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비가 부슬부슬 오는 흐린 날. 아침부터 사우나를 하고 여유있게 짐을 쌌다. 비행기 시간이 오후 3시 넘어서니까 충분히 여유가 있다. 12 시 즈음 프론트에 짐을 맡겨두고 직원에게 좋은 카페를 추천해달라고 해서 KŪŪK이란 카페로 갔다. 그런데 황당할만큼 커피 맛이 없다. 짐을 싣고 리가 공항으로. 악기만 넣은 트렁크 무게가 무려 25 kg다.


공항은 작지만 꽤 아기자기하고 볼 게 많다. Amber candy (호밀 몰트, 산자나무 열매, 마르멜로가 들어있다) 두 개를 사고, 자작나무 시럽을 섞은 소금 하나, 류바브 캔디 하나를 사서 백팩에 꾸역꾸역 넣었다. 감자 튀김과 맥주를 먹으며 시간을 보내다가 비행기에 탔다.


빌뉴스에 도착하니 가는 진눈깨비가 내린다. 오... 비행기 창 너머 보이는 내 가방, 아니 내 악기들. 공항 청사는 황당하리만큼 작다. 구 서울역 청사 같은 오래된 건물인데 크기는 훨씬 작다. 짐 보관소를 찾지 못해 헤매다 출발 청사가 따로 있다는 걸 알고 - 심지어 도착 청사와 연결도 안 되어 있다 -눈을 맞으며 짐을 끌고 그곳으로 갔다. 짐 보관소에 장비 가방을 맡겨두고 택시를 타고 숙소로.
우즈피스의 아파트는 꽤 넓고 편안한 기운이 감돈다.거실과 주방이 넓어서 맘에 든다(만 내가 싫어하는 불완전 연소 가스 냄새가 나서 창문을 활짝 열어두었다). 짐을 풀고 숙소 근처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All-in-one'이라는 이름의 식당으로 갔는데 리투아니아 음식 뿐 아니라 온갖 세계 음식이 다 있다 (식당 이름을 보라!). 주문한 돼지고기 요리는 소스만 버섯 소스일 뿐, 딱 국산 냉동 돈까스다. 리투아니아 베리 와인 (어떤 베리인지는 모름) 맛은 염팡 와인 같아 신기하다. 밥 잘 먹고, 식당 바로 앞에 있는 Iki에서 잔뜩 장을 보고 - 바나나, 샐러드, 염소젖치즈, 물, 서양배, 피노누와 와인, 산자나무 열매청, 계란, 요구르트, 올리브오일 등 - 돌아왔다.
3/2
(간밤에 느껴보는 - 신물이 올라오는 증상에 잠을 깬 거 같은데, 이게 정말 있었던 일인지 꿈인지 분간이 안 된다.)
잘 자고 (?)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커피집을 검색해서 가보기로. 도보로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곳에 가보기로 했다.

빌뉴스 거리는 이상하리만큼 기하학적, 조형적이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자꾸 카메라를 들게 되는 마성의 도시. 시간이 시간인지라 그런지 (일요일 오전이다) 커피샵 가는 길 도중에 미사를 하는 성당을 많이 지나쳤다. 무심코 들어 간 어느 성당은 예배당이 너무 작아서 문밖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영성체 시간에 흘러나오는 성가가 너무 아름다워 핸드폰을 꺼냈다가, 녹음기를 왜 켜지 않았지 뒤늦게 후회하며 그제서야 필드레코딩을 하기 시작했다.


조금 더 가니 다른 성당이 보인다. 이곳에서 나도 덩달아 기도를 하고 소리 채집도 했다. 두 군데 모두 폴란드와 관련이 있는 폴란드계 성당인데, 한 때 폴란드와 리투아니아가 연방국을 형성한 적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구 소련 시절, 리투아니아의 독립을 촉구하기 위해 요한 바오로 2세가 리투아니아에 방문한 적이 있었고, 빌뉴스에는 Pope John Paul II 순례길이 있다. 인구의 80% 가까운 사람들이 카톨릭 신자라 한다.

꽤 춥다. 조금 더 걸어 커피숍 Taste Map Coffee Roasters에 도착. 줄이 정말 길다. 들어서자마자 안경에 김이 서려 앞이 보이지 않는다. 한참 기다리다 콜롬비아 게이샤 아메리카노 (이날 필터 커피는 안 된다고. 생일 파티를 하고 있다나.)와 시나몬 롤 하나를 시켰는데...

우와. 정말 맛있다. 눈물나게 기뻤다. 시나몬 롤도 감동적이다. (패스튜리나 달달이 류를 별로 안 좋아하는 내가 감동했다면 레알 맛있는 거.) 감동 감동하며 커피+빵을 먹고 파나마 한 잔 또 주문. 콜롬비아 보다는 별로였지만 참 훌륭했다. 감동하는 모습을 들켰는지 나오는데 종업원이 커피가 어땠는지 물었다. 나는 침을 튀기며 정말 좋았다고 슈퍼 칭찬을 해주었다. 그는 옆 집(?)에 더 심도있게(!) 커피를 즐길 수 있는 공간 (같은 곳에서 운영하는)이 있다고 했다. 오. 내일 와 봐야지.

돌아가는 길, 현대미술관에 들렀다. 두 개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는데, (1) <Long, Not Sure What For>전시와 (2) <From Within>. (1)은 놀랍게도 'solastalgia'를 주제로 한 전시였고, (2)는 심리학과 예술, 역사에 대한 전시였다. 둘 다 큐레이션이 매우 섬세했고, 전시의 주체가 명징해서 참 좋다. (2) 전시가 조금 더 컸는데, 3층 전시장에 올라가자마자 큰 공간을 울리는 음악이 매혹적이었다. 아무리 credit을 찾아도 작곡가 이름을 찾을 수 없었는데 도록을 뒤져보니 Karolina Kapustaitė라는 이름이 나온다. 충만한 마음으로 길게 전시를 보고, 기념품 샵에서 책, <The Joy of Electronic Music>을 사고 (점심을 건너 뛰었다.) 많이 많이 걸었다.

식료품을 사러 여기저기를 뒤지나가 information center에서 알려준 Lindl을 찾아 (아마도) 가장 크고 번화한 거리로 들어섰다. 고기와 샐러드, 양배추 절임, 감자, 블루베리 등등을 사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영화 촬영 (근대물)을 하고 있었는데 촬영을 하지 말라고 하기에 카메라를 목에 걸고 비조준으로 셔터를 살짝 눌렀다. 조금 더 걸으니 커다란 광장이 나왔다. 민속 의상처럼 보이는 에스닉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며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무언가를 나눠주고 있었다. 한 봉지 받아 열어보니, 설탕을 묻힌 땅콩과자류다.
일찌감치 (5시 즈음) 저녁 준비를 해서 먹다. 감자를 삶고 샐러드도 먹고, 스테이크 순삭. 쇼파에 누워 Multilux (에밀스의 아티스트 명) 라이브를 보는데... 오... 스며든다... ESG 퍼포먼스에서 마리오가 썼던 베이스 라인 소리도 자꾸 생각 나.
Multilux 역시 굉장히 원초적인, 날 것의 organic한 애시드 테크노를 하는구나. 미술관에서 사온 책이 생각보다 재미있어서 올가 토카르추크의 책을 제쳐두고 계속 읽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정말 너무도 갑자기 소시지가 먹고 싶은 것이다. Iki에 가서 소시지 하나를 사와서, 감자, 양배추 절임과 흡입하고, 잠들다.
우리, 음악가는 사실 음악을 창조하는 원천이라기 보다, 각자의 기억이나 감정을 소리로 변환해내는 하나의 매개체에 더 가깝다.
-Matas Petrikas <The Joy of Electronic Music>
3/3
부슬부슬 비. 고민고민하다 Linas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의 스튜디오에서 2시에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아침을 먹고, 씻고 - 샤워 부스가 따로 있는줄도 모르고 어제는 욕조에 있는 샤워기로 어렵게 샤워를 했다 - 어제 갔던 커피숍을 가려다가 다른 곳으로 갔다. 실은, 다른 곳을 걷고 싶었다.




Lindl로 가는 길을 따라 대략 25분 가량 걸으니, Kavos Reikalai라는 카페가 나온다. 르완다 원두로 드립 한 잔을 주문했는데, 입맛에 맛지 않았다. 카페에서 부산 식구들과 잠시 카톡 통화를 하고 다시 걸어 숙소로 - 일부러 둘러둘러 걸어왔다. 점심을 잘 차려 먹고, Linas의 스튜디오로 출발하려는데 Linas에게 전화가 왔다. 10 분 안에 도착하겠다고 하기에 나는 20 분은 더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어제와 또 다른 코스 - 우즈피스 남서쪽 방향으로 걸어갔다. 올드 타운을 빠져나왔다 싶을 무렵, 왼편 멀리 누가 봐도 기차역스러운 건물이 보이고 (나중에 보니 역시나 기차역이었다), 길 오른편에 'GOGIGUI'라고 적힌 한국 식당 간판이 보였다. 조금 더 걸으니 LInas (처럼 생긴 자)가 스튜디오 앞에 서 있다. 생각했던 것보다 꽤 어린 친구다.
그의 스튜디오 겸 쇼룸은 Lakeside Synths라는 신스샵도 겸하고 있는데 그곳에서 잼, 쇼케이스, Bullgfrog 같은 악기를 이용한 아이들 교육 등등을 다 한다고 했다. 진열된 악기는 별로 많지 않았지만 에리카 신스 모듈들, 데스크탑 악기들이 정말이지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커피 생각 있냐는 말게 이끌려 간 곳이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는) 한국 스타일 카페였다. 나는 (동서식품) 생강차를 받아 들고 나왔는데, 카페 안쪽에 한복도 걸려있고 업라이트 피아노도 있었다. 얘기를 나누는 한국 사람도 두 명 보았다. 신기한 공간이었다.


그 사이, Linas의 친구 Leon이 왔다. 그들은 매주 월요일마다 그들만의 리추얼처럼 테크노 잼을 한다고 했다. 2x104 HP짜리 에리카 신스 케이스를 꺼내놓고 두 사람은 패칭을 시작했다. Linas는 Modor 신스 하나, ES의 zen delay, 블라블라 버브를 쓰고 모듈셋은 두 개를 쓴다. 둘 다 1010music Blackbox를 쓰는데, Linas는 Oxi를 신스 시퀀서로 쓰는 듯 했다. Leon은 모듈 셋 1개에 blackbox를, 마스터 단에는 Analogue Heat FX+를 쓴다. 믹서를 OTO Boum로 연결해서 PA로 나가게 하고 음원은 Zoom 핸디레코더 (H4)로 녹음. 시그널 패스를 보는 것 만으로도 재미있다.


패칭을 마치고 자연스레 연주 겸 리허설을 시작했다. 나는 곁에 서서 재미있게 보며 사진도 많이 찍어주고 얘기도 드문드문 나누었다. 그렇게 놀다가 기념 사진도 찍고 인스타 맞팔도 하고 다음에 혹시 유럽에 오게 되면 꼭 연락하라고, 빌뉴스에서 공연을 기획해보자는 말을 남기고 바이바이. 다시 걸어 숙소로 갔다. 가는 길에 Iki에 들러 물과 맥주 두 캔을 샀는데 한 캔을 살까, 두 캔을 살까, 어떤 종류를 살까 꽤 진지하게 고민을 했다. 숙소에서 요리를 해서 샐러드부터 천천히 먹었다. 맥주도 마셨고 소시지는 너무 짜서 데쳐먹었다. 스테이크까지 다 먹고, 냉장고 정리를 대략 해 두고 , 연어는 얼려두고, 짐도 조금 정리해 두고 잠들다. 여기 와서 처음 알람을 맞춰두었다.
3/4
6시 15분. 알람에 일어나서 정말 간단히 아침을 먹고 짐을 싸고 씻고 버릴 것은 버리고 떠날 준비를 했다. 음식은 정말 버리고 싶지 않은데... 조금 남은 건 어쩔 수가 없네. 프렌치프레스도 어쩔 수 없이 두고와야 했다. Bolt 택시를 불러놓고 내려갔는데, 아뿔싸, 냉동고에 있는 연어를 두고 왔구나. 하지만 이미 늦었다.
공항에 도착해서 화장실에 갔다 짐 찾는 곳으로 갔다. 셔터가 내려와 있다. 8시 25분에 open한다는데, 잠시 누가 왔다가 또 셔터를 내리려고 해서 급히 짐을 찾았고, (다행이었다) 체크인을 하고 아담하고 소박한 공항 구경을 하다 치즈를 하나 사고 라운지에서 카푸치노를 마셨다. VNO-WAW 편은 1시간 거리인데도 제법 기내식이 나온다.
바르샤바 도착. 2 시간 남았다. 면세점에서 치즈를 하나 사고 비행기를 기다렸다. 신기하게도 공항 풍경이 익숙하다. 비행기 탑승. 기내에서 <Remi sans familie>를 보고 잠을 청하다가 포기하고, 지금 이렇게 일기를 쓰고 있다.
3/5
아침 7시 인천 도착. 예정 시각보다 빨리 왔다. 이 시간에 도착하는 사람, 어디론가 가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니. 공항 사우나에 가니 찜질방은 그냥 수면실이다. 수면실에 누워도 잠은 오지 않았지만, 충분히 쉬다가 씻고, 버스를 타고 김포공항으로. 그리고 제주로.
제주의 체감기온은 정말 엄청나구나. 기온은 11도인데 체감기온은 거의 0도야.
3/6
묵음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얘기를 나누고 휴식. 오두막에서 점심을 먹었고, 두치를 만났다.
3/7
방 정리. 리가에 가져갔던 장비를 풀고, 전선을 하나하나 감아 정리했다. 이 많은 장비들과 그 긴 여행 동안 무탈히 잘 돌아왔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녹음 기능이 고장났다 생각했던 UHER 레코더를 꺼내 점검을 해보았다. 아무래도 독일로 보내야겠구나, 생각하면서 자세히 헤드를 보니 녹음 헤드에 엄청나게 때가 끼어있다.
무수이소프로필 알콜을 가져와 헤드를 닦고 테스트를 해보니... 와 잘 된다! (너무 다행이다.) 기타 케이스를 (오두막에서) 가지고 왔고, Nawaar에게 메일을 보냈다.
3/8
세종 공연 미팅. 보현 약을 타러 병원에 들렀다. 선생님께서 햄프시드 오일을 주셨는데 일단 하루 4 방울로 시작해보기로 했다. 시내에 가서 일렉기타 셋업 + 줄 갈기.
다음 공연 때엔 어쿠스틱 기타 앰프 - Shertler? AER? - 를 써보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보다.
Nawaar에게서 답장이 왔다. 시리아에 있는 가족들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아서 당분간을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단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시리아 상황이 심각해 보여서 걱정이었는데, 다 이해하니 걱정 말라고, 모두 무탈하기를 기원한다고 답장을 썼다.
3/10
잠을 많이 설친 밤. 11시 반에 보현이 깬 후 다시 잠이 들지 않았다. 밀린 일기를 쓰고 호흡 가다듬기.
안과에 다녀왔다. 안약을 세 종류나 받아왔다.
3/11
기타로 작업 다시 시작. 오래된 노래 (Song#8)의 TAB 악보를 찾았다. 이런 흐름을 대체 어떻게 만들어냈을까? 나의 과거가 때론 나를 너무 놀라게할 때가 있다. 그때의 나는, 정말 나일까. 나였을까.
연주 누나와 통화. (7월 말 전시 관련)
음악은 우리를 동물로도 만들 수 있고, 신으로도 만들 수 있다.
-Matas Petrikas <The Joy of Electronic Music>
Luan과 첫 수업.
3/12
과수원 창고 정리. 귤박스 중 곰팡이가 핀 건 버리고 괜찮은 것들을 골라 당근에서 나눔을 했다. 3 kg 짜리 박스는 택배 박스로 쓰면 좋겠다 싶오 그대로 두고, 또 두치를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데크 경사면에 미끌림 방지 스티커를 붙였다. 컨테이너를 잘 정돈해 쌓아두었다. 포어 공부에 다시 불을 붙였다. 좋은 선생님을 만난 것 같아 다행이다. (4월엔 주 당 2회 수업을 예약했다.) <Água>관련해서 메일 답장이 왔다. USP 윤정임 교수님이 번역을 하셨다는데 직접 연락드려야 할 것 같다.
동백꽃을 바라보다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하나의 삶을 산다는 것. 한 가지 일을 해 가는 것. 한 사람을 사랑하고, 한 곳에 오래 사는 것. 그 모두가 얼마나 어렵고 위대한 일인가.
제주 아그로와 통화. 비료를 밭에 두고 가시라 전했다.
3/13
오전 음악 작업: 소득 없음

과수원 학교 정식 개학. 의례하던 고사도 지내지 않고 바로 일을 시작했다. 작년 가을 비료를 건너뛰었기에 봄 비료를 주기로 했다. 얼마만의 봄 비료일까. <얼라이브 슈퍼 220> 10 포를 받아 뿌리다. 비료를 뿌리기 전에 두치가 밭에 왔다. 유박 비료를 먹을까 걱정이 된 우리는, 당분간 두치가 외출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옆집에 부탁을 했다. 길면 한 달이 될 수도 있다는 말에 두치 엄마는 난감에 하며, 바깥에 내 보내달라고 두치가 그렇게 떼를 쓴다고 말씀하셨다.
3/14
오전 작업: 무소득. Song#7, 8은 정말 지독하게도 가사가 안 붙는구나. 곡이 너무 센가.

연주 누나와 통화. 전시 얘기를 나누고, 보현과 낮 산책을 하고 밭으로. 전정 시작. 워밍업 겸 두 그루를 꼼꼼히 하고 도포제를 바르고 오다. Felco 980 (가위 날 보호 및 윤활제), 981 (수지 세척제) 가 떨어져서 주문을 했는데 981은 국내 재고가 없는 모양이다. 친환경 자재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시켰지만 꽤 비싸다.
낮 시간 햇살이 제법 따가워졌다. 과수원 어디를 가도 어디를 봐도 평온하고 아름답다. 일을 마치고 한참을 앉아 나무를 바라보며 사진기를 들었다. 저녁을 먹으며, 아내에게 올해에는 꼭 8-9월에 보르도액 방제를 (적어도 두 번은) 해야겠다고 얘기했다. 그러면 가을에 발진이 좀 덜 하려나.
남은 귤 박스를 당근에서 만난 분께 드렸다.
3/15

날이 다시 추워졌다. 재주도 좋아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라트비아에서 사온 산자나무 차를 선물로 주고 왔다. Boss CE-2W 페달과 Ghz 플러그인 두 개를 나에게 주는 생일 선물로 주문했다.
긴 시간 정리하지 못했던 필름 사진들을 정리했다.
Song#8의 윤곽이 조금 보인다. 워낙 unique한 곡이라 쉽지 않지만, 실마리를 잡았다는 것, 그것 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3/16
몹시 추운 날. 밤에는 눈이 올지도 모른다. 다시 보이차 마시기.
임윤정 선생님께 <Água> 노래를 발표해도 괜찮은지 허락을 구했다.
Song#8 거의 다 만들다. 믿을 수가 없다.
3/17
역시나 춥고 스산한 날.
안과 진료를 받고 오다. 망막에는 문제가 없는데, 안약이 듣는 것 같으니 약을 좀 더 넣고 2주 후에 보기로 했다. 사흘치 먹는 약 (하루 1 번)을 받아왔는데, 지난 번에 내가 이 약을 하루에 다 먹어버렸다는 것을 (하루 3번) 알아버렸다.
Song#8이 꽤 다듬어졌다. 95%는 된 것 같아.
3/18
간밤, 외국에 나가는 꿈을 두번이나 꾸었다. 일어나보니 임윤정 선생님의 메일이 와 있다. Pau에게 메일을 보냈다.
생일.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중산간길을 달렸다. 춥고 시린 날이지만 하늘로부터 한아름 축복을 받은 것 같다. 길게 금주한 아내와 함께 와인을 마셨다.
몹시 추운 날. 눈이 내렸다. 마당에 딱새 한 쌍이 날아왔다.
Song#8이 99% 완성되었다.
나의 잘못이 없는 일의 결과를 두고, 실망도 기대도 말자.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나는 끝까지 다정한 사람으로 살고 싶다.
긴 시간 여전히 잘 지내주고 있는 내 몸 구석구석에게 감사했던 하루.
3/19
여전히 추운 날. 바람은 차지만 햇살은 한 없이 좋다. Song#8 99.5% 완성?

밭일. 전정하고, 도포제 바르고 오다. 아그로에서 투보르탄을 두고 가셨다.
<Água>를 여자 가수와 불러야겠는데 누가 좋을까, 고민한 날.
모하니님과 한 시간 반 넘게 통화.
3/20
담 너머로 옆집 형님을 만났다. 우리집 소나무에서 떨어진 솔잎을 아침마다 태우신다는데 너무 미안해서 형님 댁 옆 마당을 깨끗이 쓸었다.
아내와 다투었다.

투보르탄을 두고 가셔서 오두막에 잘 챙겨두었다.
3/21
바쁜 날이었다. 오전 내내 <Água>데모 작업. BPM을 99까지 올리고 키를 반 키 낮췄다. 30년 전 쯤 샀던 조믹 채널스트립을 진지하게 제대로 써보았는데, 이거 의미가 있다. 여지껏 노래 녹음을 할 때 컴프레서를 한 번도 안 썼는데, 노래 부르기가 훨씬 편안하다.


오후 밭일. 전정하고, 나무 연고 발라주고, 약줄 정리를 하다보니 많이 늦어졌다. 목욕하고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다시 데모 작업. 촘촘했던 하루.
Chico와 Pau에게서 메일이 왔다. Chico와는 5월 중 작업을 하게될 듯하고 (무척 기쁘다!) Pau는 Dídak이라는 드러머를 추천해주었다. 덕분에 알게 된 Alex Serra의 <Everything is changing>를 보았고, 그가 운영하는 Trampoline studio의 소개 영상을 보았다.
이 세상에는 이토록 각자의 방식으로 creative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구나. 갇히기 싫고, 답답하면, 저 멀리 그리고 더 넓게 시선을 보내보자. 세상 어딘가에 나와 조응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세상이 있다.
밤. <Água> 데모 노래 녹음.
3/22
오전에는 <Água> 데모 믹싱 점검. 점심을 먹고 늦게까지 밭일 (전정, 도포제 바르기) 을 하다. 목욕탕에 갔는데 유난히 일을 마치고 온 농부들이 많다. 나보다 모두 나이가 많은 분들이다.
Pau에게 스템 보내고, 임윤정 선생님께 데모 보내드리고 답장을 쓰다. Bruna가 자기도 참여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저녁을 먹고 Song#6 꺼내보다. Bruna의 매니저에게 문자를 보냈고 여기저기 답장을 보냈다.
3/23
Song#6 노래 녹음. 믹싱. 데모 만들기.
재주도좋아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밭으로. 전정과 도포제 바르기를 하는 동시에 1000L 물 받기 신공. (내일 방제 준비) 일을 하는데 동네 닥스훈트 한 마리(갈색 단모)가 와서 물끄러미 나를 보다가 휘리릭 사라졌다.
분무기 커버를 덮어두는 걸 깜박 잊어서 저녁을 먹고 다시 밭으로 갔다.
여전히 평화로운 과수원. 전쟁 같은 시국.
3/24
Carlos Aguirre가 답장을 보냈다. 노래가 들어보고 싶다고 한다.

방제 #1-1: 보르도 2 kg + 사계유 4L. 그런데 200L를 남기고 분무기가 멈춰버렸다. 전기공사 업체, 기계상사 사장님께 급히 연락을 드렸다. 일단 내일 전기업체에서 오기로 했다. 380 V 차단기를 바꿔보기로 하다.
Song#8 데모 만들다. 임윤정 교수님이 손수 발음 교정을 위한 동영상을 녹화해서 보내주셨다.
3/25
차단기 교체. 아무래도 모터가 나간 것 같다. 기계상사 사장님께서 내일 (내가 없더라도) 일찍 오셔서 교체를 해주신단다.
3/26
Chico, Carlos에게 노래를 보냈다.
비둘기 부부가 소나무로 온다. 작년에 직박구리가 둥지를 틀었던 가지를 눈여겨보다 작년 둥지를 마당으로 내쳐놓은 걸 보고 참 영리하구나, 생각했다.
기계상사 사장님을 만나러 아침 일찍 밭으로 가는 도중, 사장님이 일정을 급히 바꿔 내일 오후에 오시겠다고 연락을 주셨다.

성당에 가서 기도를 했다.

3/27
Pau가 녹음한 <Água>가 왔다. 처음 들을 때에는, 변한 게 별로 없고 그저 밋밋한 느낌이었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은은하게 좋은 감정이 솟는다. 놀랍다며 Pau에게 답장을 보냈다.

분무기 수리. 사장님이 오후에 오신다 했지만 점심 무렵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급히 밭으로 갔다. 분무기 커버를 씌우고, 다시 집에 왔다. 그리고 사장님 연락이 와서 또다시 밭으로. 예보보가 비가 더 많이 온다. 모터를 갈고 새 모터에 풀리를 끼우는데... 안 들어간다. 망치질을 견디지 못한 주물 풀리가 결국 깨져버렸다. 작업 실패. 집으로.

밤에 Andre (Bruna의 매니저)에게 메일을 쓰다.
마지막 남은 Song#6가, 정말, 도저히 풀리지 않는다.
3/28
Song#6. 아무 진전 없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감사 기도를 드리고 왔다. 타이어 공기를 채우고 투보르탄 (액상 보르도액)을 받아 두고, 아내를 데리고 왔다. Pau에게서 메일이 왔다.
3/29
Chico에게서 메일 오다.
기계상사 사장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모터 교체를 다 해놓고 가신다고 말씀하셨다. 스위치도 고장이 나서 고민을 하다가 그냥 직결로 연결해 두었다고. 오후에 밭에 가서 테스트를 하고 물 200L를 받아두고 왔다.

Song#6 드디어 완성. 꼬박 3년 반이 걸렸다.
3/30
날이 몹시 춥다. Song#6 가사를 다듬고, Chico에게 메일을 쓰고, 쉬다.
3/31

방제를 하러 갔으나 또 분무기가 작동을 하지 않는다. 한전 기사님이 오셔서 컨센트와 플러그에 문제가 있다고 하셨다. 전기공사 사장님, 기계상사 사장님께 전화를 드렸다. 모레 기계상사 사장님이 오시기로 약속하고, 전정+도포제 바르기만 하고 돌아오다. 손톱이 자꾸 깨지는데 손톱 시술을 해야 녹음을 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