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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5/31

5/1

라이브 리허설. 러닝 타임을 재보니 1시간 21분 52초인데, 너무 긴가.

예초. 연습.

5/2

물 받고, 밭일하다. 오랜만에 만난 두치. 귤꽃이 더없이 아름다운 날.

5/3

방제 #1. 벡시플랜트+사계유.

5/4

새벽. 리허설.

낮. 방제 #2. 어제와 같은 recipe.

방제 준비를 마치고 일을 시작하는데 분무기에 압이 걸리지 않았다. 어딘가에서 새고 있는 거다. 밭 여기저기를 뒤지며 어디서 약이 새는지를 찾는데, 저 멀리 낡은 커넥터에서 약이 뿜어져 나오는 걸 찾았다. 농협에 가고, 기계수리센터에도 가보고 해도 방법이 없던 터, 새 금속 밴드를 사와 겨우 방제를 마쳤다.

꽃향기에 잔뜩 취하는 날들.

5/5

어린이날. 보현에게 우유를 주었다.

5/6

아이들을 집으로 불러 리허설을 했다. 아이들은 이제야 대체 내가 뭘 하려 하는지 이해하지 않았을까. 한 시간 반이 순삭이었다는 화정의 말에 기운이 났다. 다들 샴페인과 피자를 나눠먹었고, 기연씨는 Aviiir를 테마로 디카페인 커피를 개발해 가지고 왔고. 공연 '앞풀이'를 즐겁게 한 날.

5/7

누나가 보낸 선물을 받고 어머님이 정말 기뻐하신다.

5/8

아내가 만든 귤꽃 물양갱을 한 수저 먹으니, 더없이 짧은 이 봄이 내게 들어오네.

5/9

오두막에서 VU meter를 가져와 연습. 확실히 편하다. 너무 좋다. 반드시 필요할 것 같다.

묵음에 가서, 공연 때 선물할 드립백 라벨에 100 만원을 새겨달라고 졸랐다. 1억은 인쇄 한도 초과.

5/10

아버님 기일. <Transcendence>를 마무리 지었던 성당에 가서 기도를 했다.

어쩌면 아무 것도 사라지지 않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건 또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삼나무길을 걸어가는데, 보현이 나를 어디론가 이끌고 간다. 보현과 내가 간 곳, 벤치 옆 벚나무가 이렇게 컸나. 껑충 키가 커 있는데, 아, 여기 온지가 꽤 되었구나. 아직도 잊을 수 없는 몇 년 전 어린이날. 뭐가 그리 행복했는지 함박 웃음을 짓던 곳으로 나를 데리고 온 보현.

돌아오는 길, 봄이든 선생님 댁에 잠시 들러 기념촬영.

5/11

집 앞에 작은 돌 하나. 갓 변태한 무당벌레가 앉아있다. 다칠까, 담장 위로 돌을 옮겼다.

Harmonic Oscillator 패치 기억하기. 하지만 소용없다. 아날로그 신스는 그때 그때 소리가 달라...

5/12

5/13

라이브 연습.

봄이든 선생님 댁에 다녀오다. 장미향 가득한, 볕 바른 정원. 멀리 보이는 한라산. 비파 나무. 보현이 얼굴보다 큰 이름 모를 열대 꽃. 모든 게 밝고 화사하다. 나는 잔디 비료 두 봉을 선물로 두고, 보현은 마당 여기저기 선생님께 메시지를 남기고.

5/14

메리 올리버의 목소리와 보현의 목소리를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다니.

5/15

음악 Aviiir와 커피 Aviiir.

부처님 오신날. 불경하게도 온 가족이 고기를 먹었네.

anemoia에 대하여 생각. 이를테면 <A Kiss to Remember> 같은 것.

5/16

지구상회에서 리허설 그리고 회의. 요즘 나는 '노래가 제일 쉬었어요.'를 절감한다. 한 시간 넘게 리허설을 하고 나면 그야말로 진이 빠지는데,

왤까.

북토크 때도 그랬는데. 노래는 아무리 불러도 나를 소진시키지 않는데, '말'과 '연주'는 그렇지 않다.

장비 해체, 옮기기, 다시 세팅하기. 아.... 이 엄청난....

5/17

문득, 언어에 푹 빠져있던 두 달 전의 내가, 멀고 그리워졌다.

제주 항공 라이브. 키티가 나를 반겨주네.

공항 옆 야외 무대에서 노래를 하다. 비행기 소음 속에서 노래해본 적도 처음이고 바다를 등지고 <바다처럼 그렇게>를 부른 것도 처음이다. 안테나 사람들, 승연 샘, 진아 만나서 반가웠고, 이태원 참사 유가족이 건네주신 연보라 리본이 인이어 팩에 들어있어 얼마나 반가웠는지.

현우씨가 DM으로 문득, 내가 살던 집 역촌동 지번을 물어보셨다.

한정판 원두를 묵음에서 '항그' 주고 가셨다. 귀하게 나눠야지.

5/18-19 Ambient Sessions

공연은,

기대와 상상보다

훨씬

대단했다.

꿈같고 기적같은,

5/20

집 작업실 대대적인 리모델링. 떡 본김에 제사지낸다고, 악기 빠진 김에 작업실 정리하기로.

늘 머릿 속에만 있던 리모델링을 하나씩 해본다. 앰비언트 라이브와 곡 작업에 어떻게 최적화 시킬 수 있을까. 손이 닿기 쉽게, 꼬이지 않게, 언제라도 어느 장비든 곧바로 손댈 수 있게. 소리를 낼 수 있게.

스마트폰 메모보다 종이와 연필, Push보다 APC 40이, 터치 스크린보다 노브와 페이더가 나는 훨씬 좋다는 걸 또 깨닫는다.

5/21

토양 구리 함량 결과지가 왔는데,

단위도 없이 숫자만 덩그러니. 이게 도대체 뭡니까?

5/22

휴식.

혈형, 상순에게 커피 보내다.

5/23

라이브 음원 믹싱. 방역복 주문.

5/24

밭일 그리고 믹싱.

앰비언트 라이브 제안을 받다. 이럴 땐 섬에 산다는 게 큰 핸디캡이구나.

5/25

믹싱. 육아. 장터 가기. '바라던 바다' 행사에 못 가서 아쉽고도 애들한테 미안하다.

믹싱을 하는데, 검은이마직박구리 한 마리가 문 밖에 와서 노래를 부른다. 처음엔 찌르레기 류일까, 생각했는데 곰곰히 생각해 보니 검이직이다! 몇 년전 밭 근처에서 종추를 했던.

5/26

오전에 보현을 오두막에 데리고 가 믹싱을 했다. 보현 담요를 오두막에 깔아두기 곤히 잘 잔다. 오후에 아내가 보현을 데리고 갔다. 보현이 가고 나서 검이직이 찾아와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주고 갔다.

언젠가부터 시리가 포어로 자꾸 말을 한다. Pare!

5/27

이른 아침, 향기로운 베이비파우더 향이 나는 정원을 걸었다. 멀구슬나무 꽃이 한창이구나.

<Freeze, Die, Resurrect>와 <산책 갈까?>의 주파수 특성이 너무 달라 이 간극을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 어떻게 플로를 자연스럽게 가져갈까, 고민이다. 단순히 음압 차 때문은 아닌데.

믹싱. 농장일을 하다 비가 내려 철수.

5/28

밭일. 새벽 바람은 찬데 햇살은 따갑다. 점심을 먹으며 보현이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행복했다.

창고 램프 옆에 쌍살벌이 집을 짓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할지를 두고 아내와 한참을 의논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저녁을 먹자마자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아침. 음원 믹싱 마무리. 아쉬움도 많고 욕심도 있지만 여기서 멈추기로. '여지'를 남기는 미덕이 때론 완벽을 위한 집착보다 결과를 더 풍요롭게 하니까.

Hakozaki Takeyuki의 음악을 듣다. 놀랄만큼 소리를 잘 세공하는 사람 같은데, 또 얼마나 마음 깊히 감흥의 무늬를 새겨줄지, 얼마나 내 마음이 원할지는 알 수 없다.

서울 라이브 이슈로 고민. 머리가 복잡하다.

나를 '증명'하려 하지 말 것. 무언가를 자꾸 '해내려' 하지 말고,

가장 먼저 마음에 불을 켤 것. 내 안에 빛을 밝혀둘 것.

5/29

10 년 넘게 동고동락했던 여러 물품들 - 랙케이스, 촛대, 상, 책상 등등을 당근에서 나눔하다. 상만 남고 모두가 새 주인을 찾아 떠났다.

맑고 밝은 날, 보현 그리고 아내와 바깥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햇님 같은 보현 얼굴 그리고 햇살. 네잎 클로버.

작업용 책상이 와서 오후 내내 조립을 했고, 장비/악기 재배치를 했고, MM-1 믹서를 결국 주문했고, 진엽 님께 새벽에 답장을 드렸다.

모든 예술의 꿈은, 결국 '시'가 되는 것이다.

느끼고, 생각하고, 즐기고,

반드시 적어라.

5/30

밭일. 정신없이 일을 하다 왕바다리 집을 보고, 위협하듯 주위를 뱅뱅 도는 왕바다리를 만나고, 다리에 힘이 풀려버렸다. 내가 정말 어떻게 할 수 없는 너무도 거대한 힘.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오는, 감당할 수 없는 그 무엇 앞에서 나는 너무도 작고 무력하다.

기운이 쫙 빠져버린다.

집에 오니 아내가 방충망을 갈고 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비가 내리는데 마당에 내놓은 상이 비를 맞는다. 붉은 상. 4집부터 9집까지 내 모든 노래를 같이 만들어주던, 널찍한 이 상. 아무도 데려가지 않는 상을 번쩍 들어, 현관 앞으로 옮겨두었다.

내 안의 빛을 더 환하게.

5/31

오전. 공연 영상 리뷰. 생각했던 것보다 나는 훨씬 정적이었구나.

아이들과 공연 뒷풀이. 식당 주인장께서 친절하게도 환영 메시지를 붙여놓으셨네.

화정, 윤아, 동원, 기연, 윤정, 하나, 재웅, 승환, 나 그리고 보현. 식당의 두 분. 찡찡대는 보현을 겨우 달래며 아이들과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얘기를 하고, 서로서로 축하를 했다.

일기가 밀리면 어딘가, 무언가 불안하다.

Digi002를 나눔했다. '국경의 밤' 부터 '꽃은 말이 없다.'까지 많은 앨범을 함께 만들어준 고마운 친구,

잘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