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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 작업을 하다가 목수들과 함께 가구 제작을 했다. 싱크대를 만들었고 난로를 이층으로 올려놓았다. 생태 화장실 외장은 오늘도 계속 작업이다. 매끈한 합판을 입고 있던 화장실이 갑옷을 두른 것 같이 변해가고 있다. 몹시 추운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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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을 만들고 작은 벽장을 만들었다. 귤 수확을 모두 끝냈다. 

일을 마치고 동네 목욕탕에 갔다. 저녁 시간 이 오래된 목욕탕은 일을 마치고 목욕을 하러 온 사람들로 늘 북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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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한 귤을 포장하였다. 화정이 친구와 와서 귤을 조금 가져갔고, 카페 주인 부부께서 직접 볶은 커피콩을 주고 가셨다.

오랜만에 낮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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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귤 포장. 하지만 수확이 끝나도 포장이 남았고, 포장이 끝나도 발송이 남았다. 

선생님께 전화를 드려, 수확 후 수세 관리를 어떻게 해주어야 하는 지, 파지가 된 감귤을 액비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하는 지 여쭤보았다. 늘 그렇듯, 적으세요, 하며 말씀하신다. 아미노액비 40 cc, EM-B 100 cc, 목초액 ?? cc. 목초액 말인가요? 키토 목초액 아니고? 어, 그냥 목초액. 다른 방법이 없어. 열흘 간격으로 뿌리세요. 감귤 액비는 어떻게 만듭니까? EM 액을 자박하게 부어서 6 개월 숙성시켜야 합니다. 6 개월 요?

아무래도 틀린 것 같다. 1층 창고 공간이 마무리 되지도 않았는데, 액비 발효를 할 수 있으려면 적어도 3 월이다. 그때까지 파지가 온전할 수 없다.

읍사무소에 들렀다가 관수 시설 지원 사업에 해당 사항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돌아왔다. 기계 상사에 전화를 해서, 분무기 모터 교체와 점적 관수 설치를 물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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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 시에 눈이 떠졌다. 어제 포장해 둔 감귤을 마지막으로 발송했다. 눈 바람 몹시 부는 날. 시리게 춥다. 이렇게 삼년 차 감귤 농사가 모두 마무리 되었다. 하지만 아직 오두막 일은 남았고.

시내에 가서 난로 가에 쌓을 벽돌을 더 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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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삿일이 끝났다는 걸 몸이 기가막히게 알았나보다. 감기 기운이 찾아왔다. 아니, 감기라고 하기엔 약한데 어딘가 으슬으슬하다. 화콜을 먹어도 이부프로펜을 먹어도 별 소용이 없네. 그냥 과로인가.

동하와 통화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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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이 결혼식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보는 친척들. 나는 나도 모르게 우리 막내 이모를 안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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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렸다는 듯 눈이 퍼붓는 날. 

올 농사를 결산했다. 파지까지 쳐서 총 7톤 가량을 수확하였다. 기대보다 많다. 하지만 걱정이다. 작년 내내 고생한 나무들의 수세는 (화학비료없이) 어떻게 회복시킬 것인가. 이럴 때 질소 비료의 유혹은 너무나 달콤하다. 오두막 일을 다 마무리하고, 액비를 만들고, 분무기 모터를 교체하고, 실린더 대점검을 하고, 관수 시설 달고... 그러면 또 봄인데. 아니 어쩌면 더 늦어질지도 몰라.

사람들이 올해 귤 맛이 좋다, 는 말을 할 때마다, 기분이 좋기 보다 마냥 미안한 마음뿐이다. 어디 내놔도 자랑스런 이 귤맛을 내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니까. 죽자고 열심히 일하며 귤을 만들어 낸 건 수백 그루의 나무들이다. 그 지독했던 작년 여름, 열매가 터지고 타고 잎이 떨어지고 마르는 가뭄을 견디고 견뎌서 나무들이 이 결실을 맺어주었다. 덕분에 우리는 관행 만큼의 수확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뭔가 이상하다. 내 생각에 우린 훨씬 더 적게 수확했어야 했는데. 

경작지에서의 농사란, 기본적으로 수탈의 굴레를 벗기 어렵다. 어떻게든 그 굴레를 벗어나보려 애쓰는 중이긴 하지만 나도 나무들도 땅도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 지, 그때까지 견뎌낼 수 있을 지 잘 모른다. 욕심내지 말고, 한 해 한 해 견디다보면 더 많은 것들이 땅에 쌓이고, 더 많은 생명들이 건너오고, 들어옴과 나감의 균형이 비로소 맞춰지려나. 그제서야 이렇게 단 열매도 풍성한 수확도 마냥 기뻐할 수 있으려나.

병원에 다녀왔다. 온갖 약(내지 보조제)들을 처방해 주신다. 술, 카페인, 밀가루 유제품을 끊으세요, 라고 하신다. 그런데 이게 사는 겁니까.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왔고, 숲길을 걸었고, 상순이가 집에 와서 저녁을 해주었다. 아. 그런데 기타들 상태가 이상하다. 습도가 너무 낮다. 저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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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현 기타 뒷 판이 숙 들어가 있다. 전형적인 건조 증상이다. 어. 뒷판에 크랙이 가 있다. 11월 부터 기타에 전혀 신경을 쓰지 못했구나.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서둘러 가습기를 켜고 기타 가습기에 물을 채워 기타 홀 안에 넣어두었다.

얼마 만에 책을 읽는 지 모르겠다. 병원에 가서 링거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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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mma Humet 과 Pau Figueres의 만남은 늘 상상을 뛰어넘지만, 카탈란어로 삼바까지 부를 줄이야. Pau는 전형적인 (사이프레스 바디의) 플라멩코 기타로 삼바를 연주하고, 드러머는 손으로 수르두와 카혼 소리를 모두 낸다. 기타와 목소리에 언뜻언뜻 비치는 이베리아 풍의 떨림. 원곡은 몇 십 년전 발표된 마이너 발라드란 게 더 놀랍다. 들을 때마다 몸과 마음이 부웅 뜨는 것 같아.

Sonicbrat의 음악을 들으며 숲으로 갔다.

한라산에 왔다는 다올, 기열, 샘을 만나 저녁을 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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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부모님이 오셨다. 공항에서 모시고 와서 점심을 먹고, 오두막으로 왔다. 너무도 맑은 날이다.

전기 콘센트 교체를 하고, 화장실 전등을 바꿔 달다. 다올, 기열, 샘이 오두막에 놀러왔다. 

Julian Venegas의 음악을 조금 더 찾아 듣다. 작년에 Pablo Juárez와 앨범을 냈구나.

Lucas Heredia와 함께한 이 클립은 언제 봐도 참 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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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차례 대신 부모님들과 성당에서 미사를 올리기로 했다. 어머니는 내가 몇 십년 만에 이렇게 홀가분한 설을 보내나, 하며 진심으로 기뻐하셨다. 어설프게 성가를 따라부르며 마음 속으로 기도하던 미사 도중,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들려온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모이고 그것만으로 거대한 음악이 되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진심으로 감사했다. 나도 먹을 것이 있어서, 나에게 먹을 것을 주셔서 누군가에게라도 정말 감사합니다. 바람이 몹시 부는 설날의 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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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은 부산으로 가셨다. 도서관에서 보고 싶은 책을 빌려왔다. 설에 계속 들을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었다. 숲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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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부슬부슬 오는 새벽 세 시. 창 밖으로 불꽃이 튀며 소리가 들렸다. 놀라서 나가보니 집 앞 전선 위에서 연기가 나며 불꽃이 튀고 있었다. 119에 신고를 하자 십 분 쯤 지났을까, 좁은 골목길로 소방차가 들어왔다. 전선이 합선된 거 같은데요. 그리고 한전에서 기사님이 오셨다. 기사님은 사다리차를 타고 올라가서 두쿰한 장갑을 꼈다. 큰 뻰찌 같은 걸로 전선을 툭툭 끊고, 이었다가, 전기테이프로 칭칭 감고 다시 땅으로 내려오셨다. 뭐 이런 걸 가지고 119에 신고를 하셨나요. 집 밖에선 아무리 난리가 나도 집안에는 아무 문제 없습니다. 차단기가 있잖아요. 모두들 가고 다시 조용해진 골목. 여전히 비는 부슬부슬 오고, 검은 전기테이프로 감긴 전선 두 가닥이 자꾸 눈에 밟힌다. 이렇게 가늘고 약해보이는 두 가닥 전선을 통해 우리집의 모든 전기가 들어오고 있다. 연기가 나고 장작 타는 소리를 내던, 누군가에겐 아무 것도 아닌 전선줄 두 가닥의 불꽃놀이가 또 어떤 이에겐 커다란 공포가 되었던, 이른 새벽 혹은 늦은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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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림을 닮은 숲길을 처음으로 걷다. 땅에는 도토리가 가득 떨어져 있었는데 한 시간 남짓 길을 걸으며 나도 모르게 도토리를 한 알 한 알 집어들다 보니 주머니에 꽤 모여있었다. 가시나무 도토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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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이를 데리고 병원에 다녀왔다. 집앞 바다에 풍랑 경보가 내려졌다.

가까운데 나쁜 사람. 친하되 친할 수 없는 자. '오리지널스'에서 애덤 그랜트는 이 '친적 frenemy'이 얼마나 (정신) 건강에 해로운 지를 말한다. '전면적으로 부정적인 관계보다 양면적인 관계가 훨씬 더 해롭다'는 것인데, '감정적 에너지가 더 많이 소비되고 상황을 타개할 방책들이 더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을 중시하고, 관계의 단절을 타부시하는 사회일수록 '친적'관계는 더 많을테고, 사람들은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산다. 자신을 상습적으로 폭행하던 남편의 처벌을 원치않던 아내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부정적인 관계는 청산하고, 애증의 관계는 복구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와 정반대로 해야 한다는 증거가 있다. 즉, 친적과는 인연을 끊고, 적을 내 편으로 만들려고 노력해야 한다.

- 애덤 그랜트 <오리지널스>

 

Up dharm down은 또 이렇게 멋지게 진화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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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에는 마치 다들 연휴가 끝나길 기다렸다는 듯 사람이 많다. 병원 두 군데를 들렀다 오다. 정서적 면역 체계가 약해졌을 때, 더 많은 마음의 상처가 남는다. 저녁 즈음, 멧새 한 쌍을 숲에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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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발이 휘날리다. 목수들이 오지 못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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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로 연통을 설치했다. 생태 화장실의 주물 손잡이를 달았다. 싱크대 안 쪽 선반을 넣고, 일층에 작은 선반을 짜서 달았다. 일층 바닥에 시멘트를 치고, 벽의 퍼티 작업을 더 했다.

상혁이 형이 '맛있는 옷'을 보내주겠다고 했었다. 그 맛있는 옷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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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청 일을 보고, 오두막에 가서 난로 시즈닝을 하고 상혁이 형이 보내준 맛있는 옷을 입고 공항으로 나갔다. 무려 13 명의 식구들이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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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 집앞 정원에는 명자 꽃이 어느새 피었고 수선화 싹이 돋아나있다. 가족들과 오두막에 가서 난로를 때며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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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 어머님과 아침 숲길을 걸었다. 곧게 선 삼나무 사이에 안개가 자욱했다. 서울로, 여수로, 안양으로, 가족들이 돌아가고, 우리는 낮잠을 잤다.

Hugo Fattoruso의 음악을 듣다. 우리 나이로 올해 75 세가 된 뮤지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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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컨택트'를 보았다. 영화를 다 보고 기억에 남는 건 이 문장 하나 뿐: '망치를 쥐면 모든 게 못으로 보이는 법이다.'

오랜만에 긴 요가를 했다. Jorge Aragão을 듣다. 

76년 생의 삼비스타 Pedro Miranda가 부르는 Cartola의 노래를 들으며, 나는 아내에게 '매트릭스의 마지막 장면에서 나오는 네오의 몸동작을 보는 것만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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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맑은 날. 보현 병원에 다녀오다. 

스페인의 어느 연구진이, 자외선 차단에 탁월한 천연 유래의 아미노산을 발견했다는 논문이 독일 화학회지에 실렸다. 밭에서 허옇게 선크림을 덧칠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올까. 

Carlos Aguirre의 Orillaina를 다시 들었다. Juan Quintero, Jorge Fandermole, Mônica Salmaso, Hugo Fattoruso, Quique Sinesi, Sebastián Macchi, Luis Salinas, Francesca Ancarola,.... 모를 땐 보이지 않던 이름도 이제는 보이고, 그들의 소리도 하나하나 들린다. 이래서 '앨범'이란 아직도 의미있고, 소중하다.

가와구치 요시카즈의 농장에 연락을 했다. 그의 책을 읽기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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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선함. 참된 아름다움. 선한 아름다움: 이 조합들은 말이 된다.

아름다운 참됨. 선한 참됨. 아름다운 선함: 이 조합들은 말이 안 된다.

진. 선. 미. 는 순서에도 의미가 있구나.

그러나 작품과 작가의 인간성은 전혀 별개의 것이다.

- 가와구치 요시카즈 <신비한 밭에 서서>

아름다움은 모두 옳은가.

아니.

도대체 어떤 아름다움인가 에 따라.

'스네어와 킥 드럼의 동등한 발란스'를 메모하다.

아내와 술을 많이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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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오는 날. 하루 종일 집 밖을 나가지 않다가, 지영이네와 늦은 점심을 먹었다.

그래. 바리톤 색스폰과 브라스들의 so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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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간에는 푸른 풀 사이사이에 흰 눈이 쌓여있다. 섬에 살다보니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더 깊어졌다. 보현의 상처가 덧나 포비돈을 발라주었다. 벌써 반 년이 지났는데도 아물지 않는 상처에 가엾다. 몹시 추운 날. 눈발이 계속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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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름. 보현이 병원에 간 사이 팥밥을 지었다. 등에 간신히 난 털을 다시 잘랐더니 상처난 자리가 더 휑하다. 홍화 잎과 옆집 할머니가 주신 봄동으로 나물을 만들어 팥밥과 먹었다. 부럼을 깨물며, 어서 낫기를. 어서 아물기를. 바랐다.

바람이 많이 불고 있다. 커튼을 열기만 해도 바람이 몰아들이치는 것 같다. 내 방의 온도는 14도다. 계속 가습기를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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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서운 날씨. 서울에서 내려온 분들과 오두막에서 얘기를 나누었다. 저녁 자리에 기열, 승환이가 와서 저녁을 먹고 늦게까지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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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떴다. 누나와 길게 통화를 하다. 그 사이 우리집을 지나간 안테나 친구들이 선물을 두고 갔다. 보라빛 튤립을 꽃병에 꽂아두었다. 올해 처음으로 섬휘파람새 노래 소리를 들었다.

보현이와 산책을 다녀오는 길에 운섭 형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부탁드린 유채씨를 구했다는 것이다. 얼마만에 보는 얼굴인지. 농사지은 콩과 유채 씨를 감사히 받고 차 한 잔을 함께 하고 돌아가셨다. 

출판사 분들이 주고 간 책, '나무수업'을 읽기 시작하다. 구절 구절마다 눈이 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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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날. 보현과 바닷가를 걸었다. 붉고 푸르고 낮게 유채가 돋아났다. 가마우지가 잠방잠방 물고기를 잡고 있다. 왠일인지 선생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인터뷰를 한 잡지를 보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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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검진을 받다. 

올해 첫 나비를 보았다. 노란 나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