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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1-5/1

 

4/21

문호와 제익이 왔다. 밤 늦게 도착한 녀석들과 저녁을 먹고 참 오랜만에 늦게 잠이 들었다.

 

4/22

오전에 과수원에 가서 첫 방제를 했다. 1000L 물 + 보르도액 10kg + 기계유유제 20 L. 점심 즈음 배 대표님을 만나서 과수원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고 다시 과수원으로 왔다. 방제를 하던 중에 나뭇가지에 앉아있는 뱀 한 마리를 보았다. 뱀은 인기척을 느끼자 마자 꼼짝도 없이 그대로 있었고 보르도액을 뒤집어 썼다. 혹시라도 몸에 안 좋으면 어쩌나.  

많은 사람들에게 프린스는 1984년 퍼플레인 앨범의 어드메에 멈춰있는 것만 같다. 프린스의 전성기가 그때니까 그런 거 아니냐고 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게 프린스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쉼없이 앨범을 냈던 아티스트이고, 나는 아티스트에게 '전성기'란 단어 따위는 없다고 믿는다. 

가끔은 4월에도 눈이 온다고 했던 그가, 4월의 어느 날 떠났다.

 

(...)

가끔은 4월에도 눈이 내리고

가끔 나는 우울해지는데

가끔은 삶에 마지막 따위란 없으면 좋겠다 싶은데

그런데 사람들은 

세상의 좋은 것들은 영원할 수 없다고들만 말한다

난 봄을 제일 좋아했지만

연인들이 빗속에서 손을 잡는 그 계절, 봄

난 이제 트레이시의 눈물만 생각나는 걸

사랑으로만 울고

아픔으로는 운 적 없는 트레이시는

난 강하거든, 죽는 것 따위 겁 안나,

죽는 게 무섭지 않다, 라.

아니, 트레이시 사진을 보고 있자니

보고 싶은 내 친구, 

트레이시처럼 울 수있는 사람을 

난 한 번도 본 적 없다는 걸 알았어

가끔은

4월에도 눈이 오는 법

아주 가끔 난 기분이 좋지 않아

가끔 난 이 삶에 끝이란 없으면 좋겠다 싶어

세상의 좋은 것들은

영원할 수 없는 거라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나는 천국이 나오는 꿈을 자주 꾸는데

난 알고 있어요

트레이시는 거기에 있으며

새로운 친구도 사귀었을 거야

4월에 왜 눈이 내리는 지

트레이시는 알고 있을 거야

그리고 머지 않아

트레이시를 만나러 다시

나는 그곳으로 갈 것입니다

(...) 

문호, 제익과 고기를 먹고 소주를 마셨다. 처음 니들을 만났던 그 해, 4월 어느날에도 눈이 내렸었지. 부산 촌놈이었던 나는, 서울의 날씨는 원래 그런가 보다, 했었다.

 

4/23

이미 우리집 처마 아래엔 몇 개의 제비집이 있는데도 올 봄 새로 날아온 제비들은 영 마뜩찮은 지 새로 집을 짓기 시작했는데 부부 제비 두 마리는 오로지 부리 하나로 흙과 지푸라기를 물어다가 해가 떠있는 시간 내내 쉼 없이 빈벽에 뚝딱뚝딱 둥지를 지어내고 있다 집을 짓는다. 

친구들은 낮술을 거하게 마시고 저녁에도 술이다. 제익은 뜬금없이 셋이 같이 사진을 찍고 싶어했다. 굳이 사진을 남기고 싶은 그 마음이 뭔지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알고 있다.

 

4/24

아침 일찍 친구들을 배웅해 주었다. 내 집 내 방에 앉아 있는데 엠티 온 기분이다.

돌아간 뒤 허전함의 크기가, 2 년 전과 사못 다르고 나는 진심으로 친구들의 건강이 걱정되었다. 우리는 아직도 서로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까.

 

4/25

하루종일 연습. 윤성씨에게 악보를 보냈다.

 

4/26

윤성씨를 오랜만에 만났다. 짧고 반가운 연습을 하고 헤어졌다.

 

4/27

기타를 들고 봉식이네로 향했다. 비가 오는 중산간은 추운만큼 이국적이다. 줄과 인토네이션과 셋업의 관계를 아직도 잘 모르고 있는 내가 한심하다. 그래도 배운 건 있으니, 아무래도 새들을 교체하는 것이 낫겠다, 싶어서 부탁을 드렸다.

봉식이네와 지영이네로 가서 저녁을 함께 먹었다. 우리는 오래 전부터 막연히 생각해 오던 오두막 얘기를 나눴다. 두 가족은 모두 직접 지은 집에서 살고 있고, 늘 우리에게 이젠 남이 지은 집에서 살 수가 없다, 는 얘기를 하셨다. 목수인 지영이 아버님이 로이드 칸의 책 두 권을 빌려주셨고 우리는 늦게까지 얘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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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돌아오니 현관에서 자던 제비들이 둥지로 옮겨 잠들어있다. 손수 지은 집에서, 첫 잠이 들었다.

 

4/28

비가 몹시 내렸다. 프로그램을 구해서 이리저리 설계를 시작했다.

 

4/29

새벽 일찍 서부두 시장에 갔지만 살 것이 마땅찮아 빈 손으로 돌아왔다. 줄자를 들고 과수원에 가서 공간을 체크했다. 나름대로 몇 가지 원칙을 세워보기로 했는데, 첫째. 과수원의 나무를 옮길 수 있으면 옮기되 베지 않는다. 둘째. 작게 짓는다. 10 평을 넘기지 않는다. 셋째. 음악 작업 공간과 농 작업 공간은 분리한다. 넷째. 화장실은 작더라도 가장 편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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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자 초록빛 보리 이삭이 파도가 되었다. 접목한 나무에서 보랏빛 레몬 순이 돋았다. 하염없이 예쁘다. 

지영이에게 '아직, 있다.' 악보를 보내주었다.

 

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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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그림을 그리며 두 가지 문제를 생각했다. 우선은 나무를 베지 않고 오두막을 지을 수 있는 공간이 매우 좁다는 것. 또 하나는, 해의 방향과 농로의 방향이 어긋나 있다는 점이다. 요약하자면, 단층 구조는 힘들 것이고, 1층과 2층의 각도 역시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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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목이 잘못 된 나무 가지를 잘라주고 수지를 발라주었다. 오후에는 풀님 가족이 와서 차 한 잔을 대접해 드렸다.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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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먹으며 아내가 따라 그린 클레의 드로잉을 보았다. 단순한 선 하나로 그린 그림이 알 수 없는 위로가 되었다. 아내는 클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선이란 점이 떠난 산책이다.' '드로잉이란 선이 떠나는 산책이다.' 

나는, 생을 걸쳐 떠난 한 사람의 산책이 곧 한 사람의 삶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오늘도 산책을 했다. 시간과 헌신을 나누지 않은 관계를 의심하고 있음을 알았다. 

전화기가 고장이 났다. 며칠을 전화기 없이 지내야한다.

페이스북을 그만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