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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7/31

7/1

창고를 정리하고 바닥을 쓸고 닦았다. 물청소를 하기 쉽게 바닥에 아무 것도 두지 않기로 했다.레몬꽃 사이로 동박새가 놀다 간다. 새들이 마실 물그릇을 마당에 두었다.

7/2

아침 산책을 하다 노랑부리백로와 황로를 보았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했는데 다들 놀라 달아난다. 인사마저도 세심하게 잘 건네야하는 것이다. 멧비둘기가 소나무에 왔다.

오전. 덩굴을 걷었다. 일년 농사 중 3분의 2 이상이 덩굴 걷기다.

이중 방충복, 아래위 내의, 각반, 장화에 양봉 장갑까지 중무장을 하면 단순한 일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너무 더워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

<Ethica>를 잠시 펼쳤다.

집에 와서 보현과 놀았다. 거실 스피커를 바꾸었다. 9년 만에 CD 정리를 했다. 아티스트 이름에 따라 한 장 한 장 CD를 꽂으며, 음반을 손에 넣은 순간들을 떠올렸다.

Tom Gallo가 4 년 만에 음반을 냈다. 음반을 다 듣고 나니, 4 년을 기다린 보람이 있다. 한 발 더 나아갔구나.

이번 앨범도 Tchad Blake가 믹싱을 했다. '다음 앨범을 구상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라고 말하니, 아내가 웃는다. 아니 이번 앨범이 아직 나오지도 않았는데 무슨 소리냐면서.

Tim Bernandes의 새 앨범도 4 년 만에 나왔네.

지인씨와 단이가 오두막에서 쉬다 갔다(고 한다.)

7/3

간밤. 보현이 잠을 설쳤고 나도 그랬다. 4 시간 정도 잤을까. Ted Coleman과 O Terço를 듣다.

Tim Bernandes를 들으며 밭일을 했다. 그는 단 4 년 만에 브라질 음악 씬의 주역이 되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여하튼 놀라운 힘이 있다.

거지덩굴과 자리공이 엄청난 속도로 올라온다. 제초제라는 치트키를 쓰지 않는 한 농부는 질 수 밖에 없는 것이고, 그렇게 나는 매일 지는 게임을 하며 산다.

1 시간만에 폭포처럼 쏟아지는 땀.

나이가 들고 창작자들이 작품을 못 내는 것은 갈수록 높아가는 온갖 허들을 '못견디기' 때문이다. 견디고 나아가려면 마음의 지구력도 몸의 체력도 단련하는 수 밖에 없다.

동박새 두 마리가 길 위에 죽어있었다. 한 마리는 몸이 많이 상했다. 나는 동박새들이 오고가던레몬 나무 아래를 팠다. 몸을 맞댄 새 두 마리 위에 레몬꽃을 뿌려주었다.

7/4

정진에게 오랫동안 쓰던 스피커를 선물로 주었다. 내 스피커가 갖고 싶다던 정진에게 새로 스피커를 사게 되면 선물로 주겠다고 약속을 한 적이 있다.

EM 센터에서 우연히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은 지팡이를 짚고 계셨지만, 여전히 정정하다. 아내를 보자마자 먼저 물어보는 게 "많이 달렸어?"다. 천상 농사꾼인 선생님.

올해 서귀포엔 귤이 많이 안 달렸단다. 우리가 '농사를 그만둔 줄 알았다'고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우리도 선생님도 얼마나 반가웠는지. 돌아오는 길에 아내는 평생 한 길을 걸어온 선생님을 두고 '꼿꼿한 나무' 같다고 말했다.

오름에 간 아내가 진드기떼의 습격을 받고 집으로 도망쳐왔다. 이곳의 생태계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없던 일이다.

7/5

보현이 잘 잔 밤.

선생님과 함께 공부했던 수업 자료를 꺼내보았다. 여기저기 적어둔 메모가 눈에 들어온다.

(...)

공생농업.

자연의 섭리를 주고 받는 것. 다 함께.

미생물에 대한 감사.

나와 반대의 존재가 있어서 내가 살 수 있는 것.

(...)

EM-B 발효 시작. 유기칼슘 액비 한 통 더 만들기. (패화석 2 kg in 800 L 현미식초)

7/6

삼각지 풀 정리. 잠시 쉬는 사이 말통을 수납할 받침대를 구상하는데, 머리가 '전혀' 안 돌아간다. 아내를 보내고 잠시 쉬다가 다시 예초. 덩굴 정리.

집에 돌아와서 재형 형과 통화. 창희와 통화.

아내 방 오디오 세팅을 새로 하다.

Sachal의 목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했다.

7/7

4시 기상. 보현은 잘 잤다.

아내와 병원에 가는 길에 산합협력단에 들러 친환경 인증 갱신 서류를 냈다. 거래명세서를 못 받은 농자재가 많아 일일히 전화를 해서 팩스를 받았다. 오후 늦게까지 서류 일에 매달린 하루.

7/8

아버님 몸이 안좋다는 연락을 받고 잠이 깼다.

운동을 하고 목욕을 하고 늦은 점심을 먹고 보현과 시간을 보냈다.

어둑한 주말 해변을 걸었다.

이제 프로듀서는 더이상 '통솔'하는 자가 아니라, 직접 '실행'하는 자가 되었다. 조수석에 앉는 게 아니라 직접 운전대를 잡아야 하는 것이다.

'녹음'과 '믹싱'과 '사운드 디자인'의 경계는 이미 사라진지도.

7/9

Kali Malone의 새 앨범을 들은 새벽.

EM-B 발효는 잘 되어간다. 밭에 잠시 들렀을 뿐인데 복숭아뼈 주변이 가렵다. 오늘은 누가 물었나.

내일은 보현이 CT를 찍는 날. 최대한 늦게까지 버티다 밤 11시에 밥을 먹이고 같이 잠들다.

7/10

오전 10시. 보현을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CT를 찍고, 이빨을 무려 3개나 뽑았다.

긴 마취에서 깬 보현이 여지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로 수술실에서 나왔다. 표정도, 냄새도, 짖는 소리도 모두가 낯선 밤. 집으로 오는 길, 보현을 뒷자리에 앉히고 <Dancing with Water>를 틀어주었다. 보현이 다시 잠든다.

집에 와서도 보현은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섬망이 왔다. 두어 시간 더 기다렸다가 밥과 물을 먹인다. 허겁지겁 먹는 모습이 안쓰럽다. 낯선 얼굴의 보현을 재우고 우리도 잠들었다.

7/11

깨다 자다 한 밤. 비가 온다. 아내는 서울에 갔다. 천둥이 친다. 약을 먹이고 보현을 데리고 나갔지만 좀체 걸으려 하지 않는다. 아직도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한다. 여러번 얘기를 해도 못 알아 듣는 듯하다.

EM-B 발효가 무사히 잘 되어 간다. 날벌레 한 마리 꼬이지 않는게 신기하다.

7/12

보현과 하루종일 함께 지냈다. 보현이 몹시 불안해 보인다.

감수성은, 쉽게 자극에 반응하는 성격을 말하는 게 아니라, 세상의 진선미를 긍정하는 태도에 가깝다고 본다. 그래서 음악은 세상을 지탱하는 굵은 뿌리가 된다.

7/13

보현에게 약을 먹이는 기술이 나아져간다. 올리브오일에 가루약을 개고 양배추 조청을 섞어주면 잘 '먹어준다'.

Juan Quintero의 음악을 카세트 테이프로 들었다.

Eno의 일기를 읽기 시작했다. 에리트리아에서는 술을 '거짓말쟁이의 눈물'이라 부른다고 한다.

보현의 컨디션이 좋아졌다.

물 속을 걸었다. 비를 맞으며 마당에 자란 풀을 뽑았다. 남은 황산가리고토와 규산질 비료를 물에 녹여 고루고루 뿌려주었다.

7/14

새벽 산책을 하며 Satie에 대한 얘기를 듣다, 문득 'ambient 음악이 뭐에요'라고 묻던 친구가 생각났다. 지금 친구가 다시 묻는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듣는 것'와 '들리는 것'. 그 사이 무언가 아닐까요.

7/15

누군가 우리 밭의 동백나무 가지를 마구 잘라버린 것을 알았다. 옆집에는 아무도 없다. 몹시 화가 난 상태로 돌아왔다. 화를 식히려 목욕탕에 갔다.

미지근한 물 속에 앉아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인간의 기본값을 무엇이라 보는가. 나는 정말 불특정 다수의 선의를 믿는가.

지는 것, 손해보는 것은 삶의 일부다. 그래야 언젠가 이길 수도, 이익을 볼 수도 있다. 세상 이치란 제로섬에 가깝다. 이런 생각을 하며 목욕탕을 나왔다.

추적추적 비가 오는 날.

7/16

깨밭가를 걸었다.

옆집 주인을 만나 자른 가지라도 잘 치워달라고 부탁했다.

보현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다가, 문득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경이로운지 새삼 느꼈다. 강아지도, 사람도, 풀도, 모두 정교하고 위대하다. 대충 태어난 생명은 없다.

7/17

비가 조금 내렸다.

선휴씨와 다올을 만나 점심을 먹었다.

Silvia Juan Bennazar의 CD를 들었다. 8 년전 나를 지켜주던 목소리가 여전히 감사하다. 아름다움은 항상 간결하고 강하다.

사랑의 뿌리는, 존경이라 생각한다.

7/18

오늘은 작업이 어려울 것 같다고 옆집에서 연락을 주었다. 하루 일정을 모두 재조정해야겠다.

낮 시간 내내 보현과 시간을 보냈다. 오후에는 보현과 병원에 가서 CT 결과를 들었다. 복잡하지만 모두 받아들여야 한다. 8월 중 수술을 하기로 이야기를 나눴다.

7/19

10 시에 작업을 시작한다는 얘기를 듣고 일찌감치 밭에 갔다. 빈 통을 씻고 정리하다 아미노 액비와 키토 목초액이 한 통씩 더 있는 걸 알았다. 말통과 포장 종이 사이에 개미들이 엄청나게 집을 지어놓았다.

중식, 연희를 만나 점심을 먹고 차를 마셨다. 십수년 만에 만난 친구들은 그대로인 듯 그대로가 아니다. 함께 보낸 시간만큼 강한 힘이 또 있을까. 5 시간이 넘게 얘기를 나누다가 아쉽게 헤어졌다.

7/20

귤나무를 덮친 커다란 나무를 치웠다. 나무가지를 대충 자른게 아니라 사정없이 베고 잘라놓았다.

두 시간 가까이 약줄을 정리하느라 기진맥진한 채 집에 돌아왔다. <동물과의 대화>를 조금 읽다. 빠듯했던 하루. 내일 비소식이 있으면 하루는 쉴텐데.

귤 알갱이 하나하나 견딜 수 없게 사랑스럽다.

7/21

퀸시 존스는 자신의 선생님, 나디아 불랑제가 한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말했다.

Your music will never be more or less than you are a human being.

'즐겁게 하자.' 과수원으로 가며 계속 생각했다. '즐거운 일만 하는 것이'가 아니라, 괴로운 일도 '즐겁게 하자.'

덩굴 걷고, 손 예초. 아내는 방제를 위한 밑준비를 했다.

7/22

방제 5-1. EM-B 5L + 키토목초 5L + 아미노액비 1L in 1000 L.

올해 첫 액비 방제라 기분이 좋다.

사마귀를 만났다.

Erik Satie <Sarabande>. 끝나지 않는 코드.

7/23

목이 너무 아파서 오전 방제를 포기하고 한 시간 동안 물 속을 걸었다.

세상은 '아름다운 것'과 '재미있는 것' 중 무엇을 선택하는가.

Satie에 대한 생각을 하다.

7/24

밤새 비오다. 보현이 잠을 못 이룬 전쟁 같은 밤.

GFN 인터뷰 녹음을 하고 점심을 먹고 아내의 안경테를 같이 고르러 어느 상점에 갔다. 독특한 아우라의 동네다. 돌아와서 요가를 하다.

탄소 농법에 대한 NHK의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관행 밭의 유기물 함량은 150 년 전에 비해 1/6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체 우리는 무엇을 먹으며 살고 있는가.

Regenerative farming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다. 시나노 타쿠로씨가 식물의 뿌리와 균근, 미생물에 대한 얘기를 한다. 선생님의 말씀과 똑같다.

7/25

이른 아침, 길 한가운데에 주저 앉은 제비를 보았다. 나는 차에서 급히 내렸다. 다가갈수록 제비는 발버둥을 치며 달아났다. 하지만 이대로 두면 차에 치일 것이 분명했다. 겨우 제비를 붙들어 일단 차를 탔다. 이 시간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는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날개 한 쪽이 이상했다. 거미줄이다. 거미줄에 안 날개와 바깥 날개가 붙어버렸다. 그러니 날개를 펼치지 못한 것이다. 거미줄을 떼어주고 다시 차에서 내렸다. 가까운 밭 근처로 가서 손을 펼쳤다. 제비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아주 먼 곳으로 날아가버렸다.

거실불을 켜고 잤다. 보현이 밤새 깨지 않았다.

Satie <Gnosienne#3>의 스케일? A-B-C-D#-E-F#-A?

방제 5-2. 같은 조합.

도경형, 적형, 동률과 통화를 했다. 'pastische'에 대하여 생각하다.

Thundercat <Them Changes>

Isly Brothers <Footsteps in the dark>

7/26

오랜만에 안방에서 잔 날. 보현이 깨지 않았다.

시내에 가서 아내의 안경을 맞추고 돌아왔다. 들뢰즈를 읽다.

JakoJako의 카세트가 왔다. 중앙선 근처에서 새끼 직박구리를 구해 날려보냈다. 아기새가 필사적으로 날아갔다.

7/27

당일치기 서울 행.

공연장을 둘러보고 머리를 잘랐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다.

7/28

아내가 태어난 날이다. 사과나무가 있는 카페에서 아점을 먹고, 단골 카페에 주문해 둔 케이크를 찾았다. 읍내 식당에서 보현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7/29

토양 검정을 할 때 구리 이온 농도도 알 수 있는지를 문의했다. 가능하다고 한다. 보르도액을 쓰는 농가는 구리 이온 농도를 꼭 체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도 하지 않는다.)

예초. 마른 땅에 남은 EM을 부어주었다.

배나무를 다듬어 주었다. 예쁜 배 하나가 열렸다. 건강하게 살아주는 나무가 감사하다.

아버님과 관련해서 노 교수님과 통화를 했다.

비를 맞으며 밭일을 하다. 진입로의 풀을 베고 덩굴을 걷는데 어마어마하게 많은 풀벌레를 만났다. 방아깨비, 귀뚜라미, 사마귀, 여치, 베짱이... 가위질에 지칠 때면, 예초기를 쓰고 싶은 유혹이 일어난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벌레를 보면 또 금세 마음을 접는다.

7/30

새벽 산책길, 하라리와 지젝의 대담을 듣다.

비를 맞으며 귤이 커간다.

일상을 희생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다.

연꽃을 보았다.

비를 맞고 풀을 뽑았다.

일을 끝내고 땀내 절은 방충복을 빨았다.

7/31

비가 온다. 늦은 장마처럼. 마당 풀을 뽑다. 태풍은 무사히 빗겨갔다.

진실은 정말 단순한 것일까. 진실은 복잡하고 여려서, 애써 알아내고 지켜내려 해야 하는 건 아닐까.

깊은 곳에서 노래를 만들고 싶다.

Luis Salinas를 들으며, 조금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