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아침부터 예보에 없던 비가 억수같이 내렸다. 오두막에서 노래 녹음도, 밭일도 하려 했지만 녹음을 못 할만큼 비가 쏟아진다. 그럼에도 밭으로 가는 길, 구름이 심상치 않다. 처음 보는 기묘한 구름 물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비가 쏟아진다.
날씨가, 하늘이, 감정을 가진 인격체처럼 느껴졌다. 알 수 없는 기이한 기분에 짓눌려 차 안에서 떨었다. 실내 기온은 20도인데 이상하게 몸이 떨려왔다. 추워. 이상하게 추워. 너무 춥고, 서늘하고 기괴한 날.
1000 L 물을 (겨우) 받고 오후 5시 넘어서까지 Song#8 리듬 편집을 했다. 지친 상태로 Luan과 수업을 하고 쓰러져 잠들다.
5/2
아침부터 몹시 힘든 날. 하늘은 거짓말처럼 맑아졌고 밝아졌다. 을사년의 신사월. 두 개의 뱀이 모인 이 달을 잘 넘겨야겠다.
마음이 흐려졌다. 불안하고 초조하다. 내란은 계속되고 있다.
오후 3시 넘어서까지 Song#9 리듬 편집에 매달렸다. 꽤 힘들다. Song#8보다 더 토속적인데, 이 방향이 맞는 걸까? 혹시 내가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 사이를 걷고 있는 건 아닐까? 아무리 물어본들, 답 해줄 사람은 없다.
아내는 보현 목욕을 시키고, 털도 말릴 겸 드라이브를 했다. 병원에서 계속 전화가 온다. 다음 주 아버지 퇴원날 즈음 비행기를 급히 알아보았다. 간호사님과 MRI 날짜를 잡고, 차를 빌리고, 누나, 엄마와 연락을 주고 받고.
저녁을 먹고 <Água> 노래를 부분 수정하다. /ch/ 발음은 원어민 발음을 아무리 찾아봐도 차이를 모르겠는데... páss'aro', transfor'mar'-se. 발음.
5/3
아침부터 사방에서 whatsapp 메시지와 메일이 온다. Trevor의 송금 관련 메시지+메일. Sebastian 송금 관련 메시지. Andreas의 메시지.. Andreas에게 Tiki가 연주한 Song#8을 보내주었더니, 리듬이 곡과 어울리는지 잘 모르겠단다. 내가 그를 디렉팅할 수 있을까. 넌지시 함께 작업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그에게 얘기해두었다. 왠지 어려울 듯하다.
윤성씨와 통화. 문자를 주고 받았다.




오후 비 소식이 있어 방제를 미루고 종일 밭일만 하기로 마음 먹었다. 약줄 정리를 하고,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잠시 쉬다가 전정을 했다. 풀이 많이 자라긴 했지만 아직은 줄 정리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왕바다리는 다행히도 아직 만나지 못했다. 점심 도시락을 먹고, 또 전정. 봄순은 손가락 마디 하나 정도 길이로 컸다. 올해엔 정말 레몬꽃이 많이 올 것 같다. 귤꽃망울도 적지 않아서 적어도 3-4 톤은 수확할 듯 한데 전정 타이밍이 문제다. 한 그루 한 그루 세심하게 하다보면 시간이 너무 걸리니까. 오후 3시, 퇴근하려는데 빗방울이 떨어졌다.
집에 와서 쉬다가 Song#8, #9 리듬을 다시 손봤다. Tiki가 보내준 여러 take 중에서, 가장 소프트한 브러싱으로 연주한 take를 Song#8 메인 verse에 쓸까 싶다.
5/4


아침 일찍 오두막에 가서 약 조제. 방제 #3-1. 사계유가 없어서 (게다가 연휴기도 하고) 보르도액 방제만 하기로 하다. 방제를 마치고 오랜만에 밭 근처 카페에 가서 아내와 보현 없이 카페 데이트를 하다. 시내에 가서 윤슬이네와 늦은 점심을 먹었다.
가능하다면 보현을 약속 자리에 데리고 가지 말자고 아내와 다짐했다. (매번 보현의 스트레스 지수가 너무 높아졌다.)
<마음> 기타 소리가 맘에 안 든다. 리앰핑을 하든 다시 치든, 수를 내야할 것 같다.
5/5

비. 오두막 행. 리앰핑 준비를 하러 기타 앰프를 들고 갔다. 테스트를 하려는데, 고장이다. 진공관 문제인지 다른 쪽 문제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는 와중에 그만 12Ax7 튜브 한 개를 2층에서 떨어뜨려 버렸다. 아...

약줄 정리를 완료하고 몇 그루 전정을 했다. 앰프 제조사 (pêche à la mouche)에 문의를 하니 트랜스포머 문제는 아닐 거라 한다. 진공관을 새로 사야하나.
<마음>을 집시기타로 쳐볼까, 생각해보다. 중음역이 더 도드라진, 빈티지한 소리를 만들 수 있을까. 그렇다면, 마이킹 1 채널 + 마그네틱 픽업 -> Boss CE-2W 스테레오 2 채널 = 3 채널을 동시에 받을 수도 있을까? 실험을 해봐야 알 것 같다.
<Água> 노래 녹음. 어렵다. 외국어로 노래를 한다는 것. 노래를 위해 쓰인 글도 아닌, 흩어져있는 말을 모아서, 20년전 노래의 틀 안에서 또 다른 노래로 바꾼다는 것. 게다가 나 같은 'gringo'가 노래를 부른다는 것. 말이 되는 걸까.
최대한 착색감을 억제하려 Creamer+ 진공관 모드를 Triode로 두되, 트랜스포머를 켠 프리앰프 세팅을 하고, Tweaker는 드라이브를 12시 방향으로. VCA 디스토션이 전혀 없지는 않은, moderate한 세팅. 대신 프리앰프 게인을 거의 3시 방향으로 올리고, Tweaker의 게인 리덕션 LED이 두 개 정도 (max) 될 때까지 threshold를 잡았다. 꽤 mild한 세팅이다.
집에서 모니터해보니, 소리는 괜찮다. 앞으로도 이 정도 중립적인 세팅으로 노래를 하는 게 좋겠다. <Água> 보컬 트랙 정리. 아르헨티나에서 미결제 건으로 연락이 오고, 난리도 아니었던 하루.
5/6
실비 오는 날. 오두막에 가서 EQP-KT를 열어 12Ax7 진공관을 꺼내 기타 앰프에 꽂고 테스트. 6C4A 관 소켓에서 뭔가 자글자글 끓는 소리가 난다. 일단 진공관을 다 빼서 집으로 가지고 왔다.



터질 듯한 레몬 꽃망울에 송글송글 빗방울 맺혀있다.
세상에는 참으로 아름다운 것들이 많지. 시궁창 같은 일도 괴물 같은 이들도 많지만, 그것들로 인해 피폐해지는 우리를 보듬어줄, 정말 아름다운 것들, 아름다운 이들도 많이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더러운 것들을 눌러버릴만큼 강렬한 힘이 깃들어 있다.
낮 시간 내내 부산 병원 - 엄마 - 누나와 번갈아가며 통화를 하다. 나이가 든다는 건, 주변이 늙어간다는 것이다. 감당할 일은 많아지고 힘은 약해지는 것.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든다는 것이며, 즐거운 일의 갯수가 점점 줄어드는 것. 무엇보다 나를 확장하려는 힘이 약해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고 약해지지 않는 것이 있을까. 있다면 무엇일까. 나의 모든 온도를 높일 수 있는 뜨거운 것. 그것을 찾아 껴안고 살아야한다.
부산으로 가자. 어둡고 흐려지는 나의 고향으로.
5/7
부산행. 아버지 퇴원.
사람들은 육체의 쇠락은 쉬이 받아들이고 심지어 자기연민에 가까우리만큼 슬픔에 잠기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는 왜 정신의 쇠락을 받아들이기는 이토록 어려운 걸까. '수용'의 임무도 결국 정신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일까.
점심을 사드리고, 커피를 사드리고, 요양보호센터 직원분을 뵙고, 공항으로 가는 길에 영호와 통화를 했다. 조금만 일찍 나왔다면 보고 가는 건데.
Sonic Farm에서 메일이 왔다. Svetlana "Winged C" 진공관을 추천했다. (스톡 진공관과 같은 모델이다) 그들이 테스트해본 결과, 다른 관은 별로 좋지 않았다고 했다. (Tungsol도 별로였고, 조금 dark하긴 하지만 JJ가 그나마 괜찮은 정도였단다.)
Andreas에게 그만하자고 연락을 했다.
5/8
이른 새벽, Andreas이 일부라도 작업비를 받고 싶다는 문자를 보냈다. 그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침부터 보현의 다리가 불편해보였다. (실은 어제부터) 새벽에 고양이를 쫓아 뛰어나가다가 다리를 삐긋한 게 아닐까. 아내, 보현과 병원에 들러 약을 타왔다.

오후. 오두막 출근. 과수원 옆 빌라 마당에서 누가 잔디를 깎고 있다. 잔디깎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며 전정을 하고, <Água> 추가 녹음. 같은 세팅으로 <늙은 올리브 나무의 노래> 재녹음. (세팅 값은 세션 리콜 차트 참고)
꽤 지쳐 돌아오다. 기타줄 주문.
5/9
<Água>, <늙은 올리브 나무의 노래> 트랙 정리. 딱히 EQ를 많이 안 만져도 될만큼 보컬 녹음이 잘 됐다. <마음>은 rough mix. 새벽에 Sebastian에게서 문자 오다. 아직 작업비를 못 받았다는 거다.
<마음> 기타를 어떻게 할 것인가. 다시 할 것인가. 지금 소리를 어떻게든 만져서 쓸 것인가. 코러스는 어떻게 할 것인가. 집시기타 줄이 오면, 줄을 갈고 다시 녹음을 해볼 것인가.
비가 오고 바람이 거센 날. 진공관 주문.
5/10
방제용 물 받기. 전정하기.
액비 발효 완료. 아내가 액비를 통에 옮겨 담는 사이, <마음>, <늙은 올리브 나무의 노래> 보컬 노이즈 제거하고 rough mix. <마음> 기타 소리, 어찌 들으면 괜찮은 듯도 싶다.
대정에게 전화가 와서 깜짝 놀랐다.
5/11
방제#3-2. 보르도액만.

CE-2W 페달을 걸어서 <마음> 기타 사운드 테스트. Output B에 전기 노이즈가 있는데 이유를 모르겠다.
전정. 데크 바닥에 발이 빠져 다칠뻔 했다. 내일 당장 수리해야겠다.
5/12


아침 일찍 건재상에 들러 방부 바닥재 석 장을 사고, 십자 드라이버 비트, 목공용 피스, 샤프펜슬 사서 출근. 부서진 바닥 교체하다. 전정을 하며 음악 작업을 하루 쉬었다. 저녁에는 Luan과 수업. 일주일만의 수업인데 너무 오랜만인 것처럼 느껴진다.

도마뱀 친구를 만났다.

날이 꽤 더워졌다. 일을 하면 땀이 꽤 난다. 문수가 집에 돌아왔는데 밥을 잘 먹지 않는다고 해서 걱정이다. 장기요양보호 담당자님과 통화를 했고, 수요일 2시에 부산 집에서 뵙기로 했다.
문수 걱정에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부산에 가기로 마음 먹었다.
진공관이 왔다.
5/13

오두막에 갔다. 진공관을 교체하고, Creamer+를 열어 곳곳에 접점부활제를 뿌렸다.
부산. 차를 렌트해서 집으로 갔다. 문수를 데리고 병원으로 갔다. 여러 검사를 하는 사이, 엄마 물리치료. 다시 병원으로 와서 결과를 듣는데, 심각하다. 가장 큰 문제는 신장 수치 (BUN, creatinine) 가 너무 높다는 것. 초음파로 보았을 때 신장이 물리적으로 많이 나빠져있다. 췌장에도 문제가 있는데, 결국 신장 기능이 떨어진 탓이라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5/14
아침 일찍 수액치료를 하러 문수를 병원에 데려다주고, 그 사이 아버지가 입원했던 병원에 들러 보험 서류를 떼고, 장기요양보험 담당자님을 만나고, 주민센터에 가서 돌봄 서비스를 신청을 하고, 저녁에 문수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 이제 습식 사료는 아예 먹으려 하지를 않는다.
5/15
문수도 수액 치료. 엄마도 수액치료 + 물리치료. 문수가 당장 입원하는 건 무리일 듯해서, 일단 주말까지만 통원 치료를 하기로 했다. 문수가 더 입맛을 잃은 것 같다.
밤 늦게 제주로 돌아왔다.
5/16
Pau가 <피에타> 녹음을 마쳤다고 연락을 주었다. 그런데 내가 보내준 가이드 드럼이 Pau의 기타와 뭔가 잘 붙지 않는 듯도 싶다.

레몬꽃이 왔다.
5/17
문수 피검사 결과가 좋지 않다. 수치가 올라가는 추세인데다, 내일 병원이 쉬는 날이라 큰 병원에 입원을 해야할 듯 하다.


귤꽃이 만개한, 이토록 아름다운 봄날이구나.

성당에 가서 문수를 위해 기도를 했다.

기타 녹음용, CM4 마이크를 XY으로 세팅하다.
5/18

Erica Synth 인터뷰가 공개되었다.
Aniol이 스템을 보내왔는데, 몇몇 트랙이 묶여있다. Dídak에게 스템을 공유했다.
문수 입원. 전화로 선생님과 여러 얘기를 나누었다.
5/19
엄마가 목이 잠겼다. 많이 우신 것 같다. 어르신 병원동행서비스가 담주 부터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진수와 통화. Song#9 스템과 악보를 보냈고, Luan과 수업.

트럭 수리를 하러 갔다. 다른 건 다 고쳤는데, 백미러는 결국 수리를 못했다.
5/20
Dídak이 드럼+퍼커션 녹음한 스템을 보내왔다.
많이 놀랐다. 이렇게 미니멀한 연주 속에 이렇게 응축된 에너지가 들어 차 있다니. Pau의 기타와 어쩌면 이렇게 케미가 좋은 걸까. 이렇게 드럼을 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문수: BUN 수치, PHOS 수치는 한 풀 꺾였지만 여전히 높다. 염증 수치 급상승.
5/21
문수 여러 수치가 아주 조금씩 좋아지는 추세다. 문수가 잘 걸으려 하지 않는 것 같다는 연락이 왔다. 노인돌봄프로그램 예약했다가, 취소.
5/22
부산행. 제주 공항에서 부지현 작가님을 만나 서로 깜놀하다.

엄마 물리치료를 받고 문수를 만나러 갔다. 신장 수치는 비슷. 염증 수치가 자꾸 올라간다. 여러 염증이 동시다발적으로 생기는 듯하다. (위, 췌장 등). 면회 시간 내내 문수를 걸렸다. 처음에는 힘이 없어보였는데 그래도 나중엔 곧잘 걷는 듯 했다.
5/23
문수: 염증 수치 비슷. 신장 수치도 큰 개선 없음. 퇴원을 고민할 시간이 온 것 같다. 오늘도 병원 안에서 걷기 운동을 많이 시켰다.
진수에게 <피에타> 스템 공유하다.
5/24

엄마 물리치료 받고 문수 만나러 가다. 수치 변화가 없어 퇴원하기로 하다. 집에서 수액 치료를 하기로 하고 주사기, 바늘, 수액, 특수 사료 등을 싣고 왔다. 먹여야 할 약이 정말 많다. 비행기를 늦추고 엄마를 위해 복약 프로토콜을 크게 적어두고 왔다.
5/25

문수를 집에 데리고 오니 마음이 한결 편하다. 틈틈히 바깥에 데리고 나가 산책을 시켰다. 문수가 설사를 해서 병원에서 급히 지사제를 받아왔다. 밥 먹이는 게 어렵고 그러다보니 약 먹이는 것도 어렵다. 숙이, 준환, 강이가 왔다. 비행기를 또 늦추고 밤 늦게 제주로.
5/26
종일 문수 생각. 엄마 걱정.

혼자 숲에 가서 무작정 걸었다. 참 오랜만이다.
5/27
과수원 경계 정리. 옆집에서 가지가 넘어온다고 연락이 왔다. 그 사이 봄순이 많이 자랐고, 자란 순은 굳었고, 더뎅이병 흔적도 꽤 보였다.
<피에타> 기타 M149 + C414 M/S 세팅으로 녹음.

언제 봐도 예쁜 무당벌레 친구.
5/28

Song#9 기타 녹음. (어제와 같은 M/S 세팅) 기타 녹음 마치고 서울행. 윤성씨와 Song#8 피아노 녹음.
숙이가 아예 해운대 집으로 와서 문수와 엄마를 돌보기로 했다.
5/29

소포라에 가서 <저 산 너머> 전시를 보고, 세종에 가서 연합 뉴스 인터뷰. 안테나에 가서 <피에타>, Song#9 기타 녹음 (진수, 서윤과). Song#9 녹음은 채 마무리 못 하고 애들에게 맡겨둔 채 공항으로.
5/30
문수 염증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고, 신장 수치도 꽤 떨어졌다. 간 수치는 조금 좋지 않지만, 그래도 정말이지 날아갈 것만 같다.
Song#8 트랙 정리. Song#9 스틸 기타 녹음을 했는데, 소리가 기대만큼 좋지 않다.
5/31

Song#8. 나일론 기타로 다시 연주. CM4 XY, Creamer+ Triode 세팅에, 게인 올리고, 마이크 끝을 12 프랫에 겨냥해서 녹음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