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비가 시원하게 내린 날. 오두막에서 기타를 가지고 왔다. 묵음에서 화정, 윤아씨를 만났다. 보현과 저녁 외식을 했다.
9/2
천둥이 치는 아침 일찍 깼다. 비가 거세게 내리는 새벽에 디카페인 녹차를 마시고 밀린 일기를 썼다. 8월의 기록이 제대로 남아있지 않아 걱정했는데, 어차피 믹스와 녹음이 한 일의 전부라 별 문제가 없다.
안테나에서 타이틀 곡 투표를 했다. 두 곡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인데, 결과는 32:8으로 Song#7.
저녁. 브라이언이 세번 째 마스터를 보냈다.
9/3

서울로 가야하는 날이다. 공항에 가기 전, 마스터 리뷰를 하러 오두막으로 일찍 향했다. 오두막으로 들어가는 길. 가슴팍까지 자란 풀을 헤치고 발걸음을 옮기는데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가 아름답다 못해, 장엄하다. <Água>는 역시나 노만 버전이 좋다. <마음>의 음압이 낮다. Song#9도 낮다. 그렇다고 노만의 버전을 쓰자니 음압이 높다. 머리가 아프다.
스트레칭+목욕을 하고 집으로 가는데 비가 쏟아진다. 뇌우다. 짐을 챙기고, 점심을 먹고, 보현을 데리고 나왔다. 공항으로 가는 내내 비가 내린다.
음악을 하면서 '즐거움'을 잃으면 안된다. 어떤 일이 있어도, 성에 차지 않아도, 즐거워야한다. 자꾸 돌아보는 건 두려움 때문일까. 욕심 때문일까. 용서할 수 없다면 즐거움은 사라진다. 서투르다는 건, '살아있다'는 뜻이다.
저녁. 비트오피스 멤버들과 만났다.
9/4



잠을 설쳤다. 프리즈 + Kiaf 에서 그림을 보다. 4 시간 가량 전시장에서 시간을 보냈음에도 그저 아쉽다.
저녁. 진수, 서윤과 반갑게 만나 ACC 빅도어 콘서트 연습. 2월 공연 이후 더 자주 공연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밤. 피곤하다, 너무도.
9/5
잠을 깊게 잔 것도 같은데 찌뿌둥한 아침.

11월 공연 답사를 갔다가, 머리 자르고 ACC 공연 연습. 세 명의 합이 이틀만에 2월 수준으로 돌아왔다. 함께 한 시간은 역시나 정직하다.
너무 피곤해서 기절.
9/6
누나 생일 선물을 사러 백화점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깊게 명상을 했다. 서울과 제주를 오가는 동안 아무 것도 하려 하지 말고, 호흡에만 집중하자, 마음 먹다.
9/7
쉼. 운동. G7 몸에 부착 (혈당 체크 시작).
저녁. 모하니님과 민영님을 만나 복어찜을 먹고 즐겁게 얘기를 나누었다.
모하니님이 Laraaji LP를 선물해주셨고, 나는 산책길에 모은 순비기 열매를 조금 담아 드렸다.
9/8
몸도 마음도 무거운 날.
지난 일기를 쓰다가 빌뉴스 미술관에서 들었던 Karolina Kapustaite의 음악을 다시 찾아 듣다.
음반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상처를 많이 받은 것 같다.
물 속을 걸었다. 깊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자가치유.
9/9
<Desglaç> 앨범이 나온지 20 년이 되었구나. 미공개 트랙과 보너스 트랙을 넣어 LP로 제작한다고 한다. 오래만에 들어도 너무나 좋은, 인생의 앨범 한 장.
운동 루틴을 바꾸었더니, 몸과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아내가 서울로 떠났다. 브라이언이 늦게 메일을 보내왔다.
9/10
아침 운동. 돌아오는 길에 자동차 배터리 램프가 켜졌다. 그리고 핸들이 움직이지 않는다. 겨우겨우 집 근처 포구까지 돌아와 긴급 호출을 했다. 기사님이 달려오고, 현장에서 고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판정을 받고서 카센터로 차를 견인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베어링이 빠져버렸단다. 벨트가 찢겨 너덜너덜해졌다. 정말 위험했던 것이다.
보현 밥을 만들고, LP에 들어갈 두번 째 사진을 고르고, 차를 고치러 뛰어다니고, 여러 가지로 분주했던 날.
브라이언이 24/48 마스터를 보냈다. ADM에 대해서는 동문서답을 했다.
마지막. 정말 마지막 모니터링. <Água> -1.0db 조정.

브라질 대법원(STF) 제 1 소부에서 보우소나루 일당의 내란 사건 판결을 시작했다. 대법관 두 명 - Alexandre de Moraes와 Flávio Dino는 유죄 판결을 내렸다. 그들로부터 직접 살해 위협을 받았던 Alexandre는 5 시간 넘게 판결문을 읽었다.
9/11
재즈피플 서면 인터뷰.
재주도좋아에 다녀오다. 종일 보현 챙기기와. 운동하기. 앨범 관련 회의. 저녁에 아내 맞이하기.

STF 대법관 Luiz Fux는 유죄 선고에 반대를 표했다. 절차 상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로써 유죄 : 무죄 = 2 : 1.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브라질 STF에서는 대법관 한 명, 한 명이 몇 시간 동안 각자의 판결문을 읽고 각자 판결을 내린다. 어떤 판결이든 그것만으로도 각 법관의 판결은 존중받을만하다. (보우소나루에 무죄를 선고한 Luiz Fux는 무려 13 시간 동안 판결을 했다.) 또 하나. 브라질 검찰은 공소의 증거로 80 '테라바이트'의 증거를 제시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뉴스에서 흔히 듣는 '몇만 쪽의 공소장...', '1톤 트럭 몇 대분의...' 이 아니라.
9/12


STF의 네번 째 대법관 Cármen Lúcia는 "나는 395 쪽의 판결문을 썼지만 이 자리에서 다 읽지는 않겠습니다."라고 하며 보우소나루 일당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이로서 브라질 대법원은 보우소나루와 7명의 피고인들에게 유죄를 확정지었고, 보우소나루는 27년 3개월 구금형을 선고받았다.
MARO의 트리오 세션 라이브를 듣다. 믹싱/마스터링을 한 Aniol은 음압을 아주 낮게 잡았다. 그래서 그런지 차에서 음악이 잘 들리지 않았는데, 나는 문제가 있다고 느끼지 않았다. '우리 음악이 굳이 네 소음을 뚫고, 네 귀에 들리게 하고 싶지는 않아. 음악을 듣고 싶다면, 네 소음을 조금만 줄여주렴. 그리고 알맞게 볼륨을 올리고 들어줘. 그러면 우리 음악은 더 섬세하게 들릴 거야.' Aniol의 이런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아내와 오랜만에 와인을 마셨다. 어둑한 포구길을 함께 걸었다.
9/13
어깨 운동을 잘못했는지 목이 많이 결린다.
재주도좋아에서 빙떡을 먹었다. 슴슴하고 순한 빙떡을 먹으며 스콜처럼 내리는 빗줄기를 바라보았다.
9/14
아침, 아내가 쓴 동화에 대한 얘기를 길게 나누었다.
어깨, 목, 등이 많이 아프다. 몸이 쉬어달라고 얘기하는 것 같다.
1999년 발표한 <Final Feliz>를 다시 보고, 듣다.
깊게 사랑한 것이 내 몸과 마음에 남아, 결국 나를 변화시킨다.
<마음> 1.0 db 올리기. 충분히 헤드룸이 있다. 다시 마스터 제작. flac, mp3, 16/44 wav를 만들어서 회사에 보냈다. 이제 진짜, 끝.
이번 브라질 STF의 판결에 대한 Revista Forum의 글 일부.
여성 비하를 줄곧 일삼던 보우소나루에게 27년 3개월 형을 확정지은 이는, 다름아닌 여성 대법관 Cármen Lúcia였다는 것. 그리고, 정의 justiça, 민주주의 democracia, 법 lei, 이 세 단어가 모두 '여성 명사'라는 것. 이것이야말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닌가.
9/15
과수원 창고 안에 곰팡이가 피었다. 아마도 천장에서 물이 떨어졌던 것 같다. 서둘러 대팻밥을 치우고 정리를 했다.

예초기가 힘이 약해서 그런지 진입로 정리만 하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견디다 못해 결국 수리점으로 갔다. 예초기를 수리하러 온 분들이 줄을 서 있고, 사장님은 하나하나 온갖 예초기를 고쳐내신다. 사장님이 수리를 끝내면 사람들은 곱게 나이든 사모님에게 가서 결제를 하고 각자의 일터로 다시 향한다. 사모님은 준전문가라, 날도 골라주고 한 말씀 씩 거들기도 한다. 이를테면, '혼다 예초기는 힘이 약해서 톱날을 같이 쓰면 편할 거에요.' 라든지, '이 쌀알 같은 게 3-4개 정도 닳으면 날을 갈으셔야 해요.' 라든지. 다른 아무 것도 아닌, 오직 예초기만 - 그것도 엔진 예초기만 수리하며 살아온 사장님을 보며, 한 곳을 깊게 산다는 게 얼마나 의미있는 삶인지, 한참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내 차례가 왔다. 기계 자체에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만 태생이 어린아이 - 사장님 표현대로 라면 - 같아서 힘이 약하단다. 톱날을 하나 더 장착하고, 줄날+톱날 듀얼로 쓰기로 했다. 주유소에서 휘발유 5 L를 사고, 오두막에 와서 예초기를 두고, 운동하고, 다시 오두막에 와서 집시 기타를 챙겨서 집으로.
귤껍질이 작년에 비해 깨끗하다. 여름에 비가 적었기에 그런가. 아니면 땅과 나무가 간헐적 단식을 한 덕을 본 건가.
아내가 능성어를 사와 카르파쵸를 해주었다.
9/16
예초. 2중날이라 덩굴이 감는 건 많이 줄었지만, 줄날을 수시로 갈아야하는 건 크게 차이가 없다. 그래도 워-워- 하며 쉬엄쉬엄 일한 하루.
땀을 많이 흘렸다. 거미들이 짝짓기를 하는 때, 거미줄을 거두며 일하는 게 몹시 힘들다. 검지 손가락 염증이 좀체 낫지 않는다. 갈라진 손톱에 점점 더 금이 가고 있다.
아름다운 것은 오직 아름다운 것에서만 나올 수 있을까.
9/17
오전. 오두막에서 MR 만들다. 운동하고, 집에 와서 공연 연습 시간을 잡는데, 스케쥴을 맞추는 것이 너무도 어려워, 10년은 수명이 준 것만 같다.
하야시씨의 라이너 노트가 도착했다. MR과 함께 회사에 넘겼다.
UN 인권조사국이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인종청소를 자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한다. 이제 그 무엇도 그들의 범죄를 가릴 수 없다.

농협에서 사계유를 사왔다.


예초.
9/18
잠을 설치다.
오전. 테스트프레싱 검수. 걱정을 많이 했지만, 소리가 괜찮다. Side A만 다시 스탬퍼를 검수해달라 요청했다. 하야시씨께 라이너 노트에서 보인 몇몇 오류에 대해 말씀드리고, 글의 일부만 발췌해서 써도 될지 양해를 구했다.
운동.
9/19


예초. 정체를 알 수 없는 밧줄이 예초날통과 기계 사이에 끼어 작동불능 상태가 되다. 운동을 조금 하고, 농협에 가서 끼인 밧줄을 빼고 돌아왔다. 그건 그렇고 창고 천장을 보니 언젠가 물이 샜던 걸 알 수 있었는데 대체 뭘까. 너무도 지친 하루.
9/20
문수가 꿈에 나왔다.
마스터를 듣다가 Song#6의 음압이 지나치게 낮다는 생각이 들어 M1.1 버전으로 교체하고 -1.5 db 낮추다.
9/21
나를 움직이고, 나를 둘러싼 시공간을 움직이는 음악이 결국 '좋은 음악' 인 걸까.


Caetano, Gil, Chico 가 브라질 헌법 개정에 반대하는 집회 겸 문화 행사를 연다는 소식을 들었다. 1968년 이후 57년 만이다.
9/22
가을이다. 낮에도 그리 덥지 않다.
예초. 실수로 약줄 하나가 잘려버렸다.

브라질은 지금 PEC da Blindagem (국회의원 방탄용 개헌)과 PL da Anistia (사면을 위한 법 개정)으로 떠들썩하다. PEC와 PL에 반대하는 시위가 전국 대 도시 - 상파울루, 리우데자네이루, 살바도르, 브라질리아 등에서 이어졌다. 리우의 코파카바나 해변에서는 카니발에서 볼 법한 이동무대차량 (trio elétrico)에 수많은 아티스트들 - Chico, Caetano, Gil, Jorge Vercilo, Djavan, Lenine, Maria Gadu, Ivan Lins... - 이 올라 노래를 하고 짧은 연설을 했다.



상파울루에서는 브라질의 독립기념일에 보우소나루 지지자들이 대형 성조기를 펼친 것을 두고 보란 듯이, 시민들이 대형 브라질 국기를 펼쳤다. 보우소나루 지지자들이 흔들어대던 이스라엘 국기 대신 이날 수많은 시민들은 팔레스타인 국기를 흔들었다. 지구 반대편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영 연방 3 개국이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했다.
오른쪽 눈에 실핏줄이 터졌다.
9/23
눈에 알러지까지 생긴 것 같아 결국 병원 행. 공연이나 촬영 전까지 돌아와야할텐데 걱정이다. 공연 연습을 조금 하다. 손톱을 안 붙여도 되려나 모르겠는데, 일단은 붙이지 말고 버텨볼까 싶다.
프랑스가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했다. 미국 재무부는 브라질 대법관 Alexandre de Moraes 부인의 자산을 동결했다.
아름다움은 어떻게 우리를 정화시키는 걸까. 온종일 생각하다.
9/24
공연 포스터가 나왔다.
9/25
서울행.
기타 두 대와 트렁크 하나를 끌고 서울로. 회사로 가서 진수, 서윤과 연습을 했다.
9/26


상순과 소포라에서 전시를 보고 커피를 마시고 점심을 먹고 걷다가, 또 커피를 마시고, 많이 걸었다.

장모님께 꽃다발을 사다드렸더니 너무 좋아하신다.
9/27
아침 일찍 광주로.
국립 아시아 문화 전당 빅도어 콘서트. 고등어를 부르다가 객석을 보았는데, 핸드폰 별빛이 반짝반짝거렸다. 아이들과 즐겁게 공연한, 14년 만의 광주 공연.
9/28
광주의 아침. 비가 온다. 보현이 다리를 다쳤다는 문자를 받았다. 어수선한 기분으로 집으로 향하다.
앨범 라이너 노트 번역본을 받아 정리해서 회사에 넘겼다.
9/29
회사에서 수정한 사항에 대해 양해를 구하고자 하야시씨께 메일을 드렸다. 하야시씨의 컨펌을 받고 다시 회사로 전달.
보현, 아내와 카페를 갔다가, 운동을 하고, 집밥을 먹다.
나에겐, 루틴을 회복하는 것이 곧 휴식이다.
긴 여행을 마치고 컴백한 Luan과 수업. 그는 Rio Grande do Sul의 집으로 돌아왔지만, 새 여자 친구가 있는 Rio Grande do Norte로 곧 이사를 할 거라고 말했다. 여행 중 여자친구를 만났다는 그에게 진심으로 축하 인사를 건넸다.
9/30
스케줄링을 하고, 오전엔 일기 쓰다. 어제 수업을 바탕으로 AI가 만든 퀴즈를 Luan이 보냈다. 운동을 하고, 맛있게 집밥을 먹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