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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7-8/20

7/17-18

부산행.

숙의 결혼식 날 아침, 아내는 집앞 바다 위에 뜬 커다란 무지개 동영상을 보내주었다.

7/19

Live에서 작업한 것들을 프로툴스로 옮겨 세션을 만들고, 믹스 준비를 하다.

7/20

믹스 시작.

Chihei Hatakeyama씨 음악 중에 믿을 수 없을 만큼 위상이 뒤틀린 곡들이 있다.

수잔 로저스의 LOOP lecture를 들으며 밭일을 했다.

7/21

덩굴을 걷다가, 정진을 만났다. 정진이 이런저런 선물을 주고 돌아갔다.

비료 대금 관계로 농협에 전화를 했다. 알아보고 연락을 주겠다는데 도통 연락이 없다.

7/22

20 여년 만에 구성완씨를 만났다. 옛 이야기며 그동안 지낸 이야기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다보니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병원을 갔는데, 휴무다.

IFS 8) 믹스를 전부 다시 하기로. 엉망이야.

7/23

정진과 일층의 OBS 합판을 조금 떼어내보았다. 합판이 물을 엄청나게 먹었지만, 그래도 다행히 내벽은 괜찮다. 창고 안의 석고 보드를 떼어내 보니 어딘가 조금씩 물이 샌다. 수도관은 아니고, 이층과 어긋난 쪽천정 쪽인 것 같다. 급한대로 실리콘 보수를 하는데 그 사이 또 비가 온다.

다시 한 믹스. 여전히 맘에 들지 않는다.

7/24

Live 세션을 열어 처음부터 다시 믹스. 집에 와서 들어보니 역시나 맘에 안 든다.

재생 플라스틱을 쓰는 일본 회사에 엘피 제작을 의뢰하기로 했다. 그간 연락을 주고 받았던 폴란드와 영국 업체에 미안하다는 메일을 보냈다.

7/25

다시 프로툴스 세션으로 돌아와서 믹스하다.

작업 중에 놀라지 말라는 말과 함께 아내에게서 긴 문자와 동영상이 왔다.

아침에 새끼 제비가 마당에 떨어진 것을 보고는 야생 동물 구조 센터에 연락을 했다고 한다. 집에 와 보니 그렇게 왁자지껄하던 제비 둥지가 텅 비었다. 부모 제비는 더이상 오지 않고 다른 새끼들도 없다. 죽었을까. 그렇다면 아마도 둥지 안이었겠지. 가장 몸집이 크고 활달하던 녀석은 어찌해서 떨어졌을까. 누가 밀어낸 것일까. 허둥대다 떨어진 것일까.

함께 살아도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다. 나는 인간이므로.

떨어진 것이든 떨어뜨린 것이든, 그래도 다행이다. 함께 있어서. 아무도 없을 때 떨어졌다면.

7/26-7/31

아무도 만나지 않을 휴가를 떠나다.

떠나는 길에 두잎 클로버를 만났고, 돌아오는 길에 살구빛 노을을 만났다.

8/1

믹스는, 소리를 요리하는 것. 소리로 집을 짓는 것.

마침내, 믹스 끝. 슈테판에게 미련 없이 <Moment in Love> 를 보내다. B면의 첫 곡이 될 것이다.

비둘기들이 소나무를 찾아왔다. 예전에 태어난 그 비둘기들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지만 크고 우람하다.

8/2

아내가 비둘기들이 서로를 애무하고 키스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이야기해주었다.

(...)

어쩌면 새들은 인간이 나누는 미묘한 사랑의 감정을 모두 경험하지는 못할 것이다. (반대로, 인간이 겪는 미움의 고통도 똑같이 겪지는 않을 것이다.) 어째됐든, 비둘기 한 쌍을 보고 있으면, 그들도 다정함이나 존중, 육체적인 매혹, 친절함, 서로 돕고자 하는 마음을 분명히 갖고 있다는 걸 알게된다. 수탉이 맛있는 옥수수 낱알을 찾으면 암탉과 그 음식을 나누면서 뿌듯해 하는 것도 비슷한 예다. 사랑하는 이에게 아침 크로아상을 차려주며 구애를 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것이다.

(...)

- P. J. Dubois & E. Rousseau - A Short Philosophy of Birds

슈테판으로부터 마스터가 왔다. 빠르다. 내일, 작업실에서 제대로 모니터를 한 뒤 피드백을 주겠다고 짧게 답장을 보냈다.

8/3

오두막에서 찬찬히 마스터를 들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믹싱에 과몰입된 귀로 마스터를 들으면, 좋든 싫든 어색할 수 밖에 없다. 귀는, 비교와 적응의 기관이니까.

스테레오 이미지가 과감하다. 좋고 싫음을 떠나 '당황스럽다.' 그래서 그런가. 위상 계수가 더 떨어진다. 중저음을 잘 다듬어 주었다. 고음이 많긴 한데 듣기엔 괜찮다. 깊이감이 아주 약간, 미묘하다. 라우드니스는 -15 LUFS에 맞춘 것 같다. 나는 더 원하는 수정 사항을 정리해서 보냈다다.

A1의 믹스에 아직도 애를 먹고 있다. Rhodes 하나로 수없이 더빙을 한 곡이라 정리하는 것이 쉽지 않아 얼마나 더 걸릴 지도 모르겠다.

Taylor Deupree와 Marcus Fischer, Tomotsugu Nakamura의 엘피가 왔다. 부자가 된 기분이다.

8/4

슈테판이 메일을 보냈다. 나는 이 곡을 더 좋게 만들 자신이 없다. 지금 이 상태로도 너무나 좋다. 그리고 덧붙인다. 작은 디테일까지 다 챙기려 괜히 생고생하지 말게. 뒷처리는 그냥 나한테 맡기시게.

그리하여, A1의 믹스를 마무리했다. 적당한 선에서 '덮었다'고 해야할까. 말 그대로 '맡겨버렸다'고 해야겠지.

A2 세션을 열었다. 이 곡은 믹스가 생각보다 수월할 거 같다.

그리고 밭 일.

8/5

A2 믹스 마무리하고 마지막 곡 B2 믹스를 시작한다. 이건 믹스가 아닌 재편곡이나 다름이 없다. 메인 악기를 빼곤 모든 소스와 구조가 다 맘에 안든다. 다 바꿔야 한다.

그리고 밭 일.

7월 내내 이어진 장마로 감귤 나무의 10%가 궤양병을 앓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마음이 아프다.

비둘기들이 소나무로 자주 온다. 아무래도 알을 낳은 것 같다. 도대체 언제 낳았을까. 뭐가 어떻게 된 걸까.

8/6

필드 레코딩한 소스를 하나하나 꺼내 들었다. 한옥의 처마에서 빗물이 떨어지는 소리. 과수원의 빗소리. 포크레인의 소리. 하이드로폰을 만들고 테스트한 소리. 과수원에서 가지를 자르는 소리, 숲에서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소리. 누군가에겐 소음일 수도 있는 소리 하나하나가 음악으로 섞여 들어갔다.

그렇게 B2의 믹스를 끝냈다.

4 곡을 바운스하고, 슈테판에게 보냈다. 그리고 나는 목욕탕으로 향했다.

최종 믹스를 마스터링 엔지니어에게 보낸 뒤, 프로듀서만이 만끽할 수 있는 기분. 그 어떤 말도 담아낼 수가 없다.

기쁘다.

적형과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비둘기가 포란을 시작했다.

일본 업체에 엘피 제작을 못 맡길 것 같다. 견적도 말도, 자꾸 바뀌는 게 싫다.

8/7

슈테판이 추천해준 곳에 엘피 제작을 문의했다. 아쉽게도 한국까지 운송을 해줄 수 없단다. 다른 업체를 찾아야 한다.

몇 년 만인지, 지영이네와 봉식이네를 만나 저녁을 먹었다. 두 가족 모두 곧 육지로 떠난다.

8/8

Dancing with water

8/9

마스터가 왔다. 우선은 태풍 걱정에 단도리만 하고 집으로 돌아와 모니터를 했다.

귀를 리셋해주는 약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8/10

태풍 '장미'가 소리소문 없이 지나갔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마스터를 모니터했다.

B1 곡의 라우드니스가 3db 넘게 높고 트루 피크가 클립핑 되는 문제가 있다. 곡마다 라우드니스 편차가 크다. 그건 그렇고, 잘못된 샘플 레이트로 B2 곡 바운스해서 보낸 걸 알았다. 제대로 바운스를 다시 해서 슈테판에게 보냈다. 미안하다고.

8/11

프레싱 업체에서 견적이 왔다. 친환경적 방식으로 엘피를 생산한다는 네덜란드 회사다. 비닐 포장도 생분해성 재질이고, 운송과 포장, 프레싱까지 모두 재생 에너지를 사용한다고 한다.

유기농 인증 단체에서 밭에 오셔서 잔류농약 검사용 귤을 따가셨다.

배나무에 주먹만한 배가, 그것도 두 개나 열렸다. 반갑고 기쁘고 대견하고 경이롭다.

오늘도 덩굴을 많이 걷었다. 창고에 제습기를 돌리기 시작했다.

저녁 산책이 몹시 즐거웠다.

8/12

아침 일찍 오두막에 가서 제습기를 살폈다. 호스 어딘가가 막힌 것 같아 청소를 하고 계속 돌렸다.

윤슬이네와 식구들이 집에 왔다.

8/13

슈테판이 답장을 보냈다. B2를 24/48 로 보낸 거는, 괜찮다. 24/96으로 다시 작업해서 보내주겠다. 트루 피크가 클립난 건 미안하게 되었다. 다시 작업해서 보내겠다.

요즘 같은 날 밭 일을 하면 냉탕에 들어간 것처럼 머리가 텅 빈다.

매미가 천천히 허물을 벗고 있었다. 너무나 천천히 그리고 우아하게.

8/14

슈테판이 최종 마스터를 보냈다. A1, A2, B1 총 세 곡의 라우드니스가 -15 LUFS로 재조정되어 있다. B2의 라우드니스가 많이 낮은데, 듣기에 나쁘진 않다. 다 생각이 있겠지.

A2 의 노이즈를 뒤늦게 발견했다. 다시 보내기도 뭣하고 해서 간단히 수정을 했다.

그렇게 완성된 바이닐 프리 마스터 화일을 베를린으로 보냈다. 라커 커팅을 해줄 엔지니어는 Andreas [Lupo] Lubich.

8/15

B2 의 볼륨이 낮은가 싶어 루포에게 메일을 보냈다. 그런데 오히려 볼륨을 1.5 db 더 낮추자는 것이다. 메일을 잘못 쓴 거 아닐까, 싶어 다시 메일을 보냈다. 혼선이 있을 수 있으니 내가 화일을 다시 보내는 게 어떻겠냐고. 헤드룸에 여유가 있으니, 리미팅을 다시 하지 않고 게인 조정만 해도 될 것 같다고.

8/16

품질 관리 #1) 아미노 액비 2L + EM-B 5L + 키토 목초액 5L in 1000L.

아미노 액비에서 좋지 않은 냄새가 난다. 다음 방제엔 새로운 액비를 써야할 듯. 키토 목초액이 모자란다.

너무. 덥다. 너무.

방제를 마치고 통을 씻는데 쌍살벌 한 마리가 액비통 속에 죽어있었다.

8/17

엘피의 속지에 넣을 글을 쓰러 오두막으로 갔지만, 도저히 아무 것도 쓸 수가 없어서 밭 일만 하다 돌아왔다. 말도 글도 없는, 첫 앨범.

B2의 +1.5 db 게인을 높인 버전을 만들어 두었다. 그래도 트루피크 기준 0.5 db 정도 헤드룸은 아직 있다.

부모 비둘기가 둥지에서 목을 꿀럭거린다. 크롭밀크를 만드는 거라면, 애기가 이미 태어난 걸까.

8/18

Moment in Love.

품질 관리 #2) 아미노 액비 2L + EM-B 5L + 키토 목초액 1.2L in 1000L.

키토 목초액이 1.2 리터밖에 없다. 미안하다, 얘들아.

루포에게서 답장이 왔다. 요지는, B2의 라우드니스가 낮긴 하지만 저음역의 시그널이 별로 없어서 곡 자체의 존재감이 오히려 더 크다. 내 경험상으로는 게인을 오히려 낮추는 게 좋을 것 같다, 는 이야기. 결국, 나(+1.5db)>슈테판(0)>루포(-1.5db)인 셈이다.

그냥 원래대로 하는 게 좋겠다고 메일을 보냈다.

8/19

저녁을 먹으러 간 식당에 하늘 조각이 보였다.

8/20

앨범 회의. 너무나 아름다운 바다와 하늘과 산과 섬을 보다.

게다가, 새들은 사랑을 찾는데 있어서 우리보다 능력자다. 유혹하는 법, 교제하는 법... 모든 것이 우리보다 훨씬 심플하다: 새들은 어떤 만남과 어떻게 관계를 발전시킬 지, 그럴 수 있을 지 없을 지를 빨리 알아챈다. 하지만 우린 다르다. 인간의 몸은 너무 두터운 옷에 가려져 있는 나머지, 상대의 매력을 읽고 알아채는 것에 둔하다. 그래서 수많은 시간을, 몇날 며칠, 몇 달 - 심지어 몇 년을 걸려서, 저 사람이 나에게 끌렸던 걸까, 알아내려 애를 쓴다. 그리고 그랬다치자. 그럼 저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걸까? 이렇게 단순한 감정이건만 인간에게는 끝없이 복잡하기만 하다. 그래서 우린 괴롭고, 대부분은 늘 불안하다.

(...)

우리는 그렇게 단순하지도 평온하지도 않다. 찌르레기들은, 저 아름다운 상대에게 가서 세레나데를 부를까 말까, 이런 걸 두고 세 시간씩 고민하지 않는다. 그냥 가서, 한다. 상대방이 좋아하든 말든, 설혹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해서 그게 세상의 끝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

사랑에 관해서, 우리는 새들에게 배울 점이 있는 게 아닐까?

아마도 진정한 사랑이란, 그냥 사랑하는 것, 일지 모른다. 비둘기처럼. 사랑하는 이와 행복한 마음으로, 함께 하는 것. 다른 그 어떤 곳도 아닌, 지금 여기에.

- P. J. Dubois & E. Rousseau - A Short Philosophy of Bir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