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물고기님들께 인사드립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제 음악을 들어주신 분들

공연을 찾아주신 분들 

한 분 한 분 빠짐없이 모두 감사합니다.

느리더라도 꾸준하게

음악으로 글로 사진으로 

소식 전하겠습니다.

누구도 다치지 않는

아무도 아프지 않을

한 해가 되길 

기도합니다.

2023년 첫날

폴 드림

9/1

성완씨를 만나고 밭으로 갔다. 태풍 소식에 컨테이너를 창고 안으로 들여놓았다. 이번 태풍은 그야말로 역대급이라는데 이 무시무시한 소식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을순은 무심히 쑥쑥 자란다.

<Doloroso> 작업.

9/2

주룩주룩 비 오는 날.

아내는 약통과 분무기를 창고에 들여두었다. 나는 오두막 작업실 장비 몇 개를 집으로 들여두었다. 오랜만에 한기를 느낀 날.

<Doloroso> 작업.

9/3

<Doloroso> 작업.

재석 형이 한우를 보내주셨다.

영감은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착상'을 돕는 영감. 또 하나는 '의욕'을 부르는 영감.

쌍무지개를 보았다. 태풍이 와도 걱정말라고, 큰 일 없을 거라고 얘기해주네.

Lacrimosa. Pieta. Mater Dolorosa. Homo Reus.

9/4

묵음에서 찬준씨를 만나고 화정, 윤아, 부르스를 지구상회에서 만나고, 아무래도 마음이 불편하여 오두막에서 장비 몇 개를 더 들고 왔다.

<Doloroso> document 보내고 작업 조금 더 하다.

저녁 바다가 완벽한 무채색이다.

9/5

태풍의 날. 한낮 아니 오후까지 잠잠하다.

9/6

감사의 날. 모두가 무사하고 감사하다. 어제부터 안부 문자, 전화를 참 많이 받았다.

꺾인 레몬나무 가지를 잘라주었다.

아름다운 음악을 듣는 순간만큼은 나도 아름다워지기에 그리고 누구나 그것을 소망하기에.

Cartola의 노래. Maria Rita의 목소리. Plínio의 기타. 모두가 孤高하다.

동하와 통화. 다올이 와인을 주고 갔다. 한국 친환경 김주임이 왔다 선물을 주고 갔다.

9/7

친환경 지원 사업 서류 문제로 아내와 의논에 의논을 거듭하다. 유기 자재 사업은 서류만 내면 되는데 특별 지원사업이 문제다. 항목 변경을 해야하기 때문. 두 군데 업체에 견적서를 의뢰해 두었다.

선물을 건네드리고 왔다. 동인형과 통화. 정진이 카레를 갖다 주었다.

풋귤의 플라보노이드와 환원력 시험 문의를 했다. 각 1 kg씩 필요하다.

잔류농약 463 종 불검출 통지를 받았다. 당연한데도 괜히 기쁘다.

(며칠 전 얘기지만) Stephan Mathieu가 자신의 전 앨범을 26 유로에 내어놓았다. 그는 곧 bandcamp 계정을 닫을 거라며, 마스터링 엔지니어로서의 삶이 무척 'fulfilling'하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음악이 '사라지길' 원한다고 했다. 동인형은 기존 앨범의 CD를 더 찍을 것인지를 나에게 물었다. 나는 그 '음반'들이 그만 만들어져도 괜찮지 않겠냐고 했다.

선생님을 뵙고 당밀과 애미를 사왔다. 이번에는 선생님이 우리를 알아보지 못하셨다.

9/8

오전부터 지원 사업 관련 전화와 서류 준비. 농협과 읍사무소, 면사무소를 오가며 서류를 냈다.

정진의 카레를 맛있게 먹고 화정이네에 조금 나눠주었다.

풋귤 영양 성분 분석처를 조사하고 전화를 걸었다. 시험 기관마다 가격 편차가 크다.

Ligeti의 Étude 듣다.

9/9

하이드로폰으로 고양이들이 밥먹는 소리, 물먹는 소리를 녹음하다.

9/10

아침 소풍 그리고 기도.

목공품의 아름답고 우연한 무늬를 보다가, <Moment in Love>는 어쩌면 귤나무의 소리 무늬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9/11

부산에 다녀오다.

부엌 밖에서 비둘기가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걸까. 고양이가 비둘기를 쫓아낸다. 우리는 밖으로 나가 고양이를 쫓아냈다.

9/12

집으로 '대피'한 악기들을 다시 오두막에 되돌려놓았다. 바닥에 비둘기 알 하나가 떨어져 있다. 고양이의 짓. 비둘기는 우리에게 어떤 도움을 청했던 걸까.

밤. Priscilla와 italki 포르투갈어 레슨. 십몇 년 만에 처음으로 포어를 했다.

9/13

아내가 서울에 갔다. 혈형이 와인을 보내주셨다.

목 박사님과 풋귤 시험 관련 통화를 했다. 시료 양과 균질성이 문제다.

9/14

시료용 풋귤 수확. 덩굴 제거. 비오듯 땀을 흘렸다.

9/15

개머루가 예쁘게 익어간다. 대문의 개폐기가 깨져버렸다. 같은 개폐기를 구하러 철물점을 돌아다녔다. 너무 오래된 모델이라 구할 수가 없다.

Josias와 포어 수업. 오두막 기기를 다시 세팅.

9/16

오두막 스피커 위치를 다시 잡고 세팅. 랩탑이 너무 뜨거워져서 엄청난 소음이 나서 세팅을 포기했다.

석산이 피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추석 즈음 피어났구나.

9/17

집 근처에 Rösti를 파는 식당이 생겼다. 감개가 무량하다.

너무 더운 날. 아이스팩을 랩탑 아래에 깔고 작업을 한다.

보현 수술 날짜를 정했다.

9/18

과수원은 강아지 풀밭이 되었다.

Josias와 수업. 오두막 wifi가 자꾸 꺼졌다.

세팅 완료. Red16line -18 dbu, AD+ -14 dbu 로 세팅을 하니 - 이유는 알 수 없지만 - in/out 레벨이 딱 맞다. pink noise level은 integrated loudness를 보면 된다. pan law 3 db 명심할 것.

Porto -> Lisboa 비행기 예약.

9/19

바다가 아름다운 날.

초피 나무, 앵두 나무에 새순이 피었다.

옆집 아이에게 사인 시디를 전해주고 왔다.

태풍에 부러진 레몬 가지를 다듬어 주었다.

9/20

<Doloroso> 작업.

성민과 점심 식사.

포획틀 4 개 반납하고 다시 오두막으로 돌아가 일을 했다.

'의문의 공간'이 있는 사람은, 유연하다.

9/21

<Doloroso> 다다시 작업. 너무 답답한 소리.

오두막 보일러실을 고치려다 일이 커질 것 같아 일단 돌아왔다.

화정이 외갓집 앞바다 사진을 보내왔다. 삼촌과 엄마, 누나에게 사진을 보내드렸다. 알록달록한 돌이 해안도로가에 줄지어 놓여있다. 한 때는 이곳이 모두 개펄이었다. '덩더꿍'이라 불리던 돌무덤 하나를 빼면 옛 바다 모습은 이제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다.

9/22

많이 선선해졌다. 하루 종일 에어컨을 켜지 않았다.

오두막 보일러실을 다 뜯어 내고 어찌어찌 혼자 수리를 했다.

<Doloroso> 다다시. speaker와 헤드폰 사이 간극이 크다.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음악은 나를 찾아오지 않는다. 내가 음악을 찾아간다.

9/23

<Doloroso> 마감.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하기로 마음 먹는다. 집에 와서 음원을 loop tape으로 옮기고 letter 한 장을 써서 포장을 했다.

서른 둘에 멈춘 친구의 기일. 추분이다.

성하씨 CD가 집에 왔다.

9/24

개폐기를 대문에 달았다. 언제 단종될지 모르는데 몇 개 사두어야 할까.

오후부터 몸에 탈이 났다. 타이레놀 두 알을 먹고 잤다.

9/25

몸이 여전히 다 회복되지 않아 운동을 하고 쉬었다. 아내는 내가 프로젝을 하나 마칠 때마다 몸살을 앓는다 얘기한다.

밭에 우슬이 많이 번졌다고 아내가 말했다.

9/26

오두막에서 Josias와 수업.

우체국에서 풋귤과 <Doloroso> 패키지를 보냈다.

<No Signal> 글을 복복서가에 보냈다.

밤 10 시가 넘어서 잠들다. 밤 기온이 다시 올라갔는지 보현이 밤잠을 설친다. 자정을 조금 지난 시각, 한참을 같이 깨어있다가 마루 불을 하나 켜고 에어컨을 26도로 맞춰 틀어주니 보현이 다시 잠든다.

9/27

조금 더운 아침. 늦더위가 남아있다.

친구에게 보내줄 풋레몬청을 담았다. 설탕 없이 토종꿀로만.

내일 수술을 앞두고 보현은 11시부터 금식을 해야한다. 함께 늦게까지 깨어 있다, 잠들다.

9/28

보현 수술. 혀와 잇몸의 종괴를 하나씩 떼고 하악 림프절도 하나 떼어냈다. 씩씩하고 용감하게 견뎌준 보현. 고맙구나. 두달 전 수술보다 더 잘 견뎌준 것 같아 고맙구나.

TNR 포획틀에 길고양이 세 마리가 잡혀서 병원에 보냈다.

9/29

새벽 2시 40 분. <Somi>를 끄고, <Dancing with Water>를 틀어주었다. 보현이 훨씬 잘 잔다. 아침에는 무탈히 쉬야, 응가를 하고, 간밤 여러번 깨긴했지만 그래도 잘 견디고 있다. 우리는 아침과 저녁을 4 번에 나눠 조금씩 주기로 했다.

보현은 계속 코를 고며 잔다. 수술한 목이 부어서 그렇다. 보현의 곁에서 나는 기타를 잡고 노래를 불렀다. 보현이 코고는 소리가 조금 줄어든다.

귤이 익어간다.

청레몬을 조금 더 따와 청에 추가.

9/30

<Doloroso> taping, slowing down.

동네 병원에서 보현의 목 붕대를 갈아주었다. 실밥 풀 때가 되면 먼 병원까지 가지말고 이리로 오시라한다. 선생님들은 보현이 한 번 더 보고 싶으신 거다.

보현의 몸은 놀랄만큼 빠르게 좋아지고 있다.

기쁘고 경이롭구나. 우리 보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