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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6-8/5

6/26

가지꽃이 피었다. 날이 흐리다.

아내가 서울로 갔다. 오래된 절집에 해바라기가 피었다.

릴테입에 <dancing with water>를 옮겼다.

경환이 송용창 님의 시디를 보내주었다.

6/27

5:43am

아이가 또 잠을 설쳤다. 뱃소리가 들렸을까.

귀를 막지 않으면 내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너무 흔해서 버려진 단어를 골라 꼭꼭 씹으며 걷다보면, 그제서야 낱말이 내게 들어와 몸의 일부가 된다. 희망, 용기, 사랑, 같은 말들.

다시 song 작업에 몰두.

6/28

5:39am

좋은 아침이다. 아기 제비들아.

Can you imagine painting a picture by having to write a set of instructions for someone else to paint it?

- Laurie Spiegel

가사지를 앞에 펼쳤다. 적어도 한 달은 몹시 고통스럽고 힘들 것이다.

대정에게 전화가 왔다. 어제 꿈에 내가 나왔는데, 괜찮냐고 안부를 묻는다.

6/29

6:23am

Song#14 스케치

지난 앨범들의 흔적을 꺼내 훑었다. Song#0 로 워밍업을 해볼까.

6/30

비티력 방제. 비티력 두 봉지 + 1000 L 물.

까투리가 둥지를 떠나지 않은 것 같아 다행이다.

여름순이 조금씩 커지고있다. 레몬의 일차 여름순은 귤굴나방으로 초토화되었다. 아직 보랏빛인 이차 순은 어떻게든 지켜내야할텐데 비티력으로 가능하려나. 큰 기대는 하지 마세요. 약을 파는 분도 이렇게 말할 정도라 실은,

친환경 농가의 여름은, 너무나 힘든 계절이다. 아홉시 반 전에 방제를 마쳤다. 내일 사용할 비티투 두 봉을 감협에서 사 왔다.

철지난 작업 흔적들 - 가사지, 악보 등을 죄다 찾아 오두막에서 가져왔다. 7집은 8월 까지 곡작업을 했었구나. 8집은 6월 즈음 노래 작업이 거의 마무리 되었구나.

Song#0을 완성하고 아내에게 불러주었다.

7/1

비티투 방제 첫 날. 약을 젓던 중 덩굴 정리를 하다 그만 벌에 쏘여버렸다. 장갑에 딱 달라붙은 쌍살벌이 떨어지지 않아 장갑을 벗어 던지고 줄행낭을 친 시간이 새벽 5 시 반. 갈 곳이라곤 큰 병원 응급실 밖에 없다.

상쾌한 새벽 공기에 손은 점점 부어 오르고 구급약을 먹기 위해 급한대로 배를 채우며 차를 몰았다. 빵과 쥬스를 먹고 작년에 받아놓은 약을 입에 털어넣었는데 손은 여전히 부어오른다. 텅 빈 응급실에서 무뚝뚝한 남자 간호사 한 분이 주사 두 대를 놓아주신다. 주사가 하나도 안 아파.

스텔라님과 미현씨와 통화를 했다.

붓기가 조금 진정되나 싶더니 저녁부터 다시 손이 슬슬 가렵다. 스테로이드 로션을 손에 발라도 별 차도가 없다.

열두 시에 보현이 깨었다.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하던 나도 손이 너무 가려워 얼음 찜질을 하다 다시 잠을 청했다. 약도 먹었는데 왜 이럴까.

제비가 이소를 한 것 같다. 서운하지만, 맘을 놓았다.

Cezar Mendes 의 앨범을 계속 듣다.

<Aquele frevo axe>는 Gal Costa가 부르는 것도, Caetano가 부르는 것도 다 좋다.

이 곡을 언젠가 다시 들으면, 유난히 어둡고 무거운 올 여름이 떠오르겠지.

7/2

스텔라님과 같이 셋리스트를 고민했다.

노래를 하는 관악 주자의 솔로는, 다르다.

밤새 손이 다시 팅팅 부었다. 결국 아침 일찍 다른 병원으로 가서 항히스타민제 두 알에 스테로이드 계열 소염제 한 알을 타왔다.

밭에 가서 아내를 도와 일을 마무리 하고 돌아왔다. 까투리는 아직 알을 잘 지키고 있다. 마음을 놓았다.

Nelson Sargento가 부른 카톨라의 노래를 들으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땅에 떨어진 그을린 벌집이, 슬프고 미안하다.

숲에는 주홍빛 말나리 꽃망울이 맺혔다. 내일부터는 장마라기에, 과수원에 가서 단단히 채비를 해두었다.

7/3

5:40am

Song#15 작업. 장마 시작. 빗소리가 좋다.

야기 오리들이 많이 컸구나.

7/4

6:10am

비가 많이 오는 날. 시작.

오전 그리고 낮까지 작업을 해본들 무언가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을 읽다.

좋은 것들이 내 속으로 들어오도록. 나쁜 것들은 최대한 내 속에 덜 머무르도록.

'좋다'는 말만큼 심플하고 어려운 말이 또 있을까.

7/5

간밤 아이가 잠을 못 이룰만큼 자주 깼다. 손은 거의 회복이 되었다. 약은 혹시 모르니 끊지 말고 서서히 줄여나갈까 싶다.

노래 사이로 바람이 불어온다.

7:30am

갑작스레 소나기가 내린다.

아침을 먹고 보현과 나가서 기계상사에 들렀다. 각도톱을 싣고 병원에 가서 보현의 약을 타고 돌아왔다. 비가 흩뿌리는 도서관 운동장을 계속 걸었다.

Poems are made by fools like me,

But only God can make a tree.

- Alfred Joyce Klimer

헤세의 책과 하야카마 유미씨의 <이것으로 충분한 생활 - 씨앗 할머니의 작은 살림 레시피>를 읽었다. 하야카와 유미씨는, '산다는 건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는 것' 이라고 했다.

아주 예전에 만든 미완의 곡을 다듬어보았다.

지금 내 마음의 땅은 노래가 싹을 틔울만큼 과연 비옥한가.

7/6

4:35am

아이가 간만에 깊게 잠들었던 밤.

다른 이의 씨앗을 내 속에 심을 게 아니라 잠자고 있는, 이미 내 품에 있는 씨앗을 틔워야한다.

'그럴듯한' 가사가 아니라 정말 '그런' 가사.

내가 음과 음, 코드와 코드의 진행을 꼭꼭 씹어 음미하듯, 문학을 좋아하는 이들은 낱말과 문장을 그렇게 맛보는 거겠지.

그간 스케치한 모든 트랙을 옮기고 정리했다. 이 안에 결국 답이 있을까, 아닐까.

10:59am

긍정이란, 다 잘될 거야, 가 아닌, 의심없이 아름다움을 믿는 태도다.

7/7

그간 스케치한 노래들을 모두 담았다. 15 곡이다.

서울 행. 혈형, 장원, 재평, 재형이 형을 만나서 원로원 회의를 하고 왔다. 간만에 안테나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좋았다. 오가는 길에,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7/8

제주행.

오며 가며 2019년의 일기를 들춰보았다. <너와 나>를 구상하고 준비하고 만들던 그때, 나는 참 용감하고 맹렬하게 하루하루를 살았었구나.

김동욱님의 책 <음악을 틀면, 이곳은>을 읽다가 도쿄의 거리와 카페 그곶의 두 분이 생각났다.

나태주 선생님께서 책 두 권을 보내주셨다.

밤이 되자 풀벌레 소리가 짙어졌다.

7/9

새벽 소풍을 나갔다가 빗줄기가 거세져서 그냥 돌아왔다.

무덥고 습한 나날들이 계속 된다. 과수원에는 그 사이 풀이 더 껑충 자랐다. 다음 주 잠시 비가 멎는 다고 하니 유황합제 방제를 할까 싶다.

아이와 중산간 탐험을 나갔다. 1100고지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며 조릿대가 지천인 둘레길을 걸었다. 가녀린 주목 몇 그루를 만나고 노란 황금새를 종추하다.

쏙 몇 마리를 넣고 총각김치를 담았다. 저녁에는 쏙을 쪄서 감자와 먹었다. 어릴 적, 외갓집에 가면 할머니는 잔잔한 쏙을 한 소쿠리나 삶아주셨지. 보랏빛 쏙의 살은 참 달고 맛있었는데, 오일장에서 사 온 쏙은 크기도 크고 살도 무르고 맛도 다르구나. 기억과 다른 기억을 만난 것 같구나.

아내가 농협에 가서 외상 약정 신청서를 쓰고 왔다. 농사를 지으려면 필수인데 아직도 안 해놓고 있었구나.

7/10

10:05am

Song#1 capo 4fr 으로 가사와 함께.

Transposing can cause unpredictable reformation of melodies.

오전 내내 작업을 하다 Peter Garland의 음악을 들으며 운동을 하고 왔다. 아내와 보현과 즐겁게 산책을 다녀온 저녁. 돌아오는 길에 또 Caetano의 <Aquele frevo axé>를 들었다.

7/11

Song#1에 큰 진전이 있었는데 키를 위 아래로 흔들면서 멜로디 감각도 함께 흔들어 보았던 거다.

오두막은 무사하고 일층은 습하고 여름순은 많이 자랐다. 다음 주 비소식이 사라졌다. 재빨리 비티투 방제를 해야겠다.

점심을 먹는데 창문 너머로 맨땅이 휑한 과수원이 보인다. 단정하고, 적막하다. 소리가 사라진다는 것은 삶도 사라졌다는 것. 풀벌레 소리나 카투리의 소리, 농부의 발목을 붙드는 환삼 덩굴의 소리 같은 것이 모두 사라졌다는 것.

7/12

아침부터 Song#1 이 잘 풀리지 않아.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양봉 장갑을 샀다.

7/13

비티투 방제 첫 날. 450 리터만 방제하다. 두 봉지를 넣어야하는데 한 봉지 밖에 안 넣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어처구니가 없구나.

Song#1 도 마무리 못했는데 새로운 곡을 또 스케치한다.

7/14

5:27am

새벽 노을이 아름답다.

비티 투 방제 이틀 째. 비티 투를 조금 쏟았다. 풀벌레들과 하늘거리는 여름순이 우릴 반겨주었다. 소서가 지나니 확실히 벌레 소리가 커졌다. 낮이 조금 짧아졌다. 늦게 오는 섬의 여름이 성큼 내 앞에 서있다.

7/15

Song#20. 멜로디를 선물 받았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어제 방제 후, 다리 곳곳에 물집에 생겼다. 희한하게도 무릎 아래만 그렇다.

몸에 발진이 점점 심해져서 오늘 방제를 포기했다. 윤정, 기연씨네 갔다가 밭에 들러 호스 정리를 해두고 화정이를 만나 기타줄을 갈아주고 병원에 갔다. 벌레에 물리셨네요. 어떤 벌레인가요? 글세요. 그것까진 제가 모르겠습니다. 대체 장화 안에 무슨 벌레가 있었던 걸까.

이. 빈대. 진드기. 개미. 옴. 내가 알아낼 수 있는 한 모든 종류의 벌레를 검색해보아도, 아 모르겠다.

7/16-7/18

친구 둘과 제천행.

오랜 친구란, 내가 지은 오래된 노래 같은 것.

물집이 심해져서 수포를 터뜨리고 소독을 했다. 수포가 가라앉아도, 같은 자리에 또 생기는데, 참 기괴한 일이다.

무지개를 보았다.

7/19

밤새 잠을 설쳤다.

채운을 보았다.

말라 죽은 줄 알았던 자스민에 하얀 꽃이 피었다. 아름답고 향기롭고 감사하다.

7/20

큰 진아 부부가 집에 왔다. 서울에서부터 트렁크 한 가득 선물을 가지고 와 건네준다. 해준 거라곤 아무 것도 없는데...

초발심을 하게해 준 스님의 설문을 듣다가 도저히 못 듣겠다 싶어 그만 꺼버렸다. 큰 스님께서 방편을 주시곤 홀홀이 사라지시네.

진귤 나무에 애벌래가 낀다.

미얀마. 미얀마. 미얀마...

7/21

Song#15. 뼈대는 거의 되었는데 영혼이 없다. 노래. 노래.

백로 떼가 집 앞 바다로 몰려 왔다. 부리가 노란데 노랑부리 백로는 아니다. 중백로, 중대백로 모두 여름 부리는 검은데 어떻게 된 걸까. 크기를 보면 황로도 아닌데.

아이와 아내와 시내에 나갔다. 아이와 갈 수 있는 카페가 하나 생겼다. 오며가며 아비담마 강해를 들었다.

서원과 회향. 잠시 잊고 살았다.

미얀마의 민중가요 한 곡을 따라 쳐보는데, 432 Hz 튜닝이라 정말 놀랐다.

7/22

Song#15 간주 만들기.

430 Hz 까지 내려서 해보다. 곡의 폼이 정해진 듯 정해지지 않은 듯 계속 바뀌고 바뀌고 어딘가로 나아가고, 하지만 어색한 것은 여전히 어색하고.

오전 11시가 지나면 아무 것도 더이상 할 수가 없다.

방충복을 샀다. 난 어느 별에 있는 건가요.

7/23

꿈을 꾸었다. 하얀 관공서와 기타. 난해한 음악. 아가 셀티들.

옆집 삼춘이 아침부터 노들 강변을 들으신다. 삼춘의 어머니는 노래꾼이셨지. 삼춘의 핏속에 아직 할머니의 흥이 흐르고 있구나.

Song#15.

위빠사나 명상과 후안 퀸테로의 노래.

담벼락 아래에서 새끼 고양이가 잔다. 한 달 박이 쯤 될까. 매우 여위고 슬플만큼 예쁘다.

심바네에 가서 와인을 얻어왔다. 선물도 드렸다.

아름다움은 왜 우리를 구원하는가. 우리를 어디론가 데려다 주기 때문인가. 어디에 있는 지 알려주기 때문인가. 마음을 모아주기 때문인가. 마음을 사라지게 하기 때문인가.

나는 마음을 비우는 재능이 없다.

은행에 들렀다가 카페에서 아인슈페너를 마시며 글을 적었다. 엔진오일을 갈았더니 트럭이 시원해졌다.

밭의 꿩 알이 무사히 부화된 것 같다고 아내가 일러준다. 유기 칼슘 제조를 시작하였다.

Flo 에피소드 네 개를 더 보내고 피날레로 씨름을 하다 열시 가까이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7/24

늦잠을 잤다. 밖이 환한데 마음이 어둡다.

Song#16

공연 준비. 커버곡 채보.

4:58pm

집앞 전봇대 위에서 멧비둘기가 노래를 했다.

노을이 아름답다.

7/25

기상 시간이 자꾸 늦어진다.

새벽. 담벼락 아래 아기 고양이가 잠들어 있다. 담 너머 바위 위에서 고양이 두 마리가 우리집을 바라보고 있다. 한 마리는 거의 눈을 뜨지 못할만큼 아파보인다. 처음 새끼 고양이를 보았을 때 같이 있던 엄마 고양이 같다.

7/26

노래를 부르는 건 노래를 듣는 일이다.

노래를 만드는 것도 부르는 것도 나는 여전히 잘 알지 못한다.

배대표님을 만나고, 스텔라님을 만나고. 윤성씨 호규를 만나고. 정오형도 만나고. 기자 분들을 만나고. 크레디아 분들을 만나고. 안테나 분들을 만나고. 수많은 만남들이 이어진 날.

7/27

물 소리를 들으며 아침 차를 마셨다.

규칙적인 질서 그리고 동기화.

음악이 기도라면 노래는 만트라다.

머리 자르고 미팅하고 공항으로. 집에 와서 기진맥진하다. 밤 새 가려웠다.

7/28

아내의 생일.

담벼락에 기댄 아기 고양이. 급한대로 일단 보현의 비상 사료를 주고는, 결국 고양이 사료를 사왔다.

엄마가 오셨다. 시장에 가서 떡을 부치고 젓갈을 부치고 사고 족발도 하나 사고 돌아왔다. 옆 집 형님이 아내의 생일 선물이라며 한치를 주신다.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있다. 뭘까.

7/29

선물을 챙겼다.

약 기운에 헤롱대며 다시 서울에 와서 숙소에서 연습을 했다.

7/30

스텔라님과 공연.

7/31

귀가. 공항에선 천둥번개가 치고 난리도 아닌데 집 근처에 오니 잠잠해졌다. 눈에 핏줄이 터졌다. 엄마와 고향 후배 화정을 만나 고기를 먹었다. 고양이는 그새 몸집이 더 커졌다. 사료도 부지런히 잘 챙겨 먹고 있다. 잘 먹으니 다행이다.

8/1

집에 매미가 왔다.

고양이 응가를 치우고, 구멍을 막았다.

8/2

엄마가 부산으로 가셨다.

백신을 맞으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고양이가 보이지 않는다.

스콜처럼 소나기가 내렸다. 얼른 아이를 데리고 산책을 하고 돌아왔다.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껍질과 알맹이가 딱 달라붙은 옹골찬 노래를 짓고 싶다.

8/3

잠을 깊이 못 잔 지 꽤 되었다. 조금 힘들다.

덩굴 작업을 하러 네 분이 오셨다. 낫이 필요하다길래 낫을 사다 드렸다. 직박구리 둥지에 알이 있다. 여름 순이 굳어서 계속 자라고 있다.

두 분이나 낫에 손을 다쳐서 마음이 그렇다.

노래는 누구의 것인가.

비교는 불행으로 향하는 가장 빠른 통로.

8/4

6:18am

노래는 무엇입니까.

백신을 맞고 보현과 카페에 가서 차를 마셨다.

김우인님의 책을 다 읽었다.

8/5

노래는 누구의 것입니까.

노래를 세는 일을 포기했다. 그냥, 곡에 매달린다.

가사의 밀도. 가사의 품. 가사의 스텝. 가사의 걸음 걸이.

이수지 님이 신간을 보내주셨다.

노래는 텅 빈 곳에 문득 맺히는, 이슬 같다.