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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8/31

8/1

잠을 설쳤다. 우울함을 이기고 싶어 맹렬히 운동을 했다.

농업 강의를 들었다. 나무는 광합성으로 만드는 당분의 절반 가량을 뿌리로 내려보낸다. 그리고 나무는 자신이 만든 당분의 일부를 주변에 사는 동료들 - 미생물이나 균사류 등과 나눠먹는다.

페르귄트를 들으며 '반복'에 대해 생각하다.

8/2

아내가 서울에 갔다. 아내를 공항에 내려주고 돌아오는 길, 비가 억수 같다.

플로리다 오렌지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지금 플로리다 오렌지의 생산량은 20세기 초 수준으로 떨어졌다. 과도한 밀식 재배와 농약 사용으로 나무의 회복력이 떨어진 것이다. 나무를 빽빽하게 심으면 수확량이 늘어날 듯 보이지만, 결국에는 수확량이 줄게 되어있다. 해충도 많아진다. 원래는 보이지 않던 해충이 나무에 꼬이자 농부들은 이제 나무에 그물망을 씌우기 시작했다. 쫓고 쫓기는 그러나 끝이 없는 싸움. 바싹 말라 풀 한 포기 없는 땅에 그물을 뒤집어 쓴 거대한 오렌지 나무 사진을 본다. 지금 플로리다에서 오렌지를 '생산'하는 방식이다.

8/3

전쟁 같은 밤을 지나 아침이 되었다. 보현도 지쳤는지 아침밥을 달라고 재촉도 하지 않고 뻗었다. 지난 밤, 귀마개를 했다가 완벽한 고요를 이기지 못하고 귀마개를 빼버렸다. 완벽한 고요는 완벽한 공포다.

마당에 EM-B/아미노액비를 뿌려주었다. 아내를 마중가는 길, 동물병원 선생님께 드릴 액비를 챙겼는데 액비가 새는 바람에 드리지 못했다.

8/4

오전에는 예초. 다만 한 시간도 버티기 어렵다. 머리에 물을 끼얹으며 더위를 식혀본다. 호랑나비가 아름답게 억새잎에 앉았다. 바싹바싹 마르는 여름의 한가운데에 서있다. 한낮 숲 산책을 하다 물잠자리, 들깃동잠자리를 보았다.

8/5

예초. 덩굴 걷기. 오후엔 아내가 방제 준비를 해두고 갔다. 정진과 사촌 동생이 집에 와서 얘기를 나누다 갔다. 정진이 CBD 오일에 대한 얘기를 해주었고 파워선 하나를 선물해 주고 갔다.

8/6

어젯밤도 고생이 많았구나. 아예 시차를 바꿔 늦게 자려 애쓰다가 모처럼 아내와 와인 한 병을 다 마셨다.

8/7

보현 썸머컷을 해주었다. 지방종이 볼록한 핑크빛 배가 찡하다.

남쪽 마실을 갔다가 돌아오는 밤. Toe를 듣다. 아주 멀고, 컴프레션된, 좁지만 큰, 둥그런 드럼 사운드. 처음 아내와 함께 본 공연이 Toe의 공연이었다.

8/8

여전히 잠을 설친 밤. 아내의 컨디션이 몹시 좋지 않다.

액비 혼합물을 관주해주다. 액비 상태가 좋다. 풀이 많이 자랐다. 봄에 전정한 나뭇잎이 땅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유심히 본다. 잎맥만 남은 나뭇잎이 천천히, 하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흙이 되어 가는 아름답고 경이로운 광경.

Weather Report를 들으며 밤길을 달렸다. 보현에게 수면 음악을 들려주었다.

8/9

보현이 간밤에 잠을 잘 잤다. 수면 음악 덕분인가.

계속 수면 음악 작업. 글 쓰기. 음악 만들기와 글 쓰기를 함께 하다보면, 음악과 글이 얼마나 멀리 있는지를 느낀다.

James Jamerson, Rocco, Jaco의 베이스. Jackson 5 듣다.

8/10

나무 두 그루 전정. 여름 전정은 처음이다.

수면 음악에 대한 설명을 client에게 보냈다.

이 곡은 잠 못드는 분들을 위한 음악입니다. 이 음악은 - 제목이 얘기해주듯 - ‘수면등’을 모티브로 만들어졌습니다. 해가 지고 날이 밝을 때까지 누군가의 곁에 머물며 편안한 잠의 세계로 안내해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곡은 다섯 개의 곡이 하나로 이어진, 일종의 모음곡입니다. 혹은 ‘플레이리스트’나 ‘믹스테입’으로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다섯 개의 곡은 우리가 잠이 들 때 거치는 여러 다른 단계를 상징합니다.

(...) 작업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곡을 만들고 다듬는 내내 저부터 쏟아지는 잠을 참아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삼십 분이 넘는 곡이라 소리를 다루는 순간순간 탈출하는 의식을 애써 붙들고 다시 집중해야하는 건, 무척 어려우면서도 또 기쁜 일이었습니다. 머리가 멍해지고 잠이 쏟아질수록 ‘아, 내가 제대로 만들긴 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보람을 느꼈습니다.

열대야가 이어지는 요즘에는 밤잠을 설치는 저의 반려견 보현을 위해 이 음악을 밤새 무한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이 곡의 덕을 얼마나 톡톡히 보고 있는지 모릅니다. (음악을 틀어놓은 지금도 보현은 기절한 상태입니다.) 음악인으로 살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이런 달콤 쌉싸름한 경험을 선물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리고 저의 이 음악이 잠못이루는 많은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온 마음을 다해 바라봅니다.

8/11

아내가 머리통만한 쌍살벌집을 발견했다. 119를 불러야 하나 고민했지만 예초를 하느라 경황이 없다.

아버님 재활치료 선생님과 통화를 했다.

8/12

하루종일 보현과 보냈다. 서귀포 유람을 다녀오다.

8/13

관주 준비를 끝내다. 관주관 주변에 개미집이 엄청나다. 모기가 내 몸을 무섭게 융단폭격했다.

고사리 해장국은 소화가 참 잘 되는 음식이다. 이제 다시 기타를 잡을 시간이다. 손톱을 깎았다.

8/14

잠을 잘 잤다.

전 세계 농경지 중 65% 가량의 땅에서 하나 이상의 살충제 성분이 발견된다고 한다. 농약 잔류물이 기준치 100 배를 초과하는 고위험군 땅이 31%나 된다.

- Nat. Geosci. 2021

관주 1 통. 오랜만에 관주를 하다보니 말그대로 엉망이다. 점적 호스가 새는 곳이 있어 테플론 테이프로 겨우 수습하고, 배관을 거꾸로 연결하지 않나. 액비를 뒤집어 쓰질 않나. 초보자처럼 허둥지둥대던 바보 같은 하루.

나뭇잎 위에 사마귀가 허물을 벗어두었다. 작은 바람에도 날아갈만큼 얇고 가벼운, 이 아름다운 탈출.

풋귤즙을 짜서 몸을 달래주었다.

8/15

간밤 한 번도 보현이 깨지않았다.

관주 두 통. 덤불 사이에 묻힌 밸브를 찾느라 고생을 하다. 15개 밸브를 모두 열고 관주를 하면서 짬짬이 전정을 했다. 칼슘 액비를 점검했다. OK. 청레몬 물을 마셨더니 기운이 솟는다.

Miguel Poveda의 <Desglaç> 앨범을 참 오랜만에 다시 들었다. 여전히 아무 말도 필요가 없다.

8/16

두 그루를 전정하고 돌아오다. 비가 흩뿌린다.


사마귀 안녕.

베짱이 안녕.

농업 용수 수도꼭지를 갈았다.

Endless tape이 도착했다.

아름다움은 두려움을 이길 수 있을까.

현상과 통화. 다음 주에 보기로 했다.

8/17

간밤 천둥과 번개가 치다. 비가 많이 내린 하루. 중산간에는 비가 퍼붓는다. 엊그제 서울이 이랬으려나 싶다.

병원에 다녀왔다.

8/18

시모어 번스타인의 레슨을 듣다. 흔히 크레센도 (<), 디미누엔도 (>)라 부르는 '헤어핀'을 그는 다르게 설명한다. 낭만주의 시대가 지나면, 헤어핀은 더이상 다이나믹과 관련이 없을 뿐더러, 오히려 '루바토'로 연주하라는 의미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헤어핀 마크 (< >) 는 점점 빠르게 accelerando와 점점 느리게 ritardando를 의미한다. (...) 우선 연주자는 템포를 유연하게 해석해야 한다. 일종의 루바토와 비슷한 의미라 할 수 있다.

- 파니 멘델스존

8/19

세상을 미워해도 사람을 미워하지 않도록.

시모어 번스타인의 인터뷰를 들으며 바닷가를 걸었다. 그는 'recreation'이 아닌 'creation'을 하고 싶어서 연주를 그만두었다 했다.

관주 두 통. 여름 전정. 예초. 도포제 바르기. 덩굴을 걷다가 밭에 자라는 엄청난 풀을 보며, 이미 자연재배에 가까워 진 건 아닐까, 생각했다.

개구리, 여치를 만났다. 아주 큰 회색 애벌레를 보았다. 검은 큰 나비의 애벌레?

올해 레몬이 많이 열렸다. 접목하고 제대로 수확하기까지 6 년의 시간이 걸렸구나.

카세트 데크 되감기가 안 된다.

8/20

유기농 과수원은 깔끔할 수도 없고, 깔끔해서도 안 된다. 매년 식생이 바뀌는 이 다이나믹한 공간은 뒤죽박죽, 지저분하고, 때로는 무서운, 그러나 아름다운 곳이다.

올해엔 달개비와 여뀌꽃이 덜 피네. 벼과 식물이 많아졌다.

아침에 들었던 시모어 번스타인의 말들.

The more i know human, the more i love animals.

music is non-verbal.

덩굴 걷고 액비 한 통 관주. 흐린 날이다.

아내가 향기 짙은 돌동부 꽃을 건네준다.

8/21

음악은 수학이 아니다. 음악은 물리학이다.

- Leon Fleischer

아침 바다가 '가을' 같다. 짙푸른 바다 위에 뜬 층층구름들. 가을 구름이 따로 있을까. 아마 내 마음이 가을이었겠지.

액비 1 통을 1000 L에 희석해서 관주했다. 720 L 정도 삼각지에 뿌리고 나머지는 다른 곳에 고루 뿌려주었다. 가을 향기가 언뜻언뜻 났다. 잿빛 사마귀, 베짱이, 귀뚜라미들을 만났다. 정진이 밭에 와서 점심을 같이 먹었다. <제품>에서 포근이를 만났다.

8/22

Roberto Carlos의 음악을 들으며 중산간을 달리던 중, 문득 나는 얼마나 자주 내가 노래를 잘 한다 느끼는지를 생각했다. 20%? 10%? 아니 1%도 안 될지 모른다. 하지만 그 미미한 순간이 다른 많은 시간을 지탱해준 건 아닐까. 누구나 미미한 긍정을 움켜쥐고 거대한 부정을 견디며 살아가는 건 아닐까.

나는 우리 마음 속에 '영혼의 저수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Seymour Bernstein

spirit. 영? 얼? soul. 혼? 넋?

8/23

처서. 하얀 독수리가 나오는 꿈을 꾸었다.

시청에서 TNR 포획틀 6 개를 주었다. 설명을 듣고 여기저기 포획틀을 두는데 멀리서 참깨가 나를 물끄러미 본다. 뒷마당에서 아내에게 포획틀 사용법을 알려주는 사이 참깨가 다가왔다. 그리고 스르르 자리에 앉으며 깊은 눈인사를 건넨다. 처음이다.

잠시 후, 미끼를 넣지도 않았는데 참깨의 새끼 한 마리가 잡혔다. 참깨가 다시 매섭게 우리를 노려본다. 아기 고양이가 벌벌 떨고 있다. 너무 어리다. 아직 여름이 많이 남아있는데 어떻게 해야할까. 아이를 풀어주러 포획틀 문을 열었다. 겁에 질린 새끼 고양이는 포획틀을 빠져나가지도 못하고 주저 앉았다.

시모어 번스타인이 <Belinda, Chipmunk>를 얘기하다 음악의 '무명성'을 말한다.

Fado를 듣다. Carminho가 부르는 <Sabiá>를 들으며, Carminho에게도 Jobim에게도 새삼 감탄했다.

8/24

새벽 바람이 심지어 서늘하다.

밀린 메일을 쓰고, 일기를 쓰고, 고양이는 잡혔냐고 묻는 담당자 분들께 얼버무리며 대충 둘러대고, 내일 새벽 다시 포획을 시도하자 마음을 먹어본다.

빙하가 녹고 있다. 빙하는 다시 얼지 않는다. 그저 다음 빙하기까지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빙하가 지구의 갑상선이라면, 지구는 지금 체온 조절 기능을 잃어가는 중이다.

친환경 인증 심사가 끝났다. 유기농 밭임을 알리는 안내판을 밭 입구에 걸어두라는데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고민이다.

과수원에 강아지풀이 무성해진 것이 혹시 규산질 비료 때문은 아닐까, 문득 생각했다. 규산질 비료는 벼과 식물의 생장을 돕고, 강아지풀은 벼과 식물이니까.

8/25

제초제의 아민염이 대기 중 질소 오염물질이 된다. (Environ. Sci. Technol. 2022, 56, 19, 13644–13653)

Abstract Image

번스타인이 묻는다. 일 속에 삶이 있는가. 삶 속에 일이 있는가.

밭 입구 수도관에 유기농 안내 깃발을 달고, CCTV 안내판을 재설치하고, 스피커 테스트를 하고 돌아오다.

현상, 귀현씨와 점심을 먹었다. 독특한 삼춘 한 분이 함께 오셨는데 약간의 소란이 있었다. 죄송했다고, 식당 주인께 문자를 드렸다.

8/26

시는 모호할 수 없다. 시는 명료하다.

사랑하고 기대하지 않는다.

예초. 익숙한 가을 덩굴꽃이 하나 둘 핀다. 과수원에서 일을 할 때 가장 절망적인 건, 아무리 발버둥을 쳐본들 늘 역부족이라는 것. 마음대로 되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그런데 오히려 겸허해진다.

저녁 바다가 아름답다.

베를린의 Norman이 메일을 보냈다. LP 테스트 프레싱을 들어보았는데 마음에 든단다. 다행이다.

8/27

사위질빵 꽃이 피고 칡꽃이 피고 돌동부 꽃이 피네. 꽃향기는 아름답고 덩굴은 징글징글하네. 환삼덩굴, 거지덩굴, 하늘타래, 나팔꽃... 끝을 모르고 덩굴이 하늘로 올라가네.

오두막 앞쪽 예초. 가슴팍까지 억새가 자랐다. 바닥을 기어다니며 나무 아래로 들어가 덩굴을 뽑고 자른다. 내게 허락된 가장 많은 시간을 붓고 있지만, 언제나 역부족이다.

풋귤을 조금 따왔다.

포획틀에 아이들이 잡힌다. 너무 어리다. 2 kg가 안되는 아이들은 풀어주어야 한다.

참깨가 잡혔다. 시간이 너무 늦어 풀어주었다.

8/28

Martha Argerich의 로잔 공연 리허설.

그런데 '클래식'은 무엇일까. Villa-lobos는 클래식이고, Jobim은 클래식이 아닌가.

8/29

이곳 저곳 공사장을 찾아다니며 수많은 굉음을 녹음했다. 포크레인이 땅을 파는 소리를 유심히 들었다. 저 아래에 아주 낮은 주파수의 소리가 들린다. 주변의 생물들은 어떻게 이 소리를 견디며 살고있을까. 하지만 소리는 죄가 없다.

데크가 왔다. VU meter 바늘이 안 맞지만 그럭저럭 쓸만하다.

8/30

굉음 채집 이틀 째. 수많은 '공사중' 표지판을 만났다.

Endless loop tape 준비.

8/31

아침 일찍 순비기 열매를 따고, 포장을 하고, 로즈마리와 풋귤청을 보냈다. 풋귤을 조금 더 수확했다. 한라 동물병원 선생님께 선물을 보냈다. <그대가 조국> DVD와 효진씨의 선물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