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nu Close

6/24-7/18

6/24

조류 교육 수업이 끝나고, 한 선생님이 토란 구근을 한 자루 건네주셨다. 어디에 어떻게 심어야 할 지 모르겠다. 목수분들과 창고의 최종 도면을 확정했다.

 

6/25

 

 AA027
아침 10시. 텅 빈 대합실 티비에선 브렉시트가 어쩌구, PIGS가 어쩌구 하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우중충한 바깥 어디서 산솔새 같은 녹두빛 새 한 마리가 날아다녔다. 하루에 두 번 비양도로 가는 배는, 실은 사람들이 적당히 모이면 그냥 출발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독한 배의 연기에 속이 울렁거렸고 먼 곳을 보려 애썼다. 배 허리로 갈라지던 바닷물빛이 그 높은 산 속 옥빛 빙하를 닮았다.

AA032

선생님은 데크를 따라 걸으며 이 곳의 식생을 이야기해주었다. (아마도 비양나무에 대한 얘기였을텐데) 대나무가 번져서 문제라는 얘기, 방목한 염소가 얼마나 쉽게 섬 하나의 식생을 망가트릴 수 있는 지, 에 대한 얘기도 하셨다. 바닷물을 막아 유원지처럼 만들어 놓은 못에는 이제 더이상 생물이 살지 못한다, 고도 말씀 하셨다. 끊임없이 흐르고 드나들어야 할 물이, 고여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무 것도 살지 않는 못의 동편에는,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며 부지런히 돌아가는 발전소가 있었다.

AA031

숨을 멈춘 습지엔 그 많았을 새 소리 대신 발전소 소리가 텅텅 울려대고 있었다. 사람들은 어디선가 기어이 새 한 마리를 발견한 모양인지 망원경에 눈을 갖다대보지만 그나마 모습을 보인 찌르레기 한 마리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어느 민가 위로 날아가버렸다.

AA039 (1) AA035

AA009 AA017

새가 사라진 섬. 그래도 우리는 부지런히 걸었습니다. 파리를 쫓으려 장독에 감아두곤 했다는 환삼 덩굴 잎으로 훈장도 만들어보고 예덕 나무 암꽃도 만나보고 제멋대로 결각이 난 뽕나무에 대한 얘기도 엿들었습니다. 섬의 초입에는 몹시 아파보이는 팽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사람들은 나무 주변을 콘크리트로 꽉 막아놓았더랬습니다. 목 졸린 물, 목 졸린 나무가 있던, 섬 속의 섬을 빠져나왔는데, 역시나 물구멍이라곤 거의 없는 답답한 제방 위에서 청머리오리와 백로 몇 마리를 보았지만, 나도 모르게 아픈 기분만 안고 집으로 돌아와야했습니다. 

예덕나무가 이렇게 많았었나. 밭으로 가는 예덕 나무 길, 이름을 모를 땐 보이지도 않던 꽃길. 

보현이와 산책을 하다가, 팔색조를 보았다.  pitta nympha. 나는 정말 숲의 nymph을 만난 건지도 몰라.

 

6/26

스산한 호랑지빠귀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아침 9시만 돼도, 더위가 엄청나다. 900 L에 보르도액 (10 kg), 기계유유제 (10 L) 를 뿌렸다.

현기영 님의 인터뷰를 읽었다. 빔 벤더스의 every thing will be alright을 보았다. 

 

6/27

비가 많이 오는 날. 오일장에서 8 kg 쯤 되는 연어 병치를 사왔다. 

돌아오는 길에 Tomita Lab의 음악을 계속 들었다. 

 

6/28

골분 25 포대를 주문했다. 광합성 세균을 구할 방법을 알아내었다. 

 

6/29

비가 왔다갔다 하는 날. 동하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내가 손을 베었다.

지영이네, 봉식이네와 도면 작업을 끝낸 기념으로 막걸리 쫑파티를 했다.

 

6/30

AA023

옆 밭에선 대낮부터 쓰레기를 태우고, 기운 빠진 마음으로 돌아오는 길 위, 달처럼 해가 진다.

AA036 (1)

흰뺨검둥오리 한 쌍이 물 고인 밭에서산책을 하고 있었다. 암컷이 뒤뚱이며 먹이를 찾는 동안 수컷은 의젓하게 망을 보며 곁을 지켰다. 너희는 어디서 어떻게 만났니. 오늘의 기쁨이구나.

 

7/1

7월의 첫 날. 7월의 첫 비. 레몬 가지에서 보라빛의 여름 순이 자라났다. 작지도, 크지도 않은 파쇄더미는 지렁이들의 좋은 아파트다. 잘게 썬 음식물 쓰레기를 그 속에 넣어주었다.

봄에 받은 비료를 잘 덮어두지 못한 탓에 비료 몇 포대가 상했다. 냄새가 심한 포대에는 EM을 뿌리고 버무려 뿌려주었다. 골분 차가 오고, 25 포대를 밭 한 구석에 부리고, 기사님은 친절하게 단단히 비닐을 덮어주며, 숨구멍에 물 들어가면 안돼요, 라신다. 심지어 비료도 숨을 쉰다. 다시 정신없이 비료를 뿌리는데, 트럭이 밭에 빠졌다. 결국 견인차가 끌고 나간 타이어 자국이 깊게 패었다.

일을 마치고 온통 젖은 등 뒤로 부는 바람에 세상의 온갖 나무들이 하늘하늘 고맙다고 인사하는 것만 같다.

밤 늦게 준관, 효제, 동환 형이 왔다.

 

7/2

비행기 결항으로 오지 못한 정현이 합류했다. 오일장 구경을 시켜주고 바닷가에 갔다가 숲 산책을 했다. 

 

7/3

벼락 같은 비가 내리고, 친구들은 서울로, 부산으로 떠나갔다. 한때 음악을 하던 이 친구들은 언젠가 각자의 길을 뿔뿔이 걸어갔다. 음악 위에 혼자 남겨졌듯, 오늘은 공항에 혼자 남겨졌다.

 

7/4

AA039 (2)

머리에 아직 솜털이 보송한 어린 멧비둘기 한 마리가 마당에 보였다. 제자리에서 똥 오줌을 계속 지리면서도 새는 도망도 가지 않았다. 선생님에게도 전화를 드리고 혹시나 싶어 동물병원에도 전화를 하는 사이, 새는 폴짝 뛰어 담벼락 사이에 숨어버렸다. 결국 야생동물 구조대원들이 집으로 왔는데 잠자리채로 아기 비둘기를 잡은 대원은, 모이 주머니도 꽉 차있고요, 누군가 먹이를 계속 줬다는 뜻입니다. 날개나 다리도 문제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왜 안 날아갔을까요? 글세요. 아마도 아직 날기가 서투른 탓이 아닐까요.

DSC03578

DSC03586

우리는 아기 비둘기를 옥상 위에 올려다주고, 쌀과 물을 가져다 주었다. 그런데 옆집 옥상 위에도 - 어미라기엔 작은 - 비슷한 덩치의 비둘기가 보였다. 저녁으로 페이주아다를 준비하던 우리는, 아기 비둘기에게 '페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러고보니, '飛' 이기도 하네. 

 

7/5

외할머니 제삿날. 아내는 나에게 할머니가 좋아하시던 음식이 뭐였냐고 물었다. 사실, 할머니의 취향에 대해 나는 알고 있는 게 없다. 다만, 추운 겨울, 할머니가 커다란 대야에 팥죽을 만들어 놓으셨던 것, 앵두주를 담아서 엄마에게 권하시던 것, '새마을' 담배를 피우시다가 조카-이자 대를 이을 장손이 태어난 뒤 담배를 끊으셨던 것, 가끔 막걸리를 받아놓고 잔에 따라서 무언가를 섞어 새끼 손가락으로 휘휘저어 드셨던 것만 기억이 어렴풋할 뿐.

하나뿐인 할머니의 취향에 대해서 나는 아는 게 하나도 없다. 그 시절, 세상이 할머니에게 취향이라는 사치를 허락하긴 했을까. 그래도 냉장고에 할머니 생각을 하며 담은 앵두주가 있어 다행이다. 술을 한 잔씩 따르고 눈을 감은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할머니는 참 좋은 분이셨습니다. 할머니 덕분에 제가 이렇게 있습니다. 착하게 살겠습니다.

DSC03598 (1)

대문 위에 앉아 페이가 잠을 자고 있었다.

 

7/6

IMG_0529

아침 운동을 하고 돌아오니, 멧비둘기 한 마리가 페이와 함께 있다. 둘은 소나무 위에 꼬리를 맞대고 하루종일 바다를 본다. 멧비둘기는 한 번에 두 개의 알을 낳는다고 하니, 형제인 지도 모르겠다.

DSC03600 

점심을 먹고, 방충망을 갈았다. 2 년 전 갈았던 철제 방충망은, 해풍에 삭아 부스러졌고 이번에는 스텐리스 스틸 방충망을 사왔다. 어떤 바람에도 삭지 않는 '스덴' 방충망 조각이 발가락을 찌른다. 녹슬지도 으스러지지도 않는, 영생의 철 조각이여. 

숲에서 팔색조를 또 만났다.

노을의 숲,

잠 깬 새, 발돋움에

잎너울만 그렁그렁

DSC03603DSC03606

초승달 뜬 밤. 다리를 다친 지 5개월 만의 질주. 보현이가 다시 달렸다!

 

7/7

과수원에 분양한 '지렁이 아파트'에 제공했던 음식물 쓰레기가 일 주일만에 검게 분해되었습니다. 

선물받은 수국을 밭담 동백나무 사이에 심어주었다. 말통 8 개와 1/3 통만큼의 EM-B를 거두었다. 마당에 비료와 EM을 주었다.

요가 선생님은 오늘따라 부장가아사나만 25 분이 넘게 시킨다. 허리를 세우고 고개를 들어 우르드바무카스바나를 하는 사이, 나는 페이와 함께 날아온 멧비둘기의 이름을 생각해냈다. 티엔 天.

DSC03617

집에 돌아오니, 페이와 티엔이 별을 보듯 나란히 잠들어 있다.

 

7/8

AA033

멧새 한 마리가 날아와 한참 노래를 불러주고 갔다. 새벽 같이 일을 시작했는데도, 중무장을 하니 무섭게 덥다. 세 그루의 나무에서 깍지벌레가 보였다. 기계유유제 (9 L) + 보르도액 (10 kg) in 900 L 방제하였다. 

시유지의 배나무 두 그루가 병들어가는 듯 보여, 보르도액을 뿌려주었다. 따로 시비를 해줘야할 것 같다.

조류교육 시간. 어느 호주 학자는 봄 가을 사이 2만 9천 킬로미터를 날았던 도요새의 비행을 기록했다. 지구의 반 바퀴 이상의 거리다. 어떤 새는 텃새가 되고, 어떤 새는 철새가 되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한 곳에 안주하는 삶을 택하고, 누군가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삶을 택한다. 서울의 2/3 면적에 달하는 새만금 사업으로 인해 수많은 새들이 멸종 위기종이 되었다. 이십여만 마리의 개체가 살던 새만금 일대엔 지금은 겨우 몇 천 마리의 새만 산다.

 

7/9

후박나무 길을 달리던 아침이었습니다. 한 어린 직박구리가 이리저리 도로 위를 뛰어다니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차가 가까이 가도 도망갈 생각도 없는 듯 보였는데, 건너편 차선을 보니, 역시나 비슷한 몸집의 직박구리가 있었습니다. 다만, 죽은 새였습니다.

나는 늘 가지고 다니는 수건을 꺼내 차에서 내렸고, 살아있던 새는 나무 사이 어디론가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반대편 도로 위로 차가 지날 때 마다, 더는 망가질 것도 없는 새의 몸이 풀석거렸습니다. 가까이에서 본 직박구리의 눈은 푸른 빛이었습니다. 얼마전에도 본 기억이 있는 푸른 눈빛이었습니다. 나는 모종삽을 꺼내 길가로 갔습니다. 흙이 무른 곳을 찾아서 땅을 파고, 새를 뉘이고, 흙을 덮어주었습니다. 형제였을지 친구였을지 살아있던 한 마리의 새는 어디선가 나를 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연두색 수건에 아기새의 피가 버섯처럼 피어났습니다. 다시 차를 탄 나는, 저 새는, 슬펐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나는 생각했습니다. 나는 왜 저 새가 슬펐을까? 라고 생각하는 걸까. 얼마전 집에 왔던 어느 형이 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아이들은 쓸쓸함이나 외로움을 모르는 것 같다. 그런데 왜 형은 아이들이 외로움을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초등학교 1학년 아니면 2학년이었습니다. 부모님 없이 전학을 자주 다니던 나는 친구가 거의 없었습니다. 야구를 좋아하던 나는 친구가 없어서 벽에다가 공을 던지며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곤 했었습니다. 그 날은 참으로 어둡고 습한 날이었는데, 구름이 머리꼭지까지 내려온 것처럼 스산했던 날이었습니다. 나는 그 날의 풍경이 아직도 선명하게 생각난다. 모리스 위트릴로의 그림처럼 온통 무채색이었던 동네 하늘 아래 커다란 나무가 한 그루 있었고 나는 왠일인지 '그림을 그려야 겠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는 스케치북과 파란색 연필 하나를 들고 무작정 길거리로 나갔습니다. 나는 길거리 한복판에 쭈그리고 앉아 몇 시간동안 나무를 그렸고 아마도 꽤 잘 그렸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작 어디에도 그림을 보여줄 사람이 없다는 걸 알았을 때, 아무튼 그 때 나는, 그림 같은 건 다시는 그리지 않겠다, 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정의하지 못하는 감정을,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내가, 살아남은 새의 슬픔을 의심한 것처럼. 

DSC03635

제비 새끼 4형제가 태어났다. 가족들이 여행을 왔다. 제비집 아래 화단에 심은 적도 없는 호박이 자라고 있다. 고모 할머니는, 제비들이 박씨 대신 호박씨를 물고 왔나보다, 고 하셨다.

 

7/10

비행기 상황이 좋지 않을 것 같아, 아버님이 먼저 서울로 가셨다.

 DSC03619

온 동네 제비들이 집앞에 다 모여든 것만 같다. 둥지를 떠난 아기 제비들이 다 같이 떠날 준비를 하는 걸까?

 

7/11

DSC03633

나머지 식구들이 서울로 돌아갔다. 고모할머니께서 산길에서 데려온 곰돌이의 눈과 코를 예쁘게 만들어주셨다.

 

7/12

내시경 진료를 예약하고 돌아왔다.

 

7/13

안테나 회의.

 

7/14

동률을 만나고, 돌아오는데 비행기를 놓치는 바람에 저녁이 되어서야 집에 올 수 있었다.

 

7/15

내시경 검사. 한 웅큼의 약을 받아왔다.

 

7/16

아침 산책 중 보현이 동네 큰 개에게 심하게 물렸다. 뼈와 내장을 다치진 않았지만 제법 큰 수술을 하고 돌아왔다.

손님방에 이불을 깔고 보현이와 나란히 누워 자기로 했다. 

 

7/17

제천 영화제 프로그램을 보니 미겔 포베다의 영화와 아르보 페르트의 영화가 보고 싶다.

78228_310x459292852-arvo-part-even-if-i-lose-everything-0-230-0-345-crop

아르보 페르트의 영화 제목, 내 모든 걸 잃는다 해도.

 

7/18

붕대를 칭칭 감은 보현이를 보며, 나는 아주 지독하게, 오직 지금만 생각하겠다, 마음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