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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2-7/16

6/22

귤 나무에 새 둥지가 많아졌다. 제비집이 많이 커졌다. 직박구리는 비자 나무 아래 절묘한 곳에 둥지를 만들어 둔다. 나뭇가지, 이파리 뿐 아니라 비닐 까지 물어와 장인처럼 둥지를 결었다.

병원에 다녀왔다. 일단은 진통제를 끊기로 했다.

6/23

다올, 성도씨와 비료 작업을 했다. 자농 보카시 1호 40 포대. 처음 써 보는 비료라 궁금했는데 신선해서 좋다. 뽀송하니 냄새도 좋고 기분도 좋다.

고생한 아이들과 고기를 먹으러 갔는데, 옆 자리에 기하가 앉아 있어서 깜짝 놀랐다. 새로 런칭할 예능을 찍고 제주로 왔다는데, 못 본 사이 얼굴도 몸도 더 좋아진 것 같다. 

윤하에게서 편지가 왔다.

6/24

(IFS#8) Fundamental을 붙들고 녹음을 했다. 세상에 나온지 얼마 안 된, 버그 투성인, 악기와 장비 사이에 있는 희한한 플러그인이다. 배음을 계산하고, 스케일을 생각하고, chromatic? diatonic? C 65.41 Hz, F 87.31 Hz, Bb 116.54 Hz... ? 어떤 순서로 어떤 분포로 어떻게 소리를 내줄 건지, 나는 예측할 수도 없지만 원하는대로 움직여 주지도 않는다. 그러다보니 한 번 녹음된 소리를 다시 재현하는 게 어렵다. 계속 녹음을 해두는 수 밖에.

6/25

보현과 새로운 치료를 시작한다.

(IFS#8) 1 년만에 부쩍 큰 진귤 나무를 작업실로 초대했다. 오늘은 간단히 리허설만 하기로. 20 여분 간 나무가 뿌려 준 무명의 음표를, lekko, noire, jasno로 음악화 했다. 놀랍다. Avalanche run + slö로 소리를 변조해보는데, 페이즈 이슈는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

6/26

제비가 알을 품기 시작한 것 같다.

호숫가에서 쇠물닭 부부와 새끼들을 보았다. 열 마리다. 아이 새들은 수련 잎 위를 걸을 수 있을만큼, 가볍다. 다들 검은 이마에 노란 오솔길이 하나씩 나 있다.

보현의 목욕을 시키고 털을 말려주었다. 햇살이 너무나 고맙다.

오랜만에 물 속을 걸었다.

숨차게 뛰고 싶다. 너무나.

(IFS#8) 무명의 소리 뭉치를 녹음하다.

6/27

(IFS#8) 진귤 나무와 본격적인 녹음. 리허설 때와 전혀 다른 패턴의 소리가 났다. 소리가 났다가 한참을 침묵하다가 다시 수다스럽게 음표가 쏟아진다. 커튼을 열어 햇살이 들어오니 소리가 달라진다. 손 등으로 살짝만 건드려도 반응을 한다.

이 마음을 어떻게 적어두어야 할 지 모르겠다.

누군가는 식물을 가장 무디고 정적인 존재로 생각하겠지. 하지만 나는 알았다. 이 작은 나무 한 그루도 얼마나 예민하게 세상네 감응하며 살고 있는 지.

6/28

동네 냇가에서 어린 새 한마리를 보았는데 논병아리 같기도 한데 다리를 다친 건 지 날갯짓을 하다가도 결국 날지 못하고 물위에 둥둥 떠다니듯 가만히 있었다. 나는 그 새를 한참 바라보다 집으로 돌아 왔고 어느새 새가 집 앞 바다에 와서 물 위에 둥둥 뜬 채 부리로 털을 고르고 여전히 날지도 못한 채 여전히 물 위에 혼자 떠다니고 있다.

6/29

Lifelong endeavors

혈형을 만나서 길게 얘기를 했다. 아치탑 기타 셋업을 맡기고, 스틸 기타 수리를 부탁드리고 왔다.

6/30

이를 뺐다.

머리를 잘랐다.

고양이가 처음으로 눈인사를 받아주었다.

7/1

무덥다. 제법 여름.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노(블루투스 스피커) 혹은 바이노럴(에어팟) 이란 극단적인 조건에서 음악을 듣는데, 정작 음악을 만드는 사람의 스탠더드는 여전히 스테레오(모니터 스피커)라는 게, 나는 너무도 기묘하다.

7/2

fledglings

어디까지 'stereoize' 해야 하는가.

차라리 블루투스 버전과 에어팟 버전. 두 가지로 음원을 만들면 안될까.

7/3

sense of space

7/4

elements

여름순이 돋고, 비는 계속 온다. 이렇게 긴 장마가 또 있었을까.

귤나무를 감고 올라가는 덩굴을 걷어주고, 그 김에 여름 전정을 하고 돌아왔다.

컨디션이 제로에 수렴한 날. 그래도 뭔가 작업을 하긴 했구나.

7/5

Regenerative music

Onward

Neither, more

보리수 열매를 먹다.

비가 와도 무조건 간다. 밭으로. 오두막의 습도가 70퍼센트에 가깝게 올라갔다. 처음있는 일이다.

오두막에 개미들이 많아졌다. 날개가 달린 여왕 개미도 보인다. 오두막 속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점점 집이 커지는 것 같다. 나무를 갉아먹든, 나무가 썩어가든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내가 지은 집을 지키기 위해, 개미들을 죽이고 그들의 집을 없애려 했다. 말하자면 massacre다.

여기서 나는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죽이며 누구는 살려야 하고 누구는 죽여도 되는 건가.

in all seriousness, though. i’ve gone on record many times with my own reason for making ambient music: an escape from an insane and over-stimulated world
the world, right now, is absolutely that, so i’m not surprised more people are finding solace in things a bit more quiet

- from Twitter of @taylordeupree

음악을 숫자로 평가하는 세상에, 어떻게 저항해야 합니까.

7/6

Inception

가장 최악의 비교는 나를 나와 비교하는 것.

풀잠자리 한 마리가 천사처럼 내게 왔다. 좀체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비를 맞으며 덩굴을 걷다가, 발밑에서 푸드득 날아가는 카투리를 만났다. 환삼 덩굴인지 하늘 타래 인지, 덩굴과 풀섶 아래에서 알을 품고 있었던 것 같다. 주변에서 꽤 오래 일을 하는 동안에도 죽은 듯 알을 품고 있었지 싶다. 그러다가, 정말 어쩔 수 없는 순간까지 알을 지키려 하다가, 날아가버렸다. 세 개 정도의 알을 본 것 같은데, 하지만 그 순간이 너무 아찔해서, 나는 나도 모르게 미친 듯이 그 나무에서 가장 먼 곳으로 달아나 버렸다. 머릿 속엔 한 가지 생각 밖에 없었다. 다시 카투리가 오지 않으면 어쩌지. 저 알들이 버려지면 어쩌지.

비를 홈빡 맞았다. 일이 끝날 때까지, 어쨌든 카투리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집에 오니, 제비 주니어 한 마리가 태어나 있다.

동하가 보내준 책을 한참 읽다 잠이 들었다.

도댓불에 왜가리 한 마리가 앉아있었다.

7/7

일단 오두막으로 갔으나, 또 비. 방제는 불가능하다.

빗소리가 좋아서 한참을 듣고 소리를 담았다.

에어컨을 잠시 트니, 오두막의 습도가 다시 금세 60 퍼센트로 돌아왔다.

7/8

Ripples

Evoke

이른 새벽, 그레첸 팔라토의 라이브를 들으며 차를 마셨다. 인간적인 연주란, 인간 관계를 닮은 연주인가. 부침이 있고 가까워졌다 멀어지고 주고, 받고, 하지만 결코 완벽할 수 없는.

7/9

귤나무도 레몬나무도 여름순을 틔웠다. 시유지 덩굴을 걷고 약한 나무의 열매를 따주었다.

나는 나를 좋아하지 않고 살아온 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Honor thy error as a hidden intention.

- B. Eno

7/10

밭일은 쉬고 오두막에서 작업만 하다. 동하와 세시간 가까이 통화를 했다. 집에 오니 <모두가 빛나요>가 와 있다.

7/11

제비 주니어 2 탄생.

믹스 시작.

선녀벌레가 보인다. 모기가 엄청나다.

색도 음도 리듬도, 실은 모두 'wave'다.

7/12

제비 주니어 3 탄생

Music means nothing.

7/13

윤정, 기연씨가 집에 와서 브런치를 함께 먹었다. 자원씨가 옷을 많이도 보내주었다.

7/14

겨우 찾아온 맑은 날.

묻지마 방제#1) 보르도칼 2 봉 + 사계유 1 통 in 1000 L

농협에서 사계유를 추천받아 처음 사용해 보았다. 일반 기계유유제에 비해 여러모로 좋았다. 계피 향이 나는데, 그 자체로 방충 효과가 있고, 무엇보다 소포장되어서 한 번에 한 통씩 쓸 수 있는 것이 가장 좋다.

밭 여기저기에 아기 사마귀들이 보인다. 두 팔을 들고 경계하는 모습까지 사랑스럽다.

7/15

묻지마 방제#2) 보르도칼 2 봉 + 사계유 1 통 in 1000 L.

약을 치고 나니, 살 것 같구나.

7/16

오늘도 과수원에는 소음이 가득하다. 한 때는 고요한 천국 같던 이곳의 주변에는 온갖 타운하우스들이 하나둘 들어찼다. 그래도 아직 파헤칠 땅이 남아있는 지, 끊임없이 땅을 파고 나무를 베고 돌을 붓고 쇠를 자르고 흙을 옮긴다. 미친듯이 짓고 또 지어 올리는 중독. 그래도 여전히 이곳에는 온갖 벌레들이 찾아온다. 개구리도 뱀도 아기 새들도 태어나고 살아간다. 이 징그러운 인간의 굉음을 없앨 수는 없지만, 잘 담아두었다가 모나지 않은 음악으로 만들어 세상에 되돌려 놓고 싶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