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
의외의 추위에 덜덜 떨며 공항에서 택시를 기다렸다. 집에 추울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집이 얼지는 않았다. 바람이 매섭고 눈발도 날리는데, 천리향은 한참 전에 꽃을 피웠다. 수선화 구근에도 손가락만한 싹이 터올랐다.
2/15
물창고 앞에 새끼 갈매기 한 마리가 죽어있다. 묻어줄 곳을 찾아 숲으로 향했다. 하늘을 낮게 날다 우리집 창고 어딘가에 부딪힌 모양이었다. 하얀 천으로 갈매기를 감싸주었다. 조심스레 갈매기의 얼굴을 보았다. 레몬빛 부리와 입이 만나는 곳에 빨간 핏자국이 번져있다. 갈매기는 날개를 펼치고 회색 시멘트 바닥을 날 듯, 누워있었다.
재작년 봄, 제비 한 마리가 그렇게 죽었었지. 죽은 제비는 반쯤 눈을 감은, 한없이 행복한 표정으로 창고 구석에 누워있었다. 새를 좋아하지만, 쓰다듬어 줄 수 있는 건 죽은 새 뿐이다. 가까이서 새를 자세히 볼 수도 없다. 제비의 깃털이 그렇게 푸른 지 나는 알 지 못했다. 한 줌 크기의 둥지에서 봄 과 여름, 두 계절만에 제비들은 그렇게 아름다운 존재로 커가는 것이었다.
산에 올라, 평평한 곳을 골라 땅을 파고 갈매기를 묻고 흙을 다시 덮었다. 산에 와본 적이 있니. 빨간 자금우 열매가 옹기종기 열려있구나. 조금만 더 기다려 봐. 지금은 온통 무채색인 이 숲에 누워 한 잠 자고 일어나면, 겨울 바람이 멎으면, 온갖 빛깔의 꽃이 피어날 거야. 그런데 오늘은 여기 눈송이가 꼭 반딧불이 같구나.
전화로 돌담 쌓기를 의논하고 날짜를 정했다. 파쇄기 대여 일자를 정해 예약을 했다. 상순 효리와 저녁을 먹었다.
2/16
고접갱신 용 나무를 2월 마지막 주에 자르기로 했다. 수령이 비교적 어린 나무를 골라, 30주 가량을 정했다. 파쇄기를 빌린 기간 동안 전정도 하기로 했지만, 묘목상 사장님이 건망증이 심하시니 자주 알람 전화를 드려야한다. 기술센터 교육 신청을 하고, 친환경 교육은 3월 말에 일정을 봐서 신청하기로 했다.
과수원에서 돌아오는데, 2차선 도로 한 켠에 알록달록한 갈색 새 한 마리가 누워있는 것이 보였다. 급히 차를 돌렸다.
급한대로 차에 있는 수건을 꺼내 새를 수습했다. 아직 더운 새끼 종달새의 주검이 손바닥을 데워주었다. 해는 멀리 사라지고, 아직 바싹 말라있는 앵두나무와 작약 사이에 구덩이를 파고 새를 뉘였다. 천리향 꽃냄새가 바닷 바람을 타고 날아왔다. 나는 바닷가에 핀 노란 민들레 한 송이와 천리향 가지를 꺾어 새의 무덤 위에 올려놓았다.
요가를 시작했다.
2/17
몇 달 만에 오일장에 갔다. 묘종상에 갔더니, 의외로 좋은 묘목이 많다.
날이 풀렸다. '약속할게' 뮤직비디오를 찍었던 길을 보현이와 함께 걸었다. 우리는 그때처럼 천천히 나란히 같은 길을 걸었다. 언제 다시 이 길에 오더라도, 나는 '약속할게' 노래가 생각나겠지. 시간이 한참 지나, 언젠가 혼자 걷는 날이 오더라도.
동률이 서울에서 내려왔다. 상순이네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앨범에 대한 후기를 쓰고 있는데, 아무리 쓰고 지워도 글로는 정리가 되질 않는다. 우울하다.
2/18
출판사에서 보내준 교정본으로 다시 교정을 했다.
날이 풀려서 그런 지 모래사장 위로 보말이 빼곡히 올라왔다. 내일이 우수라니, 보말도 절기를 아는가봐.
아내가 쓰던 스마트폰을 우체국에 가져갔다. 5천원을 환급해 준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 대단하고 스마트한 기계가 아메리카노 한 잔 값이란 게 언뜻 믿겨지지 않아서, 5천원이요? 물었지만, 네. 나도 웃고, 직원분도 웃었다. 아내는 차 안에서, 방에 있는 피아노를 어떻게 해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아내가 어릴적 치던 피아노다. 안 읽는 책도, 안 입는 옷도, 안 듣는 음반도, 그리고 안 치는 피아노도, 봄에는 어디론가로 잘 돌려보내야겠다.
2/19
약속할게 M/V
감독: 박지인
주연: 루시드폴, 보현이
동률 상순과 저녁을 먹고 돌아왔다. 저녁 늦게 원고를 보냈다.
2/20
동률, 상순 부부를 집으로 불러 운섭 형님이 보내주신 옥돔 두 마리로 요리를 해주었다. 상순이 돌아가고 동률과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skyoftibet 말하길:
밀린 해적방송을 뒤에서부터 읽으며 새삼 폴님의 노래가 왜 따뜻한지 알게되었습니다. 새를 정성껏 묻어주는 모습에 뭉클하네요. 역시 농업인의 자질이 풍부하셔요. 숨이 끊어진 것에는 너무 두려움이 있는지라 글을 읽다보니 꿈꿔왔던 귀농도 어렵지않겠다하는 생각도 들어서..오늘은 이 엿보기도 생각이 많아집니다..
2016년 5월 1일 — 10:27 오후
creampuff 말하길:
아~ 너무 이쁘네요.벌써 제주도에 천리향이 피었군요.새싹이 참 이쁘다는 말밖에는…
2016년 2월 24일 — 3:05 오후
손님 말하길:
오랜만에 반가운 소식 감사합니다. 지난 2년 간의 시간을 담아 7집을 만드셨다고 했으니, 그 과정을 하나의 글로 정리한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 글이 쉽게 쓰여지지 않는다는건 그만큼 7집에 많은 것들이 담겨있다는 뜻이 아닐까 싶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천천히 천천히 그렇게 알려주셔도 되요. 폴님의 이야기에는 언제라도 귀기울일 준비가 되어있으니깐요.
이번 해적방송을 읽으면서 폴님의 새글이 마치 남쪽나라에서 온 봄소식인 것 같아 반가웠습니다. 아직 이곳에서는 만나지 못하고 있지만, 사진 속에 담긴 파릇파릇한 새싹하며 봄볕하며, 마치 앞으로 만나게 될 봄을 먼저 만나는 것 느낌입니다. 사진을 보니 봄이 더욱 기다려지네요.올해의 봄은 어떤 모습일까요. 종종 남쪽나라 봄소식 부탁드립니다.
2016년 2월 22일 — 9:07 오후
페퍼민트 말하길:
얼마전 일터에서 폴님의 음악을 좋아하시는 분을 알게 되었어요.반갑고 기뻐서 손을 잡고 한참 웃었답니다:-)여행은 즐거우셨나요? 제주는 벌써 꽃이 피었네요. 봄소식 고맙습니다. 천리향 향기가 궁금하네요.보현이와 함께 찍으신 뮤직비디오를 보면 슬금슬금 웃음이 나와 참 좋아요.폴님의 고무장화가 참으로 인상적입니다ㅎㅎㅎ
2016년 2월 22일 — 4:49 오후
lightnshadow 말하길:
앨범 후기가 잘 안써져서 힘드신가봐요 ㅠㅠ넘 속상해마세요~ 폴님 노래로 겨울을 포근하게 보냈어요! 저도 감상을 글로 적어보고 싶었는데 여러번 더 들어보고 느껴봐야겠어요^^
안쓰던 것들을 정리하는 것은 늘 아쉽고 미련이 남는 것 같아요. 날 잡아서 곧 정리하시겠네요. 정리하고 나면 어떤 기분이실지…^^
새들을 지나치지 못하고 가는길을 배웅해고 ㅠㅠ 폴님은 따뜻한 사람 같아요
돌담쌓기, 친환경교육 등 계획하는 일들이 많네요. 부지런하게 척척 잘해내시는 모습이 부러워요. 올해도 벌써 2월이 지나가지만 계획한 모든 일들이 잘되길 바라며^^ (나도 파이팅!) 소식 종종 올려주세요!
2016년 2월 22일 — 12:01 오후
Grace 말하길:
보현이랑 찍은 사진동화책에 나오는 그림같네요 넘넘 멋있어요:)!!
2016년 2월 21일 — 5:16 오후
mondmeere 말하길:
글로는 정리가 안된다니.. 더 좋은데요? ^ ^ 언어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뭔가가 있는거니까 흠. 오늘 에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친구가 메세지를 보내왔어요 맘이 허하다고.. 누군가와 걷는다는 건 그런걸까요. 보현이와 폴처럼 ㅎㅎ남편이 콘서트 다녀온 담부터 폴의 음악을 불러요. 속으로 많이 웃어요. 우리 날이 저물때 를 무척 좋아하는 것 같아요. 원래 락스피릿을 좋아하는 사람인데.. 느껴지나봐요. ㅡ.,ㅡ 떠들다갑니다. 폴님! 따뜻한 봄날 맞이하시고 건강하셔요 ^ㅡ^
2016년 2월 21일 — 7:52 오전
귤 말하길:
기다리고 기다리던 해적방송에 눈물이 그렁그렁….합니다.「언젠가 혼자 걷는 날이 오더라도…」 폴님….요가를 시작하셨군요.왜 웃음이 나오지요?윤성님이 생각나서…^^글로는 정리가 안되는 7집…자주 듣지는 못하지만 마음으로 머릿속으로 계속 부르고 있어요.
2016년 2월 21일 — 1:36 오전
spring23 말하길:
글을읽다보면늘맘이따뜻해집니다-화단사진이봄의시작을알리는것같네요:)보현이와너무다정해보여더따뜻한뮤비인거같네요! 자주 근황 알려주세요^^
2016년 2월 21일 — 12:07 오전
lonnate 말하길:
곽지마씀? 무사 거기까지 와져신고예~ 저도 혼달에 혼번씩은 감수다만 앞으로 곽지서 강생이랑 와랑와랑 뛰멍 댕기는 사람예 폴삼춘으로 알아질쿠다~ㅎㅎ빨리 봄이왔으면 좋겠습니다 아직까지도 바닷바람이 많이 찹니다 건강유의하세요!
2016년 2월 20일 — 8:26 오후
모톤 말하길:
'새를 좋아하지만, 쓰다듬어 줄 수 있는 건 죽은 새 뿐이다. '
당연한 말인데도 저는 이 글이 슬프게 느껴지네요…
막연하게 그냥 날다니는것은 새다 라고 생각했었는데
한번 더 제 자신이 작게 느껴지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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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버리기! 참으로 어렵죠…
막상 사용하는 일이 적어도 항상 있던자리에 그 물건이 없다면
허전해서 일에 집중이 안될거 같기도 해요.
하지만 그 행동을 함으로써 새 물건을 구하고
그렇게 순환되는게 아닐까 싶네요.
이따금씩 들어오는 물고기 마음이지만
오늘도 배우고 갑니다 ㅎㅎ…
2016년 2월 20일 — 4:20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