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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봄 서울의 늦은 저녁을 함께 나눌 수 있어 감사합니다. 어느 물고기님의 후의로 마치 ‘선물처럼’ 티켓을 구한지라 더욱더 공연이 의미있었습니다.

    제가 폴님의 음악은 늘 ‘위로’로 기억되지만, 이상하게도 이번 공연은 ‘추억’이라는 인상으로 새롭게 와닿았습니다. 2시간 동안 공연을 즐기면서 ‘2016년 봄날 저녁 서울’의 내가 아닌, 그 노래를 즐겨듣던 그곳의 내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왜 그 노래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어디가 좋았었는지, 그때의 나는 어땠는지를 떠올리면서 그때를 회상하고, 그때와는 조금 달라진 나를 생각해보는 시간들이었습니다.

    공연을 보다 문득 대각선 앞자리에 계신 분께서 계속 눈물을 훔치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무엇이 그분을 울게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분의 모습을 보면서 폴님의 음악이, 오늘 내가 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의 공연이 각자에게 가지는 의미는 지극히 상대적이면서 개인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폴님을 비롯하여 공연장에 모인 우리는 비록 지금 이 순간의 시공간을 함께 공유하고 있지만, 서로 각자의 상념 속에서 모두가 같을 수 없는 각자의 ‘추억’을 만들어가고 있겠다는 생각을 말입니다.

    2016년 봄날 서울 혜화동에서 본 폴님의 공연이 제게 어떤 추억으로 남을지, 지금으로서는 잘 모르겠다는 생각입니다. 새로 바른 콘크리트가 단단히 굳기 위해 ‘양생’하는 시간이 필요하듯이 어느 정도 ‘시간’이라는 ‘필터’를 거쳐야 이번 공연이 어떤 의미와 추억으로 남았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요. 단지 지금 분명히 할 수 있는 말이라면, 좋은 공연을 볼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는 것 뿐입니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저는 공연을 보면서 ‘뮤지션과의 소통’에만 애를 썼던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공연 중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랐을 때, 집중하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해 원망 아닌 원망을 했던 적도 있었더랬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 공연에서는 생각이 떠오르는대로, 흘러가는대로, 스스로 그냥 편안하게 공연을 보고 즐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폴님을 매개로 나 자신과 소통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바꿨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음 공연도 이번처럼 즐길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공연을 보는 것이 애써 준비해주신 폴님께 결례가 되는 것은 아닌지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폴님께서 마련해주신 두시간이 제가 너무나 충만하고 소중한 시간이었다는 것은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2016년 봄, 서울의 어느 늦은 저녁을 추억할 수 있도록 좋은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말씀해주신대로 또다른 시공간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다시 만나뵐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