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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되는 꿈 – 루시드폴 노래하고 이수지 그리다

요즘 나는 물 속을 자주 걷는다. 아줄레주 같은 물 속을 걸으면, 가장 느리게 몸이 움직인다. 물빛으로 손을 뻗으며 생각을 한다. 꿈을 꾸기도 한다. 물결도 물빛도 조금도 똑같지 않구나. 그런 음악을 만들 수 있을까. 그러다보면 시간은 금세 지나간다. 몸이 느려진만큼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는 걸까. 그런데, 그런 ‘맹물 같은’ 음악을 들어줄 사람이 있을까.

⟪강이⟫의 첫 장을 펼친 새벽. 보현과의 앨범을 구상하며 지내던 어느 겨울이었다. 검은 개 강이의 이야기를 ‘읽고’ 마지막 책장을 덮던 그 순간의 침묵이, 아직도 가끔 떠오를 때가 있다.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커다란 아름다움이, 무언가를 정화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았다. 비로소 해가 뜰 때까지 머릿속에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보답으로 ⟨검은 개⟩가 수록된 앨범을 보내드렸다. 그러고 보니 앨범에는 ⟨강⟩이란 노래도 있다.

작업 일지를 보다가, ‘정합성’이란 표현에 쿵, 마음이 내리앉는다. 수많은 블루 중에 헬리오 터쿠아즈를 고른 건 ‘그냥 이유 없이 끌려서’라지만, 분명 ‘필연’이었을 거다. 첫 장을 펼친다. 물가에 앉아있는 아이의 등 뒤에 있는 휠체어. 제목 아래로 왜 바다 사자 한 마리가 그려져 있을까. 산은 어째서 이렇게 순둥순둥한 모양새인지. 작업 일지를 읽노라니 모두 남김 없이 마음에 스며들었다.

실물이 훨씬 아름답구나. 믿을 수 없을 만큼.

한 장면을 펼친다.


온갖 무늬의 파문 속을, 사람도 나비도 바다표범도 다 함께 유영한다. 물도 공기도 아닌, 분별 없는 공간 속에 모두가 함께 있다. 그 하나하나가 또렷이 ‘들린다.’ 똑같은 파도가 없고 똑같은 바람이 없듯, 똑같은 듯 결코 똑같지 않은 음들이 번져가는 음악. 그런 물빛의 음악을 나도 꿈꾸고 있었던 거구나.

할 수 있을 것 같다.

용기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