펜슬을 보내주었다. 골드스타 오실로스코프가 왔다. 수십년을 뛰어넘는 테크놀로지의 산물들이 한 공간에서 나를 도와줄 것이다.

10/6

태풍에 날아간 CCTV 판을 새로 받아두었다.

10/7

바람이 거센 날. 경선씨가 신간을 보내주셨다.

Harmonic oscillator 소리를 처음 내보았다. 이거다.

Caterina Barbieri가 던진 'permutation'의 화두.

10/8

바람이 여전히 세다.

머신러닝으로 만든 음악에 대하여.

출판사에서 마종기 선생님의 신간을 보내주셨다.

독일에서 작업대가 왔다. 악기들을 얹기 위해 동네 목재소에서 급하게 합판을 짜왔는데, 잘한 건가 싶다. 본드 냄새가 가시지 않은 것 같은데.

10/9

10킬로 짜리와 5 킬로 짜리 귤박스를 가져왔다. 올해엔 더 예쁘고 안전한 박스에 귤을 담아 보낼 것이다.

승환이 공연에 쓸 스템을 보내주었다. 믹스 그대로의 재현은, 어렵다.

우담바라의 색이 짙어졌다. 하지만 아직 그대로 매달려있다.

10/10

마종기 선생님의 시집을 읽다.

깊고, 두텁다.

10/11

월정사로 가는 길. 구름이 멈춰서 있다. 붉은 무대 위에 의자 하나가 덩그라니 보인다. 저 큰 무대가 나 하나를 위한 것. 관객은 없고, 햇살은 따스하다. 성보 박물관을 둘러싼 소나무들이 청중이 되어주었다. 산바람을 맞으며 아무도 없이 혼자 선 무대는, 아마도 처음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